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적 연구 방법론으로서의 현상학: 의미와 이해의 공명학 (발표)
이 근 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I. 들어가며
최근 우리나라의 교육 분야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다채로운 탐구 주제와 연구방법 론이 등장하여 그 논의의 폭과 다양성을 점점 더해가고 있다. 즉, 전통적인 경계를 벗어난 새로운 탐구 방법들이 속속 구안되고 있고, 그것들이 교육 연구에 적용되어 탐구 자체의 양상을 기존과는 다른 흐름으로 주도하고 있다. 지극히 일반적인 수준 에서 말하면, 연구란 모종의 새로운 지식, 정보, 이해 등을 총칭해서 ‘앎’을 형성하 는 활동이라 말할 수 있다.
한편 연구방법론(methodology)이라고 한다면, 그와 같은 앎을 담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methods)이나 기법(techniques) 뿐만 아니라, 연구 를 통해서 추구하고자 하는 앎의 종류나 성격, 혹은 그러한 앎의 가치나 정당성을 제공하는 이념과 논리(logic)마저도 포함한다.
그래서 예컨대 문학연구방법론이라고 한다면 문학이라는 특정한 탐구의 대상이나 영역에 있어서 어떤 종류의 앎이 가치 있고 정당한가를 드러내며 동시에 그러한 앎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절차, 방법, 수단 등을 모두 포괄하게 된다.
그렇게 본다면, 어떤 특정한 연구방법론이 갖는 가치는 그 방법론이 탐구하고자 하는 영역(대상)과 관련하여 나름대로 의미 있고 타당한 앎의 유형을 제시할 수 있 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더불어서 그러한 앎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절차, 방법, 수단, 경로 등을 제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연구방법론으로서의 소임을 다한 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글은 대안적 연구방법론의 하나로서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현상학적 접근이 과연 교육 연구방법론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어떨지에 관해 서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다시 말하면 연구방법론으로서의 현상학적 접근 이 교육 분야에 어떤 새로운 종류의 앎을 제기하며 그러한 앎의 형식은 과연 타당 한 것인가의 문제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Ⅱ. 현상학적 접근의 논리
현상학이라는 말이 광의의 맥락에서 다양한 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예컨대, 유혜령, 2005).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 말이 지칭하는 바를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훗설(Husserl)이래로 다 양한 학자들과 사상가들에 의하여 논의되어 온 특정한 철학 내용 체계로서의 현상 학이다.
다른 하나는 그러한 논의가 가능하게 했던 현상학만의 독특한 관점과 태도 혹은 그러한 관점과 태도를 바탕으로 하는 탐구 방식으로서의 현상학이다.
애초에 훗설이 ‘철학을 하는 새롭고 급진적인 방식’으로 현상학을 제안하고 있는 데서 드러 나듯이, 현상학은 지금까지의 현상학적 논의를 관통하는 개념, 이론, 대표적인 사상 가들에게 친숙해지고 달통하는 일만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상학의 독 특한 관점과 안목으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실천적 탐구의 과정에 직접 동참하는 일 을 그 의미의 한 축으로 포함한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한 현상학의 두 가지 함의가 항상 균형 잡힌 채로 추구되어 오지는 못한 것 같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은 대표적인 사상가들과 그들의 아 이디어를 주석하고 전유하는 데 머물러 있지, 실제로 그것을 자신의 탐구 방식으로 활용하는 일에는 소극적이다. 그리고 그것이 불러 온 현상학에 대한 오해, 즉 ‘지극 히 난해하다’, ‘실제적이지 못하고 공허하다’ 등등의 세간의 평가는 현상학이 표피 적인 관심을 넘어 실제로 사람들의 생각과 행위를 인도할 급진적 학문으로서 기능 하지 못해왔음을 반증한다.
현상학이 대중화되지 못하고 소위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해왔던 것은 현상학자들 자신의 과실이 가장 크다. 즉, 스스로의 관심사를 기존 개념의 구명이나 논쟁의 해 결에만 집중해왔지, 현상학이 갖는 탐구 방법으로서의 성격이나 그 과정을 명확히 하려는 노력을 도외시해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훗설, 하이데거(Heidegger), 메를로퐁티(Merleau-Ponty) 등과 같은 천재들을 경외(敬畏)하지만, 도대체 그와 같은 천재들이 어떤 생각의 과정을 거쳐서, 어떤 탐구 경로를 거쳐서 그토록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조우하게 되었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현상학이 담고 있는 급진성은 멀 리서 감탄만 하는 일로는 충분히 구현될 수 없다. 현상학자들 자신이 자신들의 탐 구 방식을 분명히 하고, 그것들을 공유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탐구에 동참하도록 이끌어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길이 열리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일단의 학자들이 이미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흔히 현상학 영역 내에서 ‘실천 현상학(phenomenology of practice)’ 이라 불리는 지향을 가진 사람들로서, 그들의 일차적 관심은 현상학의 방법론적 측 면을 규명하고 확립함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고 수행하는 것’으로 서의 현상학 정립에 있다. 특기할만한 것은 그들 중 대부분이 흔히 실천적 영역이 라 불리는 교육학, 임상 심리학, 의학, 간호학, 특수교육학 등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 이며, 현상학이 질적 연구의 이념적 토대로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하나의 탐구 양 식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닌 게 아니라, 나 자신 석사 과정 시절에 두 세권의 개론서를 읽다 지쳐 포기했 던 것이 현상학이었다. 난해함보다는 공허함이 그 때 내가 받았던 인상이었다. 실제 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내가 내린 판단이었다. 그런데 그토록 접근하기 어려웠던 현 상학을 내 평생의 학문적 반려로 맞게 도와준 분이 내 스승 반 매넌(van Manen) 교 수이시다. 그는 난해한 철학으로서의 현상학을 교육 연구의 실천적 방법론으로서 정립하고자 평생을 노력한 분이며, 그와 같은 전환적 발상은 교육 연구의 지평을 한층 확대하는 데 기여한 바가 크다. 따라서 내가 하는 것으로서의 현상학의 뿌리는 응당 그로부터 비롯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하 이 글에서 현상학적 접근 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특별히 반 매넌의 그것을 가리킴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우선 반 매넌의 교육 현상학은 실천 현상학을 표방한다. 정통 철학으로서 현상학 을 추구하는 일은 그 자체의 목적과 의의가 있다. 그러나 교육실천가로서 우리가 현상학에 대해 갖는 관심은 철학자의 그것과 같을 수도 없고, 같아서도 안 된다. 우 리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육 현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가르치는 아 이들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현상학의 관점과 태도를 바탕으로 교육 현상을 연 구한다. 그래서 가끔 주어지는 “정통이 아닌 응용현상학”이라는 비아냥거림에도 흔 들림이 없다. 우리의 노력이 교육의 실제를 이해하고 개선하는 일에 실제적으로 도 움이 되는 한, 정통과 이단의 논쟁은 우리에게 부질없는 일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실천현상학이 지향하는 현상학적 관점과 태도란 무엇인가? 현상학적 태 도를 설명하는 많은 다양한 기술이 가능하겠지만, 가장 먼저 지적해야할 것은 현상 학이 기반 하고 있는 첨예한 비판 정신이다. 현상학은 일체의 독단, 편견, 선입견, 주관, 심지어는 기존의 지식이나 이론의 한계를 벗어나서 ‘사물 그 자체(things themselves)’로부터 새로운 이해를 형성하는 것을 추구한다. 즉 현상들에 대한 자유 로운 관점의 길을 개방시켜 놓는 일을 최우선적으로 표방한다(Bollnow; 한상진 역, 2006). 그리고 그러한 것으로서의 현상학은 종래와는 급진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인 간 및 인간의 삶을 개념화한다.
현상학적 견지에서 보면 인간은 사물과는 구분되는 독특한 존재이다. 그 자신이 자연 속의 일부이면서도 동시에 일방적인 자연법칙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하는 특별 한 노력을 의도적으로 기울이는 존재이다. 그의 삶은 정해진 숙명이나 법칙에 맹목 적으로 순응하지 않는다. 그 대신, 비록 미약할망정, 스스로의 의지를 반영하고, 그 러한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므로 현상학은 애초부 터 인간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혹은 자연 사이에 놓여 있는 변증법적 관계를 기반으로 인간의 본성 또는 인간 삶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속성을 일컬어 현상학에서는 세계-내-존재(Being-in-the world) 란 용어를 써서 표현한다.
세계-내-존재로서의 인간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의식(consciousness)을 가 진 존재라는 점이다. 의식은 우리가 무엇에 관해 말하고 지적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며, 세계는 오직 그것을 통해서만 그 진면모를 우리에 게 드러낸다. 이는 인식의 주체와 대상을 분리하고, 인간과 세계를 나누며, 이론과 실천을 가르는 전통적인 인식론에 획기적인 변화를 요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상학은 의식의 본래적인 구조가 ‘지향적(intentional)’임을 설파함으로써, 인식의 주 체와 인식의 대상 사이의 밀접한 관련을 강조하고 있다(Spiegelberg, 1982). 우리가 수행하는 모든 의식행위나 당면하는 모든 경험은 본질적으로 ‘-에 관한’ 것일 수밖 에 없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하는 모든 사고는 항상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다. 우 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결국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모든 인간 활 동은 항상 지향된 것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앎과 관련한 주체(의식)와 대상(세계) 사이의 불가분의 관련을 드러낸다.
앎의 주체와 대상의 상호관련성을 강조하는 지향성 개념은 현상학이 인간의 체험 과 의미에 대해서 특별히 주목하게 된 계기를 설명해준다. 앎의 근원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앎의 주체와 대상 사이의 상호 작용 또는 구성 작용에서 비 롯되는 것이라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앎은 결코 자연과학에서 상정하듯이 고정적 이거나 객관적인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계에 대한 앎은 세계에 대한 직․간접의 체험(lived experience)을 통해서 우리의 의식이 그 의미를 구성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므로 현상학은 인간의 체험에서 의식의 구조 혹은 거기서 파 생되는 의미 탐색을 표적으로 한다(Polkinghorne, 1989). 체험이라는 개념은 모든 종 류의 개념화, 범주화, 대상화 이전에 전반성적으로 주어지는 원초적이고도 즉각적인 세계 경험을 지칭하는 것이며(이근호, 2006), 오직 체험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살 고 있는 세계의 양상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반 매넌(1997)은 “체험이야말 로 현상학적 탐구의 시작점이자 종결점이다”라고 주장한다.
체험을 통한 의미의 구축이 앎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전통적인 인식론에서 강조 하듯이 단일한 것으로서의, 또는 확증된 것으로서의 앎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각 개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이나 맥락, 앞선 경험 등을 통해서 서로 다른 의미를 구성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현상학은 철 저하게 인간 존재의 독특성을 강조하며, 인간을 그가 가진 일부의 특성이나 단편적 인 기능으로 감환하려는 일체의 시도에 대해서 반대한다. 각 개인의 고유함을 인정 하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삶의 다양한 궤적을 존중한다. 그래서 혹자는 현상학을 ‘주관의 철학’으로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현상학은 본질을 지 향하는 철학이다. 다시 말하면, 각 개별 현상을 아우르는 인간성의 보편적 차원, 인 간 삶의 상호주관적 양상을 밝히고, 천착하는 것을 표적으로 한다. 그래서 현상학은 비단 주관의 철학으로서 뿐만 아니라 독특성과 보편성 사이의 변증법적 탐구 양식 으로서 기능하게 된다(이근호, 2007).
다음으로 지적해야할 것은 체험을 통해서 구성되는 의미는 항상 명증한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체험을 통해서 구성되는 인간의 앎은 결코 자연발생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일부이자 동시 에 자신의 의지를 통하여 세계를 구현하고 변혁해가는 존재이다. 인간과 세계 사이 의 이와 같은 역동적 관련이 인간 존재의 근원적 배경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분명 하다. 그러나 그러한 관련이 언제나 분명하게 드러나거나 의식되는 것은 아니다. 세 계는 이미 내 앞에 주어져 있으며, 이미 주어져 있음으로 인해 특별한 노력 없이도 세계를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공기란 대단히 중요 하지만 그것의 의미를 매 순간 되새기지 않아도 삶을 살아가는 데는 불편이 없는 것과 매한가지이다. 물론 어느 특정한 순간, 예컨대 높은 산에 올라갔다거나 혹은 천식에 걸렸을 때 공기의 의미는 새삼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는 공기 자체가 달라 졌기 때문이 아니라 공기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마 찬가지로 세계는 언제나 여일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어떠한가에 따라 세계의 의미는 달라진다.
현상학에서는 우리가 세계를 대하는 태도를 자연적 태도 및 현상학적 태도라는 두 가지로 대별해서 설명한다.
전자는 그저 주어진 것으로서의 세계를 살아가는 일 상적이고 관습적인 삶의 양식을 말한다면,
후자는 그것으로부터 한 걸음 벗어나 세 계의 의미를 되새기고 삶의 의미를 궁구하려는 자세를 가리킨다.
전자가 인간을 포 함한 모든 생물들의 보편적 성향이라면,
후자의 경우 인간 존재만이 갖는 특별함이 라고 할 수 있다.
앎은 전자의 자세로부터 벗어나 후자의 태도로 스스로와 세계를 대할 때 가능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적이고 일상적인 태도라고 명명 한 데서 드러나듯이, 그것을 벗어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인간이 세계를 경험함 으로써 구성되는 의미는 아주 특별하고도 의도적인 노력을 통해서 파악될 수 있는 바, 그러한 노력을 일컬어 현상학에서는 ‘판단중지(epoche)' 또는 ‘환원(reduction)'이 라는 용어로 나타낸다.
흔히 환원은 우리 삶의 일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일 혹은 이 세계와의 관계를 모두 끊어버리고 나와 세계를 관조하는 모종의 초탈한 상 태를 일컫는 것으로 오해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오히려 환원은 일상적이고 관습 적인 태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종류의 앎과 이해를 더 이상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 이지 않고, 그러한 이해 자체에 대해 심각하게 검토해보고 반성해 보는 실천적인 일을 뜻한다(이근호, 2007).
이는 우리 삶과 무관한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성 적, 전반성적, 무비판적인 삶의 태도를 잠시 멈추고, 우리가 체험하는 것의 의미에 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보고 점검해 보는 태도를 말한다.
그러한 것으로서의 환원 은 반성 혹은 성찰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으며, 앞서 언급한 현상학의 가장 근 원적인 특징으로서의 비판정신과 다시금 연결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현상학은 인간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 사이의 역동적 상호관련을 바 탕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를 규명하고 이해하는 것을 표적으로 한다. 앎은 단순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세계를 경험하는 속에서, 세계와의 교호작용을 통하여 구성하는 의미이다. 그러한 것으로서의 의미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 을 발견하고 창조하려는 인간 스스로의 노력을 통하여 생성된다. 그리고 그것을 인 도하는 것은 주어진 모든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재검토하는 비판 정신 혹은 반성적 태도, 즉 성찰이다. 결 국 현상학을 한마디로 규정하면 성찰의 학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성찰을 바탕 으로 인간성의 본질을 드러내고, 인간 삶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오랫동안 교육 연구의 흐름과 관행은 우리가 실제로 먹고, 마시고, 분노하고, 사 랑하고 부대끼는 것으로서의 삶의 세계가 아니라 이론적 세계에 고착되어 왔다.
예 컨대, 전통적인 연구 체제에서의 연구 관행을 살펴보자. 의례히 상당한 정도의 선행 연구들, 기존의 이론들이 조사되고(문헌연구, survey), 그러한 조사의 결과를 바탕으 로 연구 문제를 형성하고, 구체적 변인들을 설정하며, 연구 설계와 가설이 마련된다.
이미 문제 형성을 포함한 연구 과정의 대부분이 우리의 실제적 관심을 반영하거나 혹은 우리가 일상에서 당면하는 삶의 문제들로부터 벗어나 있다(보통은 기존에 연 구되지 않은 변인들이 무엇인가에 의하여 연구문제가 형성된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관행은 기존의 이론 체계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불러오기도 한다. 기존의 이론적 틀 속에 함
몰 되어서 교육 현실을 외면하고, 교육의 실제적 과정을 무시하 고, 교육의 실천 양상을 도외시하는 경우도 생긴다.
혹은 공허한 이론적 논의 속에 갇혀서 엄연한 삶의 사실을 들여다보지 못하며, 기존의 논리를 벗어나는 어떠한 것 도 반 지식의, 반 진리의 멍에를 씌워 배척하는 태도로 일관하기도 한다.
반면에 현상학은 우리의 시선이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으로부터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모든 종류의 이론화 작업은 필연적으로 삶으로부터 한 걸음 비켜나는 일을 포함한다. 그러나 현상학은 이렇게 잠시 비켜서는 일을 통해서 얻어진 이해를 다시금 삶으로 환원시켜 가는 과정을 통해서 연구와 삶의 연속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기존의 이론에 함몰되고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실제적 삶의 세계를 바탕으로 연구 문제를 형성하고, 그러한 실제적 관심이 사실상 연구과정을 인도하도록 요구한다.
이렇게 연구와 삶의 연속성이라는 중요한 지향은 실천 현상학의 또 한 가지 중요 한 특징을 보여준다. 현상학은 우리들의 일상적인 생활 세계에 직접적으로 관심을 기울인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들의 의미를 드러내고, 그렇게 드러난 의 미들을 이해하고 전유하는 일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신 념 한다. 그것은 최상의 삶의 형식을 처방하고, 우리의 삶을 그 형식에 인위적으로 맞추어 가는 것과는 다르다. 현상학은 궁극적인 삶의 형식은 있을 수도 혹은 강요 되어서도 안 된다고 파악한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삶의 조건에서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 자체이며, 그러한 노력이야말로 우리가 의미 있는 삶을 살아나가기 위한 초석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반성 또는 성찰(reflection)을 통해서 인도된다.
따라서 반성은 실천 현상학의 중요한 도구이자 방법론적인 면모를 가장 잘 드러 내는 요소이다. 실천 현상학이 직접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세계는 일상적 삶의 세계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세계는, 일상적이라는 말에서 잘 드러나듯이, 우리의 특 별한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그저 주어진 것으로서 또는 루틴(routine)으 로서 살아내는 세계이기도 하다. 아무런 의미도 발견할 수 없고,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당연하게 어제처럼 오늘을 살아내는 세계이다. 그러나 실천 현상학은 그 당연 한 세계를 되짚어보고, 다시 생각해보자고 주장한다. 우리가 묻어 버리는 삶의 진실 과 의미가 사실상 앞으로의 우리 삶의 소중한 자원이자 원천이라고 파악한다.
또한 실천 현상학은 반성과 사고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과 사 고의 대상과 내용이 제한되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즉, 생활 세계의 일상성을 깨뜨리려는 노력이 반성이요 사고라고 한다면, 관성적 무사고의 또 다른 형태인 독 단과 편견과 아집을 해체하고 제거하려는 노력역시 반성과 사고의 개입을 통해서 가능하게 된다. 독단과 편견과 아집은 한 개인의 심리적 성향에서만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앞 서 언급했던 것처럼 기존의 이론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나 함몰역시 또 다른 형태의 독단과 아집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실천 현상학이 제기 하는 반성과 사고는 일체의 예외도 허용치 않으며, 영역과 대상과 내용과 정도가 제한된 반성과 사고가 아니라 우리의 힘이 닿는 범위의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된다. 어렵게 설명이 되었지만, 한 마디로 말하자면, 결국 열심히 생각하는 일이야 말로 실천 현상학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말할 수 있다.
Ⅲ. 현상학적 접근의 절차와 방법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특별한 시도로서의 현상학적 접근의 절차나 방법은 다양성 을 근간으로 한다. 각각 독특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묻고 가 치를 발견하는 과정은 오직 하나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점은 여타 의 질적 연구 방법들도 동의하는 바이며, 그러한 맥락에서 현상학적 탐색의 기본 절차나 방법은 여타의 질적 연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현상학이 다른 많은 질적 연구들에 비판과 성찰이라는 중요한 이념적 기 반을 제공해왔다는 점, 그리고 연구의 기본 절차나 방법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 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방법으로서의 현상학은 몇 가지 측면에서 다른 질적 연구 방법들과 구별되기도 한다.
예컨대 현상학은 개인의 체험과 그 속 에서 형성되는 주체적 의미에 강조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와 집단적 의미에 관 심을 두는 문화기술지 방법과 구분된다.
근거이론 연구가 비교적 정형화된 절차나 분석방법을 동원한다면 현상학은 부분과 전체를 오가면서 해석의 깊이를 더하고 새 로운 의미 발견이나 부여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연구 참여자가 들려주 는 이야기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의미구조를 밝히려는 측 면에서 현상학은 내러티브 탐구와 방법론적으로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 나 현상학이 보다 극적이고 예술적인 일화 형식을 선호한다면 내러티브 탐구는 그 보다 긴 호흡의 구조화된 이야기를 활용한다고 말 할 수 있다.
이처럼 구체적인 방 법으로서의 현상학은 여타의 질적 연구 방법들과 기본적인 아이디어와 형식을 공유 하면서도 독특한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현상학은 일상성을 깨뜨리는 연구주제나 문제를 발견 혹은 생성하는 단계로 부터 시작한다. 반드시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가급적 연구자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 로 한 연구문제를 찾을 것을 권장한다. 이는 연구자가 그 체험의 양상을 파악하고 의미를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며, 자신의 삶과 무관하지 않은 주제를 탐 구할 때 연구에 대한 열의를 지속시키거나 동기유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단계는 있는 그대로의 체험을 조사하고 서로 다른 형태의 경험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 연구자는 연구 장소나 참여자를 선택하고, 가장 적 절한 자료 수집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 연구참여자는 연구될 현상을 경험하였고 자 신들의 경험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개인들로 선택한다. 그리고 참여자들의 경험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수집된다. 예컨대, 관찰, 면담, 체크리스트, 포트폴리오, 저널, 메모, 사진, 각종 일지, 설문지, 현장노트, 오디오 혹은 비디오 리코딩의 방법들이 모두 활용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료 수집 방법의 다양화 못지않게, 자료 수집과 정을 일회적이거나 단선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혹은 순환적으로 지속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맥락에서 현상학적 접근의 자료 수집 단계는 후속하 는 자료 분석/해석 단계와 중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 번째 단계는 자료의 분석 및 해석 단계이다. 전체적으로 글 읽기, 선택적인 글 읽기, 세분법 혹은 추행법 등을 선택하여 핵심어구나 주제들을 찾아내고, 그 속에서 전체를 관통하는 현상의 본질적인 주제를 파악하는 과정이다. 일례로 Moustakas (1994)가 발전시킨 현상학적 분석의 과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연구자는 현상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전체적으로 기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 연구자는 자료를 통해서 개인이 어떻게 주제를 경험하고 있는지에 대한 진술 을 찾고, 의미 있는 진술들을 나열하며(자료의 수평화), 각각의 진술에 동등한 가치를 두어 다루고, 반복되거나 중복되지 않는 진술들을 목록화 한다.
∙ 이 진술들은 의미단위로 분류되고, 연구자는 이 단위들을 나열하며, 축어적 예 를 포함하여 일어난 경험의 조직을 기술한다(조직적 기술).
∙ 다음으로 연구자는 자신의 기술을 반성하고, 상상적 변형 또는 구조적 기술을 사용한다.
∙ 그리고 나서 연구자는 경험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전반적인 기술을 구성한다.
마지막은 보고서를 구성하는 글쓰기 단계이다. 무엇보다도 현상학은 주제에 대해 반성하고 우리가 경험한 세계에 대해 통찰력 있는 기술을 제공하기 위한 ‘글쓰기’ 과정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연구를 통해서 얻은 통찰을 글쓰기라는 방편을 활용하여 텍스트가 갖고 있는 호소력을 극대화시키고자 노력한다. 글쓰기는 다시 생각하고, 다시 고찰하고, 다시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자신을 우리가 알고 있 는 것에서 분리시키기도 하고 더 가까이 결합시키기도 하며 무엇인가를 볼 수 있게 한다. 반면에 우리 시야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삶 속에 서 사려 깊은 실천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게 해준다.
현상학적 연구보고서의 체제는 많은 질적 연구 보고서가 그러하듯이 특정한 상황 을 드러내는 ‘기술’과 그 기술 속에 담겨 있는 의미에 대한 ‘해석’이라는 이원적인 체제로 구성된다. 주목할 만한 것은 현상학적 기술의 상당부분은 ‘일화(anecdote)'라 는 짧은 이야기의 형식을 띠게 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일화는 짧은 이야기, 그 러면서도 나름대로의 교훈과 의미를 담고 있는 이야기를 뜻한다(van Manen, 1997). 독자들로 하여금 연구자가 연구하는 현상이 어떤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그 의미가 어떻게 전유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글이다. 따라서 일화는 다양하고 풍부한 의 미가 담겨 있는 것이어야 하며, 그 맥락과 상황을 얼마나 생생하게 전달하는가가 관건이 되는 이야기 형식이다. 동일한 현상이 다양한 맥락에서 어떤 방식으로 드러 나는 지를 보여주며, 그 같음과 차이 속에서 주제에 관한 자연스런 의문을 독자들 이 품게 하거나 연구자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독자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하는 장 치이다. 다음에 소개하는 일화는 질적연구방법론을 수강했던 한 대학원생이 현상학 적 기술을 실습했던 내용이다. 각각의 짧은 일화들은 자연스럽게 독자들의 관심을 촉발하며, 서로 다른 상황들을 연결 짓는 공통의 주제에 대한 사색으로 독자들을 유도하고 있다.
■ 설렘
“자아, 우리 옆에 앉은 친구랑 인사해 볼까요? 오늘부터 한 학기동안 같이 앉을 짝꿍이에요.” 선생님의 환한 목소리가 1학년 5반 교실에 울려 퍼진다. 까르르 웃으 며 장난을 치는 아이,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는 아이, 딴청 피우는 아이, 옆에 앉은 친구를 힐끔거리며 몰래 보는 아이... 제각각인 행동들이지만, 모든 개구쟁이 아이 들의 얼굴은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있고, 눈빛은 호기심에 반짝인다.
저기 마로니에 공원 앞에 서성되는 젊은 남자가 있다. 그는 생각한다. 잠깐... 오 늘 면도는 깔끔하게 됐을까...? 새로 바꾼 향수를 싫어하진 않겠지...? 얼마나 변했 을까...? 재잘대는 머릿속을 조용히 시키려 하지만, 쉽지 않다. 남자의 손은 머리를 매만지다가 옷매무새를 다듬고... 다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를 쉴 새 없이 반복한 다. 바쁘게 움직이는 오른손과 달리 그의 왼손에는... 싱그런 노오란 프리지어 꽃 한 다발이 조용히 웃고 있다.
두근 두근... 발 끝부터 조심스레 올라선다. 눈금이 춤추기 시작한다. 떨리던 진동 이 멈추며 눈금의 끝이 숫자를 가리키고 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눈을 비빈다. 다 시 아래의 숫자를 내려다본다. 가슴이 더 크게 방망이질 친다. 아, 드디어... 입가에 미소가 흘러나온다. 저울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또다시 저울에 올라서본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힘찬 소리가 그녀의 조그마한 방을 가득 채운다.
반면에 해석은 일화를 통해서 드러나는 의미들을 연구자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논리적으로, 혹은 학문적으로 풀어내는 글이다. 해석은 연구자 자신의 주관적 해석 의 틀에 입각하여 그가 발견한 의미를 독자들과 공유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연구 자의 독창성과 사고의 깊이가 어느 정도나 되는가가 관건이 되는 글의 형식이다. 위의 일화들에 대해서 제공된 다음의 해석을 살펴보도록 하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생전 처음으로 짝꿍이 생기는 날,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 는 날, 혹독한 다이어트 끝에 일어난 몸무게의 변화를 목격한 날, 오랜 투병 생활 중에 봄이 오는 것을 느낀 어느 날... 이런 날들에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무 엇일까...? 바로 ‘설렘’ 이 두 글자이다. 설렘이란,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들떠서 두 근거리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는 삶 속에서 순간순간 이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 대단한 예가 아니더 라도, 일상의 소소함 속에서도 설렘은 찾아온다. 너무 목이 말랐다가 시원한 음료 수를 발견했을 때, 보고 싶었던 공연 표를 끊어놓고 기다릴 때, 그리운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을 때, 길을 가다가 자신의 이상형과 마주 치게 되었을 때, 찍어둔 너무 갖고 싶었던 카메라를 손에 넣게 되었을 때, 사랑하 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 친절한 사람의 미소를 보았을 때, 퇴근 후 가족들이 기다 리는 집에 돌아가는 때, 먹고 싶었던 음식을 주문해 놓고 음식을 기다리는 때, 오 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를 받았을 때에도...우리의 설렘은 계속 이어진다. 이처 럼 설렘은 우리의 일상 속에 녹아있다.
설렘이라는 것은 일상 속에 묻어 있는 만큼, 항상 아름답고, 모든 상황이 갖춰졌 을 때, 특정한 대상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생이 짝꿍을 만나는 것 에 설렘을 느끼는 것, 투병 중인 할아버지가 봄이 오는 것에 설렘을 느끼는 것처럼 언제고 어느 때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또한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행복한 경우이든, 병에 걸려 절망적인 경우이든 어떠한 경우이건 간에 설렘은 찾아 온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연인을 기다리는 남자의 경우처럼 그들이 다시 만나 서 예전처럼 사랑할 수도, 아님 똑같은 이유로 다시 서로 상처를 남기고 헤어질 수 도 있다. 투병 중인 할아버지는 봄이 오는 기운을 느껴 설레고, 자신도 봄의 기운 처럼 빨리 건강을 회복해야겠다고 생각해도, 병이 쉽게 낫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 이 세운 목표인 다이어트를 성공해 저울에 올라섰을 때, 빠진 몸무게만큼 새로운 삶을 살 생각에 들떠있는 여자도 실제로 새로운 삶이 기존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 을 수도 있다. 이처럼, 설렘을 느꼈다고 해서 반드시 해피 엔딩이 따르는 것은 아 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점은 설렘에 대한 결과가 행복하 건, 불행하건, 밋밋한 평범함이건... 적어도 설렘을 느끼는 순간에는 사람에게서 긍 정적인 에너지가 생겨나고, 자신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겨나게 되 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설렘의 본질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어떠한 사람이라도, 그 결말이 어떻건 간에 평등하게 찾아오는 감정, 그것은 설렘이다. 설렘을 느꼈을 경우,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긍정적인 에너 지가 넘쳐나고, 자신감이 생긴다.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며 화색이 돈다. 가 슴이 두근거려 내가 정말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러한 감정은 내가 소망 하는 어떤 것을 이룰 수 있게 하는 희망을 준다. 바로, ‘설렘’은 ‘희망’에 좀 더 가 까이 다가가게 하는 것이다. 새로운 짝꿍과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다시 만난 연인과 사랑하게 될 거라는 희망, 변화된 삶에 대한 희망, 싱그런 봄처럼 나 역시 병을 이겨내야겠다는 희망...우리의 삶 속에는 셀렘으로 인한 희망 들이 가득하다. 즉, 설렘’이라는 감정은 모든 사람을 어떠한 경우에라도 꿈꾸게 만 드는... 희망이 가까이 왔다는 신호를 주는 감정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해석의 작업과 관련해서 꼭 지적해야할 사실은 이 해석이 독자들 모두 의 100% 동의를 목표로 수행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연구자는 연구의 과정에서 발견한 의미와 사실들을 나름대로 논리적,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독자들은 그러한 해석이 과연 개연성이 있는지, 비록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다 하더라도 가능한 인간 경험(possible human experience)에 대한 설명으로 납득할만 한 것인지의 여부를 판단한다. 일화 기술이 상황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생명으로 한다면, 해석은 연구자가 발견한 의미들을 독자들과 보다 적극적으로 공유할 수 있 는가가 관건이 된다. 비유컨대 일화는 가슴으로 읽고, 해석은 머리로 이해하는 글이 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이근호, 2007).
현상학이 이와 같이 독특한 기술과 해석의 형식을 취하는 까닭은 전술한 바와 같 이 인간을 탐구하고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 본질적으로 다양한 경로와 계기를 통하 여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진 의미, 통찰, 이해가 언제나 명확한 것 으로서, 가시적인 산물로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재 의미는 종종 명백 한 인지적 용어로 표현되거나 혹은 우리가 가진 지적능력으로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현상학이 추구하는 존재 혹은 존재의 의미에 관한 이 해는 많은 경우 실존적, 정의적, 상황 의존적, 그리고 체화된 것으로서 드러나며, 그 것은 우리가 가진 인지적 능력이라기보다는 실제적, 직관적 능력에 호소하는 경우 가 많다(van Manen, 1997). 그러므로 현상학적 연구보고서는 연구자가 독자들에게 모종의 논리적 설명을 제공하려고 시도하는 대신 텍스트가 가진 공명하는 힘 (resonating power)에 의지하여 “보여주고자” 하는 시도로 나타나곤 한다. 바로 그러 한 탓에 현상학적 연구는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간에 가끔 예술적인 작업에 비견되기 도 한다.
이 모든 것을 요약해서 말하건대, 현상학은 독특성(uniqueness)과 보편성(universality) 사이의 변증법적 탐구 양식을 일컫는다. 일차적으로 실천 현상학은 객관적이고 일 반적인 것들 사이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연구 대상의 고유하고 독특한 측면을 관심 의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작위적이고 독단적인 해석을 배격하며, 오히 려 그것들을 통해 연구 대상에 관한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차원을 드러내려고 시도 한다. 또한 현상학은 연구자 자신의 주관적이고 독창적인 통찰을 강조하되, 그 통찰 을 상호주관적인 이해의 범주 내에서 소통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이 점에 대한 이 해를 돕기 위하여 실제로 다음과 같은 일화 한 편을 더 소개하기로 한다.
■ 광녀 영은
저녁나절 들려오는 영은의 울부짖음은 이제 그 마을에서는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 해질 무렵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니까요.
해가 서산마루에 걸칠 무렵이면, 광녀 영은은 그녀의 작은 집 처마에 걸터앉아,
적어도 15분간은 그렇게 외쳐대곤 했답니다.
소연아, 소연아, 제발 소연아...
이제 더 이상 어떤 사람도 그 목소리에 담긴 상심을 보려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작은 연민조차도 아까워합니다.
너무 오랜 세월동안 영은은 그렇게 부르짖는 일을 해왔으니까요.
오히려 늑대의 울음소리가 마을 사람들에게는 더 신기한 일처럼 받아들여질 것
입니다.
그래도 가끔은 아이들이나 잠깐 이 마을에 다니러 온 사람들은 그 연유를 묻곤
합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마을 사람들은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
합니다.
아, 글쎄, 아주 오래 전에, 저 미친 영은이가 아이를 가졌다지 몹니까?
생각해봐요, 영은이와 아이라니.
누가 보더라도 터무니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어느 날 사회복지사와 경찰관들이 영은이의 아이인 소연이를 데려갔답니
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모두를 위한 결정이었지요.
어느 누구도 그날 순찰차가 어디로 갔는지를 영은에게 말해준 사람이 없었습니
다.
또한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것 역시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고.
각자 자신의 아이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수많은 엄마들이 살고 있는
이 작은 마을에서
영은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해질 무렵 이름 하나를 외쳐대는 것이었습니다.
수년 동안이나
그리고 그것도 헛되이
그녀가 그토록 간절히 외쳐대던 지난 20여 년 동안
그 누구도 그녀의 작은 집까지 와서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람이 없었습니
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름 저녁에, 어떤 노신사가 그녀의 처마 밑에 슬며시 붙어
앉아서는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뭅니다.
영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여태껏 누군가가 그녀에게 말을 걸어본 적
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나지막이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영은에게는 그 어떤 동화보다도 황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그런 종류의 일을 하다보니 당신 딸 소연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요.
소연이는 먹을 것도 충분하고 입을 것도 풍족하고 잠자리도 안락한 곳에서 잘
지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어느 날 병에 걸렸고, 이제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는 않지만,
더 이상 산 사람이 아닙니다.
“참 잘 되었어!”, 마치 어떤 커다란 선물이라도 받은 양 영은은 그렇게 말했습니
다.
“참 잘 되었어!”, 다시 한 번 영은이 되뇝니다.
꿈쩍도 하지 않으면서,
오랜 고독의 벽이 무너질 때서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평안 속에 자신을 깊이
파묻은 채로
그날 저녁 이후, 마을에는 영은이 점점 더 미쳐가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
했습니다.
아니, 그녀는 더 이상 그렇게 소리치지 않아. 그건 아니란 말이야.
그런데 너 그거 알아, 이제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그녀는 무엇이 좋은지 구름에다 손 흔들고
하늘 보고 희죽이고 있다니까.
이 짧은 이야기는 네델란드의 스틸마(Stilma)라는 분이 실제로 여기저기를 여행하 면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일화의 형태로 정리한 책에 수록되어 있는 이야기이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제재도 다르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식에 있어서도 구구각색이 지만, 한결같이 무엇인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마음 의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는가(해석되는가)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위의 이야기를 통해서 누군가는 마을 사람들의 무관심에 분 노를 느끼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노신사의 친절한 행위를 칭송할는지도 모른다. 혹 어떤 사람들은 어머니와 딸 사이의 천륜을 갈라놓은 사회복지사와 경찰당국자들의 결정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려 할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이 짧은 글 속 에 여러 가지의 인간적인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고, 그러한 의미들에 대한 서로 다 른 통찰은, 설령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의 이해의 범주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기술과 해석의 또 한 가지 사례를 제시하고 이 장을 맺도록 한다.
■ 뒷북치기: 즉각적인 반응 능력의 상실1)
(중략) …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저로 서는 말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머릿속으로 완전한 문장을 만들어야만 하거든요. 그 렇지 않으면 중도에서 말문이 막혀버리는 일이 허다하지요. 그런데 이 고통스런 순 간에 대화의 흐름을 놓쳐버리기 십상이고, 또한 그때그때 빨리 반응할 수 있는 능 력이 사라져 버리거든요. 아마 저만큼 진짜 대화에서 일초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 감하고 있는 사람도 드물 거예요. 종종 제 캐네디언 동료들은 저를 보고 ‘사려 깊 다’고 말을 하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칭찬의 말이 아닌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아마도 그것은 그들 편에서 나와 대화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완곡하게 돌려 말 하는 것일는지도 모르죠.
항상 우리가 미리 계획해 놓은 경로를 쫓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살아 있는 대화는 그 자체의 생명력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들은 종종 우리자신을 놀라게 만들며,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진짜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기도 한다(Merleau-Ponty, 1974, p. 85).” 그리하여 대화는 많은 경우에 있어 우리가 하는 생각의 진전에 따라 그 방향이 결정되곤 한다. 그러 나 한편으로 대화는 혼자서 하는 독백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생각 하는지를 드러내는 일뿐만 아니라, 내 대화 상대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주의 깊게 경청하는 일, 그와 서로의 견해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일, 보다 진전된 이해 를 그와 함께 찾아가는 일 등도 역시 포함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호 교환이라는 측면은 진정한 대화가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참된 대 화는 대화 참가자 모두에게 상대방에 대한 합당한 존경과 진지하고도 적절한 반응 을 요구하게 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대화 상대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에 관해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관해서도 이해하려 고 노력해야 한다. 유익한 대화는 대화의 주제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증진시켜주는 역할도 하지만, 동시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을 더 잘 알 수 있 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따라서 종종 우리는 대화상대자가 보여주는 즉각적인 반응이나 응답을 통해서 대화의 성패를 가늠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비단 그가 하는 말을 통해서만 아니라 그가 보여주는 몸짓이나 얼굴표현, 어조, 말의 빠 르기 등등을 통해서도 읽을 수 있다. 예컨대, 지금 그의 얼굴에 빛이 나고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그가 바로 이 순간 확신에 차있음을 의미할는지도 모르며, 만일 그 의 눈썹 한쪽이 치켜져 올라가 있다면, 어느 정도의 의견의 불일치를 예측할 수 있 는 것이다.
(중략)
적절한 단어를 찾고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결정하는 바쁜 와중에, 외국학 생들은 어느 정도 자신들을 대화 맥락에서부터 분리시킨다. 이처럼 적당한 말을 골 라하는 방식은 자연스런 대화방식에서 벗어난, 언어에 대한 반성적 접근태도를 보 여주며, 즉시적인 상호작용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을 의미한다(Winning, 1991, p. 144). 미리 사려 깊게 준비해서 하는 말은 외국학생들이 대화 중간에서 말 문이 막혀 허둥대는 일을 막아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히는 일, 혹은 의도하지 않았던 말이 튀어나오는 일 역시 자연스런 대화의 일부인 것이 다. 그래서 메를로퐁티(Merleau-Ponty, 1973, p. 36)는 “언어는 발화되는 그 순간부터, 그것이 말로써 생명을 얻는 그 순간부터, 아무리 심사숙고해서 나온 인공적인 언어 라 할지라도 곧 불규칙해지고 수많은 예외를 낳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는 진정한 대화란 우리가 하는 말이 생각 없는 것일 때-대 화가 사고를 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생각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생각이 대화상황에 통합적으로 어우러져 대화자체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언어에 숙달되있다거나 그것을 완 벽하게 구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결코 흠 없는, 완전무결한 문장을 말할 수 있 다거나 혹은 완벽한 발음을 구사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 은 “자연스런 대화의 흐름에 동참하고 그것에 즉시적이고도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을 때(Hoffman, 1989, p. 118)”를 가리키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Ⅳ. 나오는 말
연구의 논리라는 측면에서 파악할 때, 실천 현상학은 독특성(uniqueness)과 보편성 (universality) 사이의 변증법적 탐구 양식으로 드러난다. 일차적으로 실천 현상학은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것들 사이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연구 대상의 고유하고 독특 한 측면을 관심의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작위적이고 독단적인 해석을 배격하며, 오히려 그것들을 통해 연구 대상에 관한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차원을 드 러내려고 시도한다. 또한 현상학은 연구자 자신의 주관적이고 독창적인 통찰을 강 조하되, 그 통찰을 상호주관적인 이해의 범주 내에서 소통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연구의 실제라는 측면에서 파악할 때, 실천 현상학은 사려 깊은 글쓰기와 글쓰기 를 통해서 더 익은 사고와 생각에 도달하는 변증법을 지향한다. 구체적인 기법과 형식과 절차를 처방하려 들기보다는 끊임없는 반성과, 쓰고 다시 쓰고 또 고쳐 쓰 는 일을 요구한다. 생각을 통해서 글이 가진 제약을 넘어서려하고, 글쓰기를 통해서 생각을 다듬으려고 한다.
동시에 현상학은 연구의 논리와 실제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 위치하고 있다. 그것은 순전한 이념형으로도 혹은 맹목적인 형식이나 방법으로도 감환 되기를 거부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변증법들 사이에서 특별한 균형감각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이 균형감의 훈련이 바로 현상학이 질적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데 공헌할 수 있는 지 점이라고 나는 믿는다. 기술과 해석, 반성과 글쓰기, 독특한 것과 보편적인 것, 개인 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주관적인 것과 간주관적인 것, 이론과 실천, 삶과 연구, 이 모든 것들을 분절된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것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현상학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생각하고, 더 열심히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 는 일로서의 현상학은 누구든지,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강조 하고자 한다. 실천 현상학은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서 우리를 생각하게 만들고, 우 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의미 있는 부분들을 포착해내고, 그 의미에 대해서 타인(독 자)들과 적극적으로 공유하려 시도하며, 다시 그러한 공유를 통해서 타인들을 생각 하게 만들고 움직이게 만드는 일을 추구한다. 그런 맥락에서의 실천 현상학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결국 의미와 이해의 공명학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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