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cault, Michel. 1994[1963]. The Birth of the Clinic: An Archaeology of Medical Perception. New York: Vintage Books. [미셸 푸코. 홍성민 역. 2006. 『임상의학의 탄생』, 서론-3장 (pp. 14-100).]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열 달 동안 하루에 10시간부터 12시간까지 목욕을 시켰다는 18세기, 그리고 '질병을 해부학적으로 바라보게 된' 19세기에 의학의 '시선'이 어떻게 이동해갔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다시 말하면 19세기의 위대한 발견이 있기 전, 의학 체계가 그다지 진보하지 않았던 당시에 의학 분야의 담론 구성이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그 첫번째는 "질병을 공간화(spatialiser)와 분류하기" 이다. 첫 번째 공간화의 장에서 의사들은 환자를 유사성의 대상 위에서 구별하려고 했으며 개별성은 중요하게 보지 않았다. 그러나 두 번째 공간화하기에서는 개별 환자가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찾아낼 수 있는 섬세한 의학적 시선이 중요해졌다. 

제3의 공간화하기는 사회 안에서 질병의 경계가 생기고, 질병이 의학적 투자의 대상이 되며, 지역에 따라 의학적 배치에 차별이 생겨 의학적 혜택을 더 많이 받는 지역과 계층으로 사회가 구획되는 현상이라 정의하였다. 그러나 병원이란 인위적인 장소이며, 병원에서는 어떤 질병도 순수한 모습으로 남아있을 수 없다.

전염병이 제3기의 모습(제3의 공간화)으로 사회적 구조 위해서 질병과 의학적 경험과 의사들의 의료행위를 통제하려 했을 때 마주칠 수밖에 없었던 과제는 의학의 정치적 입장이 무엇인가를 개념 정의하는 일이었고, 이것이 왕립의학회의 기원이다. 왕립의학회가 병리학적 현상을 집단적 수준에서 관리하는 공식 기관이 되면서 지식을 총체화(totalisation)하는 방법이 새로워졌다. 이제 의학적 시선을 구성하는 것은 지식의 굴레가 아니라,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지식을 수정하는 열려젠 총체화의 영역이 되었다. 

또한 의학적 공간이 사회적 영역을 가로질러 깊숙히 침투해갔으며, 의학은 범위가 확장되어 건강한 사람을 관리하는 것까지 포괄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자유로운 장"인데,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의학적 기술 사이에 합치점이 생겨나 의사와 정치가들이 하나의 목소리로 의학적 제도화를 저지하는 모든 방해물을 걷어치우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1)병원 구조, (2)의료 행위와 교육에 관한 법률이 있다.

이 시기에 필요한 제도 개편의 요구는 '개인의 의학적 관찰과 의과대학의 시험제도와 일상적인 치료행위에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었고, 특히 의과대학보다 병원에서 하는 의학 강의에 일정한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 더욱 시급했다. 다시 말하자면 한마디로 의학적 시선에 부여된 대상을 말로 어떻게 표현할지 몰랐다고 할 수 있다. 즉 관찰 가능한 것이 말로 표현되지 못했던 것이다.


Kleinman, Arthur. 1995. “What is Specific to Biomedicine?” Writing at the Margin: Discourse between Anthropology and Medicin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pp. 21-40.

의학은 무수히 많다(Medicine is nothing if not multitudinous)로 시작하는 이 article은 우선 초반부에 이 '많은'의학의 공통점을 나열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의학의 '무수함(multitudinousness)'은 더욱 두드러지는데, 그 이유중 하나는 어떤 의학도 역사적 맥락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Biomedicine 역시 다원적(plural)이기 때문에 한 지역의 치료적 전통의 globalization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Biomedicine이 현지화(indigenization) 과정을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이종성(heterogeneity)에도 불구하고 biomedicine과 그 서구적 근원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특히 지식 생산과 훈련 시스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scientific paradigm을 보고자 한다. 

총 네 가지를 다루고 있는데 (1)Monotheism적인 특징과 Monotypic order를 중시하는 점, (2)Suffering과 Healing보다는 Disease와 Treatment를 강조한느 점, (3)강력한 수술(그리고 수술로 대표되는 치료)을 위한 점진적 검색, (4)관료화, 전문화, 의료화(medicalization)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들 특징에 대해 저자는 이것은 비단 의학에 국한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현상의 하나로 봐야한다고 말한다.


Good, Byron. 1994. “How Medicine Constructs Its Objects.” Medicine, Rationality, and Experience: An Anthropological Perspectiv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65-87.

이 Article에서 저자는 하버드 의과대학에서의 연구를 통해서 의학이 어떻게 그 대상을 형성하는가(how medicine constructs its object)에 대한 견해를 서술하고 있다.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이 의학을 어떻게 배우는가 하는 문제는 그들이 "어떻게 그들의 뇌를 바꿔가는가" 또는 그들이 어떻게 "정보와 interaction하는가"와도 연관이 있다. 따라서 진단과 치료의 대상으로서 어떻게 'illness'를 구성해가는지, 그리고 의학 지식이 의미하는 세계관을 만들어나가는 '형성 과정'을 살펴본다. 

질병에 대해, 질병은 근본적으로, 심지어는 베타적으로 생물학적인 것이라는 관점에 충격을 받은 저자는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연구를 하면서 의학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새로운 접근법을 익히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일종의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Dan Sperber가 "cognitive development의 첫 단계는 이미 완성되어 인식가능한 세계에서 그와 관련된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지식을 축적해나갈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의학의 세계에 들어온다는 것은 의학의 기초적 언어와 지식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의학적"방식으로 현실을 구성해나가는 기본적 practice를 배우는 것이며, 여기에는 '보는 것', '쓰는 것', '말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 중 '보는 것'은, 특히 해부학 실습으로 대표되는 이것은 단순히 '비인간적인' 경험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관점을 신체, 질병사례, 환자, 시신 등과 같은 의학적 시선에 적합한 방법으로 볼 수 있게 재구성하는 데에 기여한다. 그리고 '쓰는 것'과 '말하는 것'은 환자의 경험적 narrative를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간의 의사소통에 있어서 이 중 어떤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제시할 것인지를 훈련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단계에서 학생들은 자유재량(arbitrariness)에 대해서도 학습하게 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