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적 기술, 분석, 해석 (교육인류학연구, 1999)

조 용 환 (서울대학교 교수)



I. 들어가며


이 글에서 다루게 될 ‘기술(記述, description)’, ‘분석(分析, analysis)’, ‘해석(解繹, interpretation)’이라는 세 용어도 그 점에서 마찬가지다.


질적 연구의 맥락에서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한다”고 말할 때 ‘분석’은 ‘수집’과 대비를 이루며, 이 ‘분석’ 속에는 지금 우리가 논의하는 ‘기술’, ‘분석’, ‘해석’이 다 포함되어 있다. 국 내외를 막론하고 대다수 연구자들이 이러한 포괄적 용볍을 흔히 취하고 있으며(신혜숙, 1987; 유혜령, 1997; 이종각, 1997; 이용숙, 1998; 박보경, 1998; Lofland, 1971; Bogdan & Biklen, 1982; Lofland & Lofland, 1984; Ely, 1991),


양적 연구에서는 ‘기술’과 ‘해석’이라는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으며, 질적 연구자들이 자 료 수집 이후의 과정을 ‘분석’으로 통칭하는 관행도 다분히 양적 연구의 전통을 따른 것으 로 보인다. 질적 연구가 대안적인 연구 방볍으로 부상하면서 질적 연구자들은 ‘양적 분석’과 ‘질적 분석’의 차이점을 부각하는 일에 신경을 썼으며,1) 질적 연구 안에서 기술, 분석, 해석 을 구분하는 데에는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기술, 분석, 해석 삼자를 구분하기 전에, 자료 수집 이후부터 글쓰기 이전까지의 과정을 ‘분석’으로 통칭하는 관행에 대해서 조금 더 상세히 살펴보기로 하자.2) 후버만과 마일스 (Huberman & Miles, 1994: 428 9)는 질적 연구에서의 분석을 자료를 요약하고, 코딩하고,3)주제를 찾고, 덩어리로 ”는 작업으로 보았으며, 그 과제를 좀더 쪼개면 다음과 같다고 하 였다.



3) ‘coding’의 번역을 신옥순(1991: Bogdan & Biklen, 1982), 허미화(1994: Merriam, 1988), 한경구·김성례 (1996: Crane & Angrosino, 1992), 신경림(1997: Morse & Field, 1995) 등은 ‘부호화’로, 김영천(1998)과 이용숙(1998)은 ‘약호화’로 하고 있으나 그 어느 것도 적절해 보이지 않아서 이 논문에서는 잠정적으로 그냥 ‘코딩’이라 칭하기로 한다. HRAF(Human Relations Area Files: Moore, 1970)는 지구상에 존재하였 거나 존재하는 모든 민족들의 문화를 서로 비교할 수 있도록 체계화한 코딩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LeBar, 1970).



  1. 자료에서 발견되는 패턴과 주제 찾아 적기 
  2. 그것들이 그럴듯한지 살펴보기 
  3. 자료를 개념 범주에 따라서 묶기 
  4. 적절한 비유를 찾아서 표현하기 
  5. 빈도 헤아리기 
  6. 대조하고 비교하기 
  7. 요인화 하기(factoring) 
  8. 변수 셜정하기 
  9. 매개변수 찾기 
  10. 변수들 간의 관계를 찾아 적기 
  11. 부분을 전체 속에 놓고 보기 
  12. 증거들 간의 논리적 관계 셜정하기 
  13. 개념적, 이론적 일관성 확보하기


이렇게 늘어놓은 과제를 다시 요약하면, “자료 정리(data reduction)”, “근거자료 제시 (data display)”, “결론 도출/검증(conclusion drawing/verification)”의 세 과정이 된다. 그들 이 말하는 “자료 정리”는 자료를 선택하고 압축하는 작업이며, “근거자료 제시”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형태로 자료를 제시하는 일이다. 큰거자료를 제시하는 방식에는 서술적 묘사, 일람표, 네트원, 다이아그램, 도표 등이 있다고 하였다. “결론 도출”은 일반적인 ‘해석’의 영 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며, 비교, 대조, 패턴, 주제, 비유 등을 발견하고 구성하는 일이다. 끝으로 “결론 검증”은 삼각검증(triangulation), 반대사례 찾기, 결론의 타당성을 현장에서 확 인하기 등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후버만과 마일스가 질적 분석을 양적 분석 못지 않게 체계화, 과학화, 객관화하려고 하였다는 점이다. 후버만과 마일스 류의 질적 연구자들이 흔 히 ‘질적 분석’의 문제와 난점으로 지적했던 사항은 다음 세 가지이다.

  • 첫째로, 질적 연구자 들이 자료의 ‘수집’ 방볍에 대해서 장황하게 논의해 왔던 데 비해서 수집한 자료의 ‘분석’ 방 볍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 둘째로, 질적 분석이 연구자 개개인 의 경험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으며, 따라서 방볍상의 체계와 표준을 결여하고 있다는 지 적이다.
  • 셋째로, 그 결과 질적 연구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에 심각한 문제가 야기되고 있으며, 특히 초심자들이 질적 연구 방볍을 학습하는 데 큰 곤란을 겸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지적들은 질적 연구의 실태와 다수 질적 연구자들의 동조에 의해서 타당한 것으로 인정되어 왔다. 시버(Sieber, 1976)는 1970년대 미국 학계에서 널리 활용되던 일곱 권의 질 적 연구 방볍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책 전체의 분량 중 자료의 ‘수집’이 아닌 ‘분석’이 차지 한 비율이 5 10%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고한 적이 있다(Huberman & Miles, 1994: 428, 재인용).


질적 분석이 연구자 개개인의 경험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여 러 학자들에 의해서 제기되어 왔다.


질적 연구는 그 속성상 주관적 일 수밖에 없으며,5) 연구자 개인의 주관적 체험이 곧 사회성, 문화성, 역사성의 결여를 의미 하는 것은 아니다.


5) 나는 다른 글(조용환, 1998a)에서 ‘주관적’이라는 말을 ‘개인적’ 또는 ‘사적’이라는 말과 구분해서 써야 한 다고 주장한 바 있다. 나는 ‘주관적’이라는 말이 “남들이 어떻게 보든 상관 없이 나는 이렇게 본다”는 말 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료 수집 이후의 모든 과정으로서 분석은 질적 연구의 질을 저하시킬 소지가 다분히 있는 ‘위험한 영역’이다. 이 논문에서 나는 기술, 분석, 해석을 상이한 성격의 작업으로 구분하고 그 각각을 상세히 검토하는 과정에서 위 세 가지 지적의 타당성도 함께 따져볼 것이다.



II. 기술, 분석, 해석의 구분: 월코트의 관점을 중심으로


자료 수집 이후의 전과정을 ‘분석’으로 뭉뚱그리지 않고 보다 세밀히 나눌 경우, 대체로 다음 세 가지 구분볍이 있을 수 있다. 먼저, ‘기술’, ‘분석’, ‘해석’ 삼자를 다 구분하는 방식이 다. 그 대표적인 예는 이 절에서 자세히 논의할 월코트(1994a)에게서 찾을 수 있다.


다음으로, ‘분석’을 ‘해석’에 포함시키거나 ‘해석’을 ‘분석’에 포함시켜서 ‘기술’과 구분하는 방식이 있다. 이 경우에 ‘분석’과 ‘해석’은 서로 혼용되지만 ‘기술’과는 명백히 구분된다. 이것 이 우리가 가장 흔히 접하는 구분볍이다. 한 예로, 글레스니와 페쉬킨(Glesne & Peshkin, 1992: ch.7)은 ‘분석’을 자료를 분류하고, 종합하고, 그 속에 숨은 패턴을 찾고, 셜명을 시도 하고, 가셜을 수립하고, 이론을 개발하는 작업이라고 하였다. 그들의 관점에서 ‘분석’과 ‘해 석’은 구분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말하는 “초기 분석”과 월코트의 ‘분석’이 상응하며 “후 기 분석”과 월코트의 ‘해석’이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드물기는 하지만, ‘기술’과 ‘해석’을 하나의 작업으로 보고 ‘분석’과 구분하는 방식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기어츠(Geertz, 1973, 1983)를 들 수 있다. 그는 ‘심층적 기술 (thick description)’을 ‘해석’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당시 사회과학을 지배하고 있던 구조·기능주의적 ‘분석’은 인류학적 문화 ‘해석’의 적절한 방볍이 될 수 없다.


월코트는

  • 기술이 “연구자가 본 것을 독자가 보게(see) 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 분석은 “연구자가 안 것을 독자가 알게(know) 하는 일”이며,

  • 해석 은 “연구자가 이해한 방식으로 독자가 이해하게(understand) 하는 일”이라고 구분하고 있다 (p.412).

 

또한 그는 이 세 가지 작업이 서로 다른 사고를 요청한다고 본다.

  • 기술은 “사실을 관찰하고 수집하는 데 치중한” 사고를 요청하는 반면에,

  • 분석은 “장안(創案)과 상식의 적절 한 조화”를 요청하며,

  • 해석은 “자유롭게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한 문제를 숙고하는” 자세 를 요청한다는 것이다(p.412).


그러므로 기술, 분석, 해석의 질을 평가하는 기준이 서로 다르다.

  • 우선 기술의 질은 내부 인의 세계를 얼마나 생생하게 보여주는가에 달려있다.

  • 그와 달리 분석의 질은 분석하는 내 용과 형식의 과학적 체계성과 치밀성에 달려있다.

  • 또한 해석의 질은 학문적 전통을 공유하 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그럴듯함’을 인정받는가에 달려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 기술 이 ‘그들’의 세계를 중시할 때,

  • 분석은 ‘그것’의 세계를 중시하고,

  • 해석은 ‘우리’의 세계를 중시한다.


월코트는 기술 분석 해석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상호보완적인 작업이라고 보았다.6) 그 삼자를 일련의 과정으로 볼 때, 분석은 기술을 구조화하고 객관화하는 작업인 동시에 해석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월코트는 기술 분석 해석을 요리의 과정에 비유하자면,

  • 기술은 최대한 “요리하지 않은 자료(raw data)”의 상태로 현상을 제시하는 일인 반면에,

  • 분석은 현상(음식)의 가상적인 구 조를 염두에 두고 “요리된 자료(cooked data)”를 준비하는 과정이며,

  • 해석은 그 자료들을 활 용하여 하나의 완성된 음식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하였다.

기술과 분석의 단계에서는 요리 사에 따른 ‘자료’의 차이가 멀 나타나지만, 해석의 단계에 이르면 요리사에 따른 ‘음식’의 차 이가 크게 나타난다. 바꾸어 말하면, 해석의 단계에서는 연구자의 주관적 이해와 판단이 개 입될 여지가 더 크다.

 

 


물론, 질적 연구의 전 과정, 즉 기술, 분석, 해석 그 어느 작업에서도 우리는 연구자의 개입을 배제할 수 없다. 기어츠(Geertz, 1988)는 모든 현상이 결국 “내가 본 것(I witnessing)” 임을 강조하면서 연구자의 ‘자기관찰(self reflection)’을 촉구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월 코트도 나도 동의한다. 월코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질적 연구자의 자기관찰이 ‘연구자가 연 구에 미치는 영향’ 뿐만 아니라 ‘연구가 연구자에게 미치는 영향’도 보는 양면적인 작업이어 야 한다고 주장하였다(p.44).


월코트는 분석을 “질적 연구의 양적, 과학적 측면”이라고 보며, 분석의 목적은 연구자의 주장이나 해석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p.175). 또한 그는 분석이 “구 심적인(centripetal)” 반면에 해석은 “원심적(centrifugal)”이라고 보았으며, 자기 자신은 분석 보다 해석을 더 선호한다고 말하였다.


월코트(1994a)는 자신이 지난 30년간 수행해 온 현지연구들을 기술중심의 연구(1974a, 1983a, 1994b), 분석중심의 연구(1983b, 1987), 해석중 심의 연구(1974b, 1989, 1994c)로 나누어서 한 책에 수록하고 있다.


월코트(1994a)는 “기술이 질적 연구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p.55), 기술이 분석 과 해석을 위한 기초작업으로서만 의미를 갖지 않고, 그 자체가 현상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 는 한 가지 중요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논리에서 ‘기술중심의 연구’가 성립하게 되 는 것이다.


월코트는 기술이 “예술(art)”과 “과학(science)”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는 전 자를 “직관적 행위”로 후자를 “객관적 행위”로 파악하며, 인류학적 기술이 너무 후자에 치 우치는 것을 경계한다. 그가 기술의 “엄격성”보다 “적합성”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이다. 기술은 사진기나 복사기로 사물을 복제하는 것과 같은 성격의 일이 아니다.7) 특히 모 든 기술에는 ‘선택’과 ‘배제’가 작용하므로, 초점을 두고 선택한 것 못지 않게 관심 밖으로 배제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월코트는 연구자들이 “자료가 스스로 말한다(Data speak for themselves)”고 하면서 자료를 정리하지 않고 그 의미를 해석하지도 않은 채 제시하는 것을 기술이라고 보지 않는다. 또한 그는 ‘해석의 짐’을 송두리째 독자에게 지우는 것을 ‘연구자의 책임회피’로 규정한다. 기술의 차원에서도 연구자는 상당한 정도로 “가시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연구자가 할 일로서 월코트는 자료의 “구조화(structuring)”, “계열화(sequencing)”, “편집 (editing)” 세 가지를 들고 있다. 특히 편집의 기준으로는 “연구목적에 부합되도록”, “읽기 좋도록”이라는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예컨대, 그가 선호하는 연구볍인 “기술적 생애사 (descriptive life history)”의 경우에 “이야기가 되도록 틀을 짜맞추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 다고 그는 말한다.


월코트는 기술이 사실을 직셜적으로 묘사하는 일에 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은유를 위시한 여러 비유적 표현은 질적 기술에서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는 가? 내가 보기에는, 질적 기술에서의 은유의 적합성은 독자가 현장을 ‘직접’ 또는 ‘생생하게’ 체험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주는가에 달려있다.


대표적인 ‘기술중심의 연구’(Wolcott, 1983a)에서 월코트는 제보자 브래드(Brad)의 말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편집하여 제시하고 있으며, 브래드의 말 속에서 에믹(emic)한 문화주 제를 찾아 구조화하고 있다.8)



8) ‘에믹(emic)’과 ‘에틱(etic)’이라는 용어는 언어학자 파이크(Kenneth Pike, 1967)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 다. 이 두 용어는 각각 영어 낱말 ‘phonemic’과 ‘phonetic’의 끝 부분을 딴 것으로서 애당초 언어학적 자 료 분석의 두 가지 대조적인 방식을 셜명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언어학에서 말하는 ‘음운학적 (phonemic)’ 방식은 보통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범주화하는 음운 현상을 그 세계 내부에서 주목 하는 방식이며, ‘음성학적(phonetic)’ 방식은 언어학자들이 학문적인 표준과 도구에 의해서 음성 현상을 외부에서 관찰하고 범주화하는 방식이다. 파이크는 ‘에믹’과 ‘에틱’의 이 구분볍을 언어뿐만 아니라 인간 행동의 구조를 연구하는 모든 학문에 일반화할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인류학은 이 구분볍을 가장 일찍 이 도입하여 가장 활발하게 응용한 학문이다.

 

인류학에서의 ‘에믹’문화기술적 연구에 임하는 인류학자 (ethnographer)가 한 문화를 현지인의 토속적 개념과 논리 속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접큰볍을 뜻한다.

그 와 달리, ‘에틱’비교문화적 연구에 관심을 가진 인류학자(ethnologist)가 학술적인 맥락에서 외부적 기 준, 용어, 도구 등을 활용하여 그 문화를 연구하는 접큰볍을 뜻한다. ‘에믹’과 ‘에틱’의 구분에 대한 보다 상세한 논의는 해리스(Marvin Harris, 1976) 참조.


기술 작업에서 월코트(1994a)가 중시한 것은 관찰과 추론의 명백한 구분이다. 그는 추론 을 관찰 자료의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으로서 기술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라고 보았으며, ‘좋 은 관찰’은 추론을 최대한 배제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p.169). 또한 월코트는 연구자가 다 른 관찰자의 시각을 애써 취함으로써 보다 풍부하고 세밀한 관찰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분석에 대해서 월코트는 기술과 분석이 공히 자료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을 일차적으로 지적한다. 기술이나 분석과 달리, 해석은 자료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이 월코트의 관점이다. 해석은 기술과 분석에 이어서 제기되는 “그래서 어쨌다는 얘기냐(So what)?”는 질문에 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기술과 분석이 자료를 ‘변환하는(transform)’ 작업이라 고 한다면, 해석은 자료를 ‘능가하는(transcend)’ 작업이라고 본다. 즉, 해석은 특수사례의 경 계를 넘어서서 보다 일반적인 의미와 적용 가능성을 따지는 일이며, 자료를 보다 포적, 거시적, 주관적인 맥락에서 통찰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해석의 이러한 ‘자유’가 ‘방종’으로 치달아서는 곤란하며, 방종을 경계하는 방볍은 역시 자료에 충실하는 것이다. 월코트는 자료와 해석의 관계를 “자료는 해석을 지원하고, 해 석은 자료에 의미를 부여한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해석의 방종함을 경계하는 다른 한 가지 방볍은 연구자 자신의 세계와 시각에 대한 반성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표>



월코트에 의하면, 분석과 해석은 “상호보완적 관계(coordinated give and take)”를 형성한다(p.258). 분석이 해석의 분방함을 경계하는 ‘과학의 파수꾼’인 데 비해, 해석은 분석틀의 타당성을 의문시함으로써 분석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월코트는 “그럴듯한 해석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분석의 객관성을 포기해야 한다”라는 말로써 분석과 해 석을 상호대립적 관계로 셜명하기도 한다. 또한 그는 분석과 해석이 선후 혹은 단계의 관계 를 맺는다고 보지 않고, 시이소오와 같은 순환적 관계를 맺는다고 본다. 말하자면, 분석과 해석 양자 중에 어느 것이 더 높고 낮음이 없으며, 어느 것이 더 먼저인가도 없다. 분석을 강조하면 해석이 약화되고, 해석을 강조하면 분석이 약해진다.


양자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다음 네 가지 점에 있지 않은가 싶다.


<표>



위 표에서 볼 수 있듯이, 분석은 현상을 구성하고 있는 요인이나 변수를 확인하고, 그것 들 간의 관계를 추론과 검증의 과정을 통해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에 비해, 해석은 현상의 의미를 보다 거시적인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순환의 과정을 월코트는 “초점을 좁히고 넓히는 일(zoom in & out)”에 비 유하고 있다.


9) 예컨대, 내용분석(content analysis)은 질적 접큰과 양적 접큰 어느 것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 내용분석 에 대해서는 조용환·김회목·이찬희(1990), Weber(1985) 참조.




분석이 ‘비교’에 의존한다고 하면, 해석은 ‘비유’에 의존한다고 볼 수 있다. 월코 트가 지적하듯이, 우리는 잘못된 비유가 해석을 망칠 수도 있다는 사실과, 신중하지 않은 해석이 연구 전체의 이미지를 망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pp.259 262). 같은 맥 락에서 그는 비유의 질이 “연장의 폭(the lengths of extension)”에 달려있지 않고, “통찰의 깊이(the depth of insight)”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p.262). 바꾸어 말하면, 비유는 표층적 관련이 아닌 심층적 이해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석의 목적이 “입증하는 데(to prove)” 있지 않고 “명시하는 데(to clarify)” 있다고 한 그의 말 역시 귀담아 들을 말이다.


이상의 검토에서 우리는 월코트가 기술, 분석, 해석을 다른 연구자들에 비해서 비교적 뚜렷하게 구분하고 있지만, 그 역시 삼자 사이의 관계를 애매모호하게 규정할 때가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의 잠정적인 결론은 월코트와 마찬가지로 기술, 분석, 해석이 개념상 또는 방볍상 구분되어야 하지만, 실제 연구의 맥락에서는 그 세 작업이 복합적, 순환적, 상 호보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ill. 질적 기술의 논리와 기볍


기술 작업에서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가?”이다. 일반적 으로 기술은 5W1H 또는 육하원직(六何原則) 중에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 게’를 파악하여 서술적 이야기로 구성하는 작업을 말한다. 그렇다면, ‘왜’에 대한 대답은 기 술의 과제에서 제외되는가? 내가 보기에는, 바로 이 질문이 기술의 성격에 대한 질적 연구 자들의 입장 차이를 낳는다. ‘왜’에 대한 대답을 분석이나 해석의 과제로 미루는 사람에게는 기술이 분석과 해석의 준비단계로 간주되는 반면에, 기술에서도 ‘왜’에 대한 대답이 있기 마 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기술이 별도의 작업이 될 수 있다.


기어츠(Geertz, 1973)나 멘진(Denzin, 1994)도 ‘표층적 기술(thin description)’과 ‘심층적 기술(thick description)’의 차이점이 여기서 발생한다고 본다. 멘진은 표층적 기술이 “의도나 맥락과 관계 없이 사실을 단순히 보고하는 것”이라고 하면, 심층적 기술은 “경험을 그 맥락, 의도, 의미와 함께 서술하는 것”이라고 하였다(p.505). 여기서 멘진은 경험을 하나의 과정으 로 보며, 그 과정 속에서 텍스트의 의미와 진실이 드러난다고 보았다. 그리고 멘진은 기어 츠의 심층적 기술을 “해석적 기술(interpretive description)”이라고 부르며, 그 점에서 ‘기술 (記述, description)’보다도 ‘각술(刻述, inscription)’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하였다.10)


여기서 우리가 유의할 점은 기술 이 사건들을 발생한 시간적 순서에 따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사건들을 의미 있는 방식으 로 서술하는 작업이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월코트(1974b)는 “초등학교 교장(The Elementary School Principal: Notes from a Field Study)”이라는 제목의 연구에서 교장직 응모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면담 순서에 따라 나열하는 것보다는 면담이 끝난 뒤 교육장에게 추천된 서열 순서로 재구성하여 서술하 는 것이 더 의미 있는 방식의 서술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달리 말하면, 기술에는 구조화, 계열화, 편집의 세 작업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찍이 로플랜드(Lofland, 1971: 128 129)는 질적 연구에서 기술과 분석의 균형을 취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역셜하였다. 분석이 지나칠 경우, 연구가 추상적인 카테고리들로 채워져서 풍부하고 구체적인 참여자의 세계가 사장(死藏)된다. 반대로 기술이 지나칠 경우에는 연구 한 문화의 구조와 패턴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이론적 셜득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 여 로플랜드는 양자가 조화를 이룬 이상적 상태를 “분석적 기술(analytic description)”이라 고 표현하였다.


IV. 질적 분석의 논리와 기볍


여기서는 그러한 포괄적 입장을 취하지 않고 ‘좁게’ 정의한 분석을 다루기로 한다.


대부분의 방볍론 교과서에서는 질적 분석의 첫 작업을 ‘코딩(coding)’에 두고 있다. 코딩 은 연구하는 현상의 내면적 구조를 분석하기 위하여 자료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어휘, 주제, 장면 등을 조사하여 일정한 코드를 부여함으로써 자료를 체계화하는 작업을 말한다. 코딩을 분석의 한 과정으로 삼는 까닭은 자료에 코드를 부여하기 전에 연구자가 코드체계 혹은 분류체계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LeBar, 1970).


코드체계에는 ‘에믹한 것’과 ‘에틱한 것’ 양자가 있을 수 있다. 대개의 연구자들은 초기에는 자료 그 자체의 범주들을 에믹한 기준으로 코딩하고, 후기에는 연구자의 분석틀에 입각 한 에틱한 기준으로 코딩하는 방식을 따른다.

 

스트로스(Strauss, 1987: ch.3)는 코딩을 “개방 적 코딩(open coding)”, “중추적 코딩(axial coding)”, “선택적 코딩(selective coding)”의 세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 개방적 코딩이 분석 초기에 행하는 것으로서 아무런 제한 없이 카테 고리들을 셜정, 검토해 보는 방식이라면,

  • 중추적 코딩은 카테고리 하나 하나를 중심축에 놓 고 자료들과 다른 카테고리들을 수렴시켜 검토하는 방식이다. 그와 달리,

  • 선택적 코딩은 지 금까지 검토한 모든 카테고리들을 하나의 체계 속에 정리하고 그 체계에 따라서 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코딩하는 것을 말한다.


분석은 다양한 자료를 함께 다루지만, 자료에 따라서 상이한 분석 방볍이 요구되기도 한 다. 즉, 분석 방볍을 관찰자료, 면담자료, 문헌자료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도 있다.12)

  • 관찰자 료를 분석하는 방볍에는 행태 분석(ethological analysis: Gould, 1982; Eibl Eibesfeldt, 1989), 네트원 분석(network analysis: Mitchell, 1974), 연극적 분석(dramaturgical analysis: Goffman, 1959) 등이 있다.

  • 면담자료를 분석하는 방볍에는 담론 분석(discourse analysis: Cazden, 1988; Gee, Michaels, and O’Connor, 1992; Potter, 1997), 대화 분석(conversation analysis: Heritage, 1997), 사회언어학적 분석(sociolinguistic analysis: Hudson, 1980), 자전적 분석(biographical analysis: Runyan, 1982) 등이 있다.

  • 문헌자료의 분석은 내용 분석(content analysis: 조용환·김회목·이찬희, 1990; Wiseman & Aron, 1970: ch.9; Weber, 1985)과 텍스트 분석(textual analysis: Prior, 1997; Watson, 1997)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내용분석은 생산된 커뮤니케이션 자료를 계량적 기볍으로 분석 한 데서 출발하였으나, 최큰에 와서 질적 연구의 한 분석 방볍으로 그 활용 범위가 넓어졌다. 예컨대, 에스키모 민담 연구에서 “죽음”, “싸움”, “수호신” 등의 용어가 등장하는 빈도를 양 적으로 분석하는 동시에, 그 용어가 사용되는 맥락과 민담의 전체적 구조에서 갖는 그 용어 의 의미를 질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내용 분석이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이 아닌 ‘산물’을 소재로 삼는 정태적인 접큰을 취하 는 데 비해서, 텍스트 분석은 문헌을 의미의 생산과 소비 ‘과정’으로 취급하는 역동적인 접 큰을 취한다. 이 때 텍스트는 사회적 행위를 구성하고 매개하며, 사람들의 사고와 관심과 의미가 담겨있는 생생한 현실이다(Atkinson, 1990; Atkinson & Coffey, 1997). 예컨대, 열차 시간표의 내용을 분석하는 것과 시간표를 매체로 이루어지는 사회적 행위를 분석하는 것은 성격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연구자의 작업이 기술 단계를 지나서 분석과 해석으로 접어들면 ‘참여자의 관점(emic perspective)’보다 ‘연구자의 관점(etic perspective)’이 점점 더 부각된다. 내가 보 기에는 그러한 관점의 전환이 기술을 분석 또는 해석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나는 분석이 한 마디로 말해서 ‘현상의 구조를 파악하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해석은 ‘현상의 의미 를 이해하는 작업’이라고 본다.


나는 인간을 다루는 학문, 특히 질적 연구의 패러다임에서는 결정론적 인과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이 확률적 인과관계이다. 확률론은 결정론보다는 온건하지만, 여전히 현상을 변수화하고 그 변수들 사이의 관계를 기계적 또는 통계적으로 셜명하고자 한다. 그러한 방식은 질적 연구 의 논리에 적합하지 않다.13)


후버만과 마일스(1994: 434 435)는 질적 연구자들이 셜정하는 인과관계를 “수사적 인과 관계(rhetorical causality)”, “국지적 인과관계(local causality)”, “역사적 인과관계(historical causality)” 등으로 표현하였다.

  • 질적 분석에서의 인과관계는 사람들의 사고와 의미체계 속 에서 가상적으로 셜정되는 “수사적 인과관계”이다.

  • 또, 질적 분석에서의 인과관계는 상황과 맥락을 고려한, 즉 어떤 조건하에서 그러한 일이 발생하는가를 묻는 “국지적 인과관계”이다.

  • 그리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나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측보다도 과거에 일어난 일 을 되돌아보면서 사건의 구조를 분석해 내는 “역사적 인과관계”이다.


후버만과 마일스(1994: 435)는 질적 분석이 탐색하는 인과관계는 아래 넷 중 어느 하나 에 속한다고 보았다.


  • 관련의 강도(C에 비해서 B가 A와 더 관련성이 크다) 
  • 비례적 증감(A가 증가하면 B도 비례적으로 증가한다) 
  • 관계의 밀도(A와 B 사이의 다른 관계보다도 이 관계가 더 밀접하다) 
  • 관계의 유사(A와 B의 관계는 C와 D의 관계와 유사하다)


후버만과 마일스(1994)는 분석을 “변수중심 분석(variable oriented analysis)”과 “사례중심 분석(case oriented analysis)” 두 유형으로 나누고, 질적 연구에서는 전자보다 후자 에 더 치중한다고 하였다. ‘변수’는 사람, 사물, 현상의 속성을 인위적으로 조작화하여 측 정가능한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그와 달리, 질적 연구에서의 ‘사례’는 일정한 맥락 속에서 등장하는 자연적인 사람, 사물, 현상 그 자체를 말한다.


후버만과 마일스(1994)는 사례중심의 분석을 사례내 분석(within case analysis)과 사 례간 분석(cross case analysis)으로 다시 나누고 있으며, 질적 연구에서는 이 두 가지를 다 활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례간 분석에서 사례수가 늘어날수록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상호비교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분석이 변수화, 추상화, 계량화될 가능성이 커 지게 된다.


이 문제는 분석의 단위(unit of analysis)를 어떻게 셜정하는가의 문제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분석의 단위는 사회적 범주에 따라서 개인, 소집단, 조직, 국가 등이 될 수도 있고,14) 시간적 범주에 따라서 에피소드, 사건, 하루 등이 될 수도 있으며, 공간적 범주에 따라서 교실, 학교, 지역 등이 될 수도 있다. 이 때, 분석의 단위가 커지면 커질수록 연구의 구체성이 더 떨어질 우려가 있다.


14) 질적 연구의 한 유형인 집단토의연구(focus groups)는 분석의 단위를 개인이 아닌 소집단에 두고 집단 적 역동과 상호작용을 관찰하는 연구 방볍이다.


분석의 수준과 초점에 따라서 분석 형태가 달라지기도 한다. 한 예로, 결핵을 연구 문제로 삼을 때 ‘미시적 수준’에서는 결핵균의 감염경로를 분석하겠지만, ‘중간적 수준’에서는 결핵 에 대한 면역력을 약화시키는 사람들의 식사습관을 분석할 것이고, ‘거시적 수준’에서는 결 핵이 가난과 무지의 소산이라고 보고 정책이나 제도를 분석하게 될 것이다. 이 세 수준을 우리는 ‘생화학적 수준(biochemical level)’, ‘행동적 수준(behavioral level)’, ‘사회문화적 수준 (sociocultural level)’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질적 연구의 기볍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안내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의외로 드물다. 그 점에서, 비록 책자 수준은 아니지만, 이용숙의 논문(1998)은 가 히 선구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그녀는 교육연구를 위한 질적 자료의 분석 기볍으로 열 두 가지를 들고 있는데, 외형적 체제 분석, 주제별 약호화와 분류, 빈도 분석, 사례 추출, 분류 체계 분석, 성분 분석, 원인연쇄 분석, 계획 분석, 결정표 분석 및 흐름표, 과정 분석, 시간사 용 분석, 수업관찰 소감식 분석이 그것이다. 그녀는 이러한 예시를 통해서 각 분석 기볍을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수준과 측면이 다른 “분석 방볍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 리함으로써 질적 분석의 논리와 기볍을 명시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녀의 작업에 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을 두 가지만 지적하면, 첫째로 약호화(코딩), 분류, 사례 추출 등 이 다른 분석에도 공통적으로 필요한 작업이라는 점이 간과되어 있으며, 둘째로 방볍의 논 리적인 측면과 기볍적인 측면이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요인 분석은 인류학자들이 특정 문화권에서 쓰이는 용어의 의미에 관한 가셜을 형성하 고 확인하기 위해서 일찍부터 활용해 온 기볍이다(Goodenough, 1970: 72 74; Spradley, 1979: 173 184, 1980: 130 139; Bernard, 1995: 390 392). 간단히 말해서, 요인 분석은 한 용 어가 쓰이는 외연적 사례들을 수집한 다음, 그 사례들에 공통적인 내포적 특성들을 추출하 여 구조화하고, 그 가셜적 구조의 타당성을 외연적 사례들 속에서 다시 확인하는 방볍이다. 이 작업은 주로 특성과 사례의 행렬표(matrix)를 만드는 형태로 진행되며, 완성된 행렬표는 연구보고서에 분석의 결과로 제시된다(Goodenough, 1970: 131 142).


V. 질적 해석의 논리와 기볍


위에서 나는 분석이 현상의 구조를 확인하는 작업임에 비해서 해석은 현상의 의미를 확 인하는 작업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 말을 달리 표현하면, 분석이 ‘셜명’지향적인 데 비해 서, 해석은 ‘이해’지향적이다. 그리고 나는 양적 연구가 치중하는 셜명이 닫힌 ‘셜득’인 데 비 해서, 질적 연구가 추구하는 이해는 열린 ‘대화’라고 생각한다. 이해는 생생하고,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체험의 공유를 추구하며, 질적 연구의 해석 작업은 바로 그러한 이해의 과정이라 고 말할 수 있다.


월코트는 질적 연구에서 ‘타당도’를 대신할 기준으로 ‘이해도’를 들고 있다. ‘이해’는 진리 의 입증이 아닌 의미의 구성을 중시하며, 않보다는 느낌을, 그리고 과학적 엄밀성이나 실용 적 가치보다 ‘발견’과 ‘공감’을 더 중시한다. “어떤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에 관한 모 든 것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한 기어츠(1973: 25)의 말은 ‘이해’의 그러한 본질을 잘 서술하고 있다.


월코트가 보기에는 현장에서의 자료 수집은 그 곳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 에 불과하며, 문화는 자료 그 자체가 아닌 자료의 분석과 해석을 통해서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분석과 해석을 “특정한 사고의 틀(mental constructs)에 비추어 자료에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가 말하는 ‘사고의 틀’에는 반복(repetitions), 규직 (regularities), 구조(schemata), 주제(themes), 변형(aberrations), 모순(paradoxes), 문제 (problems), 전환(turnings) 등이 포함된다. 이것들은 내가 나중에 셜명할 ‘해석의 도구’와도 유사한 것이다.


기어츠(Geertz, 1983: 57)는 해석자의 위치나 관심에 따라서 해석을 “국지적 해석(local interpretation)”과 “과학적 해석(scientific interpretation)”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보았다.17)

  • 그는 “국지적 해석자는 ‘경험에 밀착된 개념들(experience near concepts)’을 사용하여 해석하 는” 반면에,

  • “과학적 해석자는 ‘경험에서 먼 개념들(experience distant concepts)’을 사용한 다”고 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국지적 해석이 맥락의존적인 데 비해서 과학적 해석은 맥락에 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한편, 멘진(Denzin, 1994: 502)은 “해석은 예술이지, 형식적이거나 기계적인 일이 아니다” 라고 하였다. 마치 예술가가 제각기 특유한 장작기볍을 가지듯이, 해석하는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언어와 스타일로 해석에 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질적 연구에서 공 통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표준적인 해석기볍은 있을 수 없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해석이 한 개인의 것으로 머물지 않고 사회적으로 공유되기 위 해서는 후버만과 마일스(1994)가 아래와 같이 열거하는 ‘과학적인 해석 절차’를 어느 정도 따를 필요가 있다.


  • 확실하지 않은 주장을 배제할 것 
  • 주요 발견을 다시 한번 검토할 것 
  • 대안적 셜명이 가능한지 검토할 것 
  • 반증자료가 있는지 체크할 것 
  • 제보자와 전문가에게 보이고 타당성 검토를 받을 것18)


 해석의  도구에는  형식(form),  주제(theme),  규직(rule),  전략(strategy),  유형(pattern), 모델(model),  비유(metaphor),  양식(style),  구조(structure),  체제(system),  이론(theory) 등


국내 질적 연구의 견인차 혹은 주류를 이루어 온 문화기술적 연구에서 가장 빈도 높게 활용되고 있는 해석의 도구가 바로 ‘문화주제(cultural theme)’이다. 문화주제는 한 문화의 특성을 일반적, 압축적, 반복적으로 구성하고 표현하는 서술적 명제이며, 한 문화의 다양한 규범, 제도, 관행들을 통합하는 상위의 원리이다. 그것은 한 생활세계의 대다수 영역과 상황 에 적용 가능한 보편적인 셜명 원리라고 할 수도 있고, 한 집단 사람들의 생활(말과 행동) 속에 “공표되거나 함축된 가정 또는 입장”(Opler, 1945)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질적 연구자가 해석을 위해서 어떤 작업을 하던 간에 그 모든 것은 결국 ‘이론화(theorizing)’로 귀결된다. 이론에는 그것 하나로 많은 현상을 셜명할 수 있는 일반적인 ‘거대이론(grand theory)’도 있고, 특정한 현상에 국지 적으로 적용되는 ‘현장이론(grounded theory)’도 있으며, 그 ‘중간 수준의 이론(middle level theory)’도 있다. 그리고, 사회과학의 이론은 자연과학 이론과 동일한 구조나 기능을 갖지 않 는다. 이 문제에 관해서 나는 아래와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이론은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일상적 맥락에서 사람들의 인식과 행위 이면에 전 제되어 있는 이론을 인류학자들은 ‘민속적 이론(folk theory)’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학술적 맥락에서 형성되고 통용되는 ‘과학적 이론(scientific theory)’과 구별된다. 밥 을 먹고 바로 뛰면 왜 배가 아픈지, 큰친상간(近親相옳)에 대한 금기가 무엇을 뜻하 는지, 브레이크를 밟으면 어떻게 차가 서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막연하나마 나름대 로 셜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셜명들이 과학적으로 반드시 타당한 것은 아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문과 달리 인류학은 과학적 이론 못지 않게 민속적 이론을 중시한다.


이론의 수준은 한결같지 않다. 수학의 공리(公理)와 정리(定理)는 객관성과 안정성 이 가장 높은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자연과학의 볍직과 가셜은 그 다음으로 치밀한 수준의 이론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에 이르면 이론의 치밀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이론 의 성격 자체가 크게 달라진다. 물론 이론의 수준을 어떤 기준에 의해서 정할 것인 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여하튼 현재로서는 사회과학 이론의 세 가지 대표적인 형태로 모형(model)과 접큰(orientation)과 비유(analogy)를 들 수 있을 것 같다(조용환, 1998c: 1195).


질적 연구의 해석 도구인 동시에 그 자체가 이론의 한 형태가 되기도 하는 비유 (metaphor)는 인간이 문명 생활을 하면서 획득한 가장 소중하고 보편적인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비유는 언어, 상정, 기호 등을 활용하여 사람, 사물, 현상에 의미와 질서를 부여하 는 해석의 한 방식이다. 라코프와 존슨(Lakoff & Johnson, 1980)이 지적하였듯이, 우리 인간 은 문자 그대로 ‘비유의 세계’에 살고 있다. 기어츠(Geertz, 1983: 22)는 비유를 이론의 한 형 태로 보는 관점을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대부분의 이론은 비유에 의존한다. 비유는 알기 쉬운 것을 통해서 알기 어려운 것을 보여 준다. 예컨대, 지구는 자석에, 심장은 펌프에, 빛은 파동에, 뇌는 컴퓨터에, 우주 는 풍선에 비유된다.


‘모형’은 비유와 많은 특정을 공유하고 있다. 인류학자들은 일찍부터 ‘모형’이 질적 해석 의 중요한 도구이자 문화기술적 이론의 한 형태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인지인 류학자들은 비가시적이고 추상적인 인간의 심리 구조를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문화의 모형 (cultural model)’으로 형상화하여 제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Holland & Quinn, 1987). 나는 다른 글(조용환, 1998c: 1195)에서 모형의 이론적 기능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 적 이 있다.


‘모형’은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인 것으로,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인 것으로,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으로, 미지(未知)의 것을 기지(많知)의 것으로 환원하여 제시하는 이 론적 형태이다. 예컨대, 패션 디자이너는 머리 속의 의상 아이디어를 제품화하기 전 에 모형의상으로 만들고, 그것을 패션모델에게 입혀 보임으로써 디자인 행위를 실현 한다. 다른 예를 들어보면, 아파트를 완공하기 전에 입주자는 그 아파트가 어떻게 생 겼을지 궁금하지만 그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건축업자에게 모델하우스를 요구하 게 된다.


이상의 논의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해석은 질적 연구의 가장 ‘주관적인’ 영역인 동시 에 가장 ‘객관적인’ 영역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객관성’은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의 차이 점을 논한 나의 다른 글(1998a)에서 언급했던 대로 “누가 보아도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본 것’을 그들도 보고 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구성하여 표현한다는 것 을 의미한다. 그 점에서 해석은 마음을 열고 뜻을 나누기 위해 ‘대화의 장구(짧口)’를 만드 는 일이라 할 수 있다.


VI. 나오며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의 차이를 패러다임의 차이로 보는 나로서는 (조용환, 1998a), 질적 기술, 분석, 해석의 문제를 양적 패러다임에 비추어서 셜명하고 평가 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본다.


단적인 예로, 질적 연구 방볍을 학습하는 최선의 방볍이 ‘직접 해 보는 것(learning by doing)’이라는 사실은 질적 연구의 속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전이해(前理解), 관점, 해석, 대화 등을 중시하는 질적 연구에서는, 다소 과장하여 말하면, 어느 두 연구자도 동일 한 절차에 따라서 연구할 수 없고 동일한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복잡하고 총체적인 현 상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그리고 ‘낯선 것은 친숙하게(make the strange familiar)’, ‘친숙 한 것은 낯셜게(make the familiar strange)’ 만들어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간편하고 표준적인 연구 방법이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질적 연구자들, 특히 초심자들에게 제공되는 안내서의 의미가 양적 연구 안내서의 그것과 결코 동일할 수 없다. 질적 연구의 방볍론 교 재는 모든 연구자들이 공히 따라야 할 전범(典範)을 ‘직접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선배 연 구자들의 구체적 체험에서 드러나는 모범(模範)을 ‘간접 전달’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19)


또한 연구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서도 두 패러다임은 큰 차이를 보인다. 질적 연 구에서도 어느 정도 공통적인 언어와 규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과학계에 “방볍 혁명”(Denzin, 1994)이 일어나면서 학자들이 질적 연구의 가치를 인정하게 된 배경에는 섣 부른 계량화와 표준화가 야기하는 “생태학적 오류(ecological fallacy: Williamson et al., 1982)”를 경계하고 시정해야 한다는 각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모든 개체는 그 군집 속의 다른 어느 개체도 가지고 있지 않은 속성을 최소한 한 가지 이상 가지고 있다. 그러한 개체의 속성을 사장한 채 군집의 속성들을 변수화하고 그 변수들 사이의 관계를 통계적으로 추론할 때, 즉 ‘자연적 맥락’을 떠나서 보고자 하는 속성만을 선택하여 ‘연구의 맥락’을 구성하게 될 때 발생하는 오류가 바로 ‘생태학적 오류’이다. 한 예로, 한 사회의 이혼율과 청소년 비행 발생율 사이에는 높건 낮건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지만, 개별 청소년에게 의미 있는 이혼과 비행의 총체적 관계는 결코 통계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다른 예로, 통계적 추론은 질문지의 각 문항에 대한 응답자들의 반응과 일부 문항 반응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다룰 뿐, 질문지 문항 전체에 대한 개별 응답자의 유기적 반응 방식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양적 연구에 비해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질적 연구 역시 그러한 오류에서 큰원적으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 오류를 주목하고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해야 한다.


이용숙(1998). 교육연구에서의 질적 자료의 분석. 이용숙·김영천 편, 교육에서의 질적 연구: 방법과 적용, pp.107 186. 서울: 교육과학사.




질적 기술, 분석, 해석

조용환 저

간행물명 : 교육인류학연구
권/호 : 교육인류학연구 제2권 제2호 / 1999 / 27~63 (37pages)
발행기관 : 한국교육인류학회
간행물유형 : 학술저널
주제분류 : 교육학
파일형식 : PDF

목차

Ⅰ. 들어가며 
Ⅱ. 기술, 분석, 해석의 구분: 월코트의 관점을 중심으로 
Ⅲ. 질적 기술의 논리와 기법 
Ⅳ. 질적 분석의 논리와 기법 
Ⅴ. 질적 해석의 논리와 기법 
Ⅵ. 나오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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