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보지 않은 문제: 의학교육의 철학적 탐험(Teach Learn Med, 2020)
Problems No One Looked For: Philosophical Expeditions into Medical Education
Mario Veena,b and Anna T. Ciancioloa
의학교육에는 또한 진흙투성이의 실천 영역, 그 자체의 비정형적인 발표, 의도하지 않은 결과, 그리고 설명해야 할 구조적 이상이 있다. 복잡성과 불확실성의 이러한 영역은 우리 중 많은 이들에게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Medical education also has its muddy zones of practice, its own atypical presentations, unintended outcomes, and structural abnormalities for which to account. These areas of complexity and uncertainty likely feel familiar to many of us:
의사의 전문적 판단을 분석해보면, 수행능력과 환자 결과가 최적이 되려면, 의사들이 상황을 인지하고 당면한 문제를 재구성하고 그에 따라 조치를 취해야 하는 ["복잡한 실천 영역"의 인식 및 "속도 늦추기" 능력]에 달려 있음을 시사한다.1 외과의사들 사이에서는 수술실에서 배경음악을 끄고, 수다를 잠재우고, 재집결하기 위해 잠시 멈추는 등의 느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2 또한 속도를 늦추는 것은 시술 및 환자 특유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의사의 예상에 의해 촉발된 능동적인 계획일 수 있다.2
Analysis of physicians’ expert judgment suggests that optimal performance and patient outcomes depend on physicians’ ability to recognize “muddy zones of practice,”2(p.1019) and “slow down” to attend to the situation, reframe the problem at hand, and take action accordingly.1 Among surgeons, signs of slowing down include turning off background music in the operating room, silencing chatter, and pausing to regroup.2 Slowing down also may be proactively planned, prompted by the surgeon’s anticipation of procedure- and patient-specific complexities and uncertainty.2
하지만 의학 교육에서 "필요시 속도를 늦추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But what does “slowing down when we should”1 look like in medical education?
철학은 우리가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보고(그리고) 할 수 있도록] [겉보기에는 명백해 보이는 실천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을 하기 위해] [복잡하고 불확실한 시기에 잠시 멈추는 근본적인 접근법]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을 알고 있든 몰랐든 간에, 우리가 의학 교육에 사용하는 기본 개념은 철학으로 추적될 수 있다.
Philosophy can be seen as the fundamental approach to pausing at times of complexity and uncertainty to ask basic questions about seemingly obvious practices so that we can see (and do) things in new ways. Whether we are aware of it or not, basic concepts we use in medical education can be traced to philosophy.
예를 들어,
의학이나 교육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원인'과 '효과'가 확인되는 체계적인 경험적 연구에 기초해야 한다는 생각은 흄과 로크.5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지식, 기술, 태도 면에서 학습자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Kolb's,6과 같은 성찰 모델들은 그의 연구를 헤겔의 철학에 기초했던 7세의 John Dewey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For example,
the idea that what we do – in medicine or in education – should be based on systematic empirical research whereby ‘causes’ and ‘effects’ are identified can be traced back to Hume and Locke.5
Thinking about learners in terms of knowledge, skills, and attitudes can be traced back to Plato and Aristotle.
Models of reflection, such as Kolb’s,6 can be traced back to John Dewey,7 who in turn based his work on Hegel’s philosophy.
이 글에서는 의학 교육의 속도를 늦추는 철학적 접근법을 설명하며, 철학적으로 상황을 보는 것이 어떻게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 잠시 멈추고, 당면한 문제를 재구성하고,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보여 준다.
In this article, we illustrate a philosophical approach to slowing down in medical education, demonstrating how viewing a situation philosophically helps us pause to focus our attention, reframe the problem at hand, and take action accordingly.
레지던트 문제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은 반격한다.
A philosophical approach to the problem of resident teach back
내과 레지던트 프로그램 책임자가 문제에 직면했다고 상상해보라: 관찰에 근거한 평가를 해보니, 검사실을 떠나기 전에 전공의들은 계속해서 "teach back"에 실패한다. 즉, 자기가 맡은 환자가 [자신의 상태 또는 다음 치료단계]에 대한 이해 수준을 가늠하지 못한다.
Imagine an internal medicine residency program director faced with a problem: observation-based assessments reveal that before leaving the examination room, residents consistently fail to “teach back,” or gauge their patients’ understanding of their condition and what the next steps in their treatment plan will be.8
프로그램 감독이 개입하기로 결정한다.
the program director decides to intervene.
프로그램 감독이 선택하는 개입은 그들이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공식화formulate했느냐에 달려 있다.
The intervention the program director chooses depends on how they have formulated problem at hand.
그 개입은 티치백 방법에 레지던트 컨퍼런스에 할애하는 것과 공식적으로 티치백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모의 환자 만남을 관리하는 것으로 구성된다고 하자. 이 경우 문제는 지식격차로 진단되었다: 'Trainee는 어떻게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못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개입이 성공적이지 못하고, 주민들은 여전히 반성을 하지 않으며, 프로그램 디렉터는 그 문제를 동기부여적 결함으로 재구성한다: 'Trainee들이 방법은 알고 있지만, 그들은 그것을 하도록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한다.'
Let us say that the intervention comprises dedicating a resident conference to the teach back method and administering a simulated patient encounter to formally develop teach back skills. In this case, the problem has been diagnosed as a knowledge gap: ‘Trainees do not know how.’ But imagine that the intervention is not successful, residents still do not teach back, and the program director re-formulates the problem as a motivational deficit: ‘Trainees know how, but they are not motivated to do it; they do not understand why it is important.’
지금까지 본 예에서 프로그램 디렉터는 전공의들이 의사-환자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지식, 기술, 태도의 부족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철학적인 것은 명백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니까, 여기서 함께 그렇게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봅시다. 레지던트들은 어떻게 teach back이라는 업무를 경험하고 있는가? 그들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는가?
In our example so far, the program director has seen residents’ failure to enact satisfactory doctor-patient communication as a lack of requisite knowledge, skills, and attitudes. This seems obvious. But being philosophical is about questioning the obvious, so let us do that together here and see what happens: How does the resident experience the task of teaching back? Do they see a problem, and if so, how do they define it?
레지던트는 학습자이자 실무자로서 잠재적으로 상충할 수 있는 여러 역할을 갖는 시험실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환자에 대한 그들의 관계와 이것이 다시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여부는 그들이 이러한 역할을 어떻게 탐색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teach back을 하려면, 전공의는 환자의 치료에 대한 주인의식을 느낄 필요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실제로는 궁극적으로 책임을 지는 주치의에게 무엇을 해야할지 확인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주치의는 더 경험이 많은 의사로서, 전공의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The resident may be seen as entering the exam room embodying multiple, potentially conflicting roles: learner and practitioner. Their relationship to the patient and whether this is conducive to teach back may depend on how they navigate these roles. For instance, in order to teach back, the resident may need to feel ownership of the patient’s care,11 yet residents know they must verify what they do with the attending, who is ultimately responsible. Moreover, the attending is the more experienced practitioner, who may disagree with the resident’s plan.
이런 맥락에서, 특히 나중에 계획이 수정될 필요가 있다면, teaching back은 역할의 경계를 위반하는 것으로 구성될 수 있다: 실제로는 연습생인데, 책임질 의사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만약 teaching back 문제가 [역할 갈등]의 하나라면, 그것은 [역할 경계를 명확히 하고 탐색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개입을 요구한다; 지식이나 동기를 목적으로 하는 개입은 효과가 없을 것이다.
In this context, teaching back, especially if the plan later needs correcting, may constitute a breach of role boundaries: acting like a practitioner when one is in fact a trainee. If the problem of teach back is one of role conflict, it calls for an intervention aimed at clarifying and navigating role boundaries; intervention aimed at knowledge or motivation would not work.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고전적인 철학적 움직임인 프로그램 디렉터의 참조 프레임을 교란시킨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르다. 레지던트를 더 이상 지식, 기술, 태도의 집합체로서가 아니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존재로서 접근하며,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함의해준다. '우리는 개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대신 프로그램 책임자는 한발 물러서서 '왜 전공의들은 teach back을 하지 않을까', 더 일반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전공의가 양질의 환자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문제를 재조명할 수도 있다.
This way of approaching the problem differs from the previous one in that it disrupts the program director’s frame of reference, a classic philosophical move. The resident is no longer approached as an assemblage of knowledge, skills, and attitudes, but as a thinking, acting being, which has implications for what to do next. Instead of concluding ‘We need an intervention,’ the program director may step back and reimagine the problem, wondering ‘Why don’t residents teach back?’ and, more generally, ‘How can we help residents achieve high quality patient communication?’
우리는 왜 전공의들에게 기대되는 행동이 일어나지 않는지에 대해 세 가지 가능한 설명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각각의 설명은 의사소통 지식/기술의 결핍, 동기부여 문제, 역할 갈등 등 특정한 방식으로 문제를 정의한다. 우리는 이러한 정의들 중 어느 것도 반드시 다른 정의보다 더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를 봄에 있어서, 명백하고 명료해보이는 문제에 의문을 갖고, 철학자들은 '올바른' 렌즈나 틀을 찾으려는 생각을 재빨리 부인하거나, 렌즈나 틀 없이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We now have three possible explanations for why a behavior expected of residents does not take place. Each of these explanations defines the problem in a certain way: as a communication knowledge/skill deficit, a motivational issue, and a role conflict. We may note that none of these definitions is necessarily truer than the other; after questioning the obvious and disentangling a problem from how it is viewed, philosophers are quick to disown the idea of finding the ‘right’ lens or framework, or to pretend that we can see the world ‘as it is’ without a lens or framework.
아무도 찾지 못한 새로운 문제들
(Some) new problems no one looked for
teach back의 장벽을 식별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응을 형성함에도 불구하고 전공의에 대한 관찰적 평가는 그들의 행동이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아마도 쉽게) 상상해 보자.
Let us imagine (perhaps readily) that despite identifying barriers to teach back and forming a response to address them, observational assessment of residents shows that their behavior still fails to meet expectations.
언어를 통해 지식은 힘을 제공한다.
Through language, knowledge serves power
푸카울디안 렌즈15,16은 당면한 문제를 볼 수 있는 권위에 대한 두 가지 새로운 관점을 도입할 것이다.
첫 번째 관점은 누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 누가 진단과 치료 계획과 같은 의사와 환자 관계의 핵심 요소를 정의할 수 있는지를 구속하는 것으로서 [언어적 용어로서의 권위]를 보는 것을 포함한다.
두 번째 관점은 권위를 [(누군가가 가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의 종류에 달려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전공의, 환자, 주치의를 권력지식 네트워크 내에 위치해 있다고 본다; 지식은 [말해질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사람]에 의해 제정되는 것이다.
A Foucauldian lens15,16 would introduce two new perspectives on authority from which to view the problem at hand.
The first perspective involves viewing authority in linguistic terms, as something that constrains who gets to say what and who can define key elements of the doctor-patient relationship, such as the diagnosis and the treatment plan.
The second perspective involves viewing authority not as something one has, but something one does, and this depends on the kind of knowledge and information one can use.
From this perspective we see the resident, patient, and attending as situated within a power-knowledge network;15 knowledge is power enacted through what can be said and by whom.
공유 의사결정 프레임워크는 의료 서비스를 의사와 환자의 공유 프로젝트로 정의하지만, 예시한 전공의의 상황에서는 주치의도 참여한다. 이 그룹의 커뮤니케이션을 들여다보면 환자-전공의-주치의가 모두가 방에 있을 때 주치의가 상호작용을 주도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주치의는 교류의 지속 기간(예: "안녕"을 처음으로 말하는 사람)과 교류의 대상이 되는 주제(예: 질문을 하는 사람)를 정의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푸콜디안적 관점에서 보면 프로그램 책임자가 현 문제의 프레임을 '전공의가 teach back을 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개입할 수 있을까' 또는 '전공의는 왜 teach back 하지 않는가?'에서 '전공의는 권력power이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teach back주지 않는 것이 정말 문제일까?'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
the Shared Decision-Making framework,17,18 defines health care as a shared project of doctor and patient, but in the resident’s situation the attending also participates. Examination of this group’s communication may reveal that the attending physician is the one who leads the interaction when all three parties are in the room, defining how long the exchange lasts (e.g., by being the first person to say “goodbye”) and what topics it covers (e.g., by being the one to ask questions). Viewing these interactions from the Foucauldian perspective may prompt the program director to shift the problem frame from ‘How can we intervene to make residents teach back?’ or ‘Why does the resident not teach back?’ to ‘Why is it even a problem that residents, who lack power in this situation, do not teach back?’
평가 또는 학습?
Assessment or learning?
철학적 입장을 취하면서 프로그램 책임자는 '우리는 전공의의 teach back을 평가할 것인가?'라는 질문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teach back은
(1) 그것은 질 높은 환자 진료를 보장하고,
(2) 환자-소통 역량 개발을 촉진시키며
(3) 이용 가능한 도구로 쉽게 평가할 수 있는 주민 행동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Taking a philosophical stance, the program director also may ask: ‘Do we assess residents’ teach back because it
(1) ensures quality patient care;
(2) facilitates the development of patient-communication competency; or
(3) describes a resident behavior that we can evaluate readily with available instruments?’
이 질문은 전공의가 단순히 공감적이라고(이 경우 효과적인 의사 소통자라고 보기에) 충분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전공의는 그렇게 보여야 하며,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 전공의는 평가자가 관찰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할 경우에만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심지어 그것조차도 충분하지 않다; 평가자는 관찰한 바를 평가 양식의 미리 정의된 구조로 번역해야 한다.20 이 점에서 우리는 의사와 환자의 의사소통 (전공의가 배우기를 원하는 것)과 그것에 대한 평가(전공의가 그것을 배웠다고 어떻게 알 수 있는지)의 두 담론 사이의 경쟁을 본다.
This question implies that it may not be enough for residents to be empathetic doctors,19 or, in this case, effective communicators. They have to be seen as such, and this can only occur if they act in a way that is observable to the assessor. And even that is not enough; the assessor must translate their observations into the predefined structure of an assessment form.20 In this, we see the competition between two discourses, that of doctor-patient communication (what we want the resident to learn) and that of assessment (how we know the resident learned it).
'도구적 사고' 21,22의 철학적인 개념은 여기서도 관련이 있다. 철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 주요 사고방식을 구분했다: 도구적 합리성과 가치적 합리성.
도구적 합리성은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달성되어야 할 목적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것을 요구한다.
가치적 합리성은 우리를 좀 더 총체적인 의미에서 세계와 관련지을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뿐만 아니라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는지 결정하면서 근본적으로 다른 세상과의 관계 접근방식을 나타낸다
The philosophical concept of ‘instrumental thinking’21,22 is relevant here. Philosophers have broadly distinguished two main ways of thinking: instrumental (or technical) rationality and value rationality.
Instrumental rationality calls us to see the world in terms of ends that should be achieved as efficiently as possible.
Value rationality, by contrast, calls us to relate to the world in a more holistic sense. These ways of thinking represent fundamentally different approaches of relating to the world, determining not just how we think but also how we feel and act.
우리의 프로그램 디렉터의 질문은 어떻게 도구적 사고와 가치적 합리성이 충돌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teach back은 [환자 치료에 대한 보다 전체적인 개념을 반영]할 수 있지만, teach back의 평가는 [연습생을 효율적으로 평가하기에 적합한 teach back의 구성요소]에 제약을 가할 수 있다.
Our program director’s question illustrates how instrumental thinking and value rationality may clash; teach back may reflect a more holistic notion of patient care, but its assessment may impose constraints on what constitutes teach back in order to evaluate trainees efficiently.
우리는 평가 렌즈가 평가 기구에 의해 포착된 관찰 가능하고 측정 가능한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와의 의사소통]과 [기술 개발] 사이에서 균형을 잡게 되는 전공의의 행동practice이 걸러지는filter 것을 발견할 수 있다.23 가치적 합리성의 관점에서 teach back을 바라본다면, 프로그램 책임자에게 'teach back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훈련 중인 의사들이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연습이 있는가?' '우리 전공의들이 이미 teach back을 하고 있지만, 다만 평가도구를 사용하여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인가?' 라는 새로운 질문을 숙고하게 할 수 있다.
We may discover that an assessment lens filters out resident practices that balance patient communication and skill development because they are not observable, measurable behaviors captured by assessment instruments.23 Approaching teach back from a value rationality perspective may prompt the program director to ponder new questions: ‘What is the ultimate purpose of teach back, and are there other practices that doctors in training can use to accomplish this goal?’‘Are our residents already doing these practices, but we fail to see it using our assessment instruments?’
과학의 합리성과 역사성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12> 과학의 성격 <하>
최무영 서울대 교수 | 기사입력 2008.02.22. 01:00:00
과학의 합리성
객관성 다음으로 생각해 볼 성격으로 합리성을 들 수 있습니다. 과학이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나요? 왜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요? 과학이론이 합리적이라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요? 과학이론이 어떻다는 건가요?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의미도 몇 가지로 나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도구적 합리성(instrumental rationality)'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도구적 관점인데, 결국 주어진 목적을 잘 달성할 수 있으면 합리적이라는 겁니다. 자연과학의 목적은 자연현상의 이해이므로, 자연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면 합리적이라는 거지요.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인데, 사실은 그것으로는 불충분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어진 자연 현상을 이해하게 하는 이론 체계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행성의 운동을 설명할 때, 지구중심설과 태양중심설이라는 서로 다른 이론 체계가 존재하지요. 두 가지 모두 행성의 운동 이해라는 주어진 목적을 잘 달성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도구적 목적의 의미로만 합리성을 얘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어떤 기준으로 합리성을 생각해야겠어요?
이에 대해 앞에서 간단하게 논의를 했습니다. 이른바 '좋은 이론'이라고 부르는 판단 기준이 있었지요. 이를 테면 '경험적 적합성'이라고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이론'이라는 판단도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어떤 현상을 얼마나 정밀하게 설명해 주느냐를 생각해 볼 수 있고, 또는 정밀성은 좀 떨어지더라도 더 넓은 범위를 설명해 줄 수 있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이론과 B라는 이론이 있는데 A라는 이론은 어떤 현상은 기막히게 잘 설명하지만 다른 건 설명하지 못하고, B라는 이론은 이런 거 저런 거를 모두 설명하지만 정밀하지 않다고 합시다.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은 이론일까요?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네요.
또는 설명의 능력과 예측의 능력이 다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떤 이론은 지금 이 현상을 잘 설명하는데, 이에 반해 어떤 다른 이론은 지금 현상에 대한 설명은 좀 떨어지지만 예측을 훨씬 잘 할 수 있다든가. 하여튼 여러 가지가 서로 대립할 때 어떻게 판단하는가 하는 쉽지 않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경험적 적합성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거지요.
결국 이론의 합리성에 관해서 도구적인 합리성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우며, 경험적인 적합성으로도 불충분할 수 있습니다. 결국에 가서는 과학 활동의 사회적 요소들, 가치와 의미의 문제 등을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합리성도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는 거고요.
과학의 역사성
다음에는 역사성이라는 문제입니다. 역사성은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과학은 역사성, 쉽게 말하면 전개과정이나 역사 관계가 없다는 겁니다. 전개 과정과 무관하다는 것, 곧 어떻게 출발했던 간에 결론은 하나로 도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출발점에 관계없이 동일한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 한 가지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에 의존한다는 것인데, 전개과정이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우발성(contingency)의 역할이 있다고 믿는 거지요. 이 두 가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예를 들면 산꼭대기에 올라가는데 꼭대기는 하나니까 어느 쪽으로 올라가도 다 똑같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이 한 가지 생각이고, 그렇지 않고 어느 쪽에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모두 다른 데로 가게 되고, 과학이 다르게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 게 다른 한 가지입니다.
하나만 얘기하고 끝내겠습니다. 페미니즘의 관점이 이런 것입니다.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은 앞에서 한 번 얘기했지만, 분명히 남성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지금도 물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남학생입니다. 물리학자도 대다수가 남자입니다. 생물이나 화학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남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물리학 사회가 매우 남성 중심적인 지금의 모습이 됐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만약에 여자들이 물리학을 주도했다면 지금 물리학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럴지, 아니면 여자들이 했어도 결국 물리학의 모습은 지금과 똑같을지, 어느 쪽이겠냐는 겁니다. 두 가지 의견이 있겠네요. 어떻게 생각해요?
학생: 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떻든 간에 동일한 결론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나요?
학생: 물론 발달 정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곧 어느 쪽은 더 발달하고 어느 쪽은 덜 발달하는 건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끝까지 가면 같을 것 같아요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여자들이 주도해서 물리를 했어도 내용은 지금과 마찬가지일 거라고. 혹시 그렇지 않게 생각하는 학생 있어요?
학생: 저는 1년 전 쯤에 어떤 책을 읽었거든요? 물리학이 처음 유럽 고대에서 중세 시절에 자연철학으로 발전했고 그때 자연철학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종교와도 연관이 있었죠. 종교에서는 흔히 남성은 상위에 두면서 좋게 평가하고, 여자는 좀 안 좋은 쪽으로 평가를 한 걸로 기억해요.
그러니까 실제로 인류의 생각이 고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여성 중심에서 남성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여성적인 대지, 곧 지구의 여신 가이아(Gaia)에서 남성적인 태양의 신 아폴로(Apollo)로 중심이 바뀌면서요. 그건 타당성이 있지만, 만일에 여자가 중심이 됐다면 과학의 내용이 바뀌었을까요? 사실 여러 가지 엇갈린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답이 있는 건 물론 아니고, 두 가지 답이 다 일리가 있겠습니다.
앞에서 강조했듯이 과학자도 인간이고 과학은 인간의 활동이기 때문에, 사회의 여러 가지 관념체계의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역사성이 없을 수는 없겠네요. 그러나 또한 반대 면이 있습니다. 자연과학은 자연을 해석하는 것이므로 자연이라는 아주 강력한 구속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현상의 관측을 통해서 적어도 어림이라고 하는 일관성(consistency), 일치를 얻어야 하는데, 이는 상당히 강력한 구속 조건입니다. 그것이 자연과학이 다른 분야와 완전히 다른 특별한 형식을 가지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지요. 결국 두 가지 면이 다 있습니다. 강력한 구속 조건이 있지만, 이것만 갖고 한 가지로 결정된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거기에 사회적 요소가 개입될 여지는 분명히 있습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55018?no=55018#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철학하기
Doing philosophy
의학 교육에는 모호성을 (훈련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징후가 아니라) 의사가 되는 것의 일부로서 받아들이도록 격려하는 움직임이 있다.24,25 드 보부아르와 같은 현대 철학자들은 모호성을 [인간 존재의 잠재적으로 본질적인 긍정적인 자질]로서 받아들였다.26
There is a movement in medical education encouraging us to accept ambiguity as a part of becoming a doctor, rather than a sign that our training system is not working.24,25 Modern philosophers like De Beauvoir have embraced ambiguity as a positive quality, potentially fundamental to human existence.26
실제로 의학교육에서 애매모호함을 다루지 않는 순간은 드물고, 이를 용인하는 능력이 심리적인 안녕과 긍정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다.27
Indeed, in medical education there is rarely a moment when we do not deal with ambiguity, and there is reason to suspect that one’s ability to tolerate it is positively related to psychological well-being.27
왜 의학교육이 그대로인가.
why medical education is the way it is
우리가 제안하는 첫 번째 철학적 실천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주의를 기울이고 설사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초심자의 마음을 상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잘 알려진 속담(흔히 소크라테스에게 잘못 인용된 말)에서 예시된다.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입니다." 이 첫 번째 실천은 숙달하기 보다는, 전문지식의 특징인 복잡성이나 불확실성 앞에서 "속도를 낮추어야 함"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1 우리의 예에서 관찰평가로부터, 개입에도 불구하고 전공의들이 teach back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 보여주었을 때, 프로그램 디렉터는 이것이 [사실 지식, 기술, 동기부여의 결손에 기인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잠시 멈추고, [무엇이 이 '문제'를 애초에 문제가 되게 하였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또 다른 예로, '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기 전에, (초심자처럼 생각하자는) 이 철학적인 움직임은 우리에게 '이 프로그램을 평가하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왜인가?'라고 물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The first philosophical practice we suggest is to pay attention to what is happening and assume a beginner’s mind, even if one is experienced. This is exemplified in the well-known saying (often misattributed to Socrates) “All I know is that I know nothing.” Rather than achieving mastery, this first practice is aimed at the urge to “slow down” in the face of complexity or uncertainty, a hallmark of expertise.1 In our example, when observational assessments continued to show, despite intervention, that residents were failing to teach back, the program director paused to question whether this was in fact attributable to knowledge, skill, or motivational deficits, and later, to question what made this ‘problem’ a problem in the first place. As another example, before asking the question ‘How will we assess this new program?’ this philosophical move—thinking like a beginner—gives us the space to ask ‘Do we want to assess this program, and, if so – why?’19
두 번째 철학적 관행은 [문제를 가장 근본적인 설명으로 돌려서] 가정assumption들이 스스로를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의 프로그램 책임자가 지식, 기술, 태도 면에서 계속해서 학습자들을 봐왔다면, 그들은 전공의들이 주치의-전공의 관계에서 환자 관리의 소유권을 갖지 못하게 할 수도 있는 힘의 역학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실천의 지침서는 델루제(Deleuze)와 과타리(Guattari)가 철학의 제1원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주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스스로 설명되어야 한다."28(p.6) 만일 개입하는 이유가 그저 그것이 '좋기' 때문이라면, 그것이 '증거에 기반한다'거나 학생들이 '배운다'는 식으로 철학을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수반한다. '좋은 것', '증거' 또는 '배움'이 무슨 뜻인가? 이렇게 해서 우리가 의학교육에서 가지고 있는 가장 분명하고 기본적인 개념은 그 자체로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기본으로 돌아가자getting back to the basics]라는 철학적 관행은, '질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를 포괄하는involve 어떤 질문]이 만들어질formulated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제정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하면 연습생들을 배우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철학적으로 바꾼다면 '나는 교육자로서 나를 어떻게 보고있는가? 그리고 배움에 대한 나의 관점이 갖는 함의는 무엇인가?'
A second philosophical practice is to lead a problem back to its most fundamental description, prompting assumptions to reveal themselves. If our program director kept seeing learners in terms of knowledge, skills, and attitudes, they would not have discovered the power dynamics in attending-resident relationships that might prevent residents from taking ownership of patient care. A guide in this practice is what Deleuze and Guattari call the first principle of philosophy: “Universals explain nothing, but must themselves be explained.”28 (p.6) If a reason for intervening is because it is ‘good,’ because it is ‘evidence-based,’ or because that is how students ‘learn,’ doing philosophy involves asking: What do you mean by ‘good,’ by ‘evidence,’ or by ‘learning?’ In this way, the most obvious and basic concepts we have in medical education can become objects of analysis in themselves. This philosophical practice—getting back to the basics—could also be enacted by asking: ‘What question can be formulated that involves me, the questioner?’ For instance, the question ‘How can I get my trainees to learn?’ if asked philosophically could become: ‘How do I see myself as an educator and what are the implications of my perspective for what learning is?’
앞의 두 사람이 섬기는 세 번째 관행은 frame of reference를 교란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문제가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하든, 전혀 다른 시력을 가진 사람과 대화하든 간에) 관점을 달리 해서 어떤 것을 보는 것은 자신의 가정이나 기본 렌즈를 드러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플라톤이 묘사한 소크라테스 대화 중 하나에서 소크라테스는 아버지를 기소하려고 하는 에우티프로와 이야기를 나눈다. 에우티프로가 자신의 사례를 당연한 것으로 제시하지만, 일련의 질문을 통해 소크라테스는 [무지의 태도]를 가정하고 "모든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주장하는 에우티프로로 하여금 소크라테스를 "가르치게끔" 유도한다.29(p.6) 이것은 에우티프로의 frame of reference을 교란시켜 정의와 같은 가치관을 설명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는 식의 일상적인 태도에서 전환할 수밖에 없게 하였다. 우리의 teach back 사례에서 프로그램 디렉터가 관점을 바꿔보고, 전공의의 관점을 찾아내고, 마지막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직접 관찰하도록 유도할 수 있었던 것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PD의 참조 틀은 여러 번 붕괴되었다:
전공의를 객체로 보는 것에서 주체로 보는 것으로,
권위를 어떤 사람이 가진 것에서 어떤 사람이 하는 것으로
teach back의 문제를 PD가 멀리 떨어져 관조하는 것에서,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The third practice, served by the preceding two, is to disrupt frames of reference. Viewing something from a different perspective—whether by imagining what a problem looks like through someone else’s eyes or by talking to someone with completely different sight—can reveal one’s own assumptions or default lens. For example, in one of the Socratic Dialogs described by Plato, Socrates speaks with Euthypro, who is about to prosecute his father. Euthypro presents his case as obvious, but through a series of questions Socrates assumes an attitude of ignorance and invites Eurthypro, who claims “accurate knowledge of all such matters,” to “teach” him.29(p.6) This disrupts Euthypro’s frame of reference, forcing him to switch from a routine attitude in which values such as justice are taken as unproblematic to having to explain them. In our teach back example, it is the persistence of a problem that prompts the program director to take on different perspectives, to seek out residents’ points of view, and finally to observe communication directly. Consequently, frames of reference were disrupted multiple times:
from the resident as an object to a subject;
from authority as something one has to something one does; and finally,
from teach back as a problem the program director observes from a distance, to one that is shaped by their own views.
철학적이기
Being philosophical
"문제에 대한 철학자의 치료는 마치 병에 대한 치료와 같다."30(제255조)
“The philosopher’s treatment of a question is like the treatment of an illness.”30 (§255)
철학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이해하려는 욕망과 현재의 사고방식에 대한 불만족이나 심지어 좌절감에서 시작된다. 이와 같이 철학은 과학과 기술 발전의 근원이기도 한 그러한 인간성human qualities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철학은 물음에 가까운 상태로 남아, 격렬하고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과 이해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살아 있게 한다. 예를 들어, '좋은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철학자는 교육적, 심리적, 신경학적 관점을 발동하여 교육적, 심리학적, 신경학적 관점을 연구할 수도 있지만, 나아가 'good'과 'educational'이라는 용어를 정치적, 역사적, 언어적, 논리적, 그리고 심지어 영적 관점으로 고찰할 수도 있다. 철학은 어떤 렌즈나 규율에도 얽매이지 않는 일종의 탐구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우리가 의학 교육에 수입해 온 다른 관점들 사이에서 중개자 또는 협상자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우리를 다시 기본적인 가정으로 이끌며, 반대되는 견해들 간의 논쟁을 부추기기 보다는 생각의 공통점을 제공한다.
Philosophy begins with the desire to understand something that is important to oneself, and with a dissatisfaction or even frustration with current ways of thinking. In this way, philosophy is an extension of those human qualities that are also at the root of scientific and technical advancement. However, philosophy remains close to questions, keeping them alive with intense, childlike curiosity and desire to understand. For example, in addressing a question such as ‘What is good education?’ a philosopher might invoke educational, psychological, neurological perspectives to consider instructional strategies, but then also go on to examine the terms ‘good’ and ‘educational’ from political, historical, linguistic, logical, and even spiritual perspectives. Philosophy can be seen as a form of inquiry that is not bound to any one lens or discipline. In this sense, it can act as a broker or negotiator between the different perspectives we have imported to medical education, leading us back to basic assumptions, providing common ground to think from rather than fueling debate between opposing views.
플라톤의 동굴의 알레고리는 우리의 가정들의 사슬chains of our assumptions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어떻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31 이 우화에서 죄수들은 동굴 벽에서 세상적인 형태가 춤추는 것을 보면서 평생 동안 동굴 안에서 사슬로 묶여 있었다. 죄수들은 자신이 투영하는 것을 보고 있다는 것, 뒤에 있는 불 앞에서 운반되는 물체의 그림자를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에게 그림자는 물건이다. 죄수들은 그들이 쇠사슬에서 풀려나 불을 발견하기 위해 돌아설 때, 그리고 그들이 본 그림자의 세계를 볼 때만이 환상이라는 것을 배운다.31 철학적 의학 교육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일어서고, 돌아서고, 우리가 교육으로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 것을 보게 해야 한다.
Plato’s Allegory of the Cave illustrates how being liberated from the chains of our assumptions can be instrumental.31 In this allegory, prisoners have been chained inside a cave for their entire lives, watching worldly forms dance on the cave wall. The prisoners do not realize that they are watching a projection, that they are seeing the shadows of objects being carried in front of a fire behind them. For them, the shadows are the objects. The prisoners learn that the world of shadows is an illusion only when they are released from their chains, turn around to discover the fire, and see the actual objects whose shadows they watched.31 Being philosophical medical educators should prompt us to stand up, turn around, and see what objective we are trying to accomplish with education anew.
철학적 존재가 되는 목적은 이론이나 윤리적 체계와 같은 '철학'을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다. 철학은 [문제를 창조하는 접근법]이며, 철학의 방법은 분석이어서, 우리가 세상을 보는 렌즈를 통해 [프레임을 바꾸거나] [(나 자신을) 분석의 대상으로 변화시키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철학적이 된다는 것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하고 [그것에 대답하기 위한 방법을 탐구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 과정이 '해답'에 도달하는 순간 프로젝트는 또 다른 학문의 책임이 된다.
The aim of being philosophical is not to come up with ‘a philosophy,’ such as a theory or an ethical system to live by. If anything, philosophy is a problem creation approach, and its method is analysis, a constant process of shifting frames and turning into objects of analysis the lenses through which we see the world. Being philosophical involves asking unanswerable questions and exploring ways in which one might go about answering them. The moment this process arrives at ‘an answer,’ the project becomes the charge of another discipline.
많은 사상가들은 철학이 어떻게 생각의 "통로"인가를 상상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철학은 한 가지 이론적 또는 개념적 틀에서 생각이 "중단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Many thinkers have devoted their life to imagining how philosophy is a “pathway”21(p.445) for thinking, thinking that “does not come to a halt”22(p.278) in a theoretical or conceptual framework.
그러나 끊임없는 질문도 함정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철학적 태도를 취할 수 없고 동시에 실용적일 수 없다. 니체 자신이 썼듯이, "내가 숨을 쉴 때마다 숨쉬는 가장 깊은 이유를 공식화해야 한다면 나는 죽을 것이다."32(p.21)
However, constant questioning also is a pitfall. We cannot constantly assume a philosophical attitude and be practical at the same time. As Nietzsche himself wrote: “I would die if I had to formulate the deepest reason for breathing before each breath I take.”32(p.21)
앞으로
Moving forward
현재 5개의 테마가 향후 논의를 위해 계획되어 있다.
Five themes are currently planned for future discussion.
결론
Conclusion
의학 교육은 오랫동안 철학과 관계가 있었다. 철학적 접근법은 복잡성과 불확실성 앞에서 속도를 늦추고, 오래된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고, 생산적인 행동을 취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오늘날 의학 교육을 진전시킬 수 있다. 철학을 하는 것은 초심자처럼 생각하고, 기본을 되찾고, 참고의 틀을 깨는 것을 포함한다. 철학은 '철학'을 창조하는 것, 즉 세상을 정리할 수 있는 유용한 개념적 틀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쉬지 않고' 생각하는 길이다.
Medical education has long had a relationship with philosophy. A philosophical approach can advance medical education today by helping us slow down in the face of complexities and uncertainty, see old problems in new ways, and take productive action. Doing philosophy involves thinking like a beginner, getting back to the basics, and disrupting frames of reference. Philosophy is not about creating ‘a philosophy,’ i.e., settling on a useful conceptual frame with which to organize the world. Rather, it is a “pathway” for thinking that “does not come to rest.”
그러나 의학 교육의 철학은 단순히 질문을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철학과 함께 하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은 진보를 하지 못하는 불만족스럽거나 심지어 좌절감을 주는 습관적인 사고 방식과 가정으로부터의 해방에 관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철학적 존재가 되는 것은 경이로움과 강렬함, 아이 같은 호기심,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인간의 자질에 관한 것이다. 아무도 찾지 못한 문제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철학은 우리에게 2천 5백 년 동안 우리 자신을 탐색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Yet, philosophy in medical education is not meant to question constantly simply for the sake of questioning. Instead, engaging with philosophy is meant to be helpful; it is about liberation from habitual ways of thinking and assumptions that underlie dissatisfying or even frustrating inability to progress. Ultimately, being philosophical is about wonder and intense, childlike curiosity, human qualities we all share. In identifying problems no one looked for, philosophy has empowered us for two and a half millennia to search ourselves.
24. Tonelli MR, Upshur R. A philosophical approach to addressing uncertainty in medical education. Acad Med. 2019;94(4):507–511.
27. Hancock J, Mattick K. Tolerance of ambiguity and psychological well-being in medical training: A systematic review. Med Educ. 2020;54(2):125–137. Febdoi:10.1111/medu.14031.
Problems No One Looked For: Philosophical Expeditions into Medical Education
- PMID: 32272853
- DOI: 10.1080/10401334.2020.1748634
Abstract
Issue: Medical education has "muddy zones of practice," areas of complexity and uncertainty that frustrate the achievement of our intended educational outcomes. Slowing down to consider context and reflect on practice are now seen as essential to medical education as we are called upon to examine carefully what we are doing to care for learners and improve their performance, professionalism, and well-being. Philosophy can be seen as the fundamental approach to pausing at times of complexity and uncertainty to ask basic questions about seemingly obvious practices so that we can see (and do) things in new ways. Evidence: Philosophy and medical education have long been related; many of our basic concepts can be traced to philosophical ideas. Philosophy is a problem-creation approach, and its method is analysis; it is a constant process of shifting frames and turning into objects of analysis the lenses through which we see the world. However, philosophy is not about constant questioning for the sake of questioning. Progression in medical education practice involves recognizing when to switch from a philosophical to a practical perspective, and when to switch back. Implications: In medical education, a philosophical approach empowers us to "slow down when we should," thereby engaging us more directly with our subjects of study, revealing our assumptions, and helping us address vexing problems from a new angle. Doing philosophy involves thinking like a beginner, getting back to basics, and disrupting frames of reference. Being philosophical is about wonder and intense, childlike curiosity, human qualities we all share. Taking a philosophical approach to medical education need not be an unguided endeavor, but can be a dialog through which medical educators and philosophers learn together.
Keywords: Philosophy; humanities; interdiscipli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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