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적 연구 방법론으로서의 현상학 - 독특성과 보편성 사이의 변증법적 탐구 양식 - (교육인류학연구, 2007)
이 근 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위촉연구원
1. 들어가는 말
현상학이라는 말이 광의의 맥락에서 다양한 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주지 의 사실이다(유혜령, 2005).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 말이 지칭하는 바를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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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훗설(Husserl)이래로 다양한 학자들과 사상가들 에 의하여 논의되어 온 특정한 철학 내용 체계로서의 현상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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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그러한 논 의가 가능하게 했던 현상학만의 독특한 관점과 태도 혹은 그러한 관점과 태도를 바탕으로 하는 탐구 방식으로서의 현상학이다.
애초에 훗설이 ‘철학을 하는 새롭고 급진적인 방식’으 로 현상학을 제안하고 있는 데서 드러나듯이, 현상학은 지금까지의 현상학적 논의를 관통 하는 개념, 이론, 대표적인 사상가들에게 친숙해지고 달통하는 일만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 다. 오히려 현상학의 독특한 관점과 안목으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실천적 탐구의 과정에 직접 동참하는 일을 그 의미의 한 축으로 포함한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한 현상학의 두 가지 함의가 항상 균형 잡힌 채로 추구되어 오지는 못한 것 같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은 대표적인 사상가들과 그들의 아이디어를 주석 하고 전유하는 데 머물러 있지, 실제로 그것을 자신의 탐구 방식으로 활용하는 일에는 소 극적이다. 그리고 그것이 불러 온 현상학에 대한 오해, 즉 “지극히 난해하다.”, “실제적이지 못하고 공허하다.” 등의 세간의 평가는 현상학이 표피적인 관심을 넘어 실제로 사람들의 생각과 행위를 인도할 급진적 학문으로서 기능하지 못해왔음을 반증한다.
현상학이 대중화되지 못하고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해왔던 것은 현상학자들 자신의 과 실이 가장 크다. 즉, 스스로의 관심사를 기존 개념의 구명이나 논쟁의 해결에만 집중해왔 지, 현상학이 갖는 탐구 방법으로서의 성격이나 그 과정을 명확히 하려는 노력을 도외시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훗설,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등과 같은 천재들을 경외하지 만, 도대체 그와 같은 천재들이 어떤 생각의 과정을 거쳐서, 어떤 탐구 경로를 거쳐서 그 토록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조우하게 되었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현상학이 담고 있는 급진 성은 멀리서 감탄만 하는 일로는 충분히 구현될 수 없다. 현상학자들 자신이 자신들의 탐 구 방식을 분명히 하고, 그것들을 공유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탐구에 동참하 도록 이끌어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길이 열리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일단의 학자들이 이미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흔히 현상학 영역 내에서 ‘실천 현상학(phenomenology of practice)’이라 불리 는 지향을 가진 사람들로서, 그들의 일차적 관심은 현상학의 방법론적 측면을 규명하고 확 립함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고 수행하는 것’으로서의 현상학 정립에 있다. 특기할만한 것은 그들 중 대부분이 흔히 실천적 영역이라 불리는 교육학, 임상 심리학, 의 학, 간호학, 특수교육학 등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며, 현상학이 질적 연구의 이념적 토대 로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하나의 탐구 양식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는 점이다.
2. 실천 현상학의 요구와 논리
실천 현상학의 주창자들, 예컨대 교육학 분야의 반 매넌(van Manen), 심리학 분야의 지 오르지(Giorgi)와 무스타카스(Moustakas), 간호학 분야의 벤너(Benner) 등은 모두 소위 실제 적 분야라고 불리는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통 철학자로서 자처하기 보다는 그들이 종사하는 실제적 영역에 대한 개화된 이해, 진전된 실천을 추구한다. 즉, 현상 학의 관점과 태도를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변용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며, 자신들의 실제를 접 근하고 이해하기 위한 탐구 양식으로 현상학을 바라본다. 이 장에서는 실천 현상학이 어떤 필요에 의해 제기되었으며, 어떤 기본적인 논리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한다.
2.1. 현상학의 의미와 특징
2.1.1. 현상학 개관
급진적 철학이라는 수식어가 결코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현상학은 철학사적, 이념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통철학으로부터 현대철학으로의 전환을 이루는 직접 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음으로든 혹은 양으로든 오늘날의 대부분의 철학적 관점들이 성립 하고 발전하는 데 현상학이 상당한 영향을 끼쳐왔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현상학에 대한 관심이 지대할 수밖에 없는 것도 또한 사실이며, 실제로 현상학은 다양한 학자와 유파를 통해서 인간과 그들의 삶에 대한 중요한 통찰들을 축적해왔다. 때로 그러한 통찰들을 공유 하고, 이해하는 일은 적어도 인문학도나 사회학도들에게는 필수적인 것처럼 간주되기도 한 다. 그러나 현상학은 비단 학문적, 이론적 영역에서의 관심뿐만 아니라 실제적 영역에 종 사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특별한 주목의 대상이 되어 오기도 했다. 현상학은 앎과 삶에 대한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을 요청하며, 그것은 이론과 실제 사이의 불일치 혹은 괴리라는 오래된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현상학은 인간이 의식(consciousness)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의식은 우리가 무엇에 관해 말하고 지적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며, 사 물은 오직 의식을 통해서만 그 진면모를 우리에게 드러낸다. 의식은 인간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 앎을 형성하는 유일한 통로이며, 만일 의식의 관여가 없다면 결국 그 것은 그 개인의 체험 세계와 무관한 것이 된다. 체험의 세계에 그 자신을 드러내는 모든 것들은 이미 그것을 체험하는 사람의 의식의 일부로 들어와 있을 때에만 그 면모를 드러 낸다. 그러나 의식은 또한 항상 무엇인가로 이행중(transitive)에 있다. 의식적이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세계의 ‘어떤 특정한’ 측면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며, 그런 맥락에서 현상학은 그렇게 드러나는 것으로서의 인간들의 세계를 탐색하는 데 직접적인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의식은 그 자체로서 직접적으로 기술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van Manen, 1997). 마찬가지로 의식, 혹은 체험을 하는 주체를 빼놓 는다면, 세계 역시 직접적으로 기술되는 일이 불가능하다. 이를 현상학에서는 지향성 (intentionality)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즉, 의식의 근원적인 구조는 지향성을 가진 것으로 파악된다는 뜻이다. 지향성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드러낸다. 우리가 하는 모든 사고는 항 상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결국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그렇 게 본다면 모든 인간 활동은 항상 지향된 것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의식 혹은 인식과 관련한 주체와 대상 사이의 불가분의 관련을 드러낸다. 이는 인식의 주체와 대상을 분리하 고, 인간과 세계를 나누며, 이론과 실천을 가르는 전통적인 사고에 획기적인 변화를 요청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앎의 주체와 대상의 상호관련성을 강조하는 지향성 개념은 현상학이 인간의 체험과 의 미에 대해서 특별히 주목하게 된 계기를 설명해준다. 전통 철학에서 해석되듯이 앎의 근원 이 어느 한 극단에 위치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앎의 주체와 대상 사이의 상호 작용, 구성 작 용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앎은 결코 자연과학에서 상정하듯이 고정 적이거나 객관적인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체험이라는 개념은 모든 종류의 개념화, 범주화, 대상화 이전에 전반성적으로 주어지는 원초적이고도 즉각적인 세계 경험을 지칭하 는 것이며(이근호, 2006), 오직 체험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양상을 확 인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체험이 담고 있는 의미는 비단 앎의 문제로서만 아니라 우리 삶의 지표이자 추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반 매넌(1997, p. 36)은 “체험이야말로 현상학 적 탐구의 시작점이자 종결점이다.”라고 주장한다.
체험 혹은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한 강조는 생활세계(lifeworld)라는 현상학의 독 특한 개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생활세계란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적인 삶 의 세계를 일컫는다. 우리가 가진 모든 지식이나 앎의 터전인 동시에 우리의 체험이 성립 하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체험이 성립하는 곳으로서의 생활세계는 전반 성적(pre-reflective)인 특성을 갖는다. 여기서 전반성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에 관 하여 생각하고 언어로 표현하기 이전에 이미 그것이 ‘주어져’ 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생활 세계는 종종 ‘즉각적인 경험의 세계(the world of immediate experience)’, ‘이미 거기에 있 는(already there)’, ‘미리 주어진(pregiven)’, ‘자연적이고 원형적인 태도(natural, primordial attitude)’ 속에서 경험되는 본래적이고 자연스런 삶의 세계로 표현되기도 한다(Husserl; van Manen, 1997, p. 182에서 재인용).
한편 생활 세계가 전반성적으로 주어져 있고 일상적이고 자연적인 태도 속에 삶이 영 위되는 곳이라는 말은 생활세계가 포함하고 있는 진실이 때로 무시되거나 소홀히 취급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일상적이라는 말에서 잘 드러나듯이, 생활세계는 우리의 특별한 관심 과 주목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그저 주어진 것으로서 또는 루틴(routine)으로서 살아내는 세계이기도 하다. 아무런 의미도 발견할 수 없고,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당연하게 어제처럼 오늘을 살아내는 세계이다. 그러나 현상학은 그 당연한 세계를 되짚어보고, 다시 생각해보 자고 주장한다. 우리가 묻어 버리는 삶의 진실과 의미가 사실상 앞으로의 우리 삶의 소중 한 자원이자 원천이라고 파악한다.
모든 체험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체험이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서 그 의미가 항상 우리에게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생활세계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 반적인 태도가 관성적 혹은 무비판적, 전반성적이라는 점을 지적했거니와 그러한 삶 속에 서는 어떠한 의미도 개입될 여지가 없다. 의미는 체험하는 순간에, 단순히 체험하고 있다 는 사실만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것을 찾고 드러내기 위한 특별 한 노력을 요청한다. 현상학은 환원(reduction)이라는 특별한 활동을 통해서 체험이 담고 있는 의미 혹은 의미 구조를 밝혀내려고 시도 한다.
환원은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태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종류의 앎과 이해를 더 이상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러한 이해 자체에 대해 심각하게 검토해보고 반성해 보 는 일을 뜻한다. 이는 다시 관성적, 전반성적, 무비판적인 삶의 태도를 잠시 멈추고, 우리가 체험하는 것의 의미에 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보고 점검해 보는 태도를 말한다. 환원은 우 리가 인간과 세계에 대하여 일상적으로 갖는 근거 박약한 믿음과 오해와 얄팍한 지식을 괄호쳐내는 일일 뿐만 아니라, 만일 그것이 우리의 순수한 이해를 방해하는 것이라면 심지 어 우리가 가진 가장 정련된 형식의 앎(예컨대, 과학)조차도 회의의 시선을 보내도록 요구 한다. 이와 관련하여 반 매넌(2001b)은 실제로 우리가 검토하고 반성해보기 이전에 주어지 는 “일체의 편견과 선입견을 중지하고, 모든 상정들을 괄호로 묶고, 제반 주장들을 해체하 며, 우리가 관심을 갖는 현상과 경험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회복하는 것”이 곧 환원의 의 미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는 환원에 대해서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상학적 환원은 지금까지 우리를 지배해 온 다양한 전통, 상정, 언어 그리고 인 식들을 소박하게 제거하거나 중지시키는 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체험의 실제 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하여 실제로 그것들과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는 일로 이루어진다(van Manen, 2001a, p. 3).
즉, 현상학은 환원이라는 아이디어를 단순히 일체의 편견, 상정, 선입견을 제거하고 소 멸하는 일이라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연구 현상에 관하여 우리가 지니고 있던 기존의 생각 이나 가설, 이론적 틀이 과연 무엇이었던가를 끊임없이 고민해보고 드러내는 일이라고 파 악한다.
요컨대, 현상학은 인간과 세계 사이의 역동적인 관련성을 바탕으로 우리 자신의 세계 경험, 즉 체험의 의미와 구조를 밝히고 드러내는 일을 표적으로 한다. 그러한 일은 저절로 이루어진다기보다 아주 특별한 종류의 노력을 통해서 획득되며, 그 과정을 인도하는 것이 바로 반성적 사고, 즉 환원이라는 아이디어가 된다. 이제 절을 바꾸어, 그와 같은 특징을 갖는 현상학이 어떠한 의미에서 현장의 실천가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되어 왔는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2.1.2. 현상학에서의 이론과 실제
아리스토텔레스가 삶의 형식을 이론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으로 개념화한 이래로, 실제 의 문제는 이론의 세계에 비해서 열등한 것, 보조적인 것, 혹은 이론적 탐구의 결과를 적 용하는 곳으로서의 부차적인 지위를 차지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7, 18세기 자연과학 의 비약적인 성취에 힘입어서 학문(이론)의 세계가 재편되고 우리 삶의 양상이(실제가) 급 격하게 변화되고 난 뒤에도, 이론과 실천의 불균형적인 관계는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그 간극이 점점 더 넓어져 왔다. 자연과학이 기반하고 있는 객관성과 일반화에 대한 신념은 국지적이고 예외적이며 부단히 변화하는 실제의 문제를 정상이 아닌 변태(anomaly)로서, 그래서 장차 해소되고 정리되어야할 심각한 문제로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의 세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변태와 문제들이 바로 그들의 생활세계이며, 그들의 앎과 삶이 구성되고, 의미가 구축되는 공간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현 상학이 그들에게 주는 교훈은 아무리 불규칙하고 예외적이라 하더라도 결국 그들의 생활 세계를 떠나서는 어떠한 앎도, 삶도 의미 있는 것일 수 없다는 점이다. ‘현상 자체로’라는 현상학의 오래된 표어야말로 바로 이점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경구라고 말할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간 전통적인 연구의 대상은 우리가 실제로 먹고, 마시고, 분노하고, 사랑하고 부대끼는 것으로서의 삶의 세계가 아니라 이론적 세계에 고착되어 왔다. 예컨대, 전통적인 연구 체제에서의 연구 관행을 살펴보자. 의례히 상당한 정도의 선행 연구들, 기 존의 이론들이 조사되고(문헌연구, survey), 그러한 조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문제를 형 성하고, 구체적 변인들을 설정하며, 연구 설계와 가설이 마련된다. 이미 연구문제 형성을 포함한 연구 과정의 대부분이 우리의 실제적 관심을 반영하거나 혹은 우리가 일상에서 당 면하는 삶의 문제들로부터 벗어나 있다(보통은 기존에 연구되지 않은 변인들이 무엇인가에 의하여 연구문제가 형성된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관행은 기존의 이론 체계에 대한 맹 목적인 추종을 불러오기도 한다. 기존의 이론적 틀 속에 함몰 되어서 삶의 현실을 외면하 고, 삶의 실제적 과정을 무시하고, 삶의 실천 양상을 도외시하는 경우도 생긴다. 혹은 공허 한 이론적 논의 속에 갇혀서 기존의 논리를 벗어나는 어떠한 것도 반 지식의, 반 진리의 멍에를 씌워 배척하는 태도로 일관하기도 한다.
반면에 현상학은 우리의 시선이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으로부터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모든 종류의 이론화 작업은 필연적으로 삶으로부터 한 걸음 비켜나는 일을 포함한다. 그러나 현상학은 이렇게 잠시 비켜서는 일을 통해서 얻어진 이해를 다시금 삶으로 환원시켜 가는 과정을 통해서 연구와 삶의 연속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기존의 이론 에 함몰되고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실제적 삶의 세계를 바탕으로 연구 문제를 형성 하고, 그러한 실제적 관심이 사실상 연구과정을 인도하도록 요구한다. 어떻게 보면 현상학 은 ‘이론’ 자체의 중요성보다는 실제에 대한 끊임없는 ‘이론화 노력’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2. 실천 현상학의 필요성과 논리
하이데거(1994, p. 328)는 “오직 하나의 현상학이란 것은 없다. 만일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어떤 철학적 테크닉을 일컫는 것은 아닐 것이다.”라고 역설 한다. 반면에 메를로퐁티(1962, viii)는 현상학을 특정한 철학 내용들의 체계라기보다는 하 나의 독특한 사고방식이나 스타일을 일컫는 것으로 보아야 함을 지적한다. 전자는 어떤 한 가지 방법이나 형식 속에 현상학을 가두는 일의 불합리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후자의 경 우는 현상학의 정신이 특정한 내용과 체계 속에 사장되는 일에 대한 우려를 포함하고 있 다.
현상학이 기존의 이론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 아니라 연구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실제의 세계에 대한 부단한 탐색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이는 현상학 이론 자체에 도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할 사실이다. 즉, 지금까지의 현상학적 탐색을 통해서 발견된 의 미, 통찰, 이론도 결코 금과옥조나 만고불변의 진리일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상학은 전문적인 현상학자들이 던져주는 탐구의 결과물들을 맹목적 으로 따르고 주석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현상학적 관점과 태도를 바탕으로 자신 의 실제와 실천을 살피고 탐구하는 일 역시 중요한 부분으로 포함 하고 있다. 실천현상학 의 당위성은 바로 이 점을 기반으로 해서 성립한다.
이상과 같은 논의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는 실천 현상학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 즉, 실천 현상학은 현상 자체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기 위하여, 그 현상이 우리의 체험 세 계에 그 자신을 드러내는 바대로 탐색하고 기술하려는 기술적(descriptive) 방법론이다. 그 것은 발견 지향적 방법이며 예기치 못했던 의미들의 출현까지도 포용하는 개방적 태도를 연구자에게 요구한다(Giorgi, 1997).
실천 현상학은 한 개인이 그의 생활세계에서 직면하는 도덕적, 윤리적, 사회적, 문화적 영향들을 최대한 배제한 채로, 그 현상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노력한다. 현상 학은 새로운 정보를 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체험 속에 이미 함축되어 있는 의 미들을 전유하고 해석하는 일을 표적으로 한다(Burch, 1989). 또한 현상학은 그 현상에 관 하여 밝혀진 어떤 새로운 의미를 권위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일을 의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실제로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세계 속에서 가능한 경험의 범위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어떻게 그것들이 기술될 수 있는지, 더불어서 어떻게 언어가 그러한 경험들을,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의미들이 상실되지 않은 채로 타인들에게 소통하 는 능력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실천 현상학은 체험에 관한 풍부한 기술을 통해서 그 체험 속에 담겨 있는 의미들을 포착하고 드러내고자 하며, 따라서 기본적인 질 문은 다음과 같다. 즉, “이런 종류의 경험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그것은 또한 내게 어 떻게 체험되는가?”
한편 실천 현상학이 공통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것으로서의 일상 세계를 기술하는 일 에 표적을 두고 있다고 하지만, 서로 다른 차원과 맥락을 강조하는 몇 가지 변형들 또한 존재한다. 예컨대 훗설의 초기 아이디어에 깊이 심취한 사람들은 의식 속에 드러나는 것으 로서의 현상의 본질들을 기술하는 일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Giorgi & Giorgi, 2003). 반면 에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지향을 쫓는 사람들은 현상이 포함하고 있는 반성적이고 실존적 인 차원을 드러내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어떤 개인의 자기감(sense of self), 공간 감(felt space), 시간감(felt time), 신체를 통한 감각(felt body), 타인들과의 관계(felt relationship with others) 등을 탐색하는 일에 더욱 치중한다. 전자가 보다 본질주의적 속 성을 띠고 있다면, 후자는 보다 해석학적인 주장을 나타낸다.
3. 실천 현상학의 방법
대부분의 현상학적 방법들의 출발점은 환원을 수행하는 일로부터 비롯된다. 환원은 연 구자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모든 종류의 편견이나 전이해를 일시 중단하거나 괄호로 묶어 내려는 노력이다. 종종 이 과정은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거나 혹은 완전무결 하게 편견을 제거한 상태라고 오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은 연구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를 끊임없이 다르게(새롭게) 보려는 노력이며, 연구 참여자들의 관점(그들이 실 제로 경험하는 것으로서의 세계)에 보다 적극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일을 뜻한다. 연구자 는 스스로 현상과 맞닥뜨려서 발생하는 어떤 종류의 놀라움이나 두려움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달버그, 드류, 그리고 니스트로 등(Dahlberg et. al., 2001, p. 97)은 이와 관련하여, “개방성은 진정으로 보고, 듣고, 이해하려는 의지의 표상이다. 그것은 그 현상에 대해서 연구자가 갖는 민감성이나 융통성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존경과 겸양의 태도마저 도 포함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환원이라는 아이디어는 연구자의 개방적 태도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그가 끊임없이 반성적 실천(reflective practice)의 과정에 참여해야함을 역설하고 있다. 일찍부터 실천 현상 학의 영역 내에서는 반성적 실천이 과연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 가에 관 한 다양한 논쟁이 있어왔다(Ghaye & Ghaye, 1998; Loughran, 1996; Reiman, 1999; Ussher, 2001). 그러나 그 모든 주장들이 현상학적 탐구의 요체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 중 많은 것들이 오직 체험의 기술적 혹은 표피적 측면에만 관심을 기 울일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반 매넌(Griffiths & Tann, 1992에서 재인용)은 반성의 세 가지 수준(각각의 것은 그에 선행하는 것보다 상위 수준임)을 구별한다.
첫 번째 것은 기술적 적용에 관심을 둔다.
두 번째 것은 어떤 행위의 기저에 놓여 있는 가정들, 경쟁하는 교육목표들의 가치 등에 관해서 관심을 기울인다.
세 번째, 그 리고 마지막의 것으로서의 ‘비판적 반성’은 교육 실제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조건 들과 관련된 도덕적, 윤리적 이슈에 관심을 갖는다(p. 77).
어떤 현상을 성공적으로 탐색하고 조사하기 위해서 관찰자는 처음의 표피적인 기술을 넘어 서야할 필요가 있고, 그 체험의 본질적인 의미를 찾기 위해서 거기에 덧칠해진 온갖 종류의 영향력들(도덕적, 윤리적, 사회적, 문화적)을 한 꺼풀씩, 한 꺼풀씩 벗겨 내야할 필 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현상학은 반성과 사고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과 사고의 대상과 내용이 제한되어서도 안 된다고 파악한다. 생활세계의 일상성을 깨뜨리려는 노력이 반성이요 사고라고 한다면, 관성적 무사고의 또 다른 형태인 독단과 편견과 아집을 해체하고 제거하려는 노력역시 오직 반성과 사고의 개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독단과 편 견과 아집은 한 개인의 심리적 성향에서만 출발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기존의 이론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나 함몰역시 또 다른 형태의 독단과 아집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결국 실천 현상학이 요구하는 것으로서의 반성은 일체의 예외도 허용치 않으 며, 영역과 대상과 내용과 정도가 제한된 반성과 사고가 아니라 우리의 힘이 닿는 범위의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된다. 결국 반성이란 열심히 생각하고, 검토하고, 되짚어 보는 일에 다름 아니다.
3.1. 자료수집 방법
다양한 질적 자료 수집 방법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보다 현상학적 접근에 유용한 것들 이 있다. 가장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것은 인터뷰에 있어서 내러티브의 사용, 저널이나 일 지, 참여 관찰, 연구자 자신의 반성 일기 등이다.
실천 현상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연구 참여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기술할 것을 요구한다. “당신의 전형적인 하루 일과를 기술해주 시겠습니까?”, “그 특정한 사건에 대해서 보다 상세히 기술해주시겠습니까?” 이와 같은 방 식으로 대화를 열어가는 것은 보다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질문, 예컨대 “당신의 역할은 무 엇입니까?”나 “우울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등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연구자의 목적은 연구 참여자들의 상황에 스스로를 대입해 보는 것이고, 더 나아가 그 상황 속에 담겨져 있는 실존적 차원들을 밝혀내고 그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가 이 하루를 어떻게 경험했을까?”를 묻는 연구자가 있다 면, 그는 아마도 체험된 것으로서의 시간, 공간, 체감, 관계(lived time, lived space, lived body, lived relationship) 등과 같은 것들을 살펴보려고 할 것이다. 즉, “연구 참여자가 했 던 특정한 그 경험은 체험된 것으로서의 공간감이라는 견지에서 비추어보면 어떻게 될까?” “가령 그는 안전하다거나 자유롭다고 느낄까, 혹은 노출되었다고 느낄까, 아니면 좁은 곳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가졌을까?” 체험된 것으로서의 시간의 견지에 비추어 보면, “연구 참여자는 이것을 더디다고 느낄까, 불연속적이라고 느낄까, 혹은 지루하다고 생각하고 있 지 않을까?”
3.2. 자료 분석 및 글쓰기 과정
현상학적 이해는 실존적, 정의적, 상황 의존적, 그리고 체화된 것으로서 드러나며, 따라서 그것은 종종 우리가 가진 인지적 능력이라기보다는실제적, 직관적 능력에 호 소하는 경우가 많다. 강력한 현상학적 텍스트는 고유한 것과 공유된 것 사이의, 특정 한 것과 초월적인 의미 사이의, 그리고 생활 세계의 반성적인 영역과 전반성적인 영 역 사이의 어찌할 수 없는 긴장 속에서 성장한다(van Manen, 1997, p. 345).
이와 같은 긴장을 해소하기 위하여 연구자들은 부분과 전체 사이에, 그리고 경험과 인 식 사이의 놓여 있는 변증법적 관계에 기반 한 반성적 분석의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Finlay, 2003). 허츠(Hertz, 1997, viii)가 지적하듯이, ‘반성적이라는 것은 삶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그 경험과의 대화적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주체와 대상이 상호간에 영향을 미치고 더불어 서로가 서로를 구축하게 하는 관계성의 측면들과 차원들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글쓰기의 과정은 탐구를 통해서 얻어지는 이해에 깊이를 더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 즉, 그 경험이 가진 복잡성이나 모호성을 임의로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져 있 는 다원적이고 다층적인 의미들을 드러내는 일을 표적으로 한다. 글쓰기와 관련한 어떤 기 법이 동원되든 간에 실천 현상학의 핵심은 기술되는 체험 세계의 복잡성이나 모호성을 포 착하고 드러내는 일이다. 그래서 때로 현상학적 글쓰기는 시작(詩作)에 비유되기도 한다. 반 매넌(1990, p. 132)은 ‘현상학적 글쓰기란 저자가 존재 자체에 관한 민감한 파악을 끊임 없이 지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베더(Vedder, 2002)는 어떻게 은유(metaphor)들이 의미 를 창출할 수 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존재를 표현하는 능력을 갖게 되는지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은유에 있어서 그것은 목하 어떤 경험적 실체를 기술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존재 속에서 그 이전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모종의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다 … 시는 영상적 이미지를 생성한다. … 그리고 그러한 이미지는 바로 그 존재이자 그 존재의 표현이 된다(pp. 206-207).
3.3. 현상학적 연구에 대한 평가
현상학적 연구의 질은 독자들로 하여금 연구자의 발견을 통해서 얼마나 자신과 타인들 의 세계에 관해서 새롭고 보다 심화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가에 달려 있다. 포 킹혼(Polkinghorne, 1983)은 독자들이 현상학적 연구의 힘과 진실성을 평가하는 네 가지 기 준을 제시한다. 그것들은 곧 생생함(vividness), 정확함(accuracy), 풍부함(richness) 그리고 우아함(elegance) 등이다. 독자들의 주의를 끌어당긴다는 의미에서 이 연구는 생생하게 묘 사되고 있는가? 독자들은 자신들의 경험에서 혹은 그 상황을 직접 머릿속에 그려봄으로써 그 현상을 인식할 수 있는가? 이 연구는 독자들에게 충분한 감정적 몰입의 기회를 제공하 고 있는가? 끝으로, 그 현상은 우아하면서도 명료하고 또한 날카롭게 기술되고 있는가?
물론 이와 같은 평가의 기준은 각각의 연구자들이, 저마다 채택하고 있는 인식론적 입 장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많은 질적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연구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참여자를 통한 타당성 확보(participant validation)' 방안을 채 택하고 있다. 연구 참여자가 연구자의 기술이나 해석에 동의할 때, 곧 그것이 연구자 자신 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찬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연구의 결과나 발견물은 특정한 상황이나 조건에서 나온 것이며, 따라서 또 다른 연구자들에게, 또 다른 연구 상황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애쉬워드(Ashworth, 1993) 같은 사람은 참여자의 평가를 지 나치게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참여자들의 관심이 오직 그들의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자기상(socially presented selves)’을 보호하는 데만 전념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자를 통한 타당성 확보라는 것은 문제가 있는 방식이다. 사실상 연구 상황에서 참여자들이 자신들의 경계의 벽을 낮추고, 무엇 무엇인 체 가 장하지 않고, 실제로 마음을 여는 ‘안전한 분위기(atmosphere of safety)’를 형성한다 는 것은 좀처럼 어렵기 때문이다(p. 15).
이상에서 드러나듯이 타당성의 문제는 실천 현상학이 앞으로 해결해야할 중요한 방법 론적 숙제 중의 하나이며, 후속되는 연구 노력이 절실히 요청되는 지점이다. 현재로서는 애쉬워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구 참여자들의 평가가 현상학적 작품을 평가하기 위한 중요한 원천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동료 연구자나 질적 연구에 경 험이 풍부한 조언자들의 다양한 견해 등을 포함시키는 등의 노력을 통해서 연구의 신뢰성 과 타당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
4. 실천 현상학의 글쓰기
글을 쓰는 이유는 저자 자신이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 할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F. Scott Fitzgerald
사람들은 작가가 인간의 내면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실제로 많은 것을 알지 못하며, 바로 그 렇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다. 모든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서 - Margaret Atwood
내가 말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볼 때까지, 내가 생각한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어떻 게 알겠는가? - E. M. Forster
4.1. 글쓰기의 중요성 및 구조
일반적으로 글쓰기는 연구 과정의 일부분으로서 간주되어 왔고, 따라서 그만큼의 가치 를 인정받아 왔다. 그러나 실천 현상학은 글쓰기의 가치는 그것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라고 파악한다. 글쓰기는 전체 연구 과정의 한 부면(phase)으로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글쓰기 자체가 연구의 전부라고 주장한다. 실천 현상학에 있어서 탐구는 곧 반성하 는 것이고, 반성은 곧 사고하는 일이며, 사고는 다시 글쓰기 작업을 통해서 드러난다. 글쓰 기는 생각을 지면으로 옮기는 과정이다. 그것은 반성(사고)하는 일과 불가분의 관련을 갖 는다.
첫째, 글쓰기는 우리를 자연스럽게 반성과 사고의 영역으로 인도한다. 일반적인 대화나 말하기의 경우와는 다른 태도와 자세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와 자세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으로서의 사고 과정과 다르지 않다.
둘째, 글쓰기는 우리가 생각을 통 해서 직관하고 통찰한 내용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 실천 현상학이 추구하는 형태의 연구는 자신만의 깨달음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이 그 깨달음을 이해하고, 그러한 이해의 결과로 그들의 실천이 개선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현상학적 글쓰기의 역할은 드러난 현상 자체의 의미를 기술 속에 담아내는 것이다. 현 상의 본질을 밝혀내는 일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천 현상학은 종국의, 고정된, 절대적이고 유일한 것으로서의 의미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파악한다. 현상학 적 글쓰기는 체험의 세계 내에서 어떤 현상이 갖는 풍부한 의미들을 기술해 내려고 시도 한다. 그렇게 본다면 글쓰기는 현상학적 탐구의 과정이자 동시에 산물이 된다. 현상학적 글쓰기는 우리로 하여금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며, 그 현상을 새롭고 신선한 시 각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반 매넌(1997)은 다음과 같이 시사한다.
인간 과학적 연구는 본질적으로 언어적 프로젝트이다. 즉, 체험 세계가 포함하고 있는 다양한 측면과 차원들을 반성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또한 글쓰기의 과정을 통해 서 다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고 알아 볼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체험의 세계에서 맞닥뜨리는 것으로서 인간의 행동, 행위, 의도, 경험들에 관하여 살아 있고, 저절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기술(텍스트)을 제공하는일로 구성된다(p. 125).
인간의 의미는 오직 텍스트, 즉 현상학적 글쓰기를 통해서 소통될 수 있다. 반성을 통 해서 연구자는 체험 속에 있는 의미 구조들을 식별할 수 있게 되며, 그것은 글쓰기를 통해 서 소통이 시도되고 더 나아가 해석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연구 방법론으로서의 실천 현상학은 반성(사고)과 글쓰기라는 두 축에 의하여 지지되고 있다. 물론 반성과 글쓰기의 과정은 제각각 이루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나선형적 순환과정을 통해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생각이 글로 표현되고, 다시 그 글은 더 깊은 사고와 반성적 검 토를 통해서 보다 정련된 형태로 성장한다.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실천 현상학은 독특한 글쓰기의 형식마저도 제 안하고 있다. 질적 연구의 글쓰기가 보통 기술과 해석이라는 이원적인 체제로 구성되어 있 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천 현상학도 일화와 해석이라는 두 가지 장치를 함께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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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반적으로 일화는 짧은 이야기, 그러면서도 나름대로의 교훈과 의미를 담고 있는 이야기를 뜻한다. 독자들로 하여금 연구자가 연구하는 현상이 어떤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그 의미 가 어떻게 전유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글이다. 따라서 일화는 다양하고 풍부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어야 하며, 그 맥락과 상황을 얼마나 생생하게 전달하는가가 관건이 되는 이야기 형식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생생하다’는 것이 단지 ‘상세하 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때로 진부한 일상사의 나열은 독자들에게 식 상함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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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해석이란 일화를 통해서 드러나는 의미들을 연구자 나름대로 체계적으로, 논리 적으로, 혹은 학문적으로 풀어내는 글이다. 해석은 연구자 자신의 주관적 해석의 틀에 입 각하여 그가 발견한 의미를 독자들과 공유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연구자의 독창성과 사 고의 깊이가 어느 정도나 되는가가 관건이 되는 글의 형식이다. 여기서도 주의해야 할 점 은 연구자의 해석이 독창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상대적인
(독단적인) 견지에서 글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연구자의 해석이 객관적이어야 한다거나 혹은 읽는 독자들 모두가 반드시 동의해야 하는 것이 아니 라 하더라도 간주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글, 다시 말해서 상당한 정도의 개연성과 보편 성을 확보한 글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4.2. 현상학적 글쓰기의 예
앞에서 실천 현상학의 글쓰기 구조가 한편으로 일화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기술과, 다른 한편으로 그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심층적 해석으로이루어져 있음을 지적했다. 여기서는 현상학적 글쓰기의 한 사례를 직접 소개함으로써 실천 현상학의 글쓰기가 갖는 특징들을 독자 들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4.2.1. 일화기술의 예
4.2.2. 해석의 예
5. 나오는 말
연구의 논리라는 측면에서 파악할 때, 실천 현상학은 독특성(uniqueness)과 보편성 (universality) 사이의 변증법적 탐구 양식으로 드러난다. 일차적으로 실천 현상학은 객관적 이고 일반적인 것들 사이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연구 대상의 고유하고 독특한 측면을 관 심의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작위적이고 독단적인 해석을 배격하며, 오히려 그것들을 통해 연구 대상에 관한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차원을 드러내려고 시도한다. 또한 현상학은 연구자 자신의 주관적이고 독창적인 통찰을 강조하되, 그 통찰을 상호주관적인 이해의 범주 내에서 소통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연구의 실제라는 측면에서 파악할 때, 실천 현상학은 사려 깊은 글쓰기와 글쓰기를 통 해서 더 익은 사고와 생각에 도달하는 변증법을 지향한다. 구체적인 기법과 형식과 절차를 처방하려 들기보다는 끊임없는 반성과, 쓰고 다시 쓰고 또 고쳐 쓰는 일을 요구한다. 생각 을 통해서 글이 가진 제약을 넘어서려하고, 글쓰기를 통해서 생각을 다듬으려고 한다.
동시에 현상학은 연구의 논리와 실제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 위치하고 있다. 그것 은 순전한 이념형으로도 혹은 맹목적인 형식이나 방법으로도 감환 되기를 거부한다. 그리 고 이 모든 변증법들 사이에서 특별한 균형감각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이 균형감의 훈련이 바로 현상학이 질적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데 공헌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나는 믿는다. 기 술과 해석, 반성과 글쓰기, 독특한 것과 보편적인 것,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주관적인 것과 간주관적인 것, 이론과 실천, 삶과 연구, 이 모든 것들을 분절된 것이 아니라 연속적 인 것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현상학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질적 연구 방법론으로서의 현상학 - 독특성과 보편성 사이의 변증법적 탐구 양식
: 질적 연구 방법론으로서의 현상학
Phenomenology as a qualitative research methodology: A mode of dialectic study between uniqueness and universality of the phenomenon
- 간행물명 : 교육인류학연구
- 권/호 : 교육인류학연구 제10권 제2호 / 2007 / 41~64 (24pages)
- 발행기관 : 한국교육인류학회
- 간행물유형 : 학술저널
- 주제분류 : 교육학
- 파일형식 : PDF
초록
Applied to research, phenomenology is the study of life experiences or lifeworld-the world as we immediately experience it rather than as we conceptualize, categorize, or theorize about it. Phenomenology asks, “What is this experience like?” “How does the living world present itself to me?” In order to answer those questions, the phenomenology of practice suggests two methodological axes of phenomenological research such as reflection and writing. Reflection (thoughtfulness) is the word that most aptly characterizes phenomenology itself and the practice of phenomenological research is the ministering of thoughtfulness. At the same time, phenomenology edifies thoughtfulness through the practice of writing. In sum, this study discusses the dialectic nature of phenomenological inquiry.
Phenomenology seeks after overcoming the traditional barrier of the dichotomy between subject and object, theory and practice, life and research, and uniqueness and universality. According to this spirit, we should not confine phenomenology only within a particular philosophical or logical system, but try to appropriate it as our fundamental orientation or style (that is, methodology) with which we explore our world and ourselves.
목차
1. 들어가는 말
2. 실천 현상학의 요구와 논리
3. 실천 현상학의 방법
4. 실천 현상학의 글쓰기
5. 나오는 말
참고 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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