Accomodation

  • 1890년대와 1900년대는 medical profession 발달에 있어서 중요한 turning point였다. Academic physician들이 전면으로 등장하면서 그들의 존재 자체가 practitioner와의 갈등을 일으켰다하지만 동시에 화해의 움직임도 있었는데 결과로 이미지나 수입이 뿐만 아니라 academic medicine 하나의 career로서도 자리잡았다.
  • 19세기 후반 대부분에 걸쳐서 laboratory scientist practicing clinician 구분짓는 차이가 지속되었다그러한 scientific medicine clinical medicine 간극이 너무 나머지 일부 physician들은 antivivisectionist 편에 서기도 하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experimental medicine 대한 어떤 지속적인 회의론도 의학지식의 증가를 막을 수는 없었고 많은 새로운 지식이 임상적 유용성을 찾아갔다.
    • 무엇보다 이러한 지식은 나중에 언젠가는 의학의 긴급한 문제들의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주었다.
  • 1900년대 초의 Experimental medicine medical practice에의 궁극적인 순응은 clinical science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다. Clinical science 환자를 돌보는 것과 기초 의학 사이의 다리를 놓아 주었다.
    • 그들의 scientific colleague처럼 clinical scientist들은 실험주의자들이었다다만 그들은 질병의 문제에 조금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그들의 신조는 ‘질병의 진단과 치료는 서로 손을 맞잡고 나아가야 한다’였다.
  • 개인적 수준에서 clinical scientist 등장은 William Osler Lewellys Barker 차이 보여주었다.
    • Osler : 실험실을 진단적 용도로만 사용
    • Barker : 실험실을 질병을 연구하는데 사용
  • 조직적 수준에서는 AAP ASCI 차이가 그와 같았다.
    • Clinical scientist 계속 환자를 보면서 clinical medicine basic science 연결고리를 만들어갔다.
  • 1900년대 초에 이르러서 practicing physician 사이에서 experimental medicine 대한 새로운 자세가 나타났는데의학의 모든 art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medical practice 이제 scientific foundation 의지하게 것이다.
  • 이러한 physician들의 태도의 변화는 근본적인 수준에서 liberalism 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의 변화와 관계가 있다 세대의 physician들에게 실험 과학은 비인간적이고 지적 흥미만 추구하는 처럼 보였다하지만 점차 clinician들은 실험실이 그들 나름의 역할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그러면서 점차 그것을 인정하게 것이다.
  • 1890년대와 1900년대에 medical profession 일반 사람들은 점점  scientific medicine 감탄하였고나이  physician들도 점차 은퇴하기 시작했다.
    • practitioner들은 점차 그들의 직업이 과학적 기반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초가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도 알았다.
  • 어떤 사람도 William Osler보다 직업에  healing effect 주진 못했을 것이다.
    • Osler 언제나 clinical man이었지만, Osler 과학적 의학을 포용하면서부터 그는 앞선 세대의 위대한 clinician들의 임상적 감각정신적인방법론적인 가치를 유지할 있게 되었다.
  • Osler 과학적 의학을 포용한 유일한 사람은 아니었다하지만 그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그의 성격이었다.
  • Osler 그의 독특한 성격을 직업 내에서 조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했다그는 누구보다 다른 사람들과 많은 친분을 쌓았다그의 다른 academic colleague와는 다르게, Osler practitioner 에게 마음이 끌렸고 그들을 존경과 친절로 대했다.
    • Osler 과학적 의학의 가치과 전통적 의학의 가치가 조화를 이룰 있게 하였다.
  • 1910년까지 Medical profession내에서 새로운 질서(order) 세워졌음을 알리는 여러 신호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continuing education 등장한 것이다.
    • 다른 신호는 practitioner들이 academician 손을 잡고 experimental medicine 가장 적인 antivivisection movement 대항하여 싸운 것이다.
  • 1910년까지 medical profession 사회학적인 변형을 거쳐 지금의 형태에 이르렀다. Profession 드디어 professor practitioner 모두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낼 있었다.
    • academician들은 “standard medical practice” 결정하는데서 그들의 힘을 이끌어냈다. Medical profession 빠르게 elitist 되어갔지만학문적 성과를 돈을 주고 수는 없었기에 내부적으로는 오히려 민주적이 되어졌다.
    • Practitioner 그들의 전통적인 통제권은 넘겨 주었지만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힘을 얻게 되었다.
  • Medical profession 재조직은 professor practitioner 협력을 필요로 했다 둘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였다.
  • Professor 미국에서 인정을 받는 만큼 practitioner와의 전통적 긴장감이 사라지지는 않았다그렇지만, 1910년까지 그룹이 서로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정도까지는 도달하게 되었다 그룹은 그들이 서로의 성공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모두를 위한 공간이 충분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Chapter 6. The Birth of Academic Medicine

  • Civil War 이전에, medical profession에는 가지의 사람 있었다. 학생과 Practitioner-teacher이다. 모든 교육은 private practitioner 의해서 이뤄졌기 때문에 'Teacher'라는 분리된 직업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의학지식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상황이 변했고 full-time professor 등장했다. 의학교육의 발전과 직업으로서의 academic medicine(AM) 등장은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발전하였다.
  • 의학지식이 늘어나면서 AM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Medical scholar 새로운 의학 발견을 하고, 그것을 퍼뜨리는 역할을 해야 했다. AM 등장(birth) 미국의학의 역사상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들은 다른 의사에 의하여 보호받기는 커녕, 회의적인 눈길을 받거나 적대적인 대접을 받아야 했다. "Town-Gown" tension medical profession 전반에 퍼져나갔다.
  •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룹은 그들이 서로의 존재 없이는 생존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수의 medical career 가능해졌지만 가장 중요한 구분선은 medical scholarship medical practice 사이에 놓여져 있었다.

 

Professors and Practitioners

  • 2장에서 말했던 것처럼 미국의 AM 미국 physician들이 독일 대학으로 가서 experimental medical science 공부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 하지만 이들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academic opportunity 무척 적었기 때문에 괴롭고 고된 일이었다.
  • 1870년대와 1880년대에 몇몇 full-time teaching and research position 몇몇 pioneering MS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 그러나 19세기 후반까지 이런 full-time professor 좋게 봐줘서 괴짜나쁘게 말하면 쓸모없는 정도로 인식되었다.
  • 1880년대에 experimental medicine 스스로의 clinical practice에의 유용성을 입증하면서 상황은 나아지기 시작했다.
    • 가장 돋보이는 돌파구는 JHMS에서 등장했는데, 1893 개교 때부터 모든 laboratory science department full-time 또는 university basis 시작하였다.
  • 1910년보다 20년쯤 전에는 AM 분야의 직업은 대부분 급여가 적었다. 1909년에 full-time professor 받는 가장 높은 급여는 $2100였는데, private practice 하는 버는 의사는 $25000에서 $30000까지 벌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 월급도 높아지고, Harvey Cushing같은 의사는 1901년에서 1909 사이에 일곱번의 chair of surgery 요청을 받았다.
  •  Academic elite 등장과 modern university 등장그리고 school system 발전은 1910 이전 의학교육의 발전에 중요한 사건들이었다점차 많은 학교에서 academic physician 지위를 획득했고자금이 되는 곧바로 curriculum 개선했다이런 사건들은 모두 서로 연관성이 있는데왜냐하면 academically trained individual 학교 내에서 발판을 마련함으로써 의학교육과 의학연구가 번영했기 때문이다.
  •  Academic community 회원들은 그저 조용히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지 않았다그들은 열심히 연구하고 공격적으로 그러한 기회를 만들어냈다.
    • 의학교육과 연구가 미국에서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잡을 있을지는 이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 많은 academic physician들이 당시의 institution-building 기여했다대부분은 자신들의 지역에서독지가들과 함께 하였다.
  • AM 발전에 있어서 William Welch만큼 중요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전국적으로 academic appointment(지명임명) 있어서 그의 조언을 구했다 번째 experimental medical research만을 다루는 저널을 만들었고 Rockefeller institute 조직했으며미국의 번째 school of public health 설립했다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어린 medical scientist들을 교육하는 것을 좋아했다.
  • Professor practitioner 사이의 경계는 분명하게 지어지지 않았다.  둘은 모두 공통된 source로부터 나타났으며다만 졸업 이후 다른 진로를 택한 뿐이었다 어떤 것도 ever exclusive category 아니었다.
  • 그렇지만 1900년대 초반에, AM 분명히 medical practice 서로 다른 직업으로서 구분되어졌다.
    • Academic physician들은 AAMC practitioner AMA 속해있었다.
    • 그러나 medical professor들은 유명한 쟁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antivivisection movement였다.
    • 외에도 많은 차이가 있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유대관계는 절대 없어지지 않더라도 그룹 사이에 분명한 차이는 존재했던 것이다.
  • 비록 medical professor 서로 다른 career 택했지만 그들의 career 다른 academic discipline professor 그렇게 다르지는 않았다.
    • 모든 분야의 학자들은 그가 어떤 학문을 하느냐와 무관하게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점이 의학교육과 대학 사이의 강한 연결 고리가 있었다.
  • 19세기가 끝나고 20세기로 넘어갈 무렵, academic physician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의학지식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고그들의 존재는 그러한 지식의 특성 때문에라도 필요했다.
  • 일부 갈등은 experimental science 바라보는 practitioner professor 관점의 차이에서 기인했다. Practitioner 연구자를 impractical하다고 보고, laboratory worker clinician 비과학적이라고 보면서 분열이 시작되었다.
  • 그러나 심각한 갈등은 의학교육의 주도권을 놓고 벌어진 권력 투쟁이었다.
  • Professor practitioner 서로 다투면서 안되는 medical scientist들은 private practitioner들이 의학교육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새로이 등장하는 academic elite들이 기존에 힘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의학교육의 주도권을 빼앗아오면서직업 내에서 사회적 혁명이 일어난 것이었다.


Jeff Hancock: 3 types of (digital) lies




다음 중 가짜 후기를 고르시오.


정답과 그 설명은 맨 아래에!








(좌) 손전등을 들고 있는 디오니게스. 정직한 사람을 찾는 중이라고 한다.

(우) 공자. 






세 가지 종류의 거짓말

(1)집사 타입

(2) 양말인형 타입

(3) 중국 수군 타입





집사 타입

- 나 지금 가는 길이야

- 미안, 베터리가 떨어졌어.

- 일 때문에 가야되게 생겼네.









흥미로운 연구결과들

(1) 면대면 대화, 전화, 이메일 중에서 거짓말의 빈도순으로 나열하면 : 전화 > 면대면 > 이메일

(2) 자기소개서 : LinkedIn profile은 Paper resume보다 더 솔직하다.

(3) 페이스북 : 페이스북에서 드러나는 성격은 실제로 만났을 때와 유사하다.

(4) 온라인 데이트 : 온라인상에 밝힌 키는 실제 키보다 크다. 하지만 거의 실제 키와 비슷하다.






상대방의 거짓말을 판단하기 위해 '눈'을 본다고 하지만 그 정확성은 54%에 불과하다.

눈에는 믿을 만한 요소가 없다.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말을 하기 시작한 50,000년의 역사 중 5,000년에 불과하다.

즉 그 전까지는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모두 허공으로 사라졌을 뿐 

기록으로 남지 않았다.








다음 중 가짜 후기를 고르시오












정답은 B!


허위로 작성한 후기는...

(1)서술법을 쓴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2)무엇이 일어났는지 중점을 둔다. 누구와 있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한다. 

(3) 심지어 숙박한 사람들보다 '나'라는 말을 더 많이 한다. 

후기 속에 자기 자신을 넣어서 본인이 실제로 그곳에 있었다는 점을 설득하려 한다.



반면, 실제로 작성한 후기는 그 공간에 대해 더 많이 서술한다.

화장실이 얼마나 컸고, 쇼핑몰이 호텔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지 등.







멀티태스킹에 지친 당신!



핸드폰의 기능을 줄여보자!



전화만 가능하게 한다거나,



나침반 기능밖에 못하도록!



혹은


그냥 벽돌(Monolith)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핵심이 된 모기의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수컷 모기는 물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사람을 무는 것은 모두 암컷 모기입니다.

둘째는 수컷 모기는 암컷 모기를 매우매우 잘 찾아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컷 모기를 풀어두면, 그 수컷모기 주변에 있는 암컷 모기를 찾아낼 것입니다.

Now there are two features of mosquito biology that really help us in this project, and that is, firstly, males don't bite. It's only the female mosquito that will actually bite you. The male can't bite you, won't bite you, doesn't have the mouth parts to bite you. It's just the female.And the second is a phenomenon that males are very, very good at finding females. If there's a male mosquito that you release, and if there's a female around, that male will find the female.


그래서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이용했습니다. 보통 수컷이 암컷을 만나 교미를 하고 알을 낳으면 

한 암컷은 한 번에 100개정도의 알을 낳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500개 정도를 낳습니다.

만약 수컷이 '모기의 유충을 죽게 만드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유충을 모두 죽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불임(sterile)모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더 많은 불임 수컷 모기를 풀어두면, 

암컷이 불임 수컷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점차 모기가 감소할 것입니다. 

설령 불임 수컷 모기가 암컷과 교미를 못한다고 해도, 

어차피 그 수컷은 곧 죽을 것이기 때문에 어쨌거나 모기 수는 또 감소할 것입니다.



So basically, we've used those two factors. So here's a typical situation, male meets female, lots of offspring. A single female will lay about up to 100 eggs at a time, up to about 500 in her lifetime. Now if that male is carrying a gene which causes the death of the offspring, then the offspring don't survive, and instead of having 500 mosquitos running around, you have none. And if you can put more, I'll call them sterile, that the offspring will actually die at different stages, but I'll call them sterile for now. If you put more sterile males out into the environment, then the females are more likely to find a sterile male than a fertile one, and you will bring that population down. So the males will go out, they'll look for females, they'll mate. If they mate successfully, then no offspring. If they don't find a female, then they'll die anyway. They only live a few days.






모기로 인한 가장 위협적인 바이러스인 '뎅기열'도 50년 전에는 거의 아무도 들어보지 모한 병이었다. 

하지만 감염 속도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매년 5천만명에서 1억명 정도를 감염시키고 있다고 한다.













불임 모기를 방생하는 모습








Dan Pallotta: The way we think about charity is dead wrong



"절약하는 것"이 더 "도덕적인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40%의 간접비를 지출하는 대규모의 모금 사업(fundraising enterprise)보다

 간접비(overhead)를 5%수준으로 낮춘 바자회가 더 도덕적이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그렇다면 실제 파이의 크기는 얼마나 될 것이냐?'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자선에 쓰이는 돈이 얼마 되지 않는다면 간접비 지출이 5%든 얼마든 누가 신경을 쓰겠습니까?

 '규모를 확대시키기 위한 비용'을 지출하지 않는 바자회에서 돈을 모아 71달러를 기부하는 것과,

 전문적 대규모 모금사업을 통해서 7천1백만달러를 기부하는 것 중 뭐가 더 낫습니까? 

빈곤층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This is what happens when we confuse morality with frugality. We've all been taught that the bake sale with five percent overhead is morally superior to the professional fundraising enterprise with 40 percent overhead, but we're missing the most important piece of information, which is, what is the actual size of these pies? Who cares if the bake sale only has five percent overhead if it's tiny? What if the bake sale only netted 71 dollars for charity because it made no investment in its scale and the professional fundraising enterprise netted 71 million dollars because it did? Now which pie would we prefer, and which pie do we think people who are hungry would prefer?



아마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 묘비에 "간접비를 낮게 지출했음"이라는 묘비명이 쓰여있기를 바라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길 원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껏 해온 사고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자선 활동에 대해서 '간접비가 얼마냐'라고 묻지 마십시오. 

대신 '그래서 실제로 얼마나 기부를 합니까?'라고 물으십시오.


그 정도의 관대합을 보여줄 수 있다면, 

비영리(non-profit)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세상을 바꾸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Our generation does not want its epitaph to read, "We kept charity overhead low."(Laughter) (Applause) We want it to read that we changed the world, and that part of the way we did that was by changing the way we think about these things. So the next time you're looking at a charity, don't ask about the rate of their overhead. Ask about the scale of their dreams, their Apple-, Google-, Amazon-scale dreams, how they measure their progress toward those dreams, and what resources they need to make them come true regardless of what the overhead is. Who cares what the overhead is if these problems are actually getting solved? If we can have that kind of generosity, a generosity of thought, then the non-profit sector can play a massive role in changing the world for all those citizens most desperately in need of it to change. 








왜 40년이 넘도록 미국의 빈곤률(poverty)은 12%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요?




Non-Profit sector는 현재 이러한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충분한 보상(compensation)을 해주지 못합니다.






두 번째로, 마케팅에 대한 비용 지출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의 Charitable giving은 2%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말은 40년동안 비영리영역이 영리영역으로부터 market share를 가져오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미국 건국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청교도(Puritan)의 정신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














Keith Chen: Could your language affect your ability to save money?





어떤 언어를 쓰는지에 따라서 저축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도 달라질 수 있을까?


Keith Chen은 "Futured Language(현재시제와 미래시제를 구분하는 언어)"와

"Futureless Language(현재시제와 미래시제를 구분하지 않는 언어)"로 나누어서

두 언어의 사용에 따라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말해준다. 







OECD에서 발표한 자료는 아래와 같다.





그렇다면 이 나라의 언어들은 어떻게 다를까?












예를 들면 영어로 삼촌은 Uncle이라는 단어 하나 뿐이지만

중국어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삼촌'들이 있다.







'시제'를 나타내는 표현도 국가마다 다르다.

영어에서는 '과거시제' '현재시제' '미래시제' 에 따라서 단어의 형태가 달라진다. 

하지만 중국어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내는 동사가 동일하다.






영어가 "Germanic language"이긴 하지만, 사실 영어가 독특한 것이다.

독일어를 보면, 독일어도 현재를 나타내는 동사가 미래나 과거를 나타내는 동사와 다르지 않다.


예컨대, Morgen regnet es를 영어로 직역하면 It rain tomorrow (It will rain tomorrow가 아니라)가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Futured Language"와 "Futureless Language"로 구분할 수 있다.


Futured Language에서는 '미래는 현재와 다른 것'이다.

Futureless Language에서는 '미래는 현재와 흡사한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언어의 차이가 저축률에 어떠한 차이를 가져올까?










이 그래프를 언어에 따라서 나눠보면....












Futureless language는 이와 같고 (즉 높은 저축률을 보이는 국가에서 많이 사용하고)





Futured language는 낮은 저축률을 보이는 국가에서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이는 우연일 수 있다. 어쩌면 문화의 차이일 수도 있고, 인종의 차이일 수도 있다.

좀 더 정확한 비교를 위해서는 한 국가 내에서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에 (즉 문화와 인종이 같은 경우)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만 저축률이 달라지는지 봐야 한다.











이러한 변수들을 다 통제한 결과...













Futureless language를 사용하는 사람들에서 아래와 같은 특징이 나타났다.


(1) 30%더 많은 저축

(2) 은퇴시에 25% 더 많은 저축


비단 금전적인 것 뿐만 아니라, 이러한 '미래를 대비하는' 자세는 더 넓은 영역에서 나타났는데


(3) 20~24% 흡연을 덜 한다.

(4) 13~17% 비만 확률이 낮고

(5)콘돔을 21% 더 많이 사용하고






(출처 : http://www.newyorker.com/online/blogs/newsdesk/2013/04/why-bostons-hospitals-were-ready.html)


2013년 4월 15일, 2013 보스턴 마리톤에서 결승선 직전에서 두 개의 폭탄이 터졌다.


이 테러에서 3명이 사망하고 17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그러나 부상자 중 사망자는 없었다. 

'성과'라는 단어를 쓰는 것 조차 안타깝고 조심스럽지만,
어찌되었든 이 정도 수준의 '의학적 성과'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9/11이 그들에게 남긴 문화적 유산(cultural legacy) 덕분이었다.

"We’ve learned, and we’ve absorbed"

사건이 터지자마자 각 병원의 인력은 빠르게 동원되고, 
동원된 인력은 그 상황에 맞게 재조직되었으며,
혹시 모를 2차 3차 테러에 대비했고,
테러의 내용으로부터 환자가 오기 전에 이미 필요한 수술의 종류를 예상하여
수술장 및 인력을 갖추어 놓았다.

각 병원마다 이러한 상황을 대비한 지휘관(commander)을 임명해 두었지만
그 지휘관이 무슨 일을 시키기 전에 모든 사람이 자율적으로 조화롭게 움직였고
폭발이 일어난지 단 35분만에 첫 번째 환자가 수술대에 오를 수 있었다.

"We have replaced our pre-9/11 naïveté with post-9/11 sobriety."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Dundee)

던디

Dundee Listeni/dʌnˈd/ (Scottish GaelicDùn Dè), officially the City of Dundee, is the fourth-largest city in Scotland. It lies within the eastern central Lowlands on the north bank of the Firth of Tay, which feeds into the North Sea. Under the name of Dundee City, it forms one of the 32 council areas used for local government in Scotland.

The town developed into a burgh in Medieval times, and expanded rapidly in the 19th century largely due to the jute industry. This, along with its other major industries gave Dundee its epithet as the city of "jute, jam and journalism".


The name "Dundee" is made up of two parts: the common Celtic place-name element dun, meaning fort; and a second part that may derive from a Celtic element, cognate with the Gaelic , meaning 'fire'.[4]





The SDMCG Learning Outcome Project

Phase 1. The specification of learning outcomes

  • 2000 3, SDMCG 스코트랜드의 어떤 의과대학을 졸업하든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자질과 역량을 정의하는 학습성과(learning outcome) 구성하였다.
    • In March 2000, following almost a year of extensive consultation with staff and students from the five Scottish medical schools, the Scottish Deans’ Medical Curriculum Group produced an agreed set of learning outcomes that clearly define the qualities and abilities of medical graduates from any of the Scottish schools. These outcomes were published as ‘The Scottish Doctor - Learning Outcomes for the Medical Undergraduate in Scotland: a foundation for competent and reflective practitioners’.


Phase 2. ‘The Scottish Doctor’ learning outcomes and assessment

  • 2002년, 'The Scottish Doctor' 번째 에디션이 출간되었는데, 여기에서는 첫 번째 에디션에서 정의된 '성과(outcome)' 조금 수정하였으며, 어떻게 이들 학습성과를 평가(assess) 있을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 A second edition of ‘The Scottish Doctor’ was published in 2002. This incorporated amendments to the outcomes in the light of feedback relating to the first edition and also demonstrated how each learning outcome might be assessed.
  • 번째 단계(phase) 또 다른 목적은 모든 학교에서 사용가능한 형태의 평가도구와 평가문항(assessment items or questions) 개발하는 것이었다.
    • One of the aims of this second phase of the work was to establish a collection of assessment items or questions that were acceptable to, and useable by, all schools. These would include set standards and encompass elements of knowledge, skills and attitudes that are applicable to the exit level assessment of the outcomes, wherever that occurred in the various schools’ programmes.
  •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섯 가지의 핵심 주제별로 팀을 구성하였다. : 
    • 흔한 주소(Medical Complaints)
    • 의사소통(Communication)
    • 공공보건(Public Health)
    •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
    • 의과학(Medical Science)
      • Five working groups were established to address the over-arching themes: Common Medical Complaints, Communication, Public Health, Professionalism, and Medical Science.  Specific topics were chosen from the level 4 outcomes and assessment items established..


Phase 3. Refinement of the learning outcomes and cross-linking with the recommendations published by the General Medical Council (GMC)

  • 번째 단계에서는 학습성과를 세밀하게 다듬고, GMC에서 출판되어있는 Tomorrow's doctor와의 연관짓기(cross-linking)작업을 하였다.
    • Since the publication in March 2000 of ‘The Scottish Doctor’ there has been a significant move internationally in medical education to an outcome-based model for curriculum development (see section 2.1).  In the UK the General Medical Council (GMC) has been concerned with learning outcomes.  It has a statutory role to oversee, quality assure and authorise undergraduate medical education in the UK.  The Council publishes guidelines for undergraduate medical education which medical schools must adhere to in order to attain GMC recognition (see section 2.2).  In phase 3 of ‘The Scottish Doctor’ project the learning outcomes statements in ’The Scottish Doctor’ have been mapped to those published by the GMC in ‘Tomorrow’s Doctors’ (General Medical Council 2002).  An evaluation has been carried out as to where they were congruent and where they differed.  In general, the two frameworks were found to be equivalent and the number of changes in ‘The Scottish Doctor’ outcomes required as a result of this study were relatively small.
  • 이번 단계에서의 The Scottish Doctor 리뷰하는 과정에서 여러 전문분과(응급의학과, 피부과, 신경과, Palliative care, 약리학..) 학습성과와 교과과정을 고려하였다.
    • The work of reviewing ‘The Scottish Doctor’ learning outcomes has also been informed by the descriptions of curricula and learning outcome frameworks reported for a series of specialised areas in medicine including acute and emergency medicine, dermatology, neurology, palliative care, pharmacology and therapeutics and sexual health.



(출처 : http://www.scottishdoctor.org/index.asp,
http://www.scottishdoctor.org/resources/scottishdoctor3.doc)




(출처 : http://wppandphotos.blogspot.kr/2012/12/knowledge-is-having-right-answer.html)


(1) 

지식은 옳은 답을 알고 있는 것이다.

지능은 옳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2)

"다른 이의 지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하지만 다른 이의 지식을 과대평가하지도 말라."


"Never underestimate the person's intelligence, 

but don't overestimate their knowledge." - Sydney Jacob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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