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적 연구와 질적 교육 (교육인류학연구, 2004)
조용환 (서울대학교 교수)
I. 연구와 교육
무엇을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렸을 때 우리는 찾는다. 무엇에 대해서 모르겠고 궁금할 때도 답을 찾는다. 찾는 그 무엇이 소중한 것일수록 더 열심히 끝까지 찾고, 하찮은 것일수록 대 충 찾다가 만다.
모든 찾기에는 그 이면에 상심(傷心)과 호기심(好奇心)이 있다.1) 상심이 상실, 결핍, 부족에서 오는 가슴앓이라면, 호기심은 기이한 것에 대한 유별난 궁금증이다. 그 점에서 모든 찾기는 연구와 교육을 닮았다. 뒤집어 말하면, 연구와 교육이 곧 찾기이다.
연구는 모르는 것을 묻고 그 답을 찾는 일이다. ‘연구’의 영어말이 ‘re-search’인 데서 알수 있듯이, 찾되 대충 찾는 것은 연구가 아니다. 찾고 또 찾고, 되찾고, 까뒤집어 찾고, 밤 잠을 설쳐가며 찾는 것이 연구다.2)
교육도 그와 비슷하다. 교육은 가르침과 배움을 통해서 몰랐던 것을 알게 되(하)고, 새로운 것을 할 수 있게 되(하)고, 더 나은 성품을 갖게 되(하)는 변증법적 향상의 과정이다. 교육 은 무지, 무능, 모순, 부족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다 알고 있고, 다 할 수 있고, 헷갈 리지 않고, 만족한 상태에 교육은 없다. 찾을 것이 없는 곳에 교육은 없다. 연구와 마찬가 지로 교육도 부단히 자기를 찾고, 세상의 이치를 찾고, 더 잘 사는 길을 찾는 일이다.
흔히 연구를 앎, 이론, 학문의 영역으로, 교육을 삶, 실제, 실천의 영역으로 구분한다. 그래서 연구소의 연구원은 교육과 멀고, 일선 학교 교사는 연구에서 멀다고 오해한다.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을 구분하고, 연구에 신경 쓰느라 교육을 소홀히 하는 교수, 교육에 치중하여 연구할 겨를이 없다고 말하는 교수도 흔히 볼 수 있다. 저명/국제 학술지에 연구 성과를 많이 수록하는 ‘학자 교수’에게 성과급을 몰아주어 왠지 교육보다 연구가 더 중요한것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풍조가 오늘날 우리 대학을 지배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러한 오해들 이면에 잘못된 연구관과 교육관이 있다.
세상과 담을 쌓고 고고하 게 때로는 독선적으로 발명에 몰두하는 연금술사의 이미지로 연구자가 그려지기도 한다.
연구를 과학주의, 현학주의, 자본주의 입장에서 편향되게 규정한 결과 나타난 부수적 현상 들일 뿐이다. 이러한 오도된 연구관에서 볼 때 연구는 교육과 아무 관련이 없다. 연구 결과 의 성패와 효용성에 관심이 쏠려서, 연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지적 인격적 성장과 사회 전체의 연구(학습)하는 분위기는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교육관에도 문제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을 가르치는 일방 적인 일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알고 보면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요, ‘모르는 사람’ 도 ‘아는 사람’인데 그 진실은 간과되고 있다.3) 교사와 학생이 함께 찾고 알아가는 일(敎學 相長)이 교육인데, 교사는 오로지 가르치고 학생은 오로지 배우기만 하는 구분된 일로 교 육이 오해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육의 ‘다움’보다 ‘쓰임’, 의미보다 기능을 중시하여 효 율, 성공, 경쟁력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것이 우리 사회와 그 구성원들을 지배하고 있는 교 육적 관행이요 태도이다. 이러한 오도된 교육관에서 볼 때 교육은 연구와 아무 관련이 없 다. 남이(학자들이) 이미 연구해 놓은 것을 잘 전달하고 수용하면 그만이라고 은연중에 생 각하기 때문이다.
연구와 교육은 개념상 혹은 활동상 구분할 필요가 있는 별개의 일이다. 하지만, 그 둘의 내 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가 밀접하게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육적 관심이 연구 를 요청하고, 연구를 통할 때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누 군가가 창의력을 기르는 교육을 하고 싶다면 먼저 창의력이 무엇이며 어떻게 길러지는지부 터 알아야 한다. 창의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 사태의 실상-원인-대책을 충분히 연구하면서 교육적 방편을 모색해야 한다. 새로 산 자전거를 설명서에 따라 조립하듯이, (만약 그런 것 이 있다고 할 때) ‘창의력 증진을 위한 교수 지침서’를 좇아 가르치기만 하면 학습자의 창 의력이 길러질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가르치는 사람 자신이 창의성의 본질과 창 의적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관찰하고 실험할 때 비로소 학습자의 창의력을 온전히 기 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교사가 지식의 맹목적인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 혹은 연구자의 모 습을 보일 때 창의력 교육은 성공할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진다.
연구도 마찬가지다. 연구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서 혹은 잘 가르치기 위해서 고민하는 가운 데 연구자는 흔히 자신의 무지와 부족을 깨닫는다. 타인에게 혹은 책을 통해 배우는 과정 에서 새로운 사실과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의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다. 이 경우에 우리는 “가르치면서 배운다.”라거나 “교육이 연구를 유발, 촉진, 보완한 다.”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찾기라는 점에서 연구와 교육은 상호보완적이고 상호작용적인 시소(see-saw)의 양측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생 작용, 상승 효과는 연구와 교육 모두 ‘질적 접근으로’ 새롭게 이해되고 행해질 때나 가능한 것이다.
II. 질적 연구
오히려 동양적 전통이 더 오래고, 그것이 서양으로 건너갔다가 도로 동양에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게 최근의 내 생각이다. 왜냐하면 기원전에 정리된 <論語>에 이미 ‘문질빈빈 (文質彬彬)’이라는 말이 등장하고,4) 그와 관련된 본질, 성질, 본성이라는 말들이 동양에서 오래 전부터 쓰여 왔기 때문이다. ‘문질빈빈’에서 ‘문’은 무늬요 ‘질’은 바탕이며 ‘빈빈’은 어우러짐을 말한다. 그래서 그 뜻은 거죽 꾸밈과 본 바탕의 어울림이며, 글에서는 표현과 내용의 조화를, 사람에게는 말과 그 인품의 일치를 뜻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인류학의 관점에서 볼 때 ‘문’은 문화와 크게 다 르지 않고 ‘질’은 문화의 바탕인 자연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화는 자연을 길들인 것이고, 자연에서 얻어낸 무늬이다.
4) 논어 옹야(雍也)편에서 공자는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질이 문을 압도하면 거칠 고, 문이 질을 압도하면 곧기만 하다. 문과 질의 어우러짐이 군자의 길이다.)라고 말하였다.
질은 비교하기 이전의 상태, 또는 측정하기 이전의 상태이다. 바꾸어 말하면, 질은 개별적 사물의 고유한 속성이며, 그것을 그것답게 만드는 내재적 속성이다. 그와 달리, 양은 비교와 측정을 통해 인 식되는 관계적 속성이며,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이차적으로 부가된 속성이다. 그리고 수는 양을 보다 체계적이고 표준적으로 비교·측정하기 위해 고안된 도구이다.(조용환, 1999: 15)
간단히 말해서 질적 연구는 추상 화, 개념화, 언어화, 이론화되기 이전 상태와 그 이후 상태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사람, 사 물, 현상의 성질을 통찰하는 데서 출발한다. 문과 질, 문화와 자연 사이에 있었던 과정들을 파헤쳐 ‘해체’와 ‘(재)구성’의 역사를 읽어내고자 한다.6)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람, 사물, 현상을 ‘있는 그대로(Ding an sich, as it is)’ 직관하여야 하며, 그것이 가능하기 위 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최대한 ‘낯선 눈으로’ 세상에 다가가야 한다. 객관주의적 설명, 선 행 연구, 권위자의 이론에 지레 현혹되지 않고, 판단을 절제한 채 현장에 가서 직접 체험하 고, 현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겸허하게 세상을 새롭게 배워나가는 자세가 필요 하다. 질적 연구자는 연구의 체계와 분석틀을 미리 확정해 가지고 현장에 가지 않는다. 연 구 목적과 문제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는 현장에 가서 참여관 찰하고 심층면담하면서 (재)구성하고 조정해 나간다. 현장 사람이 자신의 연구 도구에 맞추 어 반응하기를 요구하지 않고, 그들의 일상 생활세계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반응들을 보물찾기 하듯이 하나하나 발견하여 수집한다.
이와 같은 질적 연구의 성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보조적인 모형을 고안하여 그려본 것이 아래 <그림 1>이다. 여기서 ‘학문’은 관련 분야의 기존 연구 전통과 성과를 집약한 것이며, 연구자가 소속하고 참조하는 하나의 특수한 현실세계이다. 그리고 ‘참여자’는 집단 특유의 방식으로, 즉 그들의 문화에 입각하여 세상을 해석하고 체험하면서 연구자를 도와 연구를 가능하게 해 주는 ‘현장 사람들’이다.7)
7) 전통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을 ‘연구자’ ‘조사자’ ‘관찰자’ ‘면담자’ ‘필자’ 등으로 불러 왔다. 그러나 질 적 연구에서는 ‘연구자’ 대신에 ‘현지연구자’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연구자 자신의 참여성과 주체성 과 책임성을 강조하여 아예 ‘나’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전통적인 연구에서 ‘응답자’ ‘피험자’ ‘면 담대상’ ‘관찰대상’ 등으로 표현하던 ‘연구대상’을 질적 연구에서는 ‘참여자’ ‘제보자’ ‘현지인’ ‘행위자’ ‘안내자’ ‘연구파트너’ 등으로 표현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 이유는 연구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이 글에서는 그 각각을 ‘연구자’와 ‘참여자’로 표현하고 있다.
이 맥락 속에서 연구자가 하는 일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1] 세상을 체험하고 연구한다.
[1-2] 학문을 접하고 비판하며, 자신의 연구를 제시하여 평가받는다.
[1-3] 참여자를 이해하고 연구하며, 자신의 연구를 그들과 공유한다.
[1-4] 다른 연구자들이 세상을 연구하고 학문으로 구성하는 과정을 관찰하고 비판한다.
[1-5] 참여자가 학문세계를 접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관찰하고 참조한다.
[1-6] 참여자가 세상을 체험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관찰하고 참조한다.
연구 의 대상이면서 연구를 도와주는 참여자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자.
[2-1] 세상을 체험하고 해석한다.
[2-2] 학문을 접하고 이해, 비판, 활용한다.
[2-3] 연구자를 이해하고 그의 연구에 참여하며 그 성과를 공유, 활용한다.
[2-4] 세상이 연구되어 학문으로 구성되는 양상을 관찰하고 비판한다.
[2-5] 연구자가 학문세계에 접하고 참여하는 양상을 관찰하고 참조한다.
[2-6] 연구자가 세상을 체험하고 해석하는 양상을 관찰하고 참조한다.
연구자와 마찬가지로 참여자도 결코 한가롭거나 수동적이지 않다.
관찰하고 비판하고 참조하고 학습하고 활용한다. 그래서 질적 연구에서는 참여자를 연 구에 반응하는 맹목적인 객체가 아니라 연구자와 대등한 적극적인 주체로 본다.
첫째로, 연구자와 참여자는 동일하지 않은 위상 혹은 입장에서 세상을 접하고 체험한다. 이 말은 한국인 교육인류학자가 체로키(Cherokee) 인디언 사회를 연구하는 경우에 지극히 당 연하게 들린다. 그러나 한국인 교육인류학자가 한국 유치원을 연구하는 경우에는 이 말이 충분히 수긍 또는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설혹 그 말뜻은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실제 연구 장면에서 이 말의 방법론적 함의를 충분히 고려하면서 연구에 임하는 연구자는 그리 흔치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한국인 연구자가 익숙한 한국 사회를 연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깊이 따져보면, 같은 한국인이라 하더라도 성인 연구자가 유치원 어린이의 언어 와 개념, 그들 특유의 문화적 방식을 고려하고 배려하면서 연구하기가 어디 쉬운가? 질적 연구에서는 이와 같은 연구자와 참여자 사이의 현상학적 실존, 해석학적 지평 차이를 중시 한다. 그리고 실존과 지평을 달리 하는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면서 서로서로 거울이 되어 주고 교학상장(敎學相長)하며 사는 세상이 질적 연구가 지향하는 세상이다. 연구를 통 해서 연구자와 참여자 모두 실존적, 교육적 성장을 체험하는 상생의 장을 지향하는 데 질 적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질적 접근에서 연구는 단순한 업적, 상품, 경쟁력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8) 그 점에서 질적 연구는 교육과 닮았고 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둘째로, 연구자는 세상을 직접 대면하고 자기 나름의 독특한 방식으로 세상을 체험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속한 학문분야나 학파 또는 스승의 학풍 등, 위 <그림 1>에서 축약하여 ‘학문’이라 칭한 ‘학문적 현실’ 속에서 세상을 간접적으로 대면하고 체험하기도 한다. 이를 조금 더 연장해서 말한다면, 연구자의 눈은 자신의 개성과 학문적 관점, 그리고 더 큰 문화 의 눈 등으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질적 연구에서는 연구자의 이러한 ‘복합적인 눈’을 주목한다. 특히 연구 성과를 일차적으로 평가하고 활용하는 연구자의 학문세계가 그의 연 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연구의 의미와 한계를 따질 때 반드시 그 배경 학문과 패러 다임적 특성을 고려한다. 요컨대, 연구자의 눈은 결코 가치나 정치에 중립적인 눈이 아니며 세상을 복제하는 카메라의 렌즈도 아니다. 연구자의 눈은 피가 흐르는 살아 움직이는 눈이 다. 이와 달리, 기존의 양적 연구 전통은 연구자를 지나치게 냉철한 객관적 관찰자로 인식 하고 요구해 왔다. ‘연구자 효과(researcher effect)’를 배제하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 연구자의 감정과 욕망 따위는 감추고 없애야 할 것으로 금기시해 왔다. 하지만, 실제 연구 실과 연구현장 안으로 들어가서 보자. 말 없는 대상을 연구하는 자연과학자들조차도 정말 그렇게 연구에 임하고 그렇게 결과를 생산하고 있는가? 이제 우리는 연구자를 보는 눈을 달리 해야 한다.
셋째로, 연구자와 그의 학문세계는 참여자, ‘현장 사람들’, 혹은 일반 대중에게 세상을 이해 하고 살아가는 특정한 방식을 제시한다. 바꾸어 말하면 연구자는 삶에 대한 해석과 실천의 매개체(mediator) 역할을 한다. 예컨대, 등 푸른 생선이 지능 발달에 유익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 연이어 어물시장이 술렁이고 자녀들 입에 고등어 반찬을 우겨 넣는 “교육적 인” 부모들이 늘어난다.
연구자 스 스로 ‘전문가’를 자칭하기도 한다. 이 전문가들은 언론이 부추기고 정부가 이용하는 가운데 괜스레 들떠서 제대로 하지도 않은 연구조차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시장에 내어놓기 급급하 다. 질적 연구는 이런 오류와 오만을 경계한다. 달리 말하면, 질적 연구에서는 연구자의 몸 가짐과 마음가짐을 중시한다. 작고 적지만 깊이 연구하고, 애써 일반화를 과장하지 않는다. 객관적이지도 않은(객관적일 수 없는) 것을 객관적이라고 우기지 않는다. 어찌해서 그런 연 구 결과가 나오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세세하게 언급함으로써 동료나 독자들이 자기 연구 의 가치와 오류를 두루 발견할 수 있게 해 준다. 오류가 사기보다는 낫기 때문이고, 오류는 다음 연구자에게 개선의 기회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질적 연구는 과오나 실 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진실하지 못함, 성실하지 못함을 두려워할 뿐이다. 그 점은 질적 교육도 마찬가지다.
III. 질적 교육
고심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교육의 질’을 높이자면 ‘질적 교육’을 해야 한다. 여 기서 말하는 질적 접근은 질적 연구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앞에서 말했듯이, 질은 성 질이요 본질이다. 따라서 질적 교육은 ‘본질적 교육’이요 ‘교육다운 교육’이다.
질적 접근에서 볼 때 창의성은 일종의 ‘문(文)’이다. 말하자면, 그 추상적이고 인위 적이고 자의적인 개념이 나온 바탕으로서 ‘질(質)’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인간의 복잡다단한 심성과 능력 중에서, 그 본질적 맥락(context: 질, 바탕) 속에서 창의성이라고 하는 한 가지 특성이 일종의 텍스트(text: 문, 무늬)로 구성되어 나온 것이다. 이 말들이 함의하는 바는 창의성을 알고 싶으면 창의성을 몰라야 한다는 것이다. 더 철저 히 알고 싶으면 더 철저히 몰라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모르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질적 연구가 그렇 듯이, 창의성 교육을 질적으로 접근하자면 시간과 인내심과 사랑이 요구된다. 그리고 창의 성이 본래 무엇일까를 부단히 묻고 답하는 현상학적 환원의 자세가 필요하며, 학습자의 생 활세계 속에 깊이 파고들어 함께 체험하고 공감하는 참여관찰의 자세가 필요하다. 무엇이 창의적인지 제대로 알아야 창의적인 행동, 창의적인 인간을 기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 람들은 그냥 남이 시키는 대로 창의성 교육에 임한다. 피리를 잘 불기 위해서 피리 그 자 체를 불고 또 불어야 하듯이, 창의성 그 자체를 찾고 또 찾아가는 것이 창의성 교육의 지 름길이다. 아니 다른 길은 없다. 바로 이 점에서 질적 연구와 질적 교육은 맞닿아 있다.
위<그림 2>에서 ‘지식’은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는 체제다. 학교교육 맥락에서 지식은 인류문화유산의 정수(精髓)라 일컬어지며 국가와 교육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교과와 교과서로집약된 것이다. 학교 밖 교육 상황에서도 지식은 권위 있는 기구 혹은 집단의 동의(consensus)에 의거하여 창출되고 결정화(crystallization)되어 일정한 지배력을 획득한 것이다. 요컨대,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교사와 학생이 속한 교육계가, 또는 교사와 학생이 속한 집단의 문화가 세상의 이치를 집약하고 결정화한 어느 정도 실체성을 가진 체제라고 보면 될 것이다.
교수자는 교육의 주체인 동시에 객체이기도 하고 매 개체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교수자가 하는 일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3-1] 세상을 체험하고 해석, 학습한다.
[3-2] 지식을 접하고 학습, 비판, 활용한다.
[3-3] 학습자를 이해하고 그와의 교육적 관계 속에서 교수한다.
[3-4] 세상의 이치가 지식으로 구성되는 양상을 관찰하고 비판한다.
[3-5] 학습자가 지식에 접하는 양상을 관찰하고 참조한다.
[3-6] 학습자가 세상을 체험하는 양상을 관찰하고 참조한다.
그와 함 께 교육에 참여하는 학습자는 무슨 일을 하는지 살펴보자.
[4-1] 세상을 체험하고 해석, 학습한다.
[4-2] 지식을 접하고 학습, 비판, 활용한다.
[4-3] 교수자를 이해하고 그와의 교육적 관계 속에서 학습한다.
[4-4] 세상의 이치가 지식으로 구성되는 양상을 관찰하고 비판한다.
[4-5] 교수자가 지식에 접하는 양상을 관찰하고 참조한다.
[4-6] 교수자가 세상을 체험하는 양상을 관찰하고 참조한다.
표현이 부적절할 수도 있고 그것 아닌 다른 일도 많이 있을 수 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열거한 까닭은 질적 교육이 학습자의 능동성, 적극성, 주체성 을 중시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학습과 학습자를 경시하는 교수중심주의, 교수자중심주의는 질적 교육의 주적(主敵)이다.
질적 교육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유익한 몇 가지 시사점을 위 모형과 분석에서 도출해 보기로 하자.
첫째로, 교수자와 학습자는 서로 다른 지평에서 세상을 접하고 있다. 접하는 세상도 다르겠 지만 접하는 방식 또한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단순한 사실을 곰곰이 따져보면 그 속 에 엄청난 인식론적, 존재론적, 방법론적 쟁점들이 함축되어 있다. 한 예로, 교수자와 학습 자 사이에는 세상에 대한 인식 혹은 안목의 격차가 있으며, 그 격차 때문에 그 격차를 메 우기 위해서 교육이 행해진다. 이 격차는 양적인 것일 수도 질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 무 엇이든 간에 이 격차가 교육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를 비롯한 많은 교수와 교 사들이 학습자와의 격차를 존중하고 이해하기보다는 답답해하고 조급해하며, 격차가 잘 해 소되지 않는 까닭을 교수자 자신이 아닌 학습자 또는 환경에서 찾기에 급급한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질적 교육의 관점에서 본 현실 교육의 최대 난점은 자신은 공부하지도 연구하 지도 않는 교수자들이 학습자만 공부시키고 연구시키는(그럴 수 있다고 믿는) 세태이다. 학 습자에게 학습자의 과제, 방식, 수준이 있듯이, 교수자에게도 교수자의 과제, 방식, 수준이 있다. 교육을 잘 하자면 교수자와 학습자가 먼저 자기 자신들을 알아야 하고, 그와 함께 상 대방을 알아야 한다. 질적 교육은 지극히 단순한 이 ‘교육적 사실(a typical educational fact)’을 주목한다. 무릇 이(異)질(質)적인 것들이 만나면 오해와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요(凹)와 철(凸)이 그렇듯이 이질적이어야만 상호보완이 가능하다. 동질적인 것들 사이에는 동호(同好) 이면에 필시 경쟁이 있는 법이다. 교육을 통한 사회와 문화의 통합은 획일적 동화가 아니라 상생적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지향하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격차가 클수록 교사의 필요성이 더 커지고, 교사와 학생이 서로 다를수록 함께 어울리는 재미가 더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교사들에게는 잘난 제자와 못난 제자, 평범한 제자 와 특이한 제자를 고르게 사랑하는 지혜와 기술이 요구된다.
둘째로, 세상-지식-교수/학습을 연결하는 맥락에서 볼 때 교육적 상황은 크게 세 가지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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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교수자와 학습자가 함께 세상을 직접 체험하면서 교육에 임하는 경우 다. 부모와 자식이 논밭에 나가서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농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경우가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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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교수자가 결정화된 지식을 학습자에게 전달하고 학습자가 그것을 수용 하기 바라는 경우를 들 수 있다.9) 교사가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설명해 주고 그 숙지 여부 를 평가하는 일반적인 학교교육이 그 예다. 이 때 교사는 지식에서 소외되어 주체가 아닌 통로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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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교수자가 학습자를 지식 세계로 초대하여 지식이 구 성되고 생산되는 과정을 관찰하고 비판하게 안내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교수가 제자를 실험실, 조사현장, 학회 등에 데리고 다니면서 세상과 지식의 접점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경우가 그 예다. 이 때 제자는 지식의 사회문화적 구성-해체 과정뿐만 아니라, 자기 스승 이 세상을 체험하는 양상과 지식에 접근하는 방식도 동시에 관찰하고 참조할 수 있게 된 다.
대부분의 교육은 이 세 가지 상황이 혼합되거나 그 중 한두 가지가 우세한 가운데 진 행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세상-지식-교육에 이르는 경로가 길어지고 우 회할수록, 그리고 교수자가 지식에서 소외될수록 학습자 역시 교육소외를 경험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사실이다. 교육소외는 주체적 참여 없이 명목상의 교육에 연루되어 실질적인 교 육효과를 얻지 못하는 불행한 사태다.10) 질적 교육은 교육소외를 없애거나 줄이고자 노력 하는 교육이다. 교육소외를 줄이는 한 가지 방법은 진지하고 개방적인 찾기(re-search), 즉 연구와 교육을 결합하는 것이다.
셋째로, 학습자가 세상과 지식과 교수자 사이에서 고통 받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학습자는 교육적 상황 혹은 관계에서 약자의 위치에 처하기가 쉽다. 모르고 틀리고 실수하고 실패해 서 걸핏하면 야단맞고 구박받기 일쑤다. 그리하여 “내가 안 배우고 말지” “이런 걸 배워서 뭐하나” “이 시험 끝나면..., 학교만 졸업하면...” 운운 하면서 ‘교육에 대한 적의’를 드러낸 다. 이 비교육적인 적의는 약자라는 처지에서 오기도 하지만, 세상과 지식이 달라서 생기기 도 하고, 세상과 교수자가 달라서 생기기도 하고, 지식과 교수자가 달라서 생기기도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다르다기보다 뭔가 잘 맞지 않는 불일치, 부정합, 부조화, 부조리, 모순, 갈등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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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지식 사이의 문제는 단적으로 지식이 마음에 안 드는 문제다. 학습자가 보기에 세상 의 이치가 그렇지 않은데 이상한 지식이 권위를 등에 업고 자신을 검열하고 구속할 때 이 문제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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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교수자 사이의 문제 역시 교수자가 마음에 안 드는 문제다. 학습자가 체험한 세상의 이치는 그게 아닌데 교수자가 자신의 체험이 옳다며 우기거나 기성 지식의 권위를 내세워 학습자를 맹목적으로 굴복시키는 경우에 이 문제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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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지식-교수자 사이의 문제는 마음에 안 드는 문제가 아니라 헷갈리는 문제다. 이 경 우는 세 가지 다른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학습자 자신이 접한 지식과 교수자가 제 공하는 지식이 상충하는 상황이다. 둘째는 교수자가 지식(또는 교육계)의 오류를 비판하면 서도 학습자에게 납득할 만한 근거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셋째는 괜찮다 싶 은 자신의 교수자를 교육계가 몰아세우며 우매시하는 상황이다.
IV. 나오며
주요한 논의를 간추려 본다면, 질적 연 구와 질적 교육은 공히
(1) 연구자-참여자, 교수자-학습자의 현상학적 실존과 해석학적 지 평을 중시하며,
(2) 연구자와 교수자의 매개(mediation) 역할을 주목하고,
(3) 지식의 사회 문화적 구성-해체 과정에 관심을 가지며,
(4) 연구-참여, 교수-학습 사이의 불일치, 부정 합, 부조화, 부조리, 모순, 갈등에 민감하게 대처하여 소외를 최소화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는 것이었다. 그리고 질적 연구와 질적 교육의 상호보완적 결합은 진지하고 개방적인 ‘찾기 (re-search)’를 통해서 형성되고 발전된다는 것이었다.
- 간행물명 : 교육인류학연구
- 권/호 : 교육인류학연구 제7권 제2호 / 2004 / 1~16 (16pages)
- 발행기관 : 한국교육인류학회
- 간행물유형 : 학술저널
- 주제분류 : 교육학
- 파일형식 : PDF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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