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무엇이 있는가? 질적 서술 다시 보기 (Res Nurs Health. 2010)
What’s in a Name? Qualitative Description Revisited
Margarete Sandelowski*
내가 10년 전 '질적 묘사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샌델로프스키, 2000)를 구상하고 썼을 때, 나는 그것을 비판과 해명으로 읽힐 것을 의도했었다. 이 비판은 질적 건강 연구 보고서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상황에 대한 것으로, 이 방법들이 사용된 증거를 보여주는 발견을 만들기 위해 방법(예: 근거 이론, 현상학)을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들을 수행한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방법론적 접근법에 대한 해명이었지만, 방법론 텍스트에서 독특한 방법으로 식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2000년 기사에서, 나는 질적 기술을 다른 질적 방법과 구별될 수 있고 기초적인 것으로 제시했다. 나는 정성적 연구와 정량적 연구 모두에서 서술의 종류를 간략하게 비교함으로써 해석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서술들을 차별화했다. 또한 표본추출(최대변동), 자료수집(개인 또는 포커스 그룹 인터뷰), 자료분석(질적 내용분석의 변이)에 대한 전형적인 접근방법 등 질적 서술연구의 이론적 위치(자연주의)와 설계특징을 정리하였다.
When I conceived and wrote ‘‘Whatever Happened to Qualitative Description?’’ (Sandelowski, 2000) 10 years ago, I had intended it to be read as a critique and as a clarification. The critique was of the state of affairs that still persists today in reports of qualitative health research, that of claiming to have used methods (e.g., grounded theory, phenomenology) to produce findings that show no evidence these methods were used. The clarification was of a methodological approach that those who conducted such studies could—in many of these instances—legitimately claim, but that is rarely identified as a distinctive method in methods texts. In that 2000 article, I presented qualitative description as both distinguishable from, and foundational to some, other qualitative methods. I differentiated various kinds of description by degree of interpretation by briefly comparing varieties of description in both qualitative and quantitative research. I also summarized the theoretical location (naturalism) and design features of qualitative descriptive studies, including typical approaches to sampling (maximum variation), data collection (individual or focus group interviews), and data analysis (variants of qualitative content analysis).
이 기사는 처음 등장한 이후 10년 동안 간호 및 건강 연구소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되고 자주 인용되는 기사 중 하나가 되었다. 이것은 확실히 기쁘지만, 내가 소유하지 않은 방법과 내가 지지하지 않는 합법적인 주장과 관행에 대한 소유권을 나에게 할당하는 것이 잘못 사용되는 것을 일상적으로 보아왔기 때문에 실망스럽기도 하다. 후견의 20/20 비전을 습득한 나는 이러한 오해가 내가 의미하는 바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것과 질적 연구 방법을 차별화하는 끈질긴 도전 모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글에서, 나는 주요 오해를 바로잡고 그 근저에 있는 명명 문제를 더 분명히 한다.
In the decade since it first appeared, this article has become one of the most downloaded and frequently cited in Research in Nursing & Health (see the virtual compendium at http://www.wiley. com/bw/vi.asp?ref¼0160-6891&site¼1). Although this is certainly pleasing, it has also been disheartening as I have routinely seen it misused to assign ownership to me of a method I do not own and to legitimate claims and practices I do not support. Having acquired the 20/20 vision of hindsight, I see that these misuses derive both from my failure adequately to convey what I meant and from the persistent challenge of differentiating qualitative research methods. In this article, I correct key misconceptions and make more explicit the naming problems at their roots.
오해 수정
CORRECTING MISCONCEPTIONS
[질적 묘사Qualitative Description]는 나만의(또한 다른 사람만의) 방법이 아니다.
Qualitative Description Is Not My (Nor Anyone Else’s) Method
2000년 기사에서 나는 내가 개발한 방법을 발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방법론적 접근법]을 정의하려고 했다. 그것의 다양한 추측과 그것을 특징짓는 샘플링, 데이터 수집 및 데이터 분석 기법의 절충적인 조합을 고려할 때, 질적 기술은 결코 한 사람이 발명한 어떤 방법으로도 묘사될 수 없다. 실제로, 정성적 서술적 연구가 수행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고, 이러한 연구가 전혀 [한정된 실체bounded entity]로 보이지 않는 데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방법]이라고 불리는 모든 엔티티는 다양성(즉, 방법 내 변동의 상당 부분)을 포함한다. 더욱이, 더 넓은 의미에서, 모든 방법은 사용자 손에 달려있다. 즉, 방법이 사용될 때마다 다시 발명된다. 부분적으로는 연구 보고서의 한계 부분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연구를 수행하려는 노력에 존재하는 제약 때문에, 그것에 대한 교과서적인 묘사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방법의 실행은 있을 수 없다. 실제로, [순수한 방법]을 구성하는 [한정된 실체bounded entity]라는 것은 없다. 나는 이 기사의 후반부에서 이 주제로 돌아갈 것이다.
In the 2000 article, I sought to define a methodological approach already long in existence, not to advance a method I had developed. Given its various guises and the eclectic combinations of sampling, data collection, and data analysis techniques characterizing it, qualitative description could never be described as any one method that any one person invented. Indeed, the very diversity in the conduct of qualitative descriptive studies likely contributed to these studies not being seen as bounded entities at all. Yet, all of the entities commonly referred to as methods encompass diversity (i.e., a great deal of within-method variation). Moreover, in a larger sense, all methods become what they are in the hands of users; that is, methods are re-invented every time they are used. Partly owing to the constraints that exist in any effort to conduct research—evident in the limitations section in research reports—there can be no execution of any method that perfectly conforms to any textbook depiction of it. Indeed, there is no it; there is no bounded entity constituting a pure method. I will return to this subject later in this article.
따라서 연구자가 사용한 방법, 예를 들어 '산델로프스키(2000)'가 묘사한 질적 기술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만, 질적 기술이라고 하는 것을 '산델로프스키의 방법'이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단순히 [2000년 논문만을 참고한 질적 서술 디자인을 사용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연구자들은 여전히 샘플링, 데이터 수집 및 데이터 분석 기법의 특정 조합을 적절한 참조와 함께 설명해야 한다. 2000년 기사는 실제 콘텐츠 분석 기법에 대한 설명이 없기 때문에, [내용 분석]을 위한 유일한 참조로 사용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2000년 논문은 이러한 전략에 대한 매우 간략한 개요만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용되는 특정 샘플링 또는 데이터 수집 전략을 지원하는 데 사용될 수 없다.
Accordingly, although it is appropriate for researchers to refer to the method they used as, for example, ‘‘qualitative description as Sandelowski (2000) described it,’’ it is inappropriate to refer to qualitative description as ‘‘Sandelowski’s method.’’ Moreover, it would not be enough for researchers simply to state that they used a qualitative descriptive design with only a reference to the 2000 article. Researchers would still have to describe the particular combination of sampling, data collection, and data analysis techniques they used with appropriate references to support those techniques. The 2000 article cannot be used as the sole reference for content analysis as it contains no description of any actual content analysis technique. Similarly, the 2000 article cannot be used to support the particular sampling or data collection strategies used as it offers only a highly abbreviated overview of these strategies.
[질적 서술Qualitative Description]은 데이터 분석 및 해석의 실패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Qualitative Description Does Not Legitimate the Failure to Analyze and Interpret Data
나는 2000년 기사에서 [모든 서술은 필연적으로 해석적이지만 - 인간은 결코 "벌거벗은 순수한 눈으로 바라볼 수 없다" - 질적 서술 연구는 예를 들어 현상학적 또는 이론적 서술보다 덜 해석적]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소통하고자 했던 것은 질적 서술적 연구가 주어진 데이터에 더 가까운, 또는 [데이터-근접한 결과]를 산출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어서 그러한 발견을 [주제 조사thematic survey]라고 칭하였다(Sandelowski & Barroso, 2007). 질적 건강 연구에서 지배적인 이러한 조사survey는, 예를 들어, [근거이론]이나 [푸코가 영감을 준 담론연구]보다, 훨씬 덜 변형된 데이터의 해석으로 구성된다. 주어진 데이터에 더 가깝지만, 이러한 주제 조사는 여전히 상세하고 미묘한 해석적 산물이다. 나는 이것을 "spin" (이 단어는 '거짓말'의 완곡어로서 더 자주 사용되어, 결과적으로 잘못된 단어 선택이 되었다)과 ["표면" 대 더 침투적인 데이터 읽기]또는 [행 안으로, 사이로, 너머로 읽기]와 반대되는 [행 그 자체로 읽기]에 대한 논의에서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임산부의 우려가 우려에 머무르고(Smeltzer, 1994) 의사의 인식이 지각에 머무른 데이터 근방 해석의 예를 들었다. 예를 들어, 이러한 우려와 인식은 체면치레, 만연한 문화적 담론에 대한 항의, 일탈 행위의 혐의를 물리치기 위한 도덕적 설명으로 해석적으로 변형되지 않았다.
I stated in the 2000 article that even though description of any kind was unavoidably interpretive— that human beings could never ‘‘look with a naked, innocent eye’’ (Pearce, 1971, p. 4)— qualitative descriptive studies were less interpretive than, for example, phenomenological or theoretical descriptions. What I had intended to communicate was that qualitative descriptive studies produced findings closer to the data as given, or data-near. I subsequently referred to such findings as thematic surveys (Sandelowski & Barroso, 2007). Dominant in qualitative health research, such surveys are composed of interpretations of data that are much less transformed than, for example, grounded theories or Foucault-inspired discourse studies. Although closer to the data as given, these thematic surveys are still detailed and nuanced interpretive products. I sought to convey this in my discussion of ‘‘spin’’ (admittedly an unfortunate word choice as it is used more often as a euphemism for lies), and of ‘‘surface’’ versus more penetrating readings of data, or readings of lines as opposed to into, between, over, or beyond lines (2000, pp. 335– 336). I cited examples of such data-near interpretations in which pregnant women’s concerns stayed concerns (Smeltzer, 1994) and physicians’ perceptions stayed perceptions (Geller & Holtzman, 1995). These concerns and perceptions were not, for example, interpretively transformed into instances of face-work, or protests against prevailing cultural discourses, or moral accounts to defeat charges of deviant behavior (e.g., Murphy, 1999).
그러한 서술적 연구의 최근 두 가지 예가 RNH 학술지에 발표되었습니다. 아버지 관여에 대한 줄리온, 그로스, 바클레이-맥러플린, 포그(2007) 연구(보고서에는 질적 서술에 대한 언급이 없다), 소아 간호사와 약물 투여에 대한 반 훌레 빈센트와 가디즈(2009)의 명시적 질적 서술적 연구이다. Julion et al. report에서, 비거주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들의 포커스 그룹 생성 견해는 일반적으로 부권 개입과 특히 자녀에 대한 그들 자신의 개입에 대해 주제별로 분류되고 상세했다. Van Hulle Vincent and Gaddyz 보고서에서는 아동에게 모르핀을 투여하는 것에 대한 두 개의 비넷에 대응한 간호사들의 사고와 실천이 주제별로 그룹화, 계수, 상세 및 비교되었다. 이 두 연구 모두에서, 연구 결과에 대한 분석과 해석은 데이터에 가까운 상태로 유지되었다.
Two more recent examples of such descriptive studies published in Research in Nursing&Health are the Julion, Gross, Barclay-McLaughlin, and Fogg (2007) study of father involvement (the report of which contains no mention of the phrase qualitative description), and the Van Hulle Vincent and Gaddyz (2009) explicitly qualitative descriptive study of pediatric nurses’ and medication administration. In the Julion et al. report, non-resident African American fathers’ focus group-generated views of paternal involvement in general and of their own involvement with their children in particular were thematically grouped and detailed. In the Van Hulle Vincent and Gaddyz report, nurses’ thinking and practice in response to two vignettes about administering morphine to children were topically grouped, counted, detailed, and compared. In both of these studies, the analysis and interpretation of findings remained data-near.
해석의 정도에 따라 [다른 종류의 정성적 연구 및 정량적 조사]와 구별하기 위해 노력한 모든 공간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성적 서술적 연구가 [여전히 해석적]이라는 것을 충분히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 양적 연구의 해석적 요소가 양적 연구의 더 큰 투명성, 정밀성 및 객관성에 대한 논의에서 경시되거나 가려지는 경향이 있더라도, 모든 연구는 질적 또는 양적 측면에서 해석을 수반한다는 것이 혼란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있다. 또한 다른 종류의 정성적 연구와 마찬가지로 정성적 서술적 연구가 통계적 분석을 포함할 수 있다는 점도 혼란의 한 원인이 된다.
Despite (or, perhaps, because of) all of the space I devoted to trying to differentiate—by degree of interpretation—qualitative descriptive from other kinds of qualitative studies and from quantitative surveys, I failed adequately to communicate that qualitative descriptive research is still interpretive. Likely adding to the confusion is that all research, whether qualitative or quantitative, entails interpretation even if the interpretive component of quantitative research tends to be downplayed or masked in discussions of the greater transparency, precision, and objectivity of quantitative research (Kritzer, 1996; Sandelowski, Voils, & Knafl, 2009). Also contributing to confusion is that qualitative descriptive studies (like other kinds of qualitative studies) may include statistical analyses.
내가 결코 소통하려고 의도하지 않았던 것은, [질적 서술]이 연구자의 [분석이나 해석을 할 의무를 완전히 없앤다]는 것이다. 2000년 기사의 일부 독자들은 '사건 사실의 일상언어 제시'라는 문구를 마치 연구의 finding을 [면담자료의 무분별하게 선별되고 해석되지 않은 부분(즉 인용)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다음을 전제한다.
- (a) 데이터는 데이터 스스로 무언가를 말해준다.
- (b) 연구자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이러한 데이터가 도출된 참가자를 대변해서는 안 된다.
What I never intended to communicate was that qualitative description removes the researcher’s obligation to do any analyzing or interpreting at all. Some readers of the 2000 article have taken the phrase ‘‘the presentation of the facts of the case in everyday language’’ (p. 335) to mean the presentation of indiscriminately selected and uninterpreted segments (i.e., quotations) of interview data as if they were findings, on the premises
- that (a) such data speak for themselves or
- that (b) researchers should not (in the interests of voicing the voiceless) speak for the participants from whom these data were derived.
그러나 데이터는 결코 스스로를 대변하지 않으며, 연구자들이 데이터를 해석하려고 할 때 비윤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생각은 [해석의 엄격함, 책임 및 위험을 피하기 위한 핑계]가 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일부 독자들은 또한 "연구자들이 그들의 데이터에서 멀리 또는 그들의 데이터로 이동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사실상 (연구자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데이터가 단순히 "재생산"되거나 "축하celebrated"될 것이라는 생각만큼 그 당시나 지금이나 내 의도와는 거리가 먼 것은 없다. 질적 서술적 연구를 포함해서, 질적 연구는 항상 어딘가로 이동해야 한다: 연구자들이 그들의 데이터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다.
But, data never speak for themselves, and the idea that researchers are behaving unethically when they seek to interpret those data is too often a pretext to avoid the rigors, responsibilities, and risk of interpretation (Sandelowski, 2004). Regrettably, some readers also have taken the phrase ‘‘do not require researchers to move as far from or into their data’’ (p. 335) to mean virtually no movement at all. Nothing could be further from my intentions then or now than the idea that data are simply to be ‘‘reproduced’’ or ‘‘celebrated’’ (Atkinson, 2005, paragraph 3). Qualitative research, including qualitative descriptive research, always requires moving somewhere: that researchers make something of their data.
질적 서술적 연구는 이론이 없지 않다.
Qualitative Descriptive Studies Are Not Atheoretical
질적 연구방법 카탈로그에서 질적 서술적 연구를 최소한의(그러나 여전히) 해석적 연구로 묘사하는 것 외에도, 나는 이러한 연구를 [''최소한의 '이론적']연구라고 묘사했다. 내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방법의 이론적/철학적 기초(예를 들어, 근거이론의 기초로서의 상징적 상호작용주의)와 조사 중인 현상에 대한 이론적 지향(예를 들어, 낙인 이론을 통한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 부착성 보기)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자연주의naturalism를 질적 서술적 연구의 전형적인 이론적 토대로서 간략하게 논하고, 그것을 연구를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공적인 기업artifice-laden에서는 가능한 한 인공적으로 자유로운free of artifice 방식으로 현상을 연구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정의했다.
In addition to depicting qualitative descriptive studies as the least (but still) interpretive studies in the catalogue of qualitative research methods, I described these studies as the ‘‘least ‘theoretical’’’ (2000, p. 337). What I wanted to convey was something about both the theoretical/philosophical foundation of methods (e.g., symbolic interactionism as a foundation for grounded theory), and the theoretical orientation toward the phenomena under investigation (e.g., viewing antiretroviral medication adherence via stigma theory). I briefly discussed naturalism as the typical theoretical foundation for qualitative descriptive studies, and defined it as entailing a commitment to studying a phenomenon in a manner as free of artifice as possible in the artifice-laden enterprise known as conducting research.
나는 이제 내가 질적 서술적 연구에서 이론의 역할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거나, 질적 서술적 연구가 2000년 논문에서 정의된 것처럼 최소한 (배타적이지는 않지만) 자연주의적이라는 것을 충분히 강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법과 방법론(method and methodology)이라는 단어]는 [세계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아는 방법]을 포함하며, [이론, 철학 또는 패러다임]으로 다양하게 언급된다. 종종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되지만,
- [방법/방법론]은 탐구를 위한 다소간의 이론적/철학적 방향을 내포하고 있는 반면,
- [테크닉]은 방법(샘플링 및 데이터 수집 및 분석 기술)을 운용하기 위한 방식을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되는 경향이 있지만, [포커스 그룹]은 여러 다른 방법에서 데이터를 생성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포커스 그룹이 그 자체로 구상되고 실행되는 방법, 그리고 포커스 그룹에서 생성된 데이터가 처리되는 방법은 운영을 위해 선택된 방법을 반영해야 한다.
I can see now that I did not give enough attention to the role of theory in qualitative descriptive studies, or emphasize enough that qualitative descriptive studies were at the very least (albeit not exclusively) naturalistic as defined in the 2000 article. The words method and methodology entail some understanding of the world and how to know it, variously referred to as theory, philosophy, or paradigm. Although they are often used interchangeably,
- method/methodology connote some theoretical/philosophical orientation to inquiry, while
- technique connotes ways to operationalize method (e.g., techniques for sampling and for data collection and analysis).
For example, although it tends to be presented as a method, the focus group can be used to generate data to operationalize different methods; the way a focus group is itself conceived and executed, and the way the data generated from it will be treated, ought to reflect the method it was selected to operationalize.
내가 결코 전하고자 하지 않았던 것은. 질적 서술이 "이론적이거나 규율적인 토대를 완전히 벗긴" 방법이라는 것이다(Thorne, 2008, p. 35). 어떤 종류의 연구도 그렇게 개념적으로 드러날 수 없으며, 심지어 그 보고서에 명시적으로 명시된 "이론"을 제공하지 않는 연구도 있을 수 없다. [질적 서술적 연구]가 ['"표현상에 대한 어떤 단일한 이론적 관점에 대한 선험적 약속을 수반하지 않는다"]고 명시함으로써, 나는 무심코 연구자들이 그들의 질적 연구에 순진하게 접근해야 하고, 선입견 없이 접근할 수 있다는 잘못된, 그러나 끈질긴 개념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론에 대한 헌신이 없다고 해서, 이론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든 단어는 이론이다. [연구자들이 그들의 주제에 대해 말하는 바로 그 방법]은, 그들이 이러한 성향을 그렇게 제시하든 심지어 그들을 인식하든 말든 상관없이, 그들의 성향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상실에 대한 어떠한 명시적인 이론이 없는 경우에도 유산을 손실로 묘사하는 것은 유산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이론화하는 것이다.
What I never intended to convey was that qualitative description was a method ‘‘stripped entirely of its theoretical or disciplinary underpinnings’’ (Thorne, 2008, p. 35). No study of any kind could ever be so conceptually naked, even studies the reports of which offer no explicitly stated ‘‘theory.’’ By stating that qualitative descriptive studies entail ‘‘no a priori commitment to any one theoretical view of a target phenomenon’’ (2000, p. 337), I inadvertently contributed to the mistaken but persistent notion that investigators must and can approach their qualitative studies naively, meaning with no preconceptions. Yet, having no commitment to a theory does not mean not being influenced by theory at all. Every word is a theory; the very way researchers talk about their subject matter reflects their leanings, regardless of whether they present these inclinations as such or even recognize them. For example, even in the absence of any explicit theory of loss or bereavement, to portray miscarriage as a loss is not to define miscarriage, but rather to theorize it.
다음의 두 가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 열린 마음이지만 연구 분야에 들어가는 선입견(이론적 기울기 포함)을 염두에 두는 것.
- 머리를 완전히 비워 두는 것.
[후자]는, 완전히 기능하는 뇌를 가졌다면, 어떤 인간에게도, 그리고 그들이 이미 많이 알고 있거나 혹은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을 연구하는 경향이 있는 연구자들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다. Nowhere에서 가지는 관점이라는 것은 없다. 관점을 가진다는 것은 어딘가에 서 있는 것을 의미한다. 질적 연구에 착수하는 연구자들의 의무는 (자신과 타인을 위하여) 연구를 시작할 때 그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명시하는 것이다(일반적으로 이론과 경험적 문헌의 검토를 통해 달성된다). 그리고 그들의 추가 조사가 정당하다면 그곳에서 떠날 준비가 되어 있고 기꺼이 떠날 것이다. 질적 기술 연구는 대상 현상에 대한 이론이나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분석하기 위한 틀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그것이 이 이론이나 틀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There is a vast difference between
- being openminded yet mindful of the preconceptions (including theoretical leanings) one has entering a field of study and
- being empty-headed, an impossibility for any human being with a fully functioning brain and for investigators who tend to study things about which they already (or should) know a great deal.
There is no such thing as a view from nowhere; having or taking a view means standing somewhere (Haraway, 1991). The mandate for researchers embarking on any qualitative study is to make explicit—for themselves and others—where they were when they began their studies (usually accomplished via a review of theoretical and empirical literature), and to be ready and willing to move away from there if their further investigations warrant it. Qualitative descriptive studies may begin with a theory of the target phenomenon or a framework for collecting or analyzing data, but that does not mean a commitment to stay with this theory or framework.
이론은 데이터를 보는 바로 그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알라수타리(1995)는 데이터에 대한 "사실주의"와 "표본주의" 관점을 구별했다.
- 예를 들어, 인터뷰 데이터의 [사실주의적 관점]은 이러한 데이터가 다소 정확하고 진실된 현실의 지표라고 가정한다. 이러한 데이터는 믿음, 행동 및 사건의 문서적 흔적이며, ["진짜" 진행 중인 것]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된다. 질적 내용 또는 주제 분석, 즉 질적 서술적 연구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분석 기법은 주로 이러한 사실주의적 관점에 기초한다. 사실주의적 관점은 그것의 "사실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세계관으로서의 자연주의에 대한 이해와 양립가능하다(Harris, 2003, p. 203; Gubrium & Holstein, 1997 참조).
- 이와는 대조적으로 [표본]의 관점에서 [인터뷰 데이터는 현실의 지표가 아니라 연구된 현실의 일부], 즉 그 자체가 조사 대상으로 간주된다. 예를 들어, 특정 형태의 담화 분석에서 인터뷰 데이터는 실제 사건이나 경험의 지표가 아니라 자아가 만들어지는 언어 수행으로 취급된다(Hardin, 2001).
Theory appears too in the very way data are viewed. Alasuutari (1995) differentiated between ‘‘factist’’ and ‘‘specimen’’ views of data.
- For example, a factist perspective of interview data assumes these data to be more or less accurate and truthful indexes of reality ‘‘out there.’’ These data are taken to be documentary traces of beliefs, behaviors, and events, and to convey what is ‘‘really’’ going on. Qualitative content or thematic analyses, the analysis techniques typically used in qualitative descriptive studies, are largely based on this factist perspective. The factist perspective is compatible with another understanding of naturalism as a view of the world that does not question its ‘‘facticity’’ (Harris, 2003, p. 203; see also Gubrium & Holstein, 1997).
- In contrast, from a specimen perspective, interview data are seen not as indexes of reality but rather as part of the reality studied, that is, as themselves objects to be investigated. For example, in certain forms of discourse analysis, interview data are treated not as indices of actual events or experiences, but rather as language performances in which selves are created (Hardin, 2001).
정성적 설명은 기본적Default 또는 구원적Salvage 방법이 아닙니다.
Qualitative Description Is Not a Default or Salvage Method
나는 2000년 기사에서 질적 서술적 연구는 유용한 연구 목적에 도움이 되며, 따라서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당하고 능동적으로 선택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잘못 개념화되거나 행해진 연구]에 질적 기술이라고 이름 붙일 의도는 없었다. 2000년 논문은 (논문위원회나 인간 주제와 소통하기 어렵거나, 질적 연구에 익숙하지 않거나, 심지어 연구비 검토 패널을 부여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더 해석적인 질적 연구를 수행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질적 연구에 대한 지식이 한정되어 있거나, 질적 연구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거나, 질적 서술을 '가벼운 연구'로 인식하는 청중에게 질적 연구를 더 소비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는 결코 없었다. 나는 또한 다른 방법의 "co-option"으로서 질적 서술을 만들 의도도 없었다(Barbour, 2003). 또는 그러한 성가신 숫자가 모두 없더라도 정량적 연구와 비슷하게 만들어진 정성적 연구로 묘사할 의도도 없었다.
I stated in the 2000 article that qualitative descriptive studies serve useful research purposes and could, therefore, be justifiably and proactively chosen to fulfill those purposes. I had not intended that studies be named qualitative description after the fact to give a name to poorly conceived and conducted studies. The 2000 article should not be used to justify not conducting more interpretive qualitative work because that work is deemed harder to do, or harder to communicate to a dissertation committee or to human subjects or grant review panels unfamiliar with or even resistant to qualitative research. I never intended to make qualitative research more consumable by an audience with limited knowledge of and/or antipathy to qualitative research, or qualitative description to be seen as research-light: a drive-by, ‘‘quick fix, data to go, smash-and-grab’’ affair (Atkinson & Delamont, 2006, p. 749). I also did not intend to advance qualitative description as a ‘‘co-option’’ of other methods (Barbour, 2003), or as qualitative research made over to resemble quantitative research, albeit without all those pesky numbers.
이름이 없는 것에 이름 짓기의 문제
THE PROBLEM OF NAMING THAT HAS NO NAME
나는 2000년 기사에서 내 의도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또한 그 기사가 만들어낸 오해들의 근원에는 이름을 짓고 방법을 차별화하는 질적 연구의 지속적인 문제가 있다. 질적 기술, 근거 이론, 현상학과 같은 이름들은 서로 명확하게 구별되는 잘 정의된 실체들이 그 안에 상주해야 하는 [경계boundaries]를 시사signal한다. 이 이름들은 분류 체계에 대한 신호이며, 그러한 다른 모든 체계와 마찬가지로, [탐구 세계를 질서화하는 고정된 방법]인 것처럼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실재적이고 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실제 효과를 발휘한다(Bowker & Star, 2000).
I failed adequately to convey my intentions in the 2000 article. Yet, also at the root of the misconceptions the article generated is the persistent problem in qualitative research of naming and thereby differentiating methods. Names, such as qualitative description, grounded theory, and phenomenology, signal boundaries within which well-defined entities clearly differentiated from each other are supposed to reside. These names signal a classification system that, like all such systems, tends to be treated as if it were a fixed way of ordering the world of inquiry. Perceived as real and static, they exert real effects (Bowker & Star, 2000).
나는 현재 "내 연구를 뭐라고 부르느냐"는 질문을 받고 있다. 또는 만약 연구 보고서의 저자가 그것을 "이 연구를 뭐라고 부르느냐?"라고 하지 않았다면, 나는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체서피크(1978)에서 20여 년 전에 베꼈던 몇 구절을 기억한다.
I am recurrently asked, ‘‘What do I call my study,’’ or, if the author of a research report did not name it, ‘‘What do you call this study?’’ I recall some lines I copied more than 20 years ago from James Michener’s novel Chesapeake (1978):
그러나 그는 항상 노동자가 진정한 숙달에 도달할 수 없는 필수적인 도구가 부족했다. 그는 그가 만들고 있는 부품의 이름을 알지 못했고, 이름이 없으면 예술적으로 불완전했다. 의사, 변호사, 정육점 주인이 그들이 한 일에 대해 구체적이지만 비밀스러운 이름을 발명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 이름을 소유하는 것은 비밀을 아는 것이었다. 정확한 이름을 가진 사람은 새로운 숙련의 세계로 들어가 불가사의한 형제애의 일원이 되었고, 미스터리의 공유자가 되었고, 결국엔 [능력의 수행자performer of merit]가 되었다. 그 이름들이 없다면, 그 사람은 bumbler으로 남았거나, 배를 만드는 것이라면, 단순히 집목공으로 남았을 것이다.
But always he lacked the essential tool without which the workman can never attain true mastery; he did not know the names of any of the parts he was building, and, without the names, he was artistically incomplete. It was not by accident that doctors and lawyers and butchers invented specific but secret names for the things they did; to possess the names was to know the secret. With correct names, one entered into a new world of proficiency, became the member of an arcane brotherhood, a sharer of mysteries, and, in the end, a performer of merit. Without the names, one remained a bumbler or, in the case of boat building, a mere house carpenter (pp. 264–265).
보트 건조에서 조사로 바꾼다면, 연구는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아니면 이름이 없는데도 연구로 간주될 수 있는가?
Moving from boat building to inquiry, can a study be considered credible, or even a study at all, if it has no name?
질적 연구 방법에 대한 교육 텍스트는 이러한 방법들이 서로 [명확한 경계를 갖는 것]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계는 경험적 차이와는 반대로 분석을 나타내기 때문에 [고도로 투과적]이다.
- 분석적 구별은 교육과 의사소통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다: 연구 방법과 같은 [복잡한 실체의 본질이나 속성을 정의]하는 것이다.
- 분석적 구별은 [현실에서는 서로를 구별하려는 노력에 저항하는 실체]를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Instructional texts on qualitative research methods tend to depict these methods as having clear boundaries. Yet, these boundaries are highly permeable because they represent analytic as opposed to experiential distinctions.
- Analytic distinctions are made for the purposes of instruction and communication: to simplify the essence or defining attributes of complex entities, such as research methods.
- Analytic distinctions are made to distinguish entities that in real life resist efforts to distinguish them.
예를 들어, 민족학 연구는 종종 "근거 이론화"로 특징지어지며, 이는 다시 "방법론적 해석학"의 한 유형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연구는 민족학, 근거 이론, 해석학으로 중 무엇으로 명명되어야 하는가? 민족학 연구는 질병 서술의 유형론과 각 유형이 특정 담론을 수용하거나 항의하는 기능을 하는 과정을 산출할 수 있다. 그러한 연구는 근거 있는 이론, 민족학, 서술 또는 담론이라고 명명될 것인가? 고전 민족학은 종종 질적, 양적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수반하며, 일반적으로 하나 또는 몇 가지 환경에서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한 민족지학은 혼합 방법 또는 사례 연구로 명명되어야 하는가?
For example, ethnographic studies are often characterized by ‘‘grounded theorizing’’ (Hammersley & Atkinson, 2007, p. 166), which, in turn, may be conceived as a type of ‘‘methodical hermeneutics’’ (Rennie, 2000; Rennie & Fergus, 2006). Are such studies to be named ethnography, grounded theory, or hermeneutics? An ethnographic study may yield a typology of illness narratives and the process by which each type functions to accommodate or protest certain discourses. Is such a study to be named grounded theory, ethnography, narrative, or discourse? Classical ethnographies often entail both qualitative and quantitative data collection and analysis, and they are typically focused on actions in one or a few settings. Are such ethnographies to be named mixed-methods or case-study research?
실제로 이러한 이름 중 하나 이상이 허용되거나, 아예 그 어떤 이름도 허용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사회과학 저널에 게재된 민족지학 연구 보고서에서 이러한 연구들이 [이름 없는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방법을 강조하는 간호학 저널에 게재된 그러한 연구의 보고서와는 달리, 사회과학 저널에 게재된 보고서는 종종 매우 축약된 방법 섹션을 포함하거나 엔드노트에 나타나는 간단한 설명만 포함한다. 이 보고서들은 대신 소견과 이론적 단계에 초점을 맞춘다. 이름은 [독자의 기대]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어떤 이름을 선택할지, 또는 이름을 지을지 여부]는 저자가 연구 보고서가 ["어필"하기를 원하는 대상 독자]에게 어떤 신호를 보낼지에 달려 있다(Golden-Biddle & Locke, 1993)
In actual practice any one or more of these names, or even no name at all, might be acceptable. Indeed, in reports of ethnographic studies published in social science journals, it is common to see these studies remain un-named; some form of ethnography is understood to be the method. In contrast to reports of such studies published in nursing journals that emphasize method, reports published in social science journals often contain highly abbreviated methods sections or only brief descriptions appearing in an endnote; these reports are focused instead on findings and their theoretical staging. Because names create reader expectations, the choice of name(s), or whether to name at all, will depend on what authors believe will be signaled to the target audience to which they want their research reports to ‘‘appeal’’ (Golden-Biddle & Locke, 1993).
연구 실천의 실제 세계에서는 방법들이 서로 스며든다; 그것들은 교과서적인 묘사보다 훨씬 더 지저분하기 때문에, 그러한 묘사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지시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지저분한 것"을 충분하게 청소하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분류하고, 개별 방법 주위에 단단하고 천공되지 않은 선을 그으며, 방법 주위에 단단한 선을 그을 수 있는 것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비록 이 기사의 범위를 벗어나지만, 심지어 연구를 질적 또는 양적으로 명명하는 것조차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가능한 경우 그러한 지정은 보다 명확한 지정에 유리하도록 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비기술적이고 전혀 정보가 없는 질적 데이터 대신, 표준화된 질문지조차도 "질적" 데이터 수집의 형태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독자는 연구자가 데이터(예: 인터뷰 데이터 필사본, 관찰 필드 노트)를 명명하는 것이 더 낫다(Sandelowski 등, 2009). 그러나, 정성적 또는 정량적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크게 다음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서술적 연구를 신호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다.
- (a) 창발적 설계, 목적적 샘플링, 최소 구조화되고 개방된 데이터 수집 모드, 텍스트 분석 또는
(b) 고정적 설계, 확률 표본 추출, 고도로 구조화된 데이터 수집 모드 및 폐쇄된 데이터 수집 모드 및 통계 분석에 의해 각각 결정된다.
In the actual world of research practice, methods bleed into each other; they are so much messier than textbook depictions as the purpose of such depictions is to clean up the ‘‘mess’’ (Law, 2004) sufficiently to instruct and communicate: to classify, to draw hard and not perforated lines around individual methods, to treat methods as if hard lines could be drawn around them. Although beyond the scope of this article, even naming research qualitative or quantitative can be misleading. Whenever possible, such designations should be avoided in favor of those that are more explicit. For example, instead of the nondescript and wholly uninformative qualitative data, readers are better served by researchers naming their data (e.g., transcripts of interview data, written field notes of observations) as even standardized questionnaires can be seen as a form of ‘‘qualitative’’ data collection (Sandelowski et al., 2009). Yet, the use of the terms qualitative and quantitative may simply be the best way to signal descriptive research largely characterized
- by (a) emergent design, purposeful sampling, minimally structured and open-ended modes of data collection, and textual analyses or
- by (b) fixed design, probability sampling, highly structured and closedended modes of data collection, and statistical analyses, respectively.
더욱이 질적 연구에서 방법의 분류는 매우 특이하다. 질적 연구에 대한 교훈적인 텍스트의 빠른 숙독이 보여주듯이, [단일한 분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 방법들이 서로 관련하여 어떻게 명명되고 정렬되는가, 그리고 어떤 방법들이 어떻게 묘사되는가(즉, 그것이 무엇에 사용되는가, 그것을 어떻게 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다른 방법들과 어떻게 대비되는가)는 [분야에 따라 특화]되어 있고, 또는 [기존의 이론적 또는 정치적 약속]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분류 체계 자체도 이론적/철학적 계통, 방법 또는 기술에 따라 분류될 수 있다. 근거 이론이 제시되는 방식에 대한 수많은 변형variation과, 근거 이론을 하는 "올바른" 방법과 현상학을 하는 "잘못된" 방법에 대한 종종 격렬한 논쟁을 고려하라. 방법(및 방법론적 엄격성과 전문성을 너무 자주 지나치는 이러한 국경지의 치안 유지) 사이의 경계선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정성적 연구에서는 방법론적 절차가 [(분석적 통찰력을)] [결정하거나 구성하기]보다는, [촉발]하는 기능이 더 많다는 것이다.
Moreover, in qualitative research the very classification of methods is highly idiosyncratic. As any quick perusal of didactic texts on qualitative research will show, there is no one classification system in play. How methods are named and ordered in relation to each other, and how any one method is depicted (i.e., what it is, what it is used for, howto do it, and howit contrasts with other methods), are discipline-specific and/or influenced by prior theoretical or political commitments. Classification systems can themselves be classified according to whether they are constructed around theoretical/philosophical lineage, methods, or techniques. Consider too the variations in how grounded theory is presented (Charmaz, 2006; Clarke, 2005; Strauss & Corbin, 1998) and the often strident debates about the ‘‘right’’ way to do grounded theory (Boychuk Duchscher, & Morgan, 2004; Walker & Myrick, 2006) and the ‘‘wrong’’ way to do phenomenology (Crotty, 1996; Darbyshire, 1999; Paley, 2005). Complicating the borderlands between methods (and the policing of these borderlands that too often passes for methodological rigor and expertise) is that in qualitative research, methodological procedures function more to trigger analytic insights than to determine or constitute them (Eakin & Mykhalovskiy, 2003).
이 모든 것이 방법론적 전통에 대한 정의적 속성도, 그것에 대해 만들어질 수 있는 일반화도, 학습되어야 할 서명 연산과 규칙도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질적 연구의 수행에 어떤 것이든 진행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의와 일반화]를 위한 모든 노력(즉, 분류와 이름 지정)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방법의 실제 실천의 다양한 변형variation] 및 [방법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잘 포착하지 못한다. 방법은 전기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근거 이론, 민족학, 임상시험의 역사와 진화를 고려하라. 방법의 수행performance은 항상 "상황에 놓여 있다situated". 방법은 항상 연구 실천의 실제 세계에 수용되고 바로 그 수용으로 인해 재창조되기 때문에, 어떤 방법도 완벽한 실행이란 없다. 민족지학을 "비선형 동적 시스템"으로 묘사하면서, Agar (2004, 페이지 19)는 다음과 같이 관찰했다. 방법론적으로 말하면, 연구는 항상 처음에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발전한다. [방법론의 스토리]는 [연구의 스토리]이다.'
All of this is not to say that there are no defining attributes of methodological traditions, nor generalizations that can be made about them, nor signature operations and rules associated with them that should be learned. All of this is not to say that anything goes in the conduct of qualitative research. But, like all efforts to define and generalize—that is, to classify and name—they do not capture well the variations in the actual practice of methods and the fact that methods are alive; methods have biographies and histories. Consider the histories and evolution of grounded theory, ethnography, and the clinical trial. The performance of method is always ‘‘situated’’ (Haraway, 1991). There is no perfect execution of any method as methods are always accommodated to the real world of research practice and, by virtue of that very accommodation, they are reinvented. Describing ethnography as a ‘‘nonlinear dynamic system,’’ Agar (2004, p. 19) observed that: ‘‘methodologically speaking . . . a study always develops in ways unforeseen at the beginning . . . The story of methodology is (emphasis in original) the story of the study.’’
방법은 실제 연구와 별개로 사용자가 없으면 독립적인 존재가 없다. 방법은, 다른 질적 연구 관행을 구별하는 특정 존재론적 및 인식론적 입장을 부정하지 않는 일반적인 "실천적 인식론"은, 사용자의 손에 있는 것이 된다. Becker는 다음과 같이 관찰했다
Methods have no independent existence without users and apart from actual studies. Methods become what they are in the hands of users, a generic ‘‘practical epistemology’’ (Becker, 1996, p. 57) that does not negate the particular ontological and epistemological positions that distinguish different qualitative research practices. Becker observed (p. 57):
많은 에너지가 철학적 세부 사항 때문에 낭비되고 있는데, 이것은 종종 연구자들이 실제로 하는 것과 거의 또는 전혀 관련이 없다. 연구자들은 사회생활의 현실에 적응하면서 이러한 입장을 실천한다. 따라서 그들의 활동은 철학적 입장을 참고하여 완전히 설명되거나 설명될 수 없다.
A lot of energy is wasted hashing over philosophical details, which often have little or nothing to do with what researchers actually do . . . Researchers work these positions out in practice . . . accommodat- (ing) to the realities of social life . . . Their activity thus cannot be accounted for or explained fully (italics added) by referring to philosophical positions.
내가 10년 전에 질적 서술적 연구와 다른 종류의 질적, 정량적 연구 사이에 선을 그은 것은 그저 [선을 긋기 위한 것]이었다. 이 선들은 단순하게 다루어서는 안 될 '단순화 장치simplifying device'였다. 그러나, "색조와 톤"에 관한 섹션에서, 나는 방법론적 국경 통과의 불가피성, 방법의 역동적 특성, 그리고 "지적 장인정신" (Mills, 1959/1978)과 우리의 의지에 굽히는 방법에 관련된 주의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너무 단순했다.
The lines I drew 10 years ago between qualitative descriptive and other kinds of qualitative and quantitative studies were for the sake of drawing lines; these lines were a ‘‘simplifying device’’ (Mol & Law, 2002, p. 4), not to be treated simplistically. Yet, in the section on ‘‘hues and tones’’ (Sandelowski, 2000, p. 337), I was much too simplistic in communicating the inevitability of methodological border crossings, the dynamic nature of methods, and the ‘‘intellectual craftsmanship’’ (Mills, 1959/1978) and care involved in bending methods to our will.
'광범위 잔여 범주'로서의 질적 서술
QUALITATIVE DESCRIPTION AS A ‘‘DISTRIBUTED RESIDUAL CATEGORY’’
이제 나는 질적 설명이 2000년 기사에서 내가 주장한 범주적 옵션도 아니고, 비 범주적 옵션인 Thorne(2008)이 '해석적 설명'을 설명하고 명명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질적 서술을 ‘‘distributed residual category’’ 라고 보게 되었다. Bowker와 Star(149–150)는 이렇게 설명했다.
I see now that qualitative description is neither the categorical option I claimed it to be in the 2000 article, nor the noncategorical option Thorne (2008) described and named ‘‘interpretive description.’’ I have come to see qualitative description instead as a ‘‘distributed residual category’’ (Bowker & Star, 2000, p. 149). As Bowker and Star (pp. 149–150) described them:
단순히 쓰레기 분류는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광범위 잔여 범주]는, [정확한 지정을 강요하는 것이 (확실성의)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는 상황일 때], 불확실성을 시사한다.
(far from being mere) garbage categories . . . where things get put that you do not know what to do with, (distributed residual categories) signal uncertainty . . . under conditions where forcing a more precise designation could give a false impression (of certainty).
- 정성적 방법의 분류에서 [광범위 잔여 범주]로서, 질적 설명은 방법의 분류를 구성하는 "작업 관행"을 가시화하고, 이러한 관행으로 인해 "암흑으로 방치된" 모든 것을 밝혀냄으로써, 방법과 탐구에 대한 보다 세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 As a distributed residual category in the classification of qualitative methods, qualitative description makes visible the ‘‘work practices’’ that constitute the classification of methods, brings to light all that is ‘‘left dark’’ (Bowker & Star, 2000, p. 321) by these practices, and thereby enables more finely grained understandings of methods and of inquiry.
- [광범위 잔여 범주]로서, 질적 서술은 질적 연구 "실천 공동체"로 구성된 "다양한 학자들의 연합"을 신호하여 한 종류의 질적 연구를 수행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재고하고 중요한 차이점에 초점을 맞춘다. (예: 샘플링된 사용자 또는 대상, 데이터 처리 방법, 데이터로부터 추론을 도출하는 방법과 관련이 있습니다.)
- As a distributed residual category, qualitative description signals the ‘‘confederacy of diverse groups of scholars’’ (Preissle, 2006, p. 687) comprising the qualitative research ‘‘community of practice’’ (p. 686) to take stock of what it means to conduct one kind of qualitative research versus another and to focus on the differences that matter (e.g., related to who or what is sampled, to the way data are treated, to the way inferences are drawn fromdata).
- [광범위 잔여 범주]로서, 정성적 설명은 정성적 설명과 정량적 설명 사이의 다공성 선을 가시화한다. 다양한 종류의 정성적 및 정량적 설명 중.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방법의 ''erosion''과 ''재발명'' 사이일 것이다.
- As a distributed residual category, qualitative description makes visible the porous lines between qualitative and quantitative description; among different kinds of qualitative and quantitative description; and perhaps, most importantly, between the ‘‘erosion’’ (Greckhamer & Koro-Ljungberg, 2005) and re-invention of method.
- [광범위 잔여 범주]로서, 질적 설명은 경험적 연구의 수행에서 방법보다 기술이 계속 우세해야 하는지 여부와 얼마나 우세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천 분야에서의 논쟁을 중심에 놓기 위해 움직인다.
- As a distributed residual category, qualitative description moves to center stage the debate in the practice disciplines about whether and how much technique should continue to prevail over method in the conduct of empirical research (Chamberlain, 2000; Eakin & Mykhalovskiy, 2005; Hammersley, 2006; Rapport, Wainwright, & Elwyn, 2005).
결론
CONCLUSION
음, 나는 질적 묘사에 대한 2000년 기사에 대한 답방에서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멀리(아마도, 너무 멀리 또는 충분히 멀리 있지 않은) 여행했다. [질적 기술의 모양qualitative description shape]을 주기 위한 나의 노력이 다소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 방법론적 접근법을 명확히 하는 대신, 2000년의 논문은 질적 연구가 데이터의 해석과 반대로, [단순한 축하celebration만을 포괄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이번 논문은 자주 사용되는 방법론적 접근법에 이름을 붙이는 대신 '명명이 유발할 수 있는 긴장the tensions naming can engender'을 표면화하는 역할을 했다. Bowker와 Star가 결론 내렸듯이, "유일한 좋은 분류는 살아있는 분류"이며, 그 안에 우리의 변화하는 이해를 수용하기 위해 "세상을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도록 구축되는 것이다. [질적 서술qualitative description의 가치]는 그것의 사용이 만들어낼 수 있는 지식뿐만 아니라, [단순한 분류에 저항하는 살아있는 실체]로서 연구 방법을 제시하고 다루는 매개체vehicle로서도 존재한다.
Well, I have traveled much farther than I anticipated (perhaps, too far or not far enough) in my return visit to my 2000 article on qualitative description. I see now that my effort to give qualitative description shape—to remove it from the ranks of what Caelli, Ray, and Mill (2003) referred to as ‘‘generic qualitative research’’— was somewhat misdirected. Instead of clarifying a methodological approach, the article served to reinforce the misconception that qualitative research could encompass the mere celebration, as opposed to interpretation, of data. Instead of giving a name to a frequently used methodological approach, the article served to surface ‘‘the tensions naming can engender’’ (Jutel, 2009, p. 294). As Bowker and Star (2000, p. 326) concluded, ‘‘the only good classification is a living classification,’’ built to contain within it the capacity to ‘‘reconfigure the world’’ to accommodate our changing understandings of it. The value of qualitative description lies not only in the knowledge its use can produce, but also as a vehicle for presenting and treating research methods as living entities that resist simple classification.
What's in a name? Qualitative description revisited
PMID: 20014004
DOI: 10.1002/nur.20362
Abstract
"Whatever Happened to Qualitative Description?" (Sandelowski, 2000) was written to critique the prevailing tendency in qualitative health research to claim the use of methods that were not actually used and to clarify a methodological approach rarely identified as a distinctive method. The article has generated several misconceptions, most notably that qualitative description requires no interpretation of data. At the root of these misconceptions is the persistent challenge of defining qualitative research methods. Qualitative description is a "distributed residual category" (Bowker & Star, 2000). Cambridge, MA: The MIT Press) in the classification of these methods. Its value lies not only in the knowledge its use can produce, but also as a vehicle for presenting and treating research methods as living entities that resist simple class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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