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주관성* - 정신분석 패러다임의 변화 - (Psychoanalysis, 2008)

최 영 민**

Intersubjectivity* - Paradigm Change in Psychoanalysis -

Young Min Choi, M.D.**




서 론


어떤 특정 과학 분야의 핵심적인 문제를 가장 깊이 있고광범위하게 설명할 수 있는 선도적인 이론을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한다. 패러다임이 그 분야의 핵심 개념이긴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문제를 다 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히 패러다임이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관찰 결과들이 필연적으로 나오게 된다. 그래서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관찰 결과들이 점진적으로 쌓여, 기존의 패러다임이 갖는 의미가 크게 약화되거나 무의미해 지면,이러한 관찰 결과들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들이 비로소 새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게 된다(Kuhn 1962).


정신분석 분야에서도 이드심리학(id psychology), 자아심리학(ego psychology),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자기심리학(self psychology) 등으로 꾸준히 그 이론이 확대되거나 수정 발전되어 왔다(Fine 1988, Greenberg와 Mitchell 1983, Ursano 등 1998). 즉 Ornstein과 Jay(1990)의 표현대로 정신분석에서도 패러다임의 변화가 계속되어 온 것이다.

  • Freud가 처음 정신분석체계를 수립하며 무의식적 욕동에초점을 두고 인간의 정신을 이해하고자 한 것이 이드심리학이라면, 

  • 자아심리학은 무의식적인 욕동을 자아가 어떻게 적절히 방어하고 현실에 적응해가는 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 이드심리학이나 자아심리학이 인간 심리의 동기를 쾌락추구(pleasure-seeking)로 본 반면, 대상관계이론은 인간의 기본 동기를 대상추구(object-seeking)라고 생각한다. 

  • Kohut의 자기심리학에선 주관적으로 느껴지는 자기-감각(selfsense)을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자기 경계, 자기영속성, 자기 가치감 등의 주관적인 자기 감각을 편안하게유지하려는 기본 동기를 강조한다.


이와 같이 정신분석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는 앞선 이론들에 대한 반발의 결과라기보다는 인간 심성을 이해하는 새로운 측면들로 옮겨가는 것이었다. 그 결과 정신분석이라는큰 흐름의 연속성을 잃지 않고 사람의 정신을 더욱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발전적인 진화를 해 온 것으로 볼수 있다. 그래서 Fine(1988)과 Ursano(1998) 등은, 각 정신분석이론은 인간 심성의 다른 측면들을 각각 깊이 있게조명하고 있기 때문에, 한 환자 혹은 사람을 가장 포괄적이고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선 이드심리학, 자아심리학, 대상관계이론, 자기심리학의 네 측면을 함께 적용하여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패러다임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이드심리학, 자아심리학,대상관계이론, 자기심리학의 주된 네 이론으로부터도 새로운 이론들이 또한 생성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상호주관성이론(intersubjectivity)이다(Chessick 2000). Ogden(1994)은 국제정신분석학회지 75주년 축하 모임에서, 주관성과 상호주관성의 상호작용을 정신분석 개념으로 발전시킨것이 현재 정신분석의“중요한 국면”이라고 강조하였다.


또 국제정신분석학회지(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는 75주년을 기념하여“정신분석에서 임상적 사실의 개념화와 소통(The Conceptualization and the Communicationof Clinical Facts in Psychoanalysis)”이라는 제목의 기념호를 발간하였다. 이 내용들을 조사하고 요약한 2년 후의 논문에서 Mayer(1996)는“거의 모든 참여자들이 정신분석의 임상적 사실에서 관계적, 상호주관적, 주관성의 특성(relational, intersubjective and subjective nature)이 얼마나 결정적이고 근본적인가를 강조하였다. 무의식적인 환상(unconscious fantasy)이나 성장 발생적 재구성(genetic reconstruction)은 그 자체로서 임상적 사실을 구성하지 못했다. 그들은 분석 관계의 주관성이나 상호주관성외의 별도 요소로 구분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Gerson(2004)은, 대략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 사이 정신분석에서 상호주관성이 처음 선을 보였는데, 이때부터 정신분석 내에 있어왔던 상호주관성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키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Chessick(2000)은 21세기 새천년의 정신분석은 환자를이해하는 5가지 틀을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Freudian의 자아심리학, Klein과 Bion의 연구에 바탕을 두는 대상관계이론, Kohut의 자기심리학, 현상학적으로 환자를 이해하고자하는 실존 정신의학적 이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포스트모던개념인 상호주관성 이론이다.


현재 이러한 모든 정신분석 패러다임(예를 들어 자아심리학, 클라인 학파의 대상관계이론, 자기심리학 등)에 모두 정통한 정신분석학자를 찾기란 어렵다. 각 학파 내의 문헌이워낙 방대하고, 임상적 감각도 나름대로 세밀하게 다듬어져있어서 한 사람이 그것들을 모두 다 소화하기가 쉽지 않기때문이다. 더욱 문제가 복잡해지는 이유는, 각 학파 내부에서 학파 간의 교류를 별로 반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한 정신분석 패러다임은 그 추종자들에게 깊은 열정을불러일으키곤 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다양한 사상들 사이의건설적인 교류를 방해하곤 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정치적인문제들(어느 이론을 사용하는 학파가 진짜 정신분석학적인가?), 임상 효과의 문제들(어느 이론이 가장 깊이 있는 치료효과를 나타내는가?), 충성의 문제들(각 학파 창설자에 대한 경쟁적 충성) 등이 겹치면서 각 학파간의 교류에 어려움을 더하였다고 볼 수 있다(Mitchell과 Black 1995). 그 결과 최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비교 정신분석학’이 하나의연구 분야로서 등장하게 되었다(Schafer 1979).


정신분석 패러다임의 변화


이드심리학


Freud 최초의 정신분석 체계인 이드심리학은 무의식, 욕동 이론(libido theory), 전이와 저항이란 세 가지 근거 위에세워졌다고 말할 수 있다(Fine 1988). 이드 심리학을 형성하는 이 세 가지 초석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다. 먼저 무의식은 주로 유아기 성욕(infantile sexuality)의 잔재를 다루게 된다. 왜냐하면 유아기 성욕은 개인에게 용납되지 않아무의식으로 억압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개인은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는 엄청난 비이성적인 충동에 의해 동기화되지만, 그 자신은 그것을 깨달을 수 없고 충분히 조절할 수도없다. 결국 이런 상태에서 환자는 분석 치료를 받으러 온다.그러므로 실제 생활에서 그런 욕동들을 의식되지 못하게 억압했듯이, 분석 상황에서도 이런 욕동들이 밝혀지는 것을무의식적으로 저항하게 된다. 특히 그러한 생각들이 분석가와 관련된 것일 때 즉 전이와 연관될 때, 더욱 저항하게 된다. 그러므로 의식 수준의 이성적인 치료는 실패할 수 밖에없고, 이러한 저항과 전이를 분석함으로써 무의식의 병적인측면을 밝혀야 한다. 즉 억압된 무의식의 비밀스러운 기억과감정들 그리고 그런 것들을 거부하고 억압하는 사고와 감정들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정신분석의 모든 초점은 피분석가의 무의식 즉 단일체로서 한 개인의 심층심리가 된다. 그에 따라 분석과정에서 치료자는 환자의심층심리가 투사되는 단지 텅 빈 스크린의 역할을 해야만 한다. 치료자는 심층심리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고,환자는 그의 무의식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다. 모든 분석의초점은 환자의 무의식이기 때문에, 치료자는 절제를 하며 환자의 자아가 무의식적 갈등을 이해하는 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한다.


자아심리학


이러한 이드심리학 패러다임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 것은다름 아닌 Freud 자신이었다. Freud는 1923년에 <The Egoand the Id>를 출간하였는데, Gabbard(1995)는“이 책 이후 자아심리학이 실제적으로 시작된 셈이고, 지형학적 이론으로부터 구조적 이론으로 이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하였다.


Anna Freud(1936)는 그녀의 아버지인 Freud가 1923년에 확립한 구조모델을 더욱 깊이 있게 연구하여 자아의 다양한 방어 전략들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Anna Freud에 의하면, 분석가는 환자가 더 이상 자유연상을 하지 못하는 지점을 찾아 그 밑바닥에 깔린 원본능(id)의 내용을 해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런 연상들을 억압하고 혹은 왜곡하거나 절충하는 방어 작용(자아의 무의식적인 기능)을이해해야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분석의 초점이 이드욕동이 아닌 자아의 무의식적인 활동, 즉 방어에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자아심리학자들은 자아의 방어기능에 초점을 두었을뿐 아니라, 보다 폭 넓은 또 다른 자아의 기능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Hartmann은 자아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려질만큼 자아의 개념을 확장하였다(Mitchell과 Black 1995).


Hartmann 이전까지 자아 기능은 궁극적으로 정신적 갈등을 다루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Hartmann(1939)은 갈등과 무관한 자아 기능들(autonomous ego function)이 본래부터 존재하며, 환경 적응이라는 광범위한 자아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자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분석가-피분석가 관계에 새로운 변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자아심리학자들은 환자가 자기를 관찰하고 성찰할 수있는 능력 그리고 현실감을 유지할 수 있는 힘과 같은 자아의 광범위한 능력을 갖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즉 갈등을 다루는 능력뿐 아니라, 분석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환자에게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전이가 형성된 경우, 환자는 자신의 과거 해결되지 못한 욕동과 갈등을 치료자에게 투사하여 치료자를 자신의 과거 부모처럼 경험한다.이때, 환자의 경험자아(experiencing ego)는 치료자를 실제 부모처럼 경험하지만, 동시에 환자의 관찰자아(observingego)는 치료자가 자신의 실제 부모가 아니라는 것을알고 있다. 자아심리학자들은 이러한 환자의 자아 능력이분석과정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을관찰할 수 있으며, 단지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반성할 수 있는 자아의 능력을 가진 환자는, 자신의 무의식적인 갈등을 드러내고 재현하는 분석과정에서 치료적 동맹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즉 환자가 분석상황에서 치료자와 합목적적으로 작업할 수 있게 하는 비신경증적이면서 이성적이고 또 합리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환자가 궁극적으로“작업동맹(workingalliance)”이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 즉 분석가와 환자가 함께 분석 작업을 공유하는 관계에 들어오도록 하는 기법이 개발되었다 (다소 의미의 차이가 있지만, Zetzel(1958)은 therapeutic alliance라 하였고, Greenson(1965)은 workingalliance라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치료 자체는 여전히 무의식을 의식화시키는 것으로 이해되었지만, 그 과정은저항과 같이 두 사람 사이의 힘겨루기가 아니라 협력관계로인식되게 되었다.


북미의 자아심리학자들은 분석과정에 또 다른 중요한 변화를 가져 왔다. Spitz(1965), Mahler(1975), Jacobson(1964) 등의 발달주의자들은 초기 유아와 어머니의 상호관계가 심리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중점적으로 연구하였다. 그들은 정신 구조가 사람 사이의 동맹관계 속에서 공고해진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환자와 분석가 사이에 초기 유아-어머니 관계의 발달적 상호작용을 부활시키려고시도하였다. 그래서 Mahler는 치료경험 자체를 잠재적으로교정적이고 공생적인 경험으로 보았다. Jacobson은 성인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면서, 정확한 해석이나 분석가의 말의내용이 치료적 힘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공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였다. 자아심리학 패러다임을 통하여, 이제 분석과정은 환자와 분석가가 함께 협력해야할치료동맹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서 성장경험으로 이해되게되었다. 즉 유사부모(quasi-parent) 역할을 하는 치료자와관계는 초기 발달 경험을 재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대상관계이론


자아심리학이 이드심리학에 근거한 정신분석 상황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정신분석치료과정의 분석가-피분석가 관계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 온것은 대상관계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대상관계이론은 분석적 변화를 가져오는 치료 요인에 대해 자아심리학과는 다르게 생각한다. 자아심리학적 정신분석에서 분석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해석과 이를 통한 환자의 통찰(insight)이다. 환자는 치료자의 해석과 자신의 통찰을 통해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추구해왔던 쾌락, 즉 유아적갈망을 성취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유아적 환상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쾌락원리를 포기하고 현실원리를따르게 됨으로써, 무의식적인 휘둘림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그러나 Fairbairn(1941)은 치료자의 해석(interpretation)과 환자의 통찰(insight)만으로는 분석적 변화를 충분히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Fairbairn에 의하면사람은 무의식적인 욕동에 따라 대상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내면화된 초기 대상관계에 따라 인간관계를형성하기 때문이다. 또 현실세계의 타인들과 과거의 고통스러운 관계 유형을 반복하는 것이 정신병리라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해석을 통하여 무의식적인 욕동을 이해함으로써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 대상관계를 포기하고 새로운 대상관계를 경험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치료가 이뤄진다고 생각하였다. 이렇듯 사람은 일차적으로 쾌락추구(pleasure-seeking)적이지 않고 대상추구(object-seeking)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Fairbairn은 정신분석 이론에 근본적인수정을 가져 왔다.


Fairbairn이 말하는 분석적 변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린 시절 경험하는 대상들 중엔 고통을 안겨 주는 대상들이 있다. 이렇듯 부모가 아이를 거부하고 괴롭힐 때, 아이는 대상을 통제하기 위해 부모를 내면화한다. 그러나 내면화된 대상들은 내면의 세계에서 여전히 힘을 유지한다. 그래서“내부 파괴자”로 남아 불안을 일으키고 여전히 고통을 준다. 결국 내면화된 대상들은 외부에 있을 때만큼이나 고통을 준다. 따라서 이들은 내면화될 뿐 아니라 억압된다. Fairbairn에게 일차적으로 억압된 것은 견딜수 없는 충동이나 불쾌한 기억이 아니라 내면화된, 견딜 수없이 나쁜 대상들이다. 안타깝게도 내면화된 나쁜 대상을 억압한다고 하여 그들이 내면 심리세계에서 제거되지 않는다.결국 억압으로 제거되지 못한 대상들을 외부 현실세계로 투사 된다. 그 결과 처음엔 외부 대상이 내면화되어 형성되었던 내적심리세계가 이번엔 반대로 외부 현실세계에서 펼쳐지게 된다. 예를 들어 현실 속 직장 상사에게 혹독했던 과거아버지의 상을 투사하여 직장 상사가 눈에 띄면 무조건 자리를 피하거나, 업무 보고를 할 때 부르르 떨 정도로 두려워하는 등 어린 시절 아버지관계를 반복한다.


내면화된 초기 대상관계를 반복하려는 환자는 치료자와관계에서도 병적인 대상관계를 반복하려 한다. 현재 정신치료 중인 지방 전문대학에 근무하는 30대 후반의 한 여자 교수의 예를 들어보겠다. 환자의 어머니는 차갑고 냉소적이였으며 크게 성공한 사업가인 그녀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환자의 자율적이고 주도적인 행동들을 막았다. 대신 자신이시키는 대로만 하도록 환자를 강요하였다. 행여 환자가 스스로 무엇을 하려하면, 환자가 하는 모든 행동에 대해 발작적으로 욕하고 비난하였다. 환자는 어려서부터 부모와 관계에서 수치심과 모멸감 외에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고이야기 하였다. 현재의 전문대학 교수 자리도 그녀의 아버지가 알아서 만들어 준 것이다. 환자는 평상시 생활을 할 때마치 모욕당할 기회를 찾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수치심을 느끼고 기분이 울적해져야 그나마 사람들과 관계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그것이 점차 뚜렷해졌다. 환자는분석가도 자신이 무능해 보이고 형편없어 보여야 자신을 안됐다고 생각해서 더 많은 관심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환자는 자기비하적인 행동양식에 대한 치료자의 해석을받아들이면서도, 실제 치료자 관계나 일상 대인관계에서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때로는 치료자의 해석을 두려운 위협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환자는 비록 고통스럽지만 자기비하적인 대상관계라도 못하게 되면 자신은 완전히 버림받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치료자가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환자는 해석과 통찰을 통하여 자기비하적인 관계를 포기하고 더 나은 대인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는 마치 괴상한 폼으로 스윙을 하던 야구 선수가, 내가 괴상한 폼으로 스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괴상한 폼을 포기하는 것과 유사하다는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괴상한 폼을 깨닫고 그 괴상한 폼을버릴 순 있다. 그러나 괴상한 폼을 포기한다고 곧 새로운 폼을 저절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이상한폼을 깨닫고 그것을 버리는 것은 야구 선수로서 자신의 선수생명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사실 그 선수는 괴상한 폼으로 스윙하지 않는 자신의 다른 모습을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문제는, 깨달음만으로는 제대로 된 폼이 저절로 생기는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상관계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처럼 상호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부모와 관계에서 병적인 대상관계를 형성했던 사람이 그런 병적 관계를 포기한다고 저절로 건강한 대상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대상관계는 새로운관계 속에서 다시 만들어져야만 한다.


대상관계이론에서 전이 해석의 초점은 억압된 욕동이 아니라, 나쁜 대상관계의 반복이다. 즉 환자로 하여금 불안과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충동이 아니라, 내면화된 나쁜 대상들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앞서도 언급하였듯이, 해석과 통찰만으로는 분석적 변화-좋은 대상관계-가 저절로 형성되지는 않는다. 과거 대상과맺었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관계를 지금 치료자와 시작하고있다는,‘예전과 다른 새로운’ 관계경험이 필요하다. 자신이이해받고 또 새롭게 교류할 수 있다는, 예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해야만, 내면화된 옛 대상들과의 강렬한 중독적인 관계양식을 포기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지금 치료자와 새로운 관계체험을 이뤄갈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Winnicott(1965)은 분석상황이 개인적인주체성을 새롭게 탐색하고 재생시킬 수 있는 완벽한 공간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분석가는 충분히 좋은 어머니(good enough mother)로서 환자가 한 주체로서 느끼는 깊은 내면의 욕망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Winnicott에 의하면 환자의 정신 병리는 특정한 욕동이나 갈등이 아니다.관계를 경험하는 전체적인 방식이 환자의 정신병리라고 생각하였다. 예를 들어, 자신의 자발적인 욕구를 무시하고 지나치게 요구하고 침범하는 어머니에게 맞춰 성장할 수밖에없는 아이 자신의 관계방식(거짓 자기, false self)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Winnicott에 의하면, 환자는 분석상황 안에“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며, 그 외에 아무 것도 요구받지 않는다. 환자는 분석 상황에서 자신이 경험하는 것을 느끼고 표현하기만 하면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환자는 단절되었던 참 자기(true self)가 다시 발달할 수있는 안아주는 환경(holding environment)을 경험하게 된다.


Winnicott은 환자가 단순히 전이 역전이에 관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분석상황에 참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환자가 강력한 자기회복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환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상실되었던 환경적 특성을 분석상황에서 만들어내고 형성하려 한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Winnicott은 분석의 내용이나 해석에 대해선 거의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가 분석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환자가 분석가와 관계에서갖게 되는 자기의 경험(experience of self)이었다.


Klein 학파인 Joseph(1989)도 환자는 자신의 내적 대상관계(internal object relations) 전체를 분석상황에서 실현시키려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내적대상관계 전체가 실현되는 지금 이 순간(here and now)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대상관계이론이 분석상황에 끼친 또 다른 큰 영향은 아무래도 Klein의 투사적 동일시 개념이다. Klein(1946)은Freud의 투사(projection)이론을 확대하여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이론을 고안하였다. 투사는 단순히 욕동을 투사하게 되지만, 투사적 동일시에서는 욕동과 함께 자신의 일부를 투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환자(투사한 사람)는 자신의 한 측면을 보유하고 있는 치료자에 대해 계속연결성을 유지하려 하고(keep connection), 그를 조정하려한다(controlling). 그 결과 치료자는 환자가 투사한 내용을가진 사람처럼 반응하게 된다(projective counter-identification).이러한 치료자의 반응을 경험하며 환자는 자신이투사한 내용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치료자의 것이라고 인식하게 된다(projective identification).


Klein의 투사적 동일시 개념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환자가 분석가를 끊임없이 끌어들이려고 하는 강력한 무의식적욕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점이다. 그러나 Klein의 투사적동일시 개념은 환자의 심리 속에서 일어나는 환상이다. 아직은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사건에 머물러있는 것이다. Bion(1957)은 환자를 치료하면서 환자가 투사하고 있는 강렬한 감정과 경험들을 자기 자신이 직접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즉 환자의 환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치료자가 실제로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통하여 Bion은 투사적 동일시가 한 사람의 마음속(intrapsychic)의 환상이 아니라, 두 사람의 심리 사이(interpersonal)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관계적 상호작용이라고그 개념을 확장시켰다.


Spillius(1983)는 치료자가 상호작용으로서 투사적 동일시를 이해하는 것이 치료 현장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만약 치료자가, 경직된 공식화된 언어적 해석만 한다면, 이는 투사적 동일시라는 생생한 교감의 순간을 인식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런 공식화된 해석은 분석가가 자신이 미리 세운 가정에 따라 환자를 짜 맞추어 이해하려는 분석가의 소망이라고 생각하였다. 투사적동일시 과정 중 분석가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나고 있는 생생한 현장에서, 환자의 투사를 인식하고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contain) 능력이고, 이를 적절하게 되돌려 주는 능력이다.


자기심리학


자기심리학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Kohut(1971)의 심리구조 모델에서 근본적인 구성요소는 자기(self)이다. 자기는 주도성의 중심이고 인상들을 받아들이는 중심이다. 전통적 욕동모델에서 원본능, 자아, 초자아가 담당하던 기능을자기가 담당한다. 자기는 이제 더 이상 표상(representation)이나, 자아 활동의 산물이 아니다. 자기는 그 자체가 능동적인 대리자(agent)이다. Kohut은 생존에 산소가 필요하듯이아이의 심리적 생존을 위해서는 타인과 관계가 필요하다고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공감적이고 반응적인 관계 속에서 자기가 출현하게 된다고 생각하였다.미숙한 유아의 자기는 약하고 아직 뚜렷한 형체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 자기에게 응집성(cohesion), 항구성(constancy),그리고 탄력성(resiliance)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타인의 참여가 필요하다. 이와 같이 나중 성숙했을 때자신의 정신구조(성장한 자기)가 스스로 담당해야하는 기능을 지금 대신 제공해 주는 대상을 자기대상(selfobject)이라고 한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대상은 자기로부터아직 분화되지 않은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자기대상은아이의 욕구에 공감적으로 반응해 줌으로써 자기(self)가 점진적으로 발달하는데 필요한 경험들을 제공해 준다.


Kohut에 의하면, 아이가 건강한 자기를 갖기 위해선 세가지 유형의 자기대상관계 경험이 필요하다.


첫째, 유아는 점점 발전하는 자신의 잠재력을 드러내고 싶어 하며, 그에 대해 칭찬받고 싶어 한다. 즉 아이의 활기와위대함 그리고 완벽함에 대한 타고난 감각에 반응하고 확인해 주며, 아이를 기쁨과 인정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의확장된 마음상태를 지지해 주길 바란다. Kohut은 이것을 유아가 느끼는 건강한 전능감과 과대감을 나타내는 것이라고생각하였다. 이런 자기 이미지들은“반사 자기대상”(mirroringselfobject)과 연결된다(“나는 완벽하다, 그래서 너는 나를 칭찬 한다”). 이 과정에서, 고태적인 과대 자기(grandioseself)는 반사 자기대상 경험을 통해 자기의 한 극인“자기-주장적 야망의 극”(pole of self-assertive ambitions)을 형성한다.


둘째로 아이는 부모 중 적어도 한명 이상에 대해 이상화된 이미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이상화된 자기대상”(idealized selfobject)과 융합되는 경험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아이가 존경할 수 있고 이상화된 자기대상과 융합되어 평온과 완벽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너는 완벽하다, 그리고 나는 너의 일부이다”). 이 과정에서, 고태적인이상화 부모 이마고(archaic idealized parental imago)는 이상화된 자기대상과의 경험을 통해“가치와 이상의 극”(pole of value and ideals)으로 변형된다.


이 두 과정을 통해 형성된“자기 주장적 야망의 극”과“가치와 이상의 극”은 양극 자기(bipolar self)를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양극 자기를 발달시키고 성취하기 위해선타고난 능력들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분신 혹은 쌍둥이 자기대상”(alter-ego or twinship selfobject)경험을 필요로 한다. 이는 타인이 본질적으로 자신과유사하다는 경험이며, 4세부터 10세 사이의 발달과정에 특히 중요하다. 우정은 이렇게 서로가 근본적으로 유사하다는경험으로부터 나온다고 볼 수 있다. 분신자기대상 경험으로부터 보다 현실적 차원의 심리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타고난 기술과 재능의 극”(pole of innate skills and talents)이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Kohut은 건강한 자기는 기술과재능을 통해 야망이라는 에너지원으로부터 개인적인 의미가주입된 이상화된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고 생각하였다.


어린 시절 자기대상경험은 자기의 형성에 필수적이지만, 점차 성장하면서 아이는 아동기의 자기애적인 상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아이는 어떻게 자기애적 상태를 벗어날 수 있을까?


초기 아이는 자신의 환상을 즐길 수 있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자신의 전능감을 누릴 필요가 있고, 어머니가 아침 해를뜨게 한다는 믿음을 누리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미 설명하였듯이, 이런 초기 자기애적 마음 상태는 건강한 자기애의핵심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자기애적 마음은 갑자기 좌절되어서는 안 되고, 그 자체가 서서히 변형되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아이는 점차 자신이 벽을 통과해걸을 수도 없고, 아버지가 자신이 속한 축구팀을 항상 이기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일상생활의 실망과환상의 깨어짐을 통해 자신과 부모에 대한 생각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금씩 자기와 타인에 대한 과장된 이미지들은 줄게 되고, 현실감은 늘어난다. 이때 아이가견딜 수 있는 적절한 수준의 좌절이 일어나기 위해선 지속적으로 지지적인 환경이 필요하다. 이런 안전한 배경이 있어야 아이는 좌절과 실망을 이겨내고 자기대상의 기능적 특성들을 내면화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실망 속에서 무너지지않고 자기 자신을 달랠 수 있고, 패배에도 불구하고 내면의힘을 경험할 수 있다. Kohut은 이 과정을 변형적 내면화(transmuting internalization)라 하였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아이는 자기애적 상태의 열정과 생명력의 핵심을 간직한 채 안정되고 탄력성 있는 자기를 결국 형성하게 된다(그림 1. Ornstein 1990).


Freud에게 전이는(일상생활 중에 나타나는 주위 대상에대한 전이든, 분석상황에서 치료자에 대한 전이든) 성장하며점차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반면 Kohut에 의하면 자기대상전이는 일생을 두고 지속되는 것이며, 결코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유아적 형태로부터 성인의 형태로 진행될뿐이다. 인정받고, 의존하고, 관계를 맺고, 심지어 공생하려는 욕구까지 결코 떨쳐 버릴 수 없다. 단지 더 성숙한 형태로 변형될 뿐이다. 전이는 생물학적 본능과 욕동을 만족시키려는 충동의 결과가 아니다. Kohut에게 전이는, 태어날 때부터 관계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인간 존재가, 공감적 관계 속에서 자기를 유지하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래서Winnicott가 환자가 자신의 어린 시절에 상실되었던 환경적특성을 분석상황에서 만들어내려고 한다고 보았듯이, Kohut도 환자는 어린 시절 중단되었던 자신의 발달과정을 분석 상황에서 다시 활성화시키려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분석상황에서 자기대상욕구를 갖게 되며, 이는 치료자와 관계에서 자기대상전이(selfobject transference)로 나타난다고생각하였다.


전통적인 신경증적 전이(neurotic transference)에서 환자는 치료자를 자기와 분리된 사람으로 인식하면서 그로부터 어떤 강렬한 욕구충족을 원한다. 그러나 자기대상전이(selfobject transference)에서 환자는 독립적인 두 사람의관계가 아니라, 마치 장갑 안에 있는 손가락과 같은 연계성(hand-in-glove union)을 원한다. 그래서 세 가지 자기대상욕구가 있었듯이, 그에 따라 반사 자기대상전이(mirroringselfobject transference), 이상화 자기대상전이(idealizingselfobject transference), 분신 혹은 쌍둥이 자기대상전이(alter-ego or twinship selfobject transference)라는 세가지 자기대상전이를 나타낸다.


Kohut(1984)은 자기대상 전이의 초기 단계에서는 해석이 불필요할 뿐 아니라 오히려 파괴적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치료자의 섣부른 해석은 환자로 하여금 자신과 치료자가분리된 존재라는 사실에 집중하게 하여, 자신의 성장에 필요한 자기대상 경험에 몰입할 수 없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자는 이러한 자기대상전이들이 해석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펼쳐질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고전적인 입장에서 보면, 분석가가 환자의 유아적이고 자기 몰입적인 전이적 환상을 만족시켜준다면, 고착이 더 심해지거나 퇴행이 더 깊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그러나 Kohut은 치료자가 공감적으로 환자의 자기대상이되어줄 때 환자들이 보다 진정한 생동감(vitality)과 안녕(well-being)의 느낌을 발달시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또한 이런 과정이 어느 정도 지난 후에 환자들은 퇴행하는것이 아니라 훨씬 응집되고 탄력있는 강건한 자기 감각을발전시켰다. 그리고 실망을 견딜 수 있게 되고, 실생활에 더잘 적응하였으며, 개인적인 경험에서 생생한 기쁨을 느낄 수있게 되었다. 이렇듯 치료자의 공감적 반응을 통해 환자의자기가 보다 응집되고 견고해 지면, 환자는 이제 비로소 자신의 괴로웠던 감정들을 탐색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취약성이 어린 시절 경험해야 했던자기대상 경험의 결핍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시작한다.


분석가가 환자에게 자기대상이 되고 그 기능을 감당하지만, 환자의 요구에 완벽하게 맞출 수는 없다. 분석가는 좋은부모가 그러하듯이 환자로 하여금 서서히 점진적으로 좌절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환자는 보다 현실적이면서도 여전히 생동감 있고 강건한 자기와 타인에 대한 감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치료자와 관계에서 다시 한 번 변형적 내면화(transmuting internalization)과정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상호주관성 이론(Intersubjectivity)


상호주관성 개념은 현재 사회학, 교육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지만, 본래는 철학의 주요한 개념이었다. 특히 현상학자들에 의해 그 개념이 발전되어 왔는데, 예컨대 개인적 의식이나 개인적 자아가 아닌“공동체적의식” 혹은“공동체적 자아”를 의미했다. 이는 

  • 주관성은 비과학적이고 객관성만이 신뢰할 만 하다는 실증주의에 대한현상학적 비판으로부터 발생한 개념으로, 

  • 객관성이란 것도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의 주관성이 포함된“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한다. 

이런 이유로 심리학 등에선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 사이에 공유된 이해”로 상호주관성을 이해한다(한전숙 1987;Husserl 1989;Marx 1989).


정신분석에서 상호주관성 개념도 이와 유사하게 정의된다.즉 분석상황을 환자(피분석자)와 분석가라는 두 주관적 경험 세계(주관성) 사이의 상호작용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정신분석에서 전이는 주로 환자에 의한 반응이지만,상호주관성 이론에서는 환자와 분석가가 함께 만들어가는것으로 이해한다. 이렇듯 분석 상황 속에서 환자와 분석가사이에 생기는 모든 것-전이와 역전이 등-은 분석가와 환자가 함께 만드는 것(co-creation)으로 본다(Renik 2004).


정신분석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상호주관성


전통적인 고전적 정신분석 견해에 의하면, 전이에서 강조되는 것은 환자의 무의식적 주관적 세계이다. Freud의 표현처럼 전이는“환자의 본능에 근거한 소망이나 충동을 재현하려는 것”이다. 그래서“전이는 본질적으로 환자가 현재의분석가를 마치 과거에 자신이 경험한 사람인 것처럼 대하게되는 것이다. 전이는 일차적으로 환자의 무의식적 현상이며,환자는 이런 왜곡을 인식하지 못한다.”(Greenson 1967)전통적인 견해에서, 분석가가 환자의 전이를 조장하거나조작하지 않는 한, 전이는 오직 환자에 의해 야기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상호주관성 이론은 분석가와 환자가 전이 반응을 함께 결정한다는 점(co-determining)을 강조한다(Levine등 2000;Aron 2006). 왜냐하면, 분석가의 무의식적인 주관성은 분석과정에서 결코 제거될 수 없기 때문에, 분석 과정과 분석 관계에서 생기는 모든 현상에 공동으로 참여하게 된다. 비슷한 의미로, Gill(1994)은 분석가는 필연적으로 환자에게 무의식적으로 관여하게 되고 부지불식간에암시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고 말하였다.


상호주관성 이론에 의한 역전이에 대한 이해 또한 전통적인 견해와는 사뭇 다르다. 전통적인 견해에 의하면, 정신분석 교육과 훈련을 받고 충분한 자기 분석을 받은 후, 분석상황에서 절제와 중립성의 기법을 유지할 수 있으면, 분석가는 분석상황을 방해하거나 왜곡시키지 않는 객관적인 관찰자가 될 수 있다.


1950년대 분석가들은 자아심리학 이론에 의해 분석훈련을 받았고, 위와 같은 분석태도를 요구받았다. 그들은 이런분석태도에 점차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고, 역전이 반응에는Freud가 이해했던 것보다 더 많은 분석적 내용들이 있다는것을 점진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Heimann(1950)은 역전이는 분석의 방해물이 아니라, 환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있는 유용한 반응일 수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당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Money-Kyrle는 1956년 논문에서,<Normal counter-transference and some of its deviations>이라는 그의 논문 제목이 뜻하듯이 정상적인 역전이와 바람직하지 않은 역전이가 구분될 수 있음을 제시하였다.그리고 1970년대에 이르러서, 역전이는 꼭 환자에 의해 야기되는 것만도 아니며, 또한 예방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인식하게 되었다(Sandler 1976).


1980년대 중반 이후, 분석가와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에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Aron(1996), Lachmann(2000) 등은 분석가와 환자에게맡겨진 역할은 분명히 다르지만, 그들은 동일한 존엄성을 갖는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또한 절제와 중립성은 불가능한것이라고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역전이는 단순한 반사적인 반응이 아니라, 치료자 자신의 일련의 감정들, 다양한 경험들, 그리고 때로는 조절하기 힘든 분석가의 행위들,등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분석가 자신의 표현으로 이해되기시작하였다. 이러한 시선에 의해“역전이”(countertransference)라는 용어 대신에“분석가의 주관성”(analyst’s subjectivity)이라는 용어가 점차 주목받게 되었다(Minolli와 Tricoli2004). 그리고 분석가의 주관성이라는 개념은 분석상황에서 임상적으로 점점 분명한 것으로 입증되었는데, 예를들어 Renik은 분석가는 항상 분석상황에 자신의 그 무엇인가를 투입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변화들에 대해 Spillius(2004)는 영국분석학회에서는‘중립적(neutral)’이란 용어가 한 번도 강조된 적이 없었고(has never been emphasized) 아마도 유럽대륙의 다른 지역에서도 그랬을 거라고 말하면서, 중립성에 대한 자아심리학적 집착(ego-psychological preoccupation)에 대해 그것은 공평하지 못한 금지명령일 뿐 아니라 분석가에게불가사의한 수수께끼 같은 힘을 지우는 것으로, 영국 분석가들에게는 항상 기이하게 보였다고 지적하였다.


“Enactment”개념은 이러한 복잡한 분석 상황 변화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분석 내 행동화(enactment)라는 용어를 정신분석적인 의미로 처음 사용한 것은 Jacobs(1986)이었다. 그의 논문<역전이 분석 내 행동화>(countertransferenceenactment)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분석 내행동화는 분석가가 역전이 감정을 실제 행동화 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마치 환자가 전이 행동화(acting out)를 하듯이, 단지 부분적으로밖에 극복되지 않은 치료자의 오래된 갈등들이 환자의 특별한 전이감정이나 독특한 반응에의해 강렬하게 자극 받게 됨으로써, 분석 내 행동화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McLaughlin(1991)은‘분석적 분석 내행동화(analytic enactment)’를 분석가와 환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반응으로서, 두 사람 다 그것이 다른 쪽의 행위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경험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즉분석 내 행동화(enactment)를 치료자가 역전이를 행동화하는 것이라는 개념으로부터 환자-분석가 상호작용의 결과생기는 것으로 그 개념을 확대하였다. 다시 말해서, 분석 내행동화(enactment)는 심리내적이고 개별적인 차원에 대조되는, 관계적이고 경험적인 차원으로, 분석적 조우(analyticencounter)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Minolli와 Tricoli(2004) 등은 분석 내 행동화를 분석과정에서 분석가와 피분석자 사이에서 어떤 분석적 과정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라고 정의하였다.


이와 같이 상호주관성에 입각한 정신 분석가들은 분석상황을 분석가와 피분석자 두 사람이 함께 상호작용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다만 상호주관성과 앞선 정신분석 패러다임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견해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Levine과Friedman(2000)은 상호주관성 이론이 욕동이론을포함한 전통적인 정신분석 이론의 의미들을 확장하고 더욱풍요롭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상호주관성은 특정한 분석학파로부터 독립된 광범위한 초-이론(meta-theory)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정신분석에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이란 용어를 처음 도입한 Stolorow와 Atwood(Stolorow와 Atwood 1992)이나 Orange(1998), Bacal(1998) 등은 상호주관성 이론을 Kohut의 자기심리학(Selfpsychology) 흐름으로부터 나타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생각한다. Goldberg(1998)는 Kohut의 자기심리학이 3가지지류로 발전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상호주관성 이론이라고 주장하였다.


Kohut은 아이의 심리적 생존을 위해 타인과 관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어머니를 자기대상(selfobject)으로 사용하여 아이는 응집되고 항구적인 자기(self)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Kohut은 아이-어머니 관계를self-selfobject의 상호작용으로 보고, 그 관계에서 얼마나효율적인 자기 형성이 이뤄지는가 하는 기능적 관점으로 바라본다. Jacobs(1998)에 의하면, 자기-자기대상(self-selfobject)관계는 상호주관성 관계 즉 주관성-주관성(subject-subject) 관계와는 다르다. 무엇보다 자기-자기대상관계는 심리내적 구조 사이의 관계(intra-psychic)이다. 어머니는 자기대상(selfobject)으로서 유아의 자기가 형성될 수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할 뿐이다. 반면 상호주관성 관계는 두 주관적 경험 세계 사이(inter-personal)의 상호작용이다. Kohut은 관계 속에서 자기(self)가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초점을 둔 반면, Stolorow는 개인의 주관적인 세계(subjectivity)가 어떻게 조직화되고 구성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Stolorow와 Lachmann(1980) 그리고 Stolorow와 Atwood(1997)에 의하면, 정신분석적 통찰은 지식적 이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신분석적 이해는 관계에바탕을 둔 것이다. 치료자와 공감적 관계를 맺으면서 환자는 그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주체(치료자 곧 새로운subject)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치료자의 공감적 반응을통하여 환자 자신에 대해서도 새로운 존재감(subjectivity)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상호주관적 과정을 진행하며 환자는 과거 중단된 발달과정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게 된다.


발달적 성취로서 상호주관성


상호주관성은 두 주관성의 상호작용이다. 그렇기 때문에한 사람의 주관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상호주관성의 능력은어떻게 획득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자연스럽게 같이병행되어 왔다.


Aron(2006)에 의하면, 상호주관성은 비록 초보적 형태이긴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존재한다. 즉 사람은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Trevarthen(1997)이나 Stern(1985) 등은 유아의주관성과 상호주관성을 발달적 성취로 연구하였다.


1977년 Trevarthen이 발표한 논문은 5명의 신생아가생후 첫 6개월 동안, 작은 장난감이 그들 앞에서 흔들릴 때와 그들의 어머니가 단순히 말을 걸 때, 아이들의 반응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비교 검토하였다. 신생아는 생후 2달이되면서 어머니와 장난감에 대한 반응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어머니에게 아이는 미소와 옹알이를 할뿐만 아니라 다양한 손과 얼굴 그리고 신체 반응을 보였다.그리고 아이의 행동에 대해 되돌려 주는 어머니의 반응에대해 아이는 또 다시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장난감에 대해선 그렇지 않았다. 아이가 장난감에 대해 일방적으로 반응을 보일 뿐, 장난감은 아무런 되돌림 반응이 없었다.


아이-장난감 관계와 아이-어머니 관계에서 아이 행동이차이를 보였을 뿐 아니라, 5명의 아이는 각각 자신의 어머니관계에서 독특한 행동 양상을 보였다. 즉, 각 아이-어머니 쌍은 서로 다른 상호 행동 양상을 나타내었다. 아이는 어머니의 행동을 수동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단순한 리듬감 있는 박자에 동시성을 가지고 반응하며(synchronize)최고조의 반응을‘함께’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러한 반응은 각 신생아-어머니 쌍마다 독특하였다. 이러한아이-어머니 사이의 행동에 대해 Trevarthen은 상호 의도성(mutual intentionality) 혹은 서로의 마음 상태를 공유하는 것(sharing of mental states)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신생아와 어머니 사이의 소통(비언어적 소통) 중에 상호주관적이지 않은 내용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하였다.


이드심리학이나 자아심리학에서 타인은 욕동이나 자아 욕구의 대상(object)일 뿐이다. 실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욕동의 대상이거나 욕동의 표상으로 심리내적인 것이다. 대상관계이론도 현실의 인물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내부대상(internal object)관계를 반복한다. 자기심리학 또한 심리내적 관계를 다룬다. 그리고 조율(attunement)과 공감(empathy)을 강조하지만, 자기-자기대상관계에서 일방적이다. 자기와 자기대상의 조율과 공감에서 언제나 자기(self)는 수혜자(recipient)이고, 공감을 주는 존재(giver)는 아니다. 반면 자기대상(selfobject)은“자기(self)를 지탱하고세우는” 주는 기능만을 할 뿐이다.


이와 같이 기존의 분석에서 대상(object)은 Trevarthen의 연구에서 아이가 나타내는 반응의 대상이었던 장난감과유사하다. 자신의 욕동이나 필요성에 대한 대상 역할을 할뿐이다. 아이에 의해 대상은 어떤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그러나 아이-어머니관계는 다르다. Trevarthen의 연구에서 아이는 어머니에게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아이에게 반응을 되돌려 주었다. 어머니는 장난감과 달리, 아이반응의 대상(object)이었지만, 동시에 아이에게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또 다른“자기와 같은 다른 누구(subject)”였다.


Trevarthen의 연구는 두 가지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다.하나는 자기-대상관계와 실재하는 주체(주관성)―주체(주관성) 관계는 다르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두 주관성은 함께 새로운 반응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주관성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나와 동일한 주체적 실체(equivalent subject)로 인식할 수 있게 되는가?”라는 문제를 불러 일으켰다.Benjamin(1990)은 상호주관성 관계에서 상호 인식(mutual recognition)을 강조하였다. 그녀는 상호 인식을 자기(self)의 성장과정의 본질적인 한 요소라고 생각하였다. 


Benjamin(1990)에 의하면, 타인(the other)은 우리에게 세 가지 범주로 경험될 수 있다. 첫째는 내 밖에 있는 대상으로 지각된다(the object perceived as outside the self). 나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외부 대상으로 인식된다는 뜻이다. 둘째는주관적으로 감지되는 대상일 수 있다(the subjectively conceivedobject). 내 욕동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이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주체(another subject)로 인식될 수 있다. 즉 상대도 나와 같은 주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Aron(1996)은 Montesquieu의 예를 들어 상대를 나와같은 주체로 인식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16~17세기에 유럽인들은 처음으로 중국,일본, 아메리카 원주민 등 그들과 멀리 떨어진 외국인들을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들과 다른 그들의 문화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점차 그들 문화가 유럽인들에게 낯설듯이, 유럽문화 또한 그들에게 낯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유럽에 온 중국인을 몽테스키외가 흥미롭게 바라보듯이, 중국인도 또한 몽테스키외를 낯설게 바라보고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몽테스키외 자신이 관찰하는 주체(observingsubject)이면서 동시에 관찰 받는 대상(observed object)이며, 중국인은 자신을 관찰하는 그와 같은 또 다른 주체(another subject)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Aron이 든 몽테스키외와 중국인 이야기가 인지적인 상호인식의 예라고 한다면, Stern은 정서적인 상호인식을 강조하였다. Stern은 기존의 정신분석이론이 분리-개별화과정을 통하여 아이가 자율성(autonomy)을 얻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였기 때문에, 아이-어머니 상호관계의 작용은 소홀히 하는 면이 있었다고 지적하였다.


Stern(1985)에 의하면, 초기 아이의 발달은 공생(symbiosis)으로부터 자율(autonomy)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인간 상호작용의 형태를 획득하는 것이다. Stern이 말하는 상호작용에서 중요한 것은 행동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행동을 수행하는 태도, 그리고 그것을 정서적으로 경험하는 내용들이 중요하다. Spitz의 연구에서, 시설 아동들은충분히 젖을 먹고 옷을 입었어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최소한의 인간 상호관계의 접촉이 없었기 때문이다. Harlow의 원숭이 실험에서도 헝겊으로 만든 대용 어미원숭이는 실제 어미 원숭이를 대신하지 못하였다.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잠을 재우는 등의 행동들은 단지 생리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관계를 나누는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Spitz나 Harlow 실험에서처럼 아이-어머니 상호관계가 없으면 아이는 아이로서 성장하지 못한다. Stern은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반응을 일으키고 그 반응에 응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도 태어날 때부터 갖고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상호관계작용을 통해서 획득된다고보았다.


Stern은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어렴풋한 자기 감을 갖고있다고 생각하였다. 6~7개월이 되면 핵심적인 자기(coreself)가 생기고, 7개월부터 15개월까지는 주관적 자기(subjectiveself)가 획득되면서 애착 체계를 촉진시킨다고 보았다. Stern은 아이의 상호관계의 경험에서 인지적 측면보다 공유된 정서가 중요함을 강조하여, 상호정서작용(interaffecivity)이라는 용어를 고안하였다. 그리고 상호정서작용은주관적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경험되고 가장영향력이 크며 즉각적인 중요성을 갖는다고 보았다. 이런상호주관성 관계를 통해 정서적 조율(affective attunement)을 반복 경험하게 되면서, 아이는 어머니와 나누는 상호작용의 단위들은 표상화하여 일반화한다. 이를 RIGs(Representationof Interactions Generalized)라고 부르고, 이는이후 인간상호관계의 기본 틀이 된다.


Fonagy(1991)는 상호주관성의 발달과정을 보다 세밀화하려고 시도하였다. Fonagy에 의하면, 첫 달이 되면 아이는양육자와 감정의 공명(affect resonance)을 한다. 8개월이되면 다른 사람의 기분을 공감적으로 느끼고 반응한다. 14개월이 되면 다른 사람의 의도를 이해하고 협력적인 놀이를 한다. 그리고 2~3살이 되면 자신과 타인의 심리상태를반영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해지며, 6살이 되면 다른 사람의생각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Stern이나 Fonagy는 아이-어머니 상호작용을 통해 어떻게 아이가 자기의 주관성을 얻어가고 인간상호관계의 기본 틀을 형성해 가는가를 세밀하게 설명하였다. 이를 아주간략히 그리고 일반적인 이야기로 표현하면, 태어나자마자늑대에게 키워진, 즉 늑대와 상호작용하며 자란 아이는 자신을 늑대인줄 알고(자신의 주관성 subjectivity), 또 늑대처럼 상호작용하며 어머니와 성장한 아이는 자신을 인간으로 알게 되고 인간답게 관계를 나눈다는 것이다.


상호주관성과“분석적 3자”(Analytic third)


Ogden(2004)은, 환자의 정신 병리와 정신분석 상황에서주관성(subjectivity)과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의 변증법적 상호관계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였다. Ogden은 기본적으로, 분석 상황에서‘분석가 관계로부터 무관한 피분석자’ 혹은‘피분석자 관계와 무관한 분석가’와 같은 경우는결코 없다고 생각하였다. Ogden의 이런 인식은 스스로 지적하였듯이, Winnicott(1965)이 언급한“어머니의 공급과무관한 유아와 같은 경우는 결코 있을 수 없다”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유아, 어머니, 그리고 유아-어머니 상호작용 단위라는 신체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구분되는 세 개의실재가 있듯이, 분석상황에도 분석가, 피분석자, 그리고‘분석가-피분석자 상호작용 단위’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들은 각각 서로 변증법적으로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하였다.


Ogden(2004)은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 이런 변증법적관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예시하였다. 투사적 동일시는피분석자가 자신의 일부를 분석가에게 투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결과 분석가는 이제 나와 무관한 타인이 아니고,어느 부분에서 나이다(You are me). 그래서 무의식적 환상속에서 분석가와 연결성을 유지하고 조정하려 한다. Bion이 지적하였듯이, 투사적 동일시는 여기서부터 한 사람의 심리내적(intra-psychic) 환상으로부터 두 사람 사이(interpersonal)상호작용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분석가는 피분석자가 투사한 내용을 그대로 경험하게 된다. 분석가는 이제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나기 전의 분석가가 아니다. 투사적동일시를 통해 투사한 내용을 느끼고 경험하는 변화된 분석가다. 이번엔 분석가가 피분석자를 공격하는 등 변화된분석가의 모습으로 반응한다. 이러한 공격을 받고 마음이상한 피분석자는 또한 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나기 전의 그가 아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며 즉 변증법적으로 관계를맺으며 분석가와 피분석자는 새로운 주관성을 계속 획득하게 된다.


이상의 예에서 보듯 <투사적 동일시>는 분석가와 피분석자가 함께 생성해낸(co-created) 상호주관성의 세계이고 제3의 주체(subject)이다. Ogden은 분석가와 피분석자가 함께 생성해낸 상호주관성의 세계를“분석 제3자”(analyticthird)라고 이름 불렀다. 그리고 분석가와 피분석자의 개인주관성(subjectivity)이 분석 제3자와 변증법적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분석이라고 주장하였다.


좀 더 익숙한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상호주관성의 예를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이드심리학이나 자아심리학에서 한 여자는 한 남자의 욕동의 대상일 뿐이다. 한 남자와 여자가 지하철을 타고 가다우연히 눈이 마주쳐 성관계를 갖고 이름도 모른 체 헤어졌다. 이때 상대는 오직 욕동의 대상으로만 쓰였다. 상대를 사용하여 행하는 자위행위와 다름없다. 그리고 각자에게 남는모든 것은 단일체적인 한 사람의 심리내적 사건으로, 욕동의만족 혹은 좌절(intra-psychic) 뿐이다.


사랑하는 두 남녀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매우 다르다.남자는 여자를 욕동의 대상으로 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를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남자는 여자가 바라보는 사랑의 눈빛을 느낀다. 즉 이제는 남자가 여자의 눈빛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만약 남자가 오직 자신의 욕동의 만족(intrapsychicsatisfaction)에만 매달리지 않는다면, 남자는여자에게서 욕동의 대상만이 아닌 다른 가능성을 인식하게된다. 즉 Trevarthen의 연구에서 아이와 어머니가 “함께”최고조의 반응을 만들어 내었듯이, 남자는 여자와“함께” 사랑의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음(inter-personal relation)을 느끼게 된다. 만약 그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부부, 가정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형성된다(intersubjectivity). 분석가와 피분석자 사이에서 투사적 동일시라는“분석 제3자”가생겼듯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 사랑의 세계(연인 관계, 가정 등등)라는“관계 제3자”(relational third)가 생겼다. 이런“제3자”의 세계는 혼자서는 결코 형성할 수 없는 새로운세계이다. 이번엔 그들이 형성한 새로운 세계가 거꾸로 그들각자의 주관성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즉, 연인이 된 남자와 여자는 이제 예전의 남자와 여자가 아니다. 사랑하는여자의 사랑을 받는 남자는 이제 홀로 지내던 그 남자가 아니다. 모습은 같을지 모르나, 그가 느끼는 자신에 대한 주관성(subjectivity)은 전혀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남자는 여자와 관계를 통해서만 자신이 남편이고, 아버지이고, 가장이며, 무엇보다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이제 예전 홀로이던 그 남자가 아니다. 또한 여자에 대해서도, 그녀가 바로 아내이고, 어머니이고, 주부이며, 무엇보다사랑받는 나와 같은 존재임을 알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상대(other)가 나와 같은 또 다른 주체(another subject)임을 알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홀로 있는 한 사람만으로는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오직 상호주관성의 관계를 통해서만 비로소 각자의 진정한 주관성이 무엇인지를 전체적으로 알 수 있다. 사랑하는 남녀를 사랑의 관계를 떠나서 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Winnicott의 안아주는 환경(holding environment)도 어머니와 유아 사이에 생성된“관계 제3자”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어머니가 유아를 자신의 욕구에 따라 함부로 대하고 침범한다면 안아주는 환경은 형성될 수 없다. 어머니는부적절한 어머니로 남게 되고, 유아도 그런 어머니에 맞춰거짓 자기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유아가 자신의 자발적인 몸짓을 할 때 어머니가 적절하게 필요한 반응을 해주면, 유아는 참 자기로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안아주는 환경은 거꾸로 어머니가“충분히 좋은 어머니”로 반응할 수 있게 해 주고 또한 자신이 그런 존재임을 느끼게 해준다(subjectivity). 그리고 유아도 자신의 참된 모습을 하나하나 펼칠 수 있게 해 준다(subjectivity). 어머니와 유아는 안아주는 환경(intersubjectivity) 속에서 잠재해 있던충분히 좋은 어머니(good enough mother)로서 가능성과참 자기로서 잠재력을 함께 창조해간다.


분석상황도 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분석가와 환자는 상호주관성 관계를 통해 안아주는 환경이라는 분석 제3자를함께 형성한다. 안아주는 환경은 분석가를 충분히 좋은 어머니와 같은 치료자로 형성해주며, 환자는 그런 분석가와 상호작용하며 비로소 참 자기로서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이 때참 자기는 분석가와 관계에서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어머니와 관계에서 발현이 되지 않았을 뿐 본래부터 유아에게 있던 잠재력이다. 결국 참 자기는 잠재력으로 존재하다가, 안아주는 환경이라는 어머니와 관계 속에서 그 잠재력이 태어나게 된다. 분석 중인 피분석자와 분석가를 분석관계를 떠나서 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결 론


Freud에 의해 창시된 이후 정신분석은 이드심리학(id psychology),자아심리학(ego psychology), 대상관계이론(objectrelations theory), 자기심리학(self psychology) 등으로 꾸준히 그 이론이 확대되거나 수정 발전되어 왔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본래 철학적 개념이었던 상호주관성이 도입되며 정신분석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제 현대정신분석학은 일치된 하나의 사상이라기보다 많은 다른 이론들과 지식들이 정교하고 복잡한 관계 속에 공존하면서 진화해온 집합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정신분석의 진화는 어디를 향하는 것인가?


다윈의 진화론을 접하며 프로이드는 그 시대까지 익히 알고 있던 신학적인 인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서구 기독교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은‘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였는데, 식물이나 동물과 같은 다른 피조물은 하나님의 흔적(vestigiaDei)으로 존재하지만, 인간은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창조주의 형상인‘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존재한다는것이다(Hoekema 1990).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 자기경험과 행동을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주체적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Freud는 인간 행동의 근원적인 동기가 유아적 성과 공격성 즉 원초적 본능으로,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전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의식하는 것은 단지 빙산의 일가에 지나지 않고, 사람은 무의식적인 힘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어느 날 갑자기, 프로이드에 의하여 인간은‘신의 형상’에서 튕겨나가 정반대쪽인‘동물과 다름없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후 정신분석은 스스로 발달 진화해 오며, 인간을 욕동을 추구하는 존재에서 관계를 추구하는 존재로(대상관계이론), 또 참 자기를 추구하는 존재로(자기 심리학), 그리고 인간관계 속에서 주관적 실체로서 자기와 대상을 느끼고 상호관계를 맺는 존재로(상호주체성 이론), 그이해의 폭을 넓혀 왔다. 점차 다시 동물적 인간이란 위치로부터 떨어져 꼭 종교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동물적 모습이아닌 다른 방향으로 인간의 위치를 조금씩 재정립해 온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향후 정신분석은 인간을 신학적인 극단이나 동물적인 극단이 아닌 그런 요소들이 통합된‘인간의진정한 모습’을 찾고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상호주관성 이론은 정신분석의 이러한 흐름 속에서 비교적 새로운 개념이고 아직도 많은 연구가 진행 중인 영역이다. 앞으로“relational”,“self-psychological”,“interpersonal”,“interactive” 등의 개념과 어떻게 중복되고 어떤차이를 갖는지 등이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Levine과 Friedman2000). 무엇보다 모든 이론이 그러하듯 상호주관성이론 또한 실제 분석상황에 적용될 때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분석상황에서 분석가의 공동 창조(co-creation)가 강조되고 있기 때문에, 항상“wild analysis”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분석 과정에서 분석가의 공동 참여는그동안 가장 소홀히 다뤄졌던 분석의 차원을 보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미 주어진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정신분석이나 다른 여러 학문이 그래왔듯이 단지 끊임없는 인간 본성과 존재 자체에대한 추구를 통하여 점진적으로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을 뿐이다. 저자는 상호주체성 이론이 기존의 분석이론들을더욱 확장하고 풍요롭게 하는 초-이론으로서,‘인간의 진정한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틀을 제공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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