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의료인문학(들)과 한국 의료인문학의 자리* (Philosophy of Medicine 2023)
최은경(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인문·의학교육학교실)

 

1. 서론

의료인문학은 아한국에서 생소한 학문이다. 한국에서 의료인문학을 설명할 때 대부분은 이 학문이 설고 지의 학문에 가깝다는 반. 하지만 한국에서 의료인문학 중 중요한 분과학문으로 여겨지는 의사학(醫史學, history of medicine)이 의과대학 내에 자리 잡은 것은 만 75년 전인 1947년이다.1) 방 후 를 정비하는 의 상황에서도 의학의 역사를 설명하고 탐색하는 것이 의학교육에서 설다고 여겨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학이 한국에서 새로운 형태로 형성되어야 할 이 시기에 의사학 (醫史學)학문이 의학 아카데입된 식은 여러 가지로 미롭. 아마도 대다수 의사에게도 의학의 역사를 배워야 하는 물음에 대해 명이 나지는 을 것이다. 의과대학에서 소화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은 과과 비해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럼에도 의사학 과목이 오늘날까지 한국 의과대학에서 많이 가르쳐지고, 일종의 중요한 교양과목과 같이 남겨져 있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2) 그것은 인문학이 의학이학문에 영향바와 여러모로 관지어 생각하지 을 수 없다. 서양에서는 중세 대학 때부고전과 문구하는 기이 모학문 연구에서 필수였다. 의학 역시 갈스를 비롯한 위대한 이론가들의 원전을 우는 것이. 과거에는 역사학적 문을 고하는 것과 의학은 개가 아니. 역사적 리는 다르나 한의과대학에서 고전 원전을 는 것이 으로 아 있는 것 한 이러한 관적으로 이해수 있다.

의학에서 과학적 법론과 임상 증례 방법론이 부상하기 시작한 19세기 이에도 문화와 문의 비구는 의학의 한 법론으로 남았. 르나르를 중심으로 실험의학 법론이 등장하고 실험실 내 구가 지식 생산 법론이 되으나 질병의 과거 모이 어하였는 지는 실험실에서 재현되기어려. 헌의 비판적 검토를 통해서 질병의 역사 지리적 분포를 탐구하는 것은 초기 의학사의 방법론이었고, 이후 학제로서의 의학사가 되었다.3) 한국에서 의학사는 제국대학 의 영향을 받은 식민지 의학 엘리트들의 교양으로 처음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제국대학에서 학부와 사를 마친 윤은 해방 후 두종함께 대학의과대학에 의사학실을 설립 하고 대한의사학회 창립을 이하면서 의사학이 의학교육의 분과로 는 데 기여하였다. 여기에는 그가 토제국대학에서 형성한 양주의적 관심이 영향을 것으로 작된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의료인문학의 역사에서 오래된 의사학의 역사는 곧잘 누락된다. 이는 학문으로서의 의료인문학이 의과대학 내에서 등장한 이와 이전의 역사가 절된 . 그러나 으로 한국 의학의 역사에서 의료인문학을 소거시으로써 한국 의학의 성장과 의료인문학을 개로 간주하는 경과도 관없지 . 이러한 경은 한국 의학의 맥락에서 한국 의료인문학의 위치를 사유하기 어게 만. 나아가 의학의 주요한 요소로서 의료인문학의 위상과 역할을 고려하기 난망하게 만.

본 글은 다양한 의료인문학의 맥락과 갈래 속에서 한국 의료인문학의 역할을 탐색하는 것을 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우‘인문학으로서의 의학’, 의료인문학이 의과대학에서 하나의 학제로 형성되어 온 과정을 추적한다. 특히 전인적 인간 형성을 표로 하는 인문학 부 가 타인에 대한 연공감 등을 요청하는 의과학 반성의 요구와 으면서 의학교육에 강조되는지를 살펴본다. 1990대 이국내에 부상한 의료인문학 도입 경으로서 의학교육의 글로라이제이을 살, 이를 의학을 인문학적 요청이라는 측면에서 비적으로 검토한다. 마지으로 한국 의료인문학의 위상과 역할을 ‘전문성’과 ‘’이라는 역을 로 들며 제하고자 한다.

1) 194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수립된 의사학교실이 수립된 해방 후 최초로 설립된 의사학 전담 부서이다.
2) 2014년 예방의학회에서 전국 의과대학 의료법규와 인문사회의학 교육현황을 조사한 데 에 따르면 60% 이상의 대학에서 해당 명칭으로 개설되어 있다. 의료법규 및 인문사회 의학 교육개선 특별위원회(2014).
3) 최초의 근대적 의미로 의학의 역사에 관한 서적을 남긴 사람은 커트 스프랭글(Kurt Polycarp Joachim Sprengel, 1766-1833)이었다. 그는 실용적 문헌 고찰을 통해 문 화의 역사로부터 의학의 이론을 추론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4) 홍종욱(2018), 185-204. 홍종욱은 윤일선이 교육을 받은 구제 고등학교와 제국대학 이 ‘교양주의’의 산실이었고, 그 ‘교양주의’는 ‘학력엘리트의 신분문화’를 낳았다고 설명 한다. 윤일선은 해방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자 초대 대학원장을 역임하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의사학교실이 설치·운영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2. 의학교육에서의 의료인문학

“인문학으로서의 의학”은 달리 말하면 ‘의생명과학으로서의 의학’이 급부상한 후 만들어진 거울상이다. 과거 의학은 이론과 의학 간의 연결고리가 강하였다. 하지만 과학적 법론이 부상하고 주화되면서 문헌 탐구와 은 의학의 래된 인문학적 법론은 일의 그, 여물로 남았. 우가 '문화'에서 지한 상호 이해 불능한 문화처럼 의과학과 인문학은 상호 다른 두 문화의 지칭처럼 여겨지기도 하였다.5) 그러나 의학에서 인문학적 요소가 완전히 배제된 적은 없다. 도리어, 인문학적 법론이 과학적 법론으로 대체되면 록 오히려 인문학과 의과학은 어더욱 더 긴장된 관계에 여 있다고 수 있다. 1919년 오슬러가 마지대중 강연에서 의과학과 인문학의 ''을 비을 때 그는 과거를 히포크스와 갈스를 아는 것만으로 진료하기에 했던 시간으로 상한다.6) 주의 시대에 접어 과학 법론이 더욱 많성하면서 의과학 법론은 인문학적 위와 무게가 받아들일 만한지, 과학 이론에 비어 효과적인지 물. 반면 인문학은 도리어 의과학의 법론에 비어 인문학의 효용을 고 되리고자(revival) 하였다. 의학 지식이 점차 세분화되고 교육제도가 격하고 과학적 법론이 기를 잡았던 20세기 전반, 도리어 오슬러와 같은 의사들은 의과학에 대비되는 의학의 오랜 이상은 인문학에 있으며, 의학교육의 핵심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보았.7) 그것은 질병과 병리로 환원되지 는 인간에 대한 은 이해를 바으로 한 동정과 공감이 인간을 치유할 수 있다는 이상을 전제로 한 것이. 오슬러가 보기에 과학은 상대적으로 냉혹하고, 인간을 전체적인 존재로 간주하지 않으며, 비인간화할 가능성이 높아서 인문학을 갖춘 의학은 이러한 과학의 독성을 치유할 수 있는 해독제와 같은 것이었다.

오슬러 등의 우려 이'의료인문학'이 하나의 별도 영역이자 학제 로서 등장한 것은 1990년대로 접어들고 나서이다. 의료를 형용사로 조합어인 '의료인문학(medical humanities)'이 하나의 간-학문적인 학제로서 와 유을 중심으로 의학교육의 새로운 물결로 도입되 기 시작하였다. 의학의 인문학은 의학의 '비인간화'에 대한 우려, 고령화로 인한 만성 질병 중심의 의료 이용의 시대의 도래 등에 힘입어 의과학에 대한 환희가 잦아든 이후에 본격적으로 중래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1960-70대에도 인문학에 가운 학문으로 생명리학이학제가 새게 등장하였다. 이 학제는 주로 기존에는 생각하지 못했 던 생과 음의 리적 문제를 다루으며, 의료 자원 분와 인간 대상 연구의 리적 이등 주제를 . 한 에드문드 그리나 에은 명망 높은 의사-학자들은 오슬러의 이상을 이어받아 생명리학 학제 내외에서 교류하며 '인문적 의사' 에 대한 이상을 논의해 나. 문학 전공자들을 중심으로 개별적인 의료인문학 교육들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서사의학에 대한 관심이 생 겨난 것도 이때라 할 수 있다.

다면, 의료인문학이학제가 본격 등장하기 이전인 이 시기에서 다의학 내 휴머니즘, 또는 인간학이란 무엇일까. 그리는 르상스와 계주의에서 비롯된 휴머니즘의 이상이 의학의 인간적 가치에서도 숨쉬어야 한다고 보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요소로 자하면 이를 러서는 안 된다고 보.8) 그가 보기에 은 문학적 교육학적 이상이, 교육적 인식론적 이상(그리스 어원으로 paideia)과에 대한 공감''(그리스 어원으 로 philantropia) 가지 요소를 것이. 의학 내 휴머니즘 (humanism in medicine)은 의사가 인식론적으로 언어와 기예를 갖춤과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환자에 대해 의사가 정념적인 감정을 가지는 것 둘 다를 의미하였다. 전자는 자유게 계된 인간이라면 갖추어야 할 기다면 자는 관적 치료라는 위를 어서 인격으로서의 환자가 가지는 유일을 마주하는 것이. 그리전자의 표를 위해 고전 언어의 습득과 문헌의 독해 등 전통적인 인문학 훈련에 반드시 기댈 필요는 없다고 보았. 하지만 구에게도 속되지 교육받은 자유인으로서의 의사는 비판적으로 현상을 바라보고 사고하는 훈련을 거쳐야 했고, 단지 기술자인 동시대인으로 부터 자신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였다. 

5) Snow(1959)/ 오영환 역(2001).
6) Osler(1919), pp.1-7.
7) Osler et al.(2002).
8) Pellegrino(1974), pp.12881294.

그리가 의학교육의 인문학 필요성을 강조한 데에서 수 있 , 의학 내 인문학 전통의 재소환은 20세기 들어서 과학적 기술의 독점과 방법론의 강화에 대한 반발로 제시되었. 의과학 법론의 대는 주로 가지 차원에서 기존의 의사상에 대한 위협처럼 여겨. 과학기술에 대한 으로 인해 한기능인으로 전할 것에 대한 우려의 한으로 환자를 지 기술의 대상으로 소외시킬 것에 대한 우려가 존재. 기간 의학 내 '인문학'용어가 지하는 바는 때로는 교양인으로서 의사가 지녀야 할 품성이었고, 의사가 가져야 할 인간에 대한 이해였다. 의 비적 해을 통한 인 문학적 법론은 전자를 위한 방편자는 고통을 이해하고 동정과 공감을 나는 인문학적 치유 이상이. 그러나 두 가지가 꼭 '인문학'이란 용어로 통합되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채로 남아 있었. 왜냐하면 인문학적 법론과 인문학적 치유 이상이 일치하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갈등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역시 인문학의 특성에서 'paideia'의 요소와 'philantropia' 의 요소를 구분하여 제시으로써 다 의학에서 필요을 설하였 으나, 적은 똑같않았. 하나는 의사가 교육받은 젠틀맨이자 사회의 주요 구성원으로서 지녀야 할 역량과 품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의사가 환자를 대할 때 발휘해야 할 덕목에 가까웠다.

의사가 기능인 이상의 직업인이 되기 위해서 인문학은 우초 교교육으로서 의사로서의 성장에 기여해야 . 의학교육 영향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과학적 구 능력을 양하는 것을 강조한 한 인문학은 기초 교교육으로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고 보.9) 

9) Doukas(2010), pp. 318–323. 플렉스너는 자신의 보고서를 통해 과학 커리큘럼 중심 으로 미국 의학교육을 재편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으나 15년 후 '의학은 오늘날 문화적 철학적 배경을 잃어 가고 있다'라며 후회하였다고 한다. 플렉스너는 의사는 환자 돌봄의 영역에서 특히 인문학적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인문학은 양인으로서의 의사를 비하는 기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 1984년 펠레그리노는 의학 내에서 인문학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에 대해 더욱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었다. 10) 의사는 인문학을 동반자적 구로 면서

  • 1) 환자와의 관계에서 그리고 과학자 사회에서 언어를 읽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사고 능력을 교육하는 교양을 얻고 마음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 2) 과학적으로 설명 하거나 측정하기 어려운 현상의 심상(imagination)을 자유롭게 하며
  • 3) 인간으로서의 '영혼의 즐거움'을 함양할 수 있었다.

, 초교양인 뿐만 아니라 임상의로 성장하는 데에도 인문학은 임상의로 성장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되는 지속적인 자양분이 될 수 있었, 그 성장 과정에서 더욱 성해질 수 있. 세 가지 모환자의 고통이라는 미망 한가운데에서 의사가 한 명의 계된 자유로운 으로 살아갈 수 있는 해결.

인문학이 의사의 성장에만 도거라 믿은 것은 아니. 초기 의료인문학자들은 실천적 영역에서 인문학은 환자를 단지 기술의 대상으로 축소하지 않고 환자의 고통의 의미를 해석하고 포용하는 것을 도울 거라 보았. 인문학적 양에 대한 강조가 환자에 대한 이해를 이리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특히 인문학적 양에 대한 강조가 지 자들만의 리트주의적 취향과 이해로만 결된다면 공감 등의 성을 강조하는 것이 무의할 것이다. 이것은 '인문학(humanities)' '인문주의(humanism)'란 단어에 내장이기도 하다. 래전 로마의 시세로(Cicero)가 인문과 부라 는 용어를 결합한 소위 liberal arts, "studia humanities"라는 인문학 을 설한 이래 인문학은 교육의 이상으로 자리 잡았. 하지만 paideia와 philantropia가 같은 인문학(humanities)에 묶일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고대부터 의문의 여지가 있었.

  • 이를테면 로마 저술가 아 울루스 겔리우스(Aulus Gellius)는 humanitas와 philanthropia의 결합이 잘못된 해석이라고 주장했다.11)
  • 독일 교육철학자 프리드리히 니데 머(Friedrich Niethammer) 역시 시세로의 인문학 개념을 재발견하면 서 제2의 인문주의(humanism)운동을 불러일으켰으나 동료 시민의 교양을 부흥시키는 박애주의 교육(philanthropic education)에는 반대했다.12)
  •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양으로서의 인문학의 특징이 희석되면서 오늘날 인문주의는 로크와 루소의 교육의 이상, '인간에 대한 사랑', 즉 박애주의적 교육의 의미에 더 무게를 두는 것으로 이해된다.

서구의 역사에서 교육과 의술은 박애주의라는 전통을 공유한다. 특히 의료에서 각인간에 대한 아가페적 헌신, 주의적 전통에 대 한 강조는 의사-환자 관계치유(healing)라는 이상을 소환한다. 인으로서의 의사가 이러한 치유의 이상과 마나 밀하게 결합할 수 있을지는 운 물음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신으로부터만 가능하다고 여긴 치유의 이상을 세속 인간의 몫으로 넘기는 순간 긴장은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 그리를 비롯한 의학-인문학의 구자들은 이 사라진 시대 의술의 모은 의사-환자 관계 속에 있다고 보. 은 치유하는 관계로서 환자-의사 관계가 내하는 본질적 구속에 가, 의과학만으로는 히기 어려운 성질을 고 있.13) 의과학 방법론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치유하는 관계로서의 환자-의사 관계가 소외될 가능성이 있는데, 특히 고통에 대한 적절한 이해력이 훼손될 수 있었. 고통은 지 생물학적 지에서 한 사람의 유기체로서의 조화가 실하는 것만이 아니. 유기체로서의 조화에 별 이상이 없더라도 고통은 겪을 수 있었다. 체적 고통을 어 고통은 한 사람의 자의 인생에서 상실과 훼손의 위협에 을 의하기 때문이. 은 의학교육에서 인문학의 장소를 물으면서 과학으로 국소적이고 제한된 이해만으로는 환자가 가져오는 기대, 이해, 판타지, 의미, 공포, 두려움을 직면할 수 없고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았다.14) 의료인들은 계속 환자의 고통과 음을 마주할 수에 없다. 이를 받아들이는 법은 인간의 어를 다루고 소화하고 어 이면을 다수 있는 능력을 통해서이다. , 인문학적 이해와 능력은 고통에 관한 과학적 구와 개념화를 지하고 고하 는 데에 도것으로 기대되. 

10) Pellegrino(1984), pp. 253-266
11) Adler(2020).
12) Becker and Becker(1992). p.801.
13) 펠리그리노는 임상의학의 내재적 모럴(internal morality)는 아리스토텔레스식의 ‘좋음’의 목적 속에 내포되어야 하며, 결과주의적 목적과는 구분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 의료전문직 윤리의 근간이라고 주장한다. Pellegrino(2011a), p.63 참조.
14) Cassell(1984).

3. 서구의 의료인문학 교육 등장과 글로벌 의료인문학, 한국 의료인문학

국과 등지에서 1990대 들어 의료인문학이 일의 새로운 물결처럼 등장하였을 때 에서 언급한 의료인문학 교육제 모를 다루고 있다고 보.

  • 1972년 문학 전공자가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 교수로 처음 임명된 이후 북미에서는 문학 전공자들 이 주도하여 <문학과 의학> 붐을 주도하였고 의료인문학을 대표하는 흐름으로 자리 잡았. 이 당시 의료인문학은 의사들의 감성적 성장과 환자의 질환과 고통을 하나의 스토리로서, 서사로서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고, 사회적 변화와 그 속의 의사의 위상 변화는 좀 더 다른 이야기였다.
  • 1990년대 들어 환자 중심 권리의 등장과 의료의 시장화, 관료화 등의 변화 속에서 의료계에서도 기존의 견고했던 교육받은 젠틀맨이라는 의사의 위상이나 그의 가부장적인 권위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의사라는 전문직업성 교육이 새롭게 등장하였고, 변화하는 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전문가 형성을 목표로 하였다. 펠레그리노 등이 덕 공동체로서의 의사 직업공동체를 강조하고 전문직 관계의 덕목을 촉구하였을 때 이는 의료인문학 교육의 얘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15) 미국의 전문직업성 교육 주창은 전미 의과대학 학장협의회, 졸업 후 의학교육 인증위원회, 미국 내과의사회 등 에서 이루어졌으며, 근본적으로 이들 의료계가 사회와 맺고 있는 책무와 깊게 관련지었다.

국내의 맥락좀 더 다르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 의과대학에 서 의료인문학 교육이 어떻게 서구와 다른 영역들을 포괄하게 되는 지에 관해서는 복규, 중의 글에서 잘 다루고 있다.16) 의사학이란 오래된 학제가 있었지만, 한국에서 의료인문학 교과목이 본격 소 개된 것은 2000년 의사 파업 이후였다. 처음으로 단체 행동에 나서면서 의사들은 소위 '사회화'의 과정을 겪었고, 전문직으로서의 의사의 힘을 각성하였다. 인문학 교육은 사회와의 '소통'의 측면에서 강조되었. 이는 의료계가 사회로부터 고립된 측면을 탈피하고 사에서 재차 리을 발하는 데에 도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과거 국에서 교육득한 학생들이 의과대학에 진입으로써 전문으로서 지위를 고히 하는 데에 도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면, 다시 인문학 교육을 통해 사회에 대한 이해와 의사 소통 능력이 향상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인문학적 이해와 교육의 토대 위에 분히 이지 한국 의학교육에 도입된 의료인문학 교육, 그동안 생소했던 윤리와 인문학에 관한 갖가지 교육과정이 의과대학에 난무하는 결과로 이어졌. 의료인문학은 기존의 의료와 사에 관한 교육당해 왔예방의학, 의료관리학 등의 학제와의 구분이 불분명한 채로 '인문사회의학'이란 용어로 뭉뚱그린 채 회자되었. 그리고 20년 후 또 의 거대한 의사 이 일어나고 의료시스과학이새로운 교 육과정들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지면서 인문학 교육다시 자의 존재 의를 물어야 할 필요에 . , 주지하다시서구와 한국의 의료인문학교육은 의과학에 대한 반성과 그걸로 소급되지 않은 의학의 가치를 강조하는 일환으로 도입된 것이 아니었. 인문학적 요소가 개화되지 않았던 과거 의학교육에 대한 래된 기을 가지고 도입된 것도 아니. 그것을 도입한 이들은 '' 인재이자 전문인으로서의 의료인이 수 있기를 하였다. 한국 의사들은 노동자성, 즉 일종의 노동자 정체성으로서 파업을 수행하였으나 그 결과로 노동자성과 다른 전문직업인 교육으로서 의료인문학 교육을 도입하였다. 그래서 한국의 의료인문학 교육은 의과학 방법론 강화에 따른 인간 가치의 소외라는 서구의 테제보다는 주로는 의료계에 대한 정부의 인정과 리더십에 대한 불만에 초점을 둔. 그리고 과학 이후 또는 과학 외부에서 학문으로서의 의료인문학이 지니는 특수성-즉, 환자의 관심사나 환자의 이해를 고려하며 의사-환자 관계의 가치를 다루는 특수성이 그다지 많지 않. 한국 의학과 의료계에서는 소위 의과학 중심성에 대한 반성과 한계라는 서구 의료인문학의 주요한 테제가 주류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이를 한국 의료계의 협소한 이해 때문이라고 국한하는 것은 구조적 측면을 소거한 타자화의 식에 지나지 을 것이다. 해야 할 점은 의생명과학이 글로벌가 된 한으로 의료 인문학 역시 글로가 되다는 점이다. 글로화된 의생명과학의 지식 생산과 환시스에서 의료인문학은 게 논외가 아니며, 전세계적 의학교육인증 시스에서 의료인문학은 "관련 행동 및 사회과학 영역(relevant behavioural and social sciences)"으로 다소 애매하나 주요한 인증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다.17) 여기서 인문학이라고 명시되어 있지 는 데에는 의료인문학의 가치에 대해서는 인정되나 그것이 글로의학교육의 표이자 역으로 정의되기에는 모호과 어려이 있기 때문이 아닌지 의심된다. 의학교육의 글로화의 움직임은 의생명과학 기술이 글로화되고 그에 따른 보건·의료인력 환자, 자원의 이동이 심화하면서 글로벌 보건(global health)이 중요한 화두로 제시되는 데에 비롯된다.

  • 다양한 자원의 환경 속에서 보건인력들은 기존의 의사, 간호사, 기타 치료사 등의 인력 양성 구분을 넘어선 역량 중심 양성에 기반을 둔 협력을 요구받으며 의사소통 및 문화적 역량, 윤리적 행동능력 등을 키울 것을 요구받는다.18)
  • 그리고 글로벌 보건 인력들이 개발되어야 할 역량으로 "유연성, 적응성, 문화적 감수성, 간-문화적 소통 역량" 등이 제시되면서 글로벌 보건 인문학 영역 또한 탐색에 들어서기 시작한다.19)
  • 최근에 한센(Narin Hassan) 등은 COVID-19를 계기로 글로벌 보건 인문학이 전환기에 들어섰다고 주장하며 20) 글로벌 보건의 하위 개념으로 글로벌 보건 인문학이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보건 인문학의 하위 개념으로 글로벌 보건 인 문학이 위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념적인 바람직함개로 오늘날 의료인문학 또는 보건인문학(health humanities)이 글로벌 보건만큼 영향력 있는 개념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 의료인문학의 글로화는 필연적으로 의과학기술을 수하고 적용되는 식과 지식 생산식이 이상 하나의 전통과 양태에 국한되지 음을 보여. 전세계적으로 기능인으로서 인으로서 글로보건을 하는 의사 "행동 과학 지식" 역시 득하며 글로세계시으로서 일차의료 역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화의 지평에서 대두된 의료인문학의 가치는 오늘날 모두에게 건강을 추구하며 초국가적 협력을 강조하는 글로벌 건강 레짐과 별개로 사고하기는 어렵. 그것은 각국의 의학교육의 전통과 인문학교육의 전통이 어떠했는지, 전문직업성의 전통이 어떠했는지와는 큰 관련이 없다. 의 특수성은 자원의 격차와 문화적 차이 속에서 주로 거론되며, 의료인문학 교육의 비전은 글로벌 건강 세계 속 시민으로서의 비전과 좀 더 관련이 있다.

15) Pellegrino(2011b).
16) 권복규(2022); 김택중(2022).
17) World Federation for Medical Education(2020).
18) Frenk(2010), pp.19231958.
19) Stewart & Swain(2016), pp.25862587.
20) Hassan & Howell(2022), pp.133137.

그러므로 국내 의료인문학 교육의 현황을 논하면서 서구의 의료인 문학의 전통에 가음을 논하는 것은 일할 만하나 맥락바르게 이해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 주지하다시, 한국 의과대학이 공고한 기존의 교실 기반 의학교육을 넘어서 의료인문학 교육을 대대적으로 도입한 데에는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한국 의학교육인증원의 의과대학 인정 평가, CanMEDs, 세계의학교육연합회 (World Federation of Medical Education, WFME)를 위시한 글로벌 보건의료교육기관 인증 체계의 도입에 있다.21) 의학교육이 글로스 체계에 입되면서 의료인문학의 도입 역시 강화되. 그러므로, 오늘날 건강 레짐 속에서 로컬의 의료인문학은 글로벌 의료인 문학의 일부로 기능할 수 있기를 기대받는다. 글로건강 속에서 오늘날의 의사는 로컬의 '현장 속에서(in)' 근무할 수 있는 인력으로서 로컬의 '옆에서(by) 로컬의 요구를 다룰 수 있는' '글로벌 관점' 으로 훈련받기를 요구받는다. 글로건강 속 의학교육은 경제성과 이타성을 재할 것을 요구받는다. 22) 그러므로, 한국 사회를 주도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고급의 의사 인력을 양성할 필요가 있 다는 엘리트주의적인 기대는 글로벌화된 의학교육의 맥락에서는 실현되기 어렵. 한국 의료계가 응당 한국의 의료 전통을 이해해야 하고 새로운 의료인문학 전통, 어쩌면 새로운 의학교육 및 교육의 전통을 쌓아가야 한다는 부름은 존재할 수 있으나, 적어도 최근 한국 의과대학에 도입된 의료인문학은 그런 맥락에서 도입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의사가 한국의 현장이란 전통 속에서, 그리고 전통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며 전통 옆에서 일할 수 있기를 요구하나 한국의 전통을 새롭게 창의적으로 건설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글로세계화의 요구가 그러하, '의적으로' 되는 바는 글로의료 시이며, 한국의 의료 전통이 아니다.

21) 2000년대 이후 의과대학 의학교육 평가인증을 주도해 온 한국의학교육평가원에서는 세계의학교육연합회의 2015년 기준을 참고하여 2017년 ASK2019(Accreditation Standards of KIMEE 2019)를 개발, 평가 인증에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 세계 의학교육연합회의 2015년 기준에 걸맞게 평가항목에 의료인문학 항목을 별도 삽입하 여 ‘의과대학은 의료인문학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를 평가하고 있다. 다만 의료인문학 은 “행동과학, 사회과학, 의료윤리, 의료법규 등을 포함”한다고 정의하여 의료인문학 의 본래적 의미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22) Prideaux(2019), pp.2531.

 

4. 글로벌/로컬의 긴장과 비판적 의료인문학의 가능성

되어 의료인문학이 꼭 글로벌화의 요구에 복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물음을 질 수 있을 것이다. 를 중심으로 시작된 CanMEDs 이나 World Federation of Medical Education (WFME)의 의학교육 인증 흐름은 정확하게는 의학교육의 경제적 비용 절과 분산적 , 그리고 각국의 의사 지망 엘리트들의 국적 을 가능하게 한다.23) 보건의료의 세계화라는 시대적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이 초래할 결과가 글로벌 복지의 증진일지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그것은 로의 의료 수요를 논하지만 그를 통해 받은 로리트가 그에 무하지 게 만들 수 있으며, 과거의 서구 의학교육 전파의 예처럼 광범위한 두뇌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 무성 교육이 글로의학교육 인증의 주요 기이나 그 결과 양성된 의사는 컬의 의료 수요에 복무하는 책무성 있는 의사가 되기보다는 해외의 의료 수요의 흐름에 따르기 쉽다. 더 나아가 이들은 더 의료 취약 지역의 수요에 따른 인력 배치에 저항한다. 이는 공공의대 설립 움직임에 격히 저항했던 한국의 의사 에서도, 스트일리아의 의료인력 치 문제에서도 전세계가 반적으로 면하고 있는 문제이다.

의학교육의 글로벌화에 직면해서 그것이 과연 현재 의료가 봉착한 문제를 해결하고 로컬의 의료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다양한 비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는 현재 의학교육을 주도 하는 역기반 교육이나 표화된 글로교육 방식이 과연 의료가 한 문제의 해결에 바람한지 비하는 것이다. 마가이 가 잘 지적하, 역량 기반 교육(competency-based learning)은 의과학 기술에 대한 단순한 기술 전달(technical knowledge) 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더 우월한 것처럼 여겨지나, 사실상은 지식 습득의 한 가지 방법만을 고수하는 방법이다.24)

  • 역량 기반 교육은 역량을 결과 이자 성과로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계량화하고, 표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교육은 전문직의 이해와 행동의 복잡성과 미묘함, 개개인 의 고유함과 독특함을 무시하고 그 결과를 수치로 환원한다고 비판받는다.
  • 그뿐 아니라 의료, 그리고 의료인이 사회와 맺어 온 관계를 알고, 이해하고, 관계를 새로이 맺고자 할 때 필수적인 개별 개체들과의 무수한 상호작용의 맥락과 과정들을 소거한다. 단순한 상처의 봉합이나 술기의 재현은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하다. 환자를 대할 때 공감의 표현을 하고 위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역시 가능할 수 있다.25)
  • 그러나 복잡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조건을 숙고하고 자신의 가치를 실천적으로 지켜나가는 방법, 한 사람의 전문가이자 시민으로서 의 삶을 영위하고 관계를 맺는 방법을 글로벌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것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 쿠마가이는 역량 기반 학습이 의료인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앎의 방법(ways of knowing)들을 담아 내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26) 이는 오늘날 의학교육이 자율적으로 스스로를 성찰하고 규제하며 가치를 적용할 수 있도록 전문직업성과 윤 리를 함양하는 것을 목표로 함에 있어 치명적이다.
23) Prideaux(2019). pp.25–31.
24) Kumagai(2014), pp.97883.

하나는 글로벌화된 시선이 로컬의 의료 수요를 충족하고 글로벌 건강 평등에 기여할 수 있을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리가 잘 지적하, 글로의학교육에서 가하는 문제 중심 득법, 성과 중심 교육 등의 교육방법론은 자적 개인을 고로 하는 서구의 개인주의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컬의 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거의 질문하지 않는다.27) 때때로 이러한 서구식 교육 문화는 이러한 교육 방법을 체내화한 컬의 상층 계급 시민들에게 더 부합하며의 의료 갈등을 더욱 심각하게 착 계급-빈민들의 문화를 타자화한다. 로컬의 의료 질 문제 이면의 의료 자원 교환의 불평등과 의료 붕괴의 양상을 질 좋은 인력 개발의 문제로 가린. 그리고 의학교육의 질이 은 것으로 받는 국의 의료 질이 그다고 치부되는 일본, 한국 등의 나라의 의료보다 효과적이고 효적이지 은지 질문하지 는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 이후 남미, 중앙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다양한 의료 붕괴의 현장과 높아진 의료 질 인증 기준이 공존하는 모순을 경험한다. WHO-의 의학교육 인증 기구 등 다양한 국제 체들이 의료 붕괴 과정에 관여 하며, 의 의료와 의학교육이 글로인력 기맞추어 재편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국의 의료인문학의 도입은 의학교육의 글로맥락 도입과 무관하지 .28) 그러나 의료인문학 자체가 이들 문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 은 의생명과학이 환자의 증상과 고통을 관화되고 표화된 과학기술의 어로 치환으로써 의사가 환자의 고통 문제를 수 없게 만다고 비하였다. 유사하게, 로컬의 의료 부족과 고통을 글로벌 기준에 따라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은 이들 문제 이면의 사회 문화적 맥락들을 소거하고 이해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의학교육의 글로벌화 요구는 로컬의 의료 문화를 외부의 기준에 맞추고 순응하게 만든. 그것은 로의 의료들이 마나 스스로의 요구와 고통에 민감하게 반하고 해결하고자 하였는지를 아내지 으며 인식론적으로 소거한다. 의료 속에 존해 왔으되 지표화 되기 어려운 더더욱 포착하지 는다.

25) 하지만 『병든 의료』의 저자 오마호니는 의료인문학의 공감력 강조를 비판하며 의료인문학이 의사-환자 관계 사이의 소통 기술 등을 평가하고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사적이고 신비스러워서 가르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공감 교육 비판 은 경청할 만한 부분이 많다. O'Mahony(2020)/ 권호장 역(2022), 281-299쪽.
26) Kumagai(2014), pp.978983.
27) Bleakley(2008), pp. 266
270.
28) 물론, 글로벌화 흐름이 거세지기 이전에 한국 의료의 모순 속에서 의료인문학의 움직 임을 미리 찾고 희구했던 한국 의료계 주체들을 삭제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고민은 소중한 씨앗이 되었다.

의료 속의 의료인과 환자들의 주체성을 탐색하고 ''를 지하는 의료인문학은 이러한 경을 비적으로 는다. 물론 의료 인문학이 내재적으로 적 요청에 부한다고 기는 어. 전술하였이 의료인문학은 의료가 보다 환자 중심적으로 환자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청에 라 도입되.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어떠한 행위가 환자 중심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행위인지에 대한 내용적 이해는 아직 불충분하다.

  • 현재 한국 에서 의과대학 의료인문학 교육 내용 대부분을 채우는 의료윤리는 서구의 기준인 4원칙-자율성 존중의 원칙, 선행과 악행 금지의 원칙, 정 의의 원칙 등을 제시하며 이들 원칙에 부응하는 것이 보다 윤리적이거나 환자 중심적이라고 믿는다.29) 그러나 이는 환자 중심성을 환자/ 가족의 의사를 형식적으로 확인하는 절차로 치환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30)
  • 또한 초기에 서구의 의료인문학 학자들이 이상으로 생각했던 인간적인 의사상이 서구의 교육받은 중산층 엘리트에 가깝다는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고전적 의료인문학은 인간 중심적 전통에 기대면서 전인성(全人性)을 희구하는 근대 인문학을 유산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31) 이는 오늘날 인류세 시대를 맞이하여 동물, 무생물 등 비인간 의 존재를 적극 포용하려는 최근의 인문학의 반성(탈식민주의 이론, ANT, 신유물론 등)을 도외시하기 쉽.
  • 이러한 양상을 보면 의료인 문학의 도입은 서구에서 출발한 이상적인 인간상-인문학적 질문과 규 범을 추종하는 것처럼 보인다.
29) 정의의 원칙은 환자중심성 보다는 의료자원 분배 원칙과 관련이 있어 결이 다르다.
30) 강지연(2021), 144-169.
31) 국내에 의료인문학을 종합적으로 소개한 황임경은 현재 의료인문학이 의학의 호르몬 역할을 하며, 그것은 의학의 휴머니즘 전통에 기댄다고 설명한다. 황임경(2021), 482 . 이 경우 의학의 본래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과연 의료인문학은 외부의 규범에 대한 부응 이상의 것이 될 수 있을? 서구에서는 그간 의과대학 내에 성적으로 안한 의료인문학을 새로운 의료인문학의 흐름이 제기되고 있다.32) 현재 제기 되고 있는 판적 의료인문학(critical medical humanities)/건강 인문학(health humanities) 등의 새로운 의료인문학들은 이러한 의료인문학 내부의 장을 인식한다.

  • 비판적 의료인문학은 주로 의료의 현장 을 다양한 주체들의 얽힘으로 확장시킨다. 의료인문학이 과거 인간중 심적으로 정립해 온 전통적인 구분에 대한 비판적 탐구가 비판적 의료인문학의 주요한 테마가 된다.33) 비판적 의료인문학이 최근의 비판 이론, 퀴어 이론, 장애학 연구, 신유물론 등의 흐름에 기대어 전통적인 의료/비의료/의생명과학의 구분과 규범성에 좀 더 집중한다면,
  • 건강인문학의과대학의 의료인문학을 넘어선 확장을 시도하는 학문이다. 그것은 그간 의사 양성에 초점을 둔 의과대학 의료인문학이 다양한 영역의 건강 관련 주제와 관련된 인문학으로 확장되길 시도한다. 건강과 보건의료를 둘러싼 다양한 학제들의 시도들을 민주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34) 건강인문학의 초점은 그간 의료인문학의 테마였던 인문학적 의사-됨을 넘어서 건강/의료의 인문학적 의제를 확장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32) 물론, 이들 '새로운' 의료인문학(들)은 주로 영국, 유럽을 중심으로 의과대학 밖에서 진행 중이란 점은 언급해야겠다. 의료인문학을 삽입한 커리큘럼의 전범이 된 미국에서도 의료인문학은 의과대학 커리큘럼을 둘러싼 거대한 전쟁 가운데에 자신들의 효용성을 입증하기 위해 분투 중이다.

33) 비판적 의료인문학을 적극 제기한 비니(Viney) 등은 학문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의 한다.
(i) '
의료'의 현장과 범위를 임상적 만남 이상의 것으로 넓힌다.
(ii) 
단순히 건강과 질병의 경험과 맥락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층적 차원의 구성을 인지한다.
(iii) 
비판 이론, 퀴어 이론, 장애학 연구, 액티비스트 및 연관 분야와 밀접하게 연관을 맺는다.
(iv) 
예술, 인문학, 그리고 사회과학이 임상 그리고 생명과학의 대척점이 아니라 '의생명과학 문화'와 생산적으로 얽혀 있는 지점을 인식한다 
(v) 
새로운 형태의 간학문적, 부문교차적 협력에 기여한다. Viney(2015), p. 2-7.

34) 건강인문학의 흐름을 주도하는 크로포드(Crawford) 등은 건강인문학이 예술과 인문 학에 대한 간학문적, 포괄적, 응용적, 민주주의적, 그리고 액티비스트적 접근을 채 택하는 학문이며 ‘의료인문학’에서 주변화된 기여들을 적극 수렴한다고 설명한다. Crawford(2010), pp.410.

이들 '새로운' 의료인문학이 제기된 경과 지하는 바는 조다르다. 하지만 이들 의료인문학이 그간 의과대학 내에서 좁은 의미의 규범화된 의사 양성과 그들의 역량 상승에 목표를 두었던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함은 분명하다. 전지구적인 의과학기술 전영 향력 강화, 그리고 건강 의 형성 속에서 건강과 의료는 모, 그리고 인간-의 문제에 접적 관는다. 건강과 의료는 각 개인들이 세계와 관계 구이며 인식론적 토대이다. 지능기술과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보이 전통적으로 인간의 것으로 여겨진 역 역시 의과학기술의 대상이 되고 있어 이를 계기로 몰락, 네오, 스트의 부상이 점지기도 한다. 이에 대해 새로운 인문학은 '인간'을 위기로부구원하고 재설 정하는 것을 표로 는다. 건강과 의료를 둘러싼 의사/일반인, 건강/비건강, 인간/기술 등의 전통적인 위계화된 구분이 흔들리 는 시점에 서서 그간의 인식론적 위계에 저항한다. 그것은 의과학기술이 비인간적이라는 그간의 인문학자들의 투덜거림과는 거리를 둔. 그동안 글로건강 에 관계, 협상하며 저하는 소리들을 고 사유의 자원으로 는다. 의사 중심의 의료와 임상 중심 적용을 선 민주적 관계 기의 탐색한다.

를 들어 건강 문해력(health literacy)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건강 문해력은 날 공중보건과 건강증진정에서 핵심적인 결정 요인으로 이해된다. 히들 건강 정책 담당자들은 건강 문해력의 증진이 어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 '무지(illiterate)'로 인한 장고 대중들을 건강 증진을 위한 로 인도할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건강 문해력은 의사가 생각하기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보를 이해할 능력으로 환원될 수 없다. 혹은 기적인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지 여부로 단될 수 없다. 무지한 대중이 극복해야 할 으로 치부수 없다. 건강 문해력은 의학 관련 정보들을 자신의 상황을 고려하여 맥락화하고 자신의 결정으로 만드는, 자기 성찰력을 갖추어야 한다. 정보가 콘텍스트를 고려하고 수은 정보의 력을 검증하며 그것을 의사, 그리고 건강 정보의 세계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의 역한계 내에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루비 (Rubinelli)는 건강 문해력이 아리스토스의 지식 분따른 실용적 지(practical wisdom), 즉 실(, phronesis)여야 한다고 주장한다.35) 그에 르면, 건강 문해력은 외부의 평가에 따라 건강 목 표-준수 여부로 평가되지 않는, 주체의 정보에 관련된 태도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건강 문해력의 문제는 의료에 관한 지식들을 이해하고 역량을 갖추고 결정, 행동하는 문제가 더 이상 의사만의 것이 아님을 보여준. 건강의 자기 관리, 자기실현이 더욱 중요해진 의료는 일반인들에게도 하나의 기술이자 실이 된다. 인문학적 능력 함양과 주체적 해방은 일반인에게서도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의료인문학이 좋은 의사-되기에만 국한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새로운 의 료인문학(들)의 요청이 설득력을 얻는다. 

물론 은 의사-되기에 의료인문학이 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도 분히 검토되지 은 한국 사에서 이들 새로운 의료인문학()마나 유의할 수 있을지 의적일 수 있다. , 한국에서 의료 인문학을 도적으로 탐색한 황임경 등은 이들 건강인문학 적 의료인문학이 질문하는 문제들의 유의미함정하지만 해외 의료인 문학 소개의 일부로 국한시.36) 오랫동안 한국 사회는 이공계의 공부는 단지 지식-기술의 것으로, 인문계의 공부와는 별개로 여겨져 온 탓에, 의료인문학은 여전히 낯선 조합이다. 인성 교육 등 태도에 대한 교육양은 동안 교육이 도구적 단편적 지식의 득에 치중한 현실에서 부차화되어 왔다.37) 의대생 부에 대한 의적인 시각 한 의과대학 내에서 여전히 어야 할 제이다. 지식적 요소만 아니라 실적 요소가 의학교육에서 중요하게 자리매해야 한다는 요청도 아상황에서 태도를 교육을 통해 양한다는 것은 교육에 대한 기존의 위의 붕괴물려 더욱 진다.

35) Rubinelli(2009), p.307-311.
36) 황임경(2021), 30-32.
37) 정창우(2010), 1-33.

그럼에도 한국 사에서 기존의 의료인문학 만 아니라 새로운 의료인문학()이 기여할 수 있는 바는 존재한다. 새로운 의료인문학 (들)은 한국의 식민주의적∙후기 식민주의적 발전국가 경험을 직시한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의료가 놓인 맥락들-예를 들어, 과도하게 기 중심적이고 침습지향적이며 단기 효과 중심적인 맥락들을 인식하게 해준. 한국 사의 의료가 서구로부이식되다는 단순한 이해, 그리고 서구와 비서구를 단순히 이분화하는 이분법을 지양 할 수 있게 도와. 그리고 한국의 의료가 한국의 물질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부분을 살피며, 한국의 의료 문화를 발전주의적 성공 신 화에서 벗어나 낯설게 보도록 촉구한다. 이를 통해 환자와 의사 등 다양한 의료 주체들이 의생명과학 문화와 비적으로 관계 을 수 있도는다. 은 의사-되기 규범콘텍스트를 통해 비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만. 그것은 동시에 지한국 의료가 여 있는 자리를 는 것이다.

한국 의료에서는 소아청소과의 전의 지원제로 사건 등 에서 수 있위기 론이 발 중이다. 소아청소붕괴에 대한 우려와 함께 필수 의료가 무질 것이라는 소리가 . 의과학 기술의 격한 발전과 성장한 의료 시장 , 은 수의 치료 성등의 화려한 한국 의료의 성공 신화 이면을 지하는 것은 무? 소아청소년과의 붕괴는 한국 사회의 의료적 필요와 의료 산업의 성공과 똑같지는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에 가깝다. 마치 과거에 작동해 왔던 (좋은) 의사 되기를 위한 여러 시스템은 더 이상 작동하기를 거부하는 것 같다. 이것은 정로 한국 의료의 위기일? 혹은 이러한 위기에서 의료인문학은 도수 있을? 위기는 일반적으로 정상 상태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한국의 의료 문화에서 정상 상태(혹은 시스)는 과도한 병원의 전동 의존도에서 수 있, 래를 보로 한 력에의 의존에 가깝다. 위기 론은 한국 의료가 것을 반성하라는 구로 이어질 수 있 으나, 반성은 한국 의료의 만이 되. 여기에는 저출생과 한국 사에서 ''를 유하는 , 숙련 구조의 붕괴, 그리고 과학기술적 성동 가능한 상태로 회복 외의 의료 가치에 대한 경시 등이 겹겹이고 얽혀 있다. 이러한 위기를 견디어 나가는 법은 서구의 인문학 독본이나 교양주의적 이상에 있지는 않다. 그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현재의 위기들을 서로에 대한 이해와 상상의 힘에 빗대 정직하게 보고 살펴나가는 데에 있다. 

5. 한국에서 의료인문학(들)의 질문과 자리들

다시, 한국에서 의료인문학(들)의 자리는 어디일까? 이 글의 서에 한국의 의료인문학은 의사학의 형태로 일본의 제국대학과 일 의학의 경을 경험으로 한 의학 리트들의 양주의적 관심에서 도입되 다고 밝혔. 그것은 어면 문해를 위주로 했던 과거 의학의 전통이 의학 리트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인지도 모. 이러한 전통이 1990대 의학에 대한 역사학적 관심을 지닌 이들에 의해 발 되기 전지 여전히 의학 리트들의 양주의적 관심에 . 1990년대는 본격적으로 의료인문학이 발돋움한 시기이며, 한국 의료가 발전 신화를 넘어 직종 간 갈등에 부딪히기 시작한 시기이다. 한국 의료의 정체성에 대한 탐색이 시작된 이때 의료리 등의 서구 의료인문학 론도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의과대학 인증평가제도의 도입과 2000년 의사 파업은 본격적으로 한국 의학교육이 '사회지향적' 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청에 부응하도록 만들었. 한국 의료 위기의 론들은 의료 외부에서 중요한 해법들을 , 임없이 도입하도록 견인차가 되으며 나름의 으로 이끌었. 이러한 위기 론과 , 그리고 기의 상이 해왔역할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교육이 결국 의과대학 내 의료인문학의 양적 을 가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의료인문학이 제대로 생각하고 질 문할 수 있는 자리를 제대로 찾고 있는지, 비판, 창조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응답하기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전술했듯이 한국 의료인문학의 도입 배경이 서구의 의료인문학 도입 배경과 같지 않기에, 의료인문학이 응답할 수 있는 몫 또한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인문학을 다에 있어 가장 이 다루 어지는 가지 주제를 한국 의료인문학의 과 관지어 보고자 한다.

  • 하나는 의학교육 개혁과 의료인문학 도입의 직간접적 계기가 된 한국 의사들의 전문직업성 문제이다.
  • 두 번째는 의료인문학 본연의 몫으로 보다 논해지는 환자의 삶과 고통을 이해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치유이다.

이들 모환자, 의사, 그리고 자를 비롯한 한국 의료와 관계는 다양한 주체들이 얽혀 있는 주제이다. 한 한국 사의 법 제도 역사와 물질 문화적 토대를 함께 살펴보지 을 수 없 다. 그것은 의료인문학의 기원과 역할을 분명하게 구분해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의료에서 '인문학적 필요'를 일푸코 식으로 계보학적으로 살펴보는 작이다. , 의료인문학 도입을 의학교육 따른 결과로 역사화하는 것, 는 한국 의료인문학을 서양 고전의 전통으로부기원화하는 것과 다르게 한국 의료에서 인문학적 필요에 대한 무수한 요청들을 어내는 것이다.

1) 전문직업성

한국 의사는 어떻게 정체화하는가? 집단으로서의 의사는 과연 존재 하는가? 이는 2000의사 (혹자에 르면, 권 쟁)에서 경험한 이후 줄곧 제기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발표 원고에서 필자는 의사들 스스로가 의료 시장과 보건의료체계를 스스로 결정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 정동이 '수호'라는 구호 속에서 출로를 정체성이 되, 으로 나원동력이다고 적.38) 잘 알려져 있듯이, 서구의 전문직업성은 중세부터 비롯된 직업 길드의 역사, 질 관리와 훈련의 역사에 기대어 있다. 지식의 습득과 전달이 스스로 외에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부여된 일종의 독점권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대에 들어와서 국가와 시장의 력으로부스스로의 한을 보호하기 위한 토대가 되으며, 전문리의 간이 되.

그러나 한국 의사들은 길드에 근간을 둔 자율적 통제의 역사를 갖고 있지 않. 서구 전문역사에서 리 강리트로서 스스로 를 다치유자들과 구분하며 도적 우위를 강제하는 역할을 수행. 그러나 한국 의사들은 식민지 시기 형성된 엘리트이자 기술 테크니션이며, 개항 이후 근대화 이데올로기에 따라 위로부터 형성된 직업군에 가깝다. 기술로부터 분리된 별개의 아카데미즘을 갖지 못하고 국가의 이해에 따라 균점되어왔고, 의사를 위한 자율적 공간이 많지 않. 서구의 의사들이 전통적으로 아카데미즘 정체성에 가까운 내과의테크니션에 가까운 외과의들이 존하다가 일정 시점에 타협한 것과 한국의 의사들에게는 아카데미즘과 테크니션이 혼종의 정체성으로 공존하며,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병원의 이해에 스스 로를 속시키기 때문에 한국 의사의 정체성은 국가의 이해에 라 계도화된 유사-조합주의 정체성에 가운 측면이 . 한국 의사들은 기술자본이 적된 병원의 이익과 한 보호를 일의 자으로 이해하며, 서구의 의사들처럼 은 분을 통한 조합의 한 행세를 자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1995대한의학협가 대한 의사협로 명이 전환된 시점부강화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 의사들은 의료보험제도 도입 이후 보장된 의료시장과 확대된 병원의 이익 속에서 소수의 엘리트 정체성에서 조합주의적 정체성으로 전환하기 시작하였다.39)

38) 이러한 집단의 정동이 집단의 이익에 도움이 되었을지, 유리한 결과를 낳았을지는 또 다른 평가를 필요로 하는 문제이지만 말이다. 캐나다의 역량 기반 교육 CanMED framework 역시 1986년 온타리오 의사 파업을 기점으로 한 의사들에 대한 신뢰 하락에 대한 대응으로 도입되었다. Butt and Duffin(2018), pp.196–98. 2000년대 한국의 의료인문학 도입이나 의학교육개혁도 의사 파업의 영향력을 제외하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39) 파슨스의 설명에 따르면 노동조합이나 전문가 조직 모두 구성원의 이해를 추구하나 전문가 조직은 한 사회에 규칙을 가져오기 때문에 행동 강령, 자율 분업화 등의 특징을 지니며 노동조합과 구분된다. Parsons(1969). 한국의 경우 길드의 역사 없이 행동 강령, 자율 분업화 등의 요소가 발생하기 전에 조합주의적 정체성을 먼저 갖춘 경우라 할 것이다.

이러한 한국 의료전문의 정체성을 서구 전문의 자적 통제와 질 관리의 역사와 등치시키는 것은 콘텍스트를 무시하는 것에 가깝다. 우리는 한국 의사의 전문직-됨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을 요청받는다. 율적 통제의 불/가능성은 한국 의사가 처한 독특한 딜레마이다. 고도로 발달한 의생명과학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적용할 권한은 갖추었으되 그것을 통제하지 못함에서 오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이다. 시장 경이 격화되면서 과거와 만기술에 대한 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에 여 있음에 라 위기이 자연스라 온다. 그것은 의료를 운용하는 인력보다 관기술 도입에 중해 온 한국 의료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한국 의사들은 외형적으로는 기술을 독점하는 전문직이나 실제로는 내외적으로 그렇게 존중받지 못한다. 여기서 한국 의사들의 전문- 존재론을 다시 구할 필요가 있다. 의 기대와 개인의 도적 정체성이 일치되지 못에서 는 도적 아역시 살펴보아야 한다.40) 산재된 도적 위기은 필수의료 위기에서 수 있한국 사곳곳에서 '의료의 붕괴', '의료의 모라토리'은 재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에 비해 의사 개인을 도적 개인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제도는 현재로서는 전무하다. 의사의 윤리를 단지 개인의 윤리가 아닌 집단 도덕의 윤리 가능성, 의협으로 대표되는 조합의 윤리 이상의 가능성을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통해 탐색해야 한다.

40) 여기서 의사의 도덕적 위기감, 아노미는 기타 직역들의 생존의 위기감과 구분한다. 뒤르켐은 『직업윤리와 시민도덕』에서 길드가 쇠퇴하면서 자유시장경제 하에서는 과거 길드와 같은 연대와 협동 없이는 직업적 결속감 없이는 도덕적 아노미 상태에 빠지고 만다고 설명한다. 권오상(2021), 1-22쪽. 의사 파업은 강력한 직업적 결속감을 보이는 것 같지만, 이면에는 그러한 연대가 없음이 오히려 드러난 현상에 가깝다.

 

2) 치유와 돌봄

전술하였서구의 의료인문학에서는 테크놀로지에서 소외된 환자-의사 관계라는 테제를 공유한다. 그것은 의과학기술이 개입되기 이전 환자에 대한 치유를 전인적으로 담당했던(또는 한다고 여겼던) 과거의 기억과 무관하지 않. 그리고 의과학기술이 의사들을 지 기능인으로 전시킬 것에 대한 우려와도 관있다. 기에 서사의학처럼 환자에 대한 콘텍스트를 으면서 환자에 대한 해력을 이고 시각을 시키는 법이 은 각을 받을 수 있.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과학기술의 독점을 통해 스스로를 한의사들과 구분지었던 한국의 의사들에게 있어 의과학기술에 따른 소외라는 주제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적어도 이 주제는 통상의 '환자-의사 관계'에는 영향치지 는다. 이것은 의과학기술을 대하는 다수의 환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과도한 의과학기술이 스스로의 존엄함을 침해할 것이라는 서구 환자들의 우려에 비해 다수의 한국 환자들은 의과학기술에 열려 있다.41) 사체의 부검에는 부정적이나 체에 을 대는 성형수술 등의 기술에 규범적으로 려 있는 모에서 확인된다. 적어도 고통이 없는 일반인이 의사/의과학기술을 대면하거나 선망하는 간에는 소위 치유보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 속 소비의 양상에 실하다. '3분 진료'로 대표되는 공장식 진료 시스템 역시 치유나 공감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기 어렵게 만든. 진료 결과에 대한 환자의 불만은 나은 의료를 위한 인차가 되거나 의과학기술의 불확실성에 대한 인정보다는 의사들에게 공포어 진료로 이어지는 결과를 .

지만 이것을 한국 의료에서 치유나 공감제가 공감받기 어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하다. 한국 의과학기술의 권위는 그것이 더 화려한 시술로 회복가능한 영역에서는 유지된다. 그러나 기술이 회복을 약속할 수 없거나 그 정도가 제한적인, 일례로 장애와 노년의 경우에는 이미 치명적으로 '치유'나 공감이 부재하다. 한국 사에서 장회복을 통해 환할 수 있는 장밋빛 래 자본이 부재하기에, 상상할 수 있는 사역의 여 있다. 그 리고 그 고통은 로지 개인과 가, 그리고 일부 의료진이 당하도 . 한국 병원의 3분 진료를 질타하는 담론은 많으나 3 분 진료에도 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담론에서 거론되지 않는다. 이것 은 모사람들이 3분 진료에 접가능해야 한다는 기가 아니다. 의료의 공급이 지처럼 수도의 대형합병원 중심의 일루전에만 치중치는 부분이 훨씬 다는 기이다.

한국에서는 치유라는 제에 대해 논할 때 해당 어에 대한 그간 의 모호한 의들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영어권에서 "heal"은 오래된 영어 단어 haelen으로부터 왔는데, "전체(wholeness)"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상처를 딛고 다시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심리적 정신적 영적 차원의 통합하는 회복을 의미한다. 반면 "cure" care은 어원인 라어 어원 curare로부온 것으로 주로는 체적 차원의 의학적 치료를 지한다. 일반적으로 영어권에 서 cure는 신체적 질병을 뿌리 뽑는 "근치"의 의미를 가지며 오늘날에는 heal과 대비되는 경우가 많. 그러므로 질병의 cure는 불가능하라도 더 높은 차원의 heal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cure나 heal이나 둘 다 완치, 치유로 번역된다. 완치나 치유의 치()가 다스다는 의로서 단순한 질병이 아닌 질서로의 회복을 의하는 이다. 로 한국 사회 회복의 서사가 그사이에 여 있는 장의 고통을 마나 대속해야 할 로 환원하는지를 잘 기술하고 있는 은정(2019)의 원제는 Curative Violence이나 한국어로는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 하나로 회복되는 것은 개인의 이나 전체성이 아니라, 라는 상처와 고통이 가의 생으로 대속된 하나의 가이다. 이 경우 "치유"는 그것에 도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력이 된다.42)

한국의 대형종합병원들은 하나의 테크노 산업체로서 보험과 의과학 기술의 독점을 통해 발전해 왔다. 병원과 환자, 기술의 연결체의생명과학기술의 개발과 도입, 적용으로 지속가능하다고 여기는 상상체에 가까웠. 의생명과학기술의 치유 가능성을 하나의 화적 정점으로 은 일의 동맹이라 할 수 있다.43)

  • 여기에는 현재보다 더 저렴한 비용을 들여 영위할 만한 삶을 지탱하는 방법을 묻지 않는다.
  • 기술 이후의 공감, 돌봄 관계의 틈들을 상상에서 배제한다.
  • 기술을 적용한 후 살아가는 신체들을 돌보는 힘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방법은 의료 외부의 과제가 된다.

테크놀로지의 적용 자체가 환자를 소외시다는 것이 아니다. 테크놀로지의 적용과 살만한 위하는 것 사이에는 은 연결과 의 과정이 필요하며, 간 다양한 고려가 필요하다. 의사가 병원 밖 환자의 삶에 대한 상상과 이해를 넓혀내지 않는 한, 이러한 과정을 고려하며 의술을 제공하지 않는다. 중요한 의학적 의사결정을 환자의 의 이해를 합적으로 고려하며 할 수도 없다.

41) 이것에 대한 역사적 분석은 DiMoia(2013) 참조.

42) Kim(2017)/ 
강진경, 강진영 역(2022). 김은정은 심청전, 영자의 전성시대 등 근대 한국의 장애 관련 텍스트를 독해하며 이들 서사에서 가족이 젠더 구조 속에서 어떻 게 희생을 통해 장애인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으로 나타나는지를 그려낸다. 여성 가 족은 희생을 감당하며 장애 남성을 치유하게 되는데, 이때 회복의 지향은 정상가족 이라 할 수 있다.

43) 김상현과 자사노프는 사회기술적 상상체(sociotechnical imaginaries)를 “과학 기술 의 진전을 통해, 사회적 삶과 질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공유된 믿음으로 움직이는 집 단적으로 가지는, 제도적으로 안정된 바람직한 미래 수행 비젼”으로 정의한다. 김상 현과 자사노프는 이 개념을 한국에만 국한시키지 않으며, 한국의 경우에는 황우석 의 줄기세포 연구가 주로 다루어진다. 연구-기술-병원의 복합체에서 회복을 정점으 로 추구된다는 점에서 한국 상급종합병원 일반으로도 확장 가능할 것이다. Jasanoff & Kim(2015).  

한국 의사들에게 의과학기술 외의 '전체로의 회복'이라는 치유의 이상을 설하거나 공감 커교육리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적어도 한국 사회가 의과학기술을 이용한 질병 치유 이상의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일일 수밖에 없다. 에 질병을 비롯한 다양한 기가 자되면서 질병 치유 이상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은 고무적이다. 히려 환자를 온전한 주체로 만드는 치료의 전인성(全人性)을 논하는 것은 치유보다 논의에서 이루어지는 하다. 에 관한 이야기 역시 새게 한국 사가 경청해야 할 이야기가 되고 있다. 의과대학에서는 이들 서사를 적극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지 못한 이다. 하지만 의료전문가가 질병의 소리를 경청하고 기 위해 필요한 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6. 나가며

한국 사에서 의료인문학은 무, 이어야 할? 혹은 그것이 한국 의료에 필요한 실(phorenesis)수 있을 ? 한국의 의료인문학은 한국 의료가 새롭게 갱신되어야 한다는 부름에 따라 과거의 것이 복원되고 유입되었다. 그것은 크게는 전세계적으로 질병 패턴의 변화, 새로운 질병의 등장, 의료 서비스 주체의 다변화, 유전자 시대의 돌입 등에 따라 의생명과학 패러다임이 전환 되기 시작한 것과 흐름을 같이 한다. 의학이 과학기술학, 인문학, 술 등 새로운 학문들과 관계 으면서 간학문적으로 치유와 건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기대가 존재한다. 물론 전세계적 의생명과학 의 전환과 한국 의료의 위기가 기에, 한국 의료인문학 에는 도의 과제가 있다. 해외의 의료인문학 흐름을 익히고 배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국 의료의 주체와 맥락들을 두껍게 읽어내 야 할 몫이 있다면, 그건 한국 의료인문학의 몫이다.

본 글에서는 전세계적 차원의 의료인문학의 제가 한국의 그것과 을 수 있음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의 이해를 부하게 다는 역할 속에서 한국 의료인문학의 제 역시 다을 필요가 있다. 지정학적 차원의 이해를 사리 증발시키하는 한국 의학의 발전 동력을 생각을 때 한국 차원의 도 과제를 상정하는 것은 운 일이 아니다. 빠르게 리는 기차 안에서는 경을 제대로 관하기 들 수 있다. 위기와 제의 진에 동의하지 을 수도 있으며, 한 가지 차원의 해만 있을 필요도 없다. 다만 격한 의 흐름 속에서도 다양한 소리들에 려 있기를 실적으로 지해야 할 것이 다. 

 

 


【주요어】의료인문학, 로컬의 관점, 글로벌 의학교육, 전문직업성, 치유와 돌봄
【요약문】한국 사회에서 의료인문학은 무엇이었고, 무엇이어야 할까? 본 글은 전 세계적 의료인문학의 역사와 부흥의 맥락 속에서 한국의 의료인문학의 역할과 위상을 점검한다. 한국의 의료인문학은 한국 의료가 새롭게 갱신되어야 한다는 부름에 따라 과거의 것이 복원되고 유입되었다. 그것은 크게는 전세계적으로 질병 패턴의 변화, 새로운 질병의 등장, 의료 서비스 주체의 다변화, 유전자 시대의 돌입 등에 따라 의생명과학 패러다임이 전환되기 시작한 것과 흐름을 같이 한다. 그러나 전세계적 의생명과학의 전환과 한국 의료의 위기가 같지 않으며, 전세계적 차원의 의료인문학 테제가 한국의 그것과 꼭 같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의료인문학의 맥락과 갈래 속에서 한국 의료인문학의 역할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정학적 차원의 이해와 로컬의 이해를 풍부하게 다듬는 속에서 한국 의료인문학의 테제 역시 다듬을 필요가 있다. 본 글은 우선 ‘인문학으로서의 의학’, 의료인문학이 의과대학에서 하나의 학제로 형성되어 온 과정을 추적한다. 특히 전인적 인간 형성을 목표로 하는 인문학 공부가 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 등을 요청하는 의과학 반성의 요구와 맞닿으면서 의학교육에 강조되었는지를 살펴 본다. 이후 1990년대 이후 국내에 급부상한 의료인문학 도입 배경으로서 의학교육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살피고, 이를 의학을 둘러싼 인문학적 요청이라는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의료인문학의 위상과 역할을 ‘전문직업성’과 ‘돌봄’이라는 영역을 예로 들며 제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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