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ed.
2013. 5. 14. 18:04
2013. 5. 14. 18:04
- The
Emergence of the American University
- Civil War
이후, Reform의 근원을 이루는 또 하나의 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American University 이다.
- 20세기로 넘어가면서
university는 의학교육의 가장 강력한 친구이자 보호자였다.
- 언뜻 보기에,
American college는 의학교육을 육성시키기 위한 것으로써 적절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Civil War 이전의 college는 높은 차원의 학습(higher learning)에 대단히 부적합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 이 시기의 college는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곳이었을 뿐, 연구를 통해 확장시키는(expand)
곳은 아니었다.
- Civil War 이후에, 기존의 낡은 college는 현대식의 대학(modern university)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근원에는 모든 학문 영역에 걸친 지식의 성장이 있었다(growth
of information)
- 이렇게 증가한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대학이 바로 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 외견상으로 대학이 '의학교육'을 new
educational responsibilities로 받아들인 것은 그저 우연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많은 경우에 medical school은 이미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were
already there). 다시 말하면, Civil War 이후에 성장하게 된 많은 대학들은(Harvard,
Yale, Dartmouth …) 이미 medical school을 가지고 있었다. 딱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 그러나 Civil
War 이후 대학들은 의학교육에 대해서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에는 어떠한 동기가 있다.
-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식의 팽창'이 어떻게 미국 고등교육기관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 Civil
War 이전과 달리, 대학은 지식을 'redefining'하는 곳이 되었으며 지식의
research, discovery, expanding 을 강조하였다.
- 분야를 막론하고 학자와 교육자들도 지식을 어떻게 이해하고, 확장하고, 전달할 것인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의학지식의 확장 역시 이러한 대학의 변화된 모습과 잘 맞아떨어졌고, Medical
Scientist에게도 '지식의 발견'이라는 새로운 미션이 주어졌다.
- 대학이 '의학'에 관심을 둔 - 이와 비슷한 - 다른 이유가 있는데, 바로 '의학교육'이 다른 분야에 비해서 좀 더 어려운 분야였던 것이다.
- 모든 지식을 다 가르칠 수 없었고, 누군가는 어떤 것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다른 주제와 관련지어 교육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 또한 한 시기에 옳다고 알려진 것이 그 후에 다시 틀린 사실이 되는 경우도 많아
'process of education'에 관심을 둘 수 밖에 없었다. 특정한 결과물보다 올바른 접근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 이러한 관점은 '아무나' 의학을 가르치게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 Medical
Educator는 Medical Practitioner와 다르다. 이같은 intellectual necessity에 의해서 medical
teaching은 급격하게 full-time profession으로 자리잡았다.
- 현대식 대학을 만든 사람들은 적합한 교육 기술(educational
techniques)의 중요성에 대하여 누구보다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 Standardization of
the teaching process, Concern for curriculum planning
- 19세기 후반의 대학이 medical
education의 발전에 더 신경을 쓰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대학의 '지식의 통합'으로서의 역할 때문이었다.
- 의학 연구가 발전할수록, 분야간의 경계는 흐려지고,
Medical Science는 다른 과학 영역과 점점 더 통합되기 시작했다.
- 대학 내에 '전문대학원'이 있음으로써 대학에는 'Liberal
culture'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가치가 생겨났다.
- 대학은 생각을 자유롭게 교환하고 넓은 시야를 기르기 위한 가장 좋은 기회를 제공하였다.
- 현대 대학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시작부터 '다양성의 공간'이었다.
- 연구와 교육에의 헌신은 언제나 대학의 핵심(core)였다.
- 대학의 leader들에게 있어 의학의 연구와 교육은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 이를 통해 진단과 치료가 향상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많은 의사들에게 의학교육이
'university'로 옮겨간다는 것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 미국 medical
school을 쥐고 있던 의사들은 그들의 고수익 사업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 The
Creation of the School System
- 학생의 전반적인 낮은 수준은 Post-Civil War시기에 의학교육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요인이었다.
- 이러한 이유로 학생들에게 의학을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려웠다.
- "학생에게도 unkind할 뿐만 아니라, 학교로서도 부끄러운 일이다."
- 1870년대에는 의대에 너무 쉽게 들어오는 문제에 대하여 Angell과 같이 걱정을 하던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저 낮은 기준을 유지하여 더 많은 학생이 오도록 할 뿐.
- 이 같은 학생의 열악한 수준은 국가적인 school system과도 관련되어 있었다.
- 1870년대에 산업-경제적 system이 확장되기 시작하면서 school system도 이에 따라 변하게 되었다.
- Secondary
education과 Higher education은 서로 순차적으로 발전하였는데, 1870년대에는 전국의 college에서 고등학교와
"diploma relations"를 체결하였다.
- Civil
War 이전의 fluidity와 multiplicity는 사라지고, 교육적 체계는 마치 사다리와 같이 낮은 단계부터 높은 단계까지 연결되었다. 1890년대에 이르러서야 미국의
educational system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 후에, 지나칠 정도로 경직되게 구조화된 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하지만 잘 구조화된 국가적 학교 체계의 장점은 분명했다.
- 학문적으로 잘 길러진 학생이 의학을 배우면서 더 좋은 의학교육이 가능했으며, 더 까다로운 입학 요건을 갖출 수 있었다.
- 19세기 후반에 medical student의 매우 극소수만이 college graduate였다. 오히려 일부 고등학교 졸업생이 더 낫기도 하였다. 그러나 20세기가 다가오면서 학생의 전체적 수준은 더 향상되었다.
- 1870년대와 1880년대에 국가적 교육 체계의 성장에 따른 결과를 medical
school에서 느끼기는 무척 어려웠다. 하지만 그 시기에도 다가올 "Progressive Era"의 의학교육의 급격하고 놀라운 성장의 기반이 될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 의학 지식의 빠른 증가,
Teacher 수의 증가, 대학의 발전, 학생 수준의 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