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ans-Pritchard, E. E. 2010[1937]. “The Notion of Witchcraft Explains Unfortunate Events.” A Reader in Medical Anthropology. Malden: Wiley-Blackwell, pp. 18-25.

이 article에서 저자는 불운(misfortune, 예컨대 곡물 저장고가 무너져서 입은 부상))의 원인을 마법(witchcraft)로 돌리는 Azande족(Zande어)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이 '마법'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일련의 인과관계(chain of causation)중에서 특정 조건에 대한 것이다. 한 예로서, 곡물 저장고가 무너져서 그 아래 있는 사람이 다쳤다고 할 때, 왜 그 특정 시점에, 왜 하필 그 곡물저장고 아래 있던 사람이 다쳤을까? 이것을 설명해주는 것이 '마법'이다. 우리는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전혀 관계없는 일들이 '우연'히 동시에 일어났다'라 생각하지만 이들은 마법때문에 일어났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또한 그 마법은 "왜(why)"그 일이 생겼는지에 대한 설명이지 "어떻게(how)" 그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것은 아니다. 곡물 저장고가 무너진 원인이 흰개미가 기둥을 갉아먹어서 그렇다는 것은 그들도 안다. 또한 그들에게 있어 사망의 자연적 원인(natural cause)와 마법은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보충해주는 개념이다. 말하자면 '마법'이란, 소위 '확인사살(second spear)'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모든 질병이나 사망의 원인을 '마법'에 돌리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사회적 규칙, 규범, 금기는 지켜져야 하며, 이런 것들을 다 지켰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불운'이 닥쳤을 때, 그 때 이들은 그 원인을 '마법'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 '마법'은 일상적(ordinary)한 것이지, 기이한(extraordinary)한 것이 아니며, 정상적(normal)인 것이지 비정상(abnormal)이 아니다. 하지만 마법은 명확한 개념이라기보다는 감각적 경험을 초월한 것으로써, 그들 자신도 마법을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마법이란 Zande에게는 그들의 신념(belief)을 현실화(actualize)하는 것이지, 지식화(intellectualize)하는 것이 아니며, 그들의 교리(tenet)은 교리(doctrine)보다는 사회적으로 통제된 행동으로 나타난다.



Good, Byron J. 2010[1994]. “Medical Anthropology and the Problem of Belief.” A Reader in Medical Anthropology. Malden: Wiley-Blackwell, pp. 64-76.

이 article에서 저자는 신념(belief)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과학(의학을 포함하여)과 종교적 근본주의(religious fundamentalism)은 '신념'이라는 개념에 있어서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의료인류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의학의 세부 영역인 행동과학이나 공중보건 영역에 있어서 '신념'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질병을 이해하고 치료하는데 '신념'이 중요하고, 왜 잘못된 신념은 고쳐져야 할까? 합리성(rationality)과 상대주의(relativism)에 대한 논쟁에서 '신념'이라는 단어의 역할을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Rationality and the Empiricist Paradigm in Anthropology'에서 저자는 Azande족의 마법(Witchcraft)에 대한 신념 등을 예시로 들면서, 합리성(rationality)에 있어 가장 난감한 문제는 "명백히 비합리적인 신념"에 대한 것이며, 경험주의에서 '신념'의 역할은 무엇이고, '신념'과 '지식'의 경계는 어디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되묻고 있다.

The Problem of Belief in Anthropology 에서는 '신념'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 조금 더 살피고 있다. 영어에서 'belief'라는 단어의 역사를 용례, 영문학, 철학적으로 살펴보고, 'knowledge'와의 차이를 설명한다. 특히 인류학에서 'belief'라는 개념에 대한 분석이 거의 되어 있지 않은 면에 대한 몇 가지 가설을 언급하고 있는데, (1)belief와 knowledge를 병치시켜놓으면 belief를 마치 반사실적(counter-factual) 주장으로 여기는 조짐이 보인다는 점 (2)인류학의 analytic category에서 'belief'는 주로 종교 내지는 folk science의 논의와 가장 가깝다는 점 (3) 인류학 문헌에서 'belief'라는 단어가 서로 다른 이론적 패러다임하에서 다양한 빈도와 분석적 의미로 사용된다는 점 (4)다른 문화를 'belief'라고 칭하는 것은 인류학적 관찰자의 위치와 지식에 권위를 주입한다는 점 (5)여전히 'belief'라는 단어는 odd job word로 보인다는 점 등의 가설을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A Shaking of the Foundations에서는 인류학이 20세기 사회학에 '인간의 지식은 문화적으로 만들어지며 생활과 사회적 구조와의 관계에서 구성된다'라는 주장을 통해 기여한 바가 있지만, 경험주의적 패러다임에 기반한 comparative, cross-cultural study의 기반은 최근 몇 년간 흔들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Ots, Thomas. 1990. “The Angry Liver, the Anxious Heart and the Melancholy Spleen.” Culture, Medicine, and Psychiatry 14(1): 21-58.

이 article에서 저자는 "lived-body"에 대한 중국식 전통 의학의 접근법을 서술하고 있다. 서구 의학은 정신(psyche)과 신체(soma)를 서로 분리된 것으로 보며, 정신질환에서 신체화된 증상을 "이차적인 것" 또는 "비특이적인 것"으로 무시하곤 한다("superior mind over inferior body). 이런 관점은 "embodiment"라는 단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또한 영어에는 독어의 Leib와 같이 신체와 정신이 합해진 body-mind unity 내지는 "lived-body"를 지칭하는 단어가 없다.  반면 중국식 전통 의학은 좀 더 전체적(holistic)으로 바라보면서 정신과 신체가 갖는 관계를 중요시하는데, 이는 article의 제목과 같이 간(liver)은 화(anger)와, 심장(heart)는 긴장(anxiety)과, 비장(spleen)은 우울(melancholy)과 연관되어 있다고 해석하는 중국식 전통의학의 방식을 직접 환자를 만나보고 주요 증상들을 위주로 정리하여 보여주고 있다. 


Moerman, Daniel. 2002. “Doctors and Patients: The Role of Clinicians in the Placebo Effect.” Understanding and Applying Medical Anthropology. Mountain View: Mayfield Publishing Company, pp. 133-141.

치유 과정에 있어서 플라시보효과는 분명 흥미로운 현상이면서, 또한 연구자들에게 좋은 연구주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여기서 "플라시보효과"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라고 말한다. 왜냐면, '플라시보'가 이미 '효과가 없다'라는 뜻인데, 이것이 효과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효과가 왜,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

의료인류학적 측면에서, 어떤 민족의학이든 환자와 치유자의 신념(belief)은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 둘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에 대해서 플라시보효과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제시된 결과 보면, 환자가 어떠한 성격적, 심리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치료의 결과와 관계가 없으며, 또한 누가 위약에 반응할지 예측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보다는 치유자(의사)의 신념이 환자의 그것보다 치료 효과에 대해서 훨씬 더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것은 어떤 사람들은 왜 특정 약의 특허가 만료되거나 OTC로 전환되었을 때 효과가 감소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데, 이 article이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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