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의학교육이 허둥대고 있는 사이에도, medical training 혁명을 가져올 사건들은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 German Medical Science and the Emergence of an Academic Elite
    • 근대 역사에서 medical mecca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처음은 프랑스.
      • 질병은 disordered humor 결과가 아니라, 어떤 특정한 장기에서만 발견되는 국소적 현상이라 보았다.
    • 수십년간 프랑스 의학이 가장 앞서나갔다면, 1840년대부터는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 Astute observation 오히려 ultimate eclipse 원인이 되었다.
    • 프랑스 의학의 영향력이 사라져가는 동안, 독일 의학이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 1840년대 이전의 독일 의학은 unity of nature 강조하고, 생물학적 현상과 물리적 현상의 근본적 공통점을 찾고자 하였다.
    • 그러나 1840년대 이후, 독일 의학은 이같은 Naturphilosophie 벗어던졌다.
      • 슐라이덴, 슈반, 뮐러, 루드비히, 헬름홀츠, 드브로이, 피르호…
    • 독일 의학의 강점은 experimental method 사용한데 있었다.
      • 질병의 궁극적 원인을 밝히기 위한 연구를 하였으며, 'study of function' 'study of form and morphology'보다 중요하게 여겨졌다.
    • 이러한 새로운 의학지식이 당장의 치료적 혁신에는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독일의학의 성공은 상당한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 Scientific information 현대 의사(modern doctor) 알아야 하는 중요한 핵심적 내용이 것이다.
    • 실험의학은 독일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 그렇지만 독일만의 독특한 장점 - 독일 대학의 특징이라 있는 - 있었다.
    • 1850년대 이후 유럽으로의 medical migration 패턴이 변하였다 : 프랑스에서 독일로.
    • 1850년대와 1860년대에 독일에서 공부한 미국 의사는 수가 적었지만 Civil War 이후 봇물터지듯 늘어났다.
      • Intellectual migration 1870년대와 1880년대에 정점을 찍었다.
      • 이러한 migration WWI 발발과 함께 독일-미국의 관계가 악화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 독일에서 공부한 미국인은 몇몇 공통점이 있다 - 젊고, 남성이며, 동부 출신이고, 사회 상류층이다.
    • 해외 유학을 미국인의 대부분은 독일의 임상 분과의 강점에 매력을 느꼈다.
      • Dermatology, Ophthalmology, Laryngology, Obstetrics, Gynecology, Surgery..
      • Academic or Scientific career 택한 사람의 숫자는 적었지만, 독일의 대학 문화(university spirit) 충분히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 이들이 미국에 돌아와 JH, Harvard, Cornell 등의 faculty 되었다.
    • Medical specialist와는 다르게 과학연구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은 독일의 작은 대학으로 갔다.
      • Ludwig 대표적인 스승이었으며, 파리의 Pierre Louis 라이벌관계
    • 독일에서 과학을 공부한 미국인들은 독일 실험실의 exciting atmosphere 흠뻑 즐길 있었다.
    • 미국인들의 독일 실험실 경험 가지 측면이 특히 후의 미국의학교육에 영향을 주었다.
      • 하나는, 미국인들의 독일인들의 medical knowledge 대한 자세(attitude) 배운 것이다. 독일인들과 같이 미국 학생들도 의학적 현상이 화학적/물리적 법칙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독일의 실험실에서 지낸 사람들은 전혀 새로운 세계관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 두번째로, 독일의 실험실에서 지냈던 미국인들은 새로운 모델에 반하였다 : Full time teacher and investigator.
    • 초창기 미국 의사들과 달리, 사람들은 금전적 보상보다 지적 탁월함을 추구하였다.
    • 미국으로 돌아와서 사람들은 상당한 좌절을 겪어야 했다. 미국에서는 어떤 곳에서도 full-time medical teaching and research 하는 사람이 없었다.
    •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1870년대, 1880년대에 미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academic career 추구하는 뜻을 수가 없었다.
    • 그리고 일부 인정받은 사람들조차 상당한 불만스러움을 표시했다.
    • 어쨌거나 몇몇 사람들은 수많은 장애를 모두 극복하고 성공하였다.
      • T Mitchell Prudden, Warren Lombard, John Jacob Abel
    • 요약하면, 1870년대와 1880년대에는 안되는 수의 헌신적인, 선구자적인 medical scientist만이 겨우겨우 그들의 학문적 위치(academic position) 유지할 있었고, 이는 그들이 스스로 경제적/개인적 희생을 감수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 Civil War 이후, academic physician 되고자 했던 사람들의 역경과 고난의 이야기들은 advanced teaching 이나 research 진로를 가고자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 Natural and physical science 종사하는 사람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고 있었다. : 적은 연봉, 사비로 기자재 구입. 적은 일자리,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 그럼에도 불구하고 1880년대에 의학계에서의 상황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 Civil War 이후 상황이 변했고, 프랑스 의사들이 이뤄낸 것보다 독일의 실험적 의학이 일궈낸 연구가 실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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