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ntrance Requirement
- 20세기가 시작되면서 교육 개혁의 한 가지 분야만이 다른 분야들에 비하여 크게 뒤떨어져 있었다. 바로 입학 요건이다.
- "의학교육의 가장 큰 장애물은 낮은 입학 기준이다"
- 1900년대 초의 MS는 가장 뛰어난 젊은 인재들을 모으고 있긴 했지만, 여전히 여러 학력 검증이 불분명한 학생들도 들어오고 있었다. 서로 다른 수준의 학생들이 동일한 medical course를 같이 밟고 있었다.
- 그러나 1900년대 초반에 의학교육자들은 입학 조건을 도입할 것을 주장하였다. 일정한 입학기준이 없이는 교육의 혼란은 일어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의학이 점차 과학적으로 엄격해지면서 준비가 잘 되지 않은 학생들이 재수강을 해야 하거나 학교로부터 탈락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 입학 요건은 1900년보다 훨씬 이전부터 논의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 논의의 맥락은 전혀 달랐다. AMA는 college degree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나, 의학교육자들은 college degree 그 자체보다 특정 과목을 배운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독일어나 프랑스어도 알기를 바랐다.
- 그러나 이러한 욕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일정 수준 이상의 학생 수 자체가 적었던 것이다.
- 1900년대 초에, 국가적 교육 시스템이 점차 공고해지기 시작했다. 초, 중, 고등학교 교육은 물론이고 그 전에는 무시당했던 자연과학 분야도 점차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 그 결과로 MS는 좀 더 까다로운 입학요건을 내걸 수 있었다.
- 입학기준은 공공 학교 체계가 가장 허술한 남부에서 가장 낮았다.
- 입학기준을 설립하고자 하는 움직임의 요지는 대학 수준의 과학과목을 선행 요건으로 하는 것이었다.
- Medical school들이 요구하는 입학 요건은 high school이나 college의 수준을 빠르게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 그 결과 바로 충분한 수의 학생이 갖춰지진 않았고, enrollment는 크게 감소했다.
- 그렇지만 Medical school official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기뻐했다. 이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비용이었다.
- 곧 교육시스템이 Medical school을 따라잡았다. High school과 college 를 다니는 학생은 빠르게 증가했다. 이전과는 상황이 바뀌어서 qualified applicant가 필요 이상으로 많아졌다.
- Medical school은 발전하는 학교 시스템으로부터 이득을 봤을 뿐만 아니라 입학 요건을 통하여 그 시스템을 shape하기도 했다. Medical school이 입학 요건을 갖춤에 따라서 college들은 premedical course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 Medical school은 school system을 shape하는 데 있어서 individually, 그리고 collectively 도움을 주었다.
- Individually : University에 속한 MS들은 그 캠퍼스의 undergraduate campus에서 premed program을 조직하는 것을 도왔다.
- Collectively : Medical school은 또한 입학요건을 고등학교나 college에 보냄으로써 최신의 기준을 전달했다.
- 의학교육 역사상 어느 토픽보다도 입학요건은 수많은 미신(myth)들을 만들어냈다.
- 1) 돈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님에도 그것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사곤 했다.
- 이 문제에 대한 혼란은 Medical profession을 단일한 집단(monolith)로 보는 흔한 오해로부터 일어나기도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academic physician을 ordinary practitioner와 구분할 필요가 있다.
- 입학요건이 physician들의 이미지나 지위를 높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의심이 있었으나, 입학요건은 의사집단 전체에 의해서 도입된 것이 아니라 의학교육자들에 의해서 도입된 것이다.
- 또 다른 미신은 입학요건으로 인해 2)구성원의 사회적 특성이 변했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었던 직업이, 이제는 중-상위 class에게만 제한된 것이다.
- 입학요건이 이러한 경향을 강화시킨 것은 맞지만, 그것들이 주된 원인은 아니었다.
- 1890년대와 1900년대 입학 정원이 크게 감소하면서, 입학요건이 있기 전에도 profession의 사회적 구성은 이미 well-to-do segment로 옮겨져 있었다.
- 입학 정원의 감소는 모든 수준의 Medical school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1900년대 초반에, Cornell의 정책은 '1학년에 학생들을 골라내어 4학년에 가능하다면 모든 학생을 졸업시키는 것이다'
- 같은 현상은 작은 학교들에서도 나타났다. 좀 더 느슨한 입학요건을 요구하는 학교도 진급과 졸업에는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곤 했다.
- 모든 학교가 성적과 진급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한 학교에서 졸업한 학생은 state licensing board에서 걸러지게 되었다.
- 국가적으로 1906년의 한 리포트는 38개의 의과대학 졸업생 중, 면허시험 탈락율은 20%를 넘었다고 되어있다.
- 1880년대부터 WWI까지, medical profession의 사회적 구성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한 때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었던 직업이 well-to-do segment로만 한정되었고, 노동자, 이민자, 소수민족, 흑인들은 배제되었다.
- 따라서 입학정원 감소는 underprivileged에게 가장 큰 손해였다(took its greatest toll on..)
- 입학요건이 가져온 결과 중 하나는 일부 학생들의 기회를 박탈한 것이었다.
- Profession은 이미 가난한 사람들은 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 1900년대 초반에,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Medical school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많은 의학교육자들은 Medical school의 적절한 역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교육적 이상을 따라야 하는가 평등주의적 이상을 따라야 하는가?
- Education과 Egalitarian 사이의 긴장은 완화되지 않았다. 그리고 입학요건이 확고해지며 Medical school의 일차적 기능이 egalitarian이 아니라 educational임이 분명해졌다.
- 겉으로는 입학요건은 그것의 목표를 달성한 것처럼 보였다. 학생들은 더 나은 performance를 보였고, 준비된 학생들이 입학하면서 입학정원감소도 점점 사라졌다.
- 그러나 입학요건에 대한 지속적인 불편함이 숨겨져 있었다. 지적 능력 외에 실제로 나중에 더 중요할 것으로 보이는 인격은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 의학교육자들은 좋은 medical student를 선발하고 있었고, 이러한 방식은 이를 통하여 미래에 훌륭한 의사를 키워낼 수 있을 것이란 믿음에서 작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개인적 성격을 평가하지는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좌절감도 있었다. Pedagogy에 관한 의학교육자들의 전문성을 인정하더라도, 이러한 한계에 대해서 그들을 겸허해질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