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arly Effort at Reform
- 미국의학교육의 부족한 것을 19세기 중반까지 몰랐던 것은 아니다.
- 이 시기의 의학교육의 reform에 대한 논의는 단조롭고, 비슷했다. "It is reform, not revolution, that is contemplated"
- 하지만 일부의 예외가 있었다. : Medical Dept of Lind Univ in Chicago
- New Orleans School of Medicine.
- Clinical Clerkship의 선구자. 곧바로 Best medical school이 되었다.
- 이 두 학교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이 시기의 의학교육은 "많은 양의 Talk, 그리고 극소량의 Action"이었다.
- Reform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 평판이나 수입을 엄청난 enrollment에 의존하고 있던 교수들은 학생들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여 reform에 소극적이었다.
- 의대 교수들의 이러한 문제 말고도 또 다른 장애물이 있었는데, 바로 Physician들이 아직 'Experimental Science'의 중요성을 'Medical Question'에 적용하는 것을 수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 여기서 우리는 19세기 전반의 프랑스 의학의 영향을 이해해야 한다.
- 프랑스 방법은 '경험에 의존하는(empirical)' 것이었다.
- Observation으로 특징지어지는 프랑스가 의학은 'Experimentation'은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독일 의학의 방법이다.
- 프랑스 Clinical worker는 observer였지 experimenter가 아니었다.
- 일반적으로, 정말 유용한 것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노력으로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 미국의학은 Civil War까지 프랑스의 영향을 받았다.
- Laboratory science를 믿지 않았다. Germ theory도 받아들이지 않음.
- 이러한 태도는 19세기 중반 대부분의 교수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높은 위치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저한 과학 교육은 (Thorough scientific education)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 따라서 19세기 중반, 미국의학교육을 reform하는 것에는 상당한 '지적 제약(intellectual constraint)'이 따랐다.
- 의학 지식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얻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자세가 필요했던 것이다.
- A Profession in Disarray
- Civil War 시절의 의학교육과 관련하여 또 한가지 눈여겨봐야 할 사실은, 1860년대까지 어떤 Medical School도 Faculty에게 Original Research를 의무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S. Weir Mitchell의 예.
- Research를 하고 싶었으나, 그와 뜻이 맞는 동료도 없었다. 후에 Physiology dept. 에 고용되었다.
- 하지만 Mitchell은 혼자가 아니었다.
- Civil War이후 독일에서 Postgraduate를 마친 미국인들이 속속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그러한 일을 할 여건이 되어있지 않았다.
- 이런 것들이 19세기 첫 2/3동안 미국 의사들이 의학 연구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 몇몇 사례들.
- 그러나 이 연구들은 그들의 Brilliant한 만큼이나 Exceptional한 것이었다.
- 유럽에 크게 뒤쳐져 있었고, 유럽에 의존적이었다.
- 이 시기의 또 다른 장애물은 아직 미국이란 나라가 문화적/경제적으로 한참 발전중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 연구를 지원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 의학 전반에 걸쳐서 미국은 Research에 대단히 무관심했다.
- 좌절한 기분을 느낀 것은 Medical Scientist만이 아니었다. 많은 Practitioner도 그들의 명예/수입/지위가 낮은 것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 AMA에게 이러한 현상의 주범은 분명했다. 망가진 의학교육이었다. 의학교육의 Reform을 시작한 초기부터 AMA는 교육의 reform이 직업의 social status를 회복시키는 최종 목표에 이르기를 바라고 있었다.
- 19세기 중반, 좌절감은 Medical Profession 전반에 걸쳐 있었다.
- 여러 직업군의 조각 조각을 하나로 뭉치게 한 것은 의학교육에의 focus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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