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학전문직업성의 사회적 시각
Medical professionalism in Korea: a sociological view
조 병 희* |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Byong-Hee Cho, PhD*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Corresponding author: Byong-Hee Cho, E-mail: chob@snu.ac.kr
서 론
전문직이란 지식을 근거로 직업 활동을 하는 집단을 말한다. 여러 전문직 중에서도 의사는 전문직의 이념형적 특징에 비교적 잘 부합된다. 의사가 되려면 수준 높고 체계적인 의학지식을 습득하기 위하여 다른 어느 직업보다 긴 시간의 교육훈련이 필요한 점, 그 과정에서 집단정체성과 직업가치를 체계적으로 습득하며 결과적으로 의사로서의 동일체감이 높은 점, 항시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며 환자진료가 다시 연구와 연결되어 의학지식 생산에 기여하는 점, 직업자부심이 매우 강하며 과업수행에서 외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율성을 지키려 하는 점 등은 교과서적 전문직업성의 특성에 잘 부합된다.
전문직의 등장은 신분이나 재산 또는 사회적 지위와 같은 전통적인 권력 기반 이외에 지식이 새로운 권력 근거가 되었음을 의미한다[1]. 의학지식을 가진 의사는 지식이 없는 환자를 합법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근대적 전문직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예술인이나 의료인 또한 신분이나 재산의 영향 하에 있었고, 질병치료의 궁극적인 판단은 이들 ‘고객’이 하였기 때문에 왕이나 귀족을 치료하다 죽게 한 의사는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전문직이 만들어진 이후에 의사는 환자의 기대나 요구 또는 신분이나 지위의 영향을 받지않고 오로지 의학적 관점과 지식에 의거해서만 판단하고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질병을 규정하고 적합한 치료법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의사에게만 독점적으로 부여되었다. 질병치료와 관련해서는 모든 환자가 의사에게 복종해야 하는 새로운 권위구조가 만들어졌다.
권력의 등장은 이에 대응하는 상쇄권력을 출현시킬 수 있다[2]. 의사집단에게 새로운 권력이 부여되면서 이를 통제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들도 고안되었다. 달리 말하자면 의사들은 자신들의 지식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사회적 동의를 얻는 과정이 필요하였고 여기서 서비스 정신이나 직업윤리의 준수를 서약하게 된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인 직업의식, 직업윤리규범, 직업가치 등은 내용상으로 전문직업성과 거의 일치되며, 이 개념들은 지식권력에 대한 사회적 정당성 확보를 주된 내용으로 한다. 의사와 대중 간에는 지식의 격차가 절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수요자인 대중이 의료서비스의 품질이나 적합성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갖고 선택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급자인 의사가 높은 수준의 윤리규범이나 직업의식을 갖고 대중의 이익을 위하여 봉사하도록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것이다. 따라서 의사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율성 확보와 대중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과 같은 사회적 책임(social accountability) 사이에는 일종의 견제와 균형의 관계가 성립된다. 의사의 업무수행에 있어서 자율성이 보호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업무수행 자체가 대중의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서양사회에서 발전한 전문직업성의 개념이 한국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전문직업성의 개념이나 이론자체가 시민사회의 발전과 함께 진행된 영미 계통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반면 근대사회 형성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강했던 유럽대륙 지역에서는 전문직업성 이론 자체가 발전되지 못하였다. 유럽대륙에서는 이른바 Foucault 식의 지식담론은 존재하지만 의사 중심의 권력담론은 찾아보기 어렵다[3]. 의학전문직업성이란 현상적으로는 성공한 의료전문직의 자기정당화이기도 하다. 미국의 의사는 의학사적으로 보기 드물게 높은 사회적 지위와 권위를 구축하였기 때문에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로 의사의 자율성을 절대적인 직업가치로 규정하는 사회이론이 필요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미국의사들이 구사했던 자율성이 단순히 주장이나 당위로만 존재하던 것은 아니다. 자율성을 실질적으로 지켜낼 수 있는 조직 차원의 통제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반면 한국의사들은 오랫동안 자율성 확보를 주장해왔지만 조직차원의 통제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공허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왜 의사들의 전문직업성 구축이 쉽지 않은지를 살펴보겠다.
시장과의 관계
의사의 자율성이란 근본적으로는 국가나 시장(자본)의 영향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4]. 이것은 마치 대학의 자치가 종교나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학문을 추구할 자유를 의미하는 것과 같다. 종교의 근본주의적 지향성이나 국가의 정치적 의도가 학문에 영향을 미칠 경우 학문은 왜곡되고 학자는 어용이 되기 쉽다. 국가나 자본 이외에도 환자가 의사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주체이기는 한데 환자는 원래 개별화되어 있고 심신이 취약하며, 또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의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조직화된 환자단체는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원론적 수준에서 말하자면 의사의 자율성은 국가, 자본, 환자의 간섭이나 영향으로부터 독립하여 진료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그런데 국가, 자본, 환자의 간섭을 성공적으로 배제하기 위해서는 의사들 스스로의 경쟁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자율성으로 상징되는 의사의 전문직업성은 질병과 의료영역에서 ‘의사자치’를 의미한다. 여기서 의사들 스스로 서로 협력하는 체계를 만들지 않고서는 외부의 간섭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의사들이 전문직업성을 만들게 되는 것은 의사들간의 경제력의 차이가 크지 않고,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며, 의료의 사회적 분업 정도가 크지 않고 의사 전체가 공동체적 동질성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현실에서 보자면 아직 종합병원이 성장하지 않은 채 의사 개인이 운영하던 동네의원이 의료서비스 생산의 주축을 이루던 1980년대 초반 정도까지의 상황에서는 의사들 간의 이해관계가 미분화되어 있었고 경제적 자산의 격차 또한 크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당시의 의사들은 동질성은 높았지만 그것이 전문직업성으로 발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 이유는 생산구조에 있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개원을 지향했고, 그들이 운영하던 동네의원은 서양의사들의 집무실(clinic)의 개념을 넘어서 일부 수술이나 입원진료까지 실시하던 작은 종합병원이었다. 따라서 동네의원은 비교적 규모가 컸고, 시설과 장비를 갖추었으며, 이것은 재산이나 다를 바 없었다. 따라서 의사들은 의료기관을 경영하는 것이었고, 규모가 커질수록 경영마인드는 중요해졌다. 그런데 전문직업성은 지식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상업적 동기로부터의 독립하여 의학적 가치의 실현만을 추구할 때 그 의미가 살아나게 된다. 의사들이 의료기관 경영의 부담을 지게 되면 의학적 가치의 실현만을 추구하면서 진료하기는 어려워진다[5]. 더 중요한 것은 의사들의 행동을 규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장치가 거의 부재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에 일반적으로 종합병원들은 전임의사가 고용되지 않고 대신 인근의 전문의들이 출장(physician attending system)하여 환자를 진료한다. 이때 어떤 의사가 병원에 출장하여 진료할 수 있는 권한은 그 지역 의사회에 의하여 부여된다. 만일 어떤 의사가 비의료적 행위를 하여 물의를 야기하면 출장권이 박탈되어 환자를 다른 의사에게 의뢰하거나 출장 진료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의사면허를 사실상 박탈하는 것과 다름없는 규제를 가하게 된다. 반면 한국에서는 의사회에서 어떤 규제를 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의사들이 자기 병원에서 진료할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규제효과가 없다.
미국의료도 기본적으로 시장원리에 근거하여 구성되어 있고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사의 전문직업성이 만들어졌던 점을 생각하면 시장 자체가 전문직업성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여기서 관건은 의사들이 시장경쟁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미국의 출장의사제도는 의사들이 병원경영의 부담을 직접적으로 지지는 않으면서 의사들의 의학적 관심만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주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국의 경우는 의사들이 개별의료기관을 소유하면서 진료하였기 때문에 의료시장에서의 병원 간 경쟁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고 그럴수록 의학적 관심만을 추구하는 지식공동체의 형성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시장과의 관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한 또 다른 측면은 미국의사들이 자신들의 업무영역을 의학적인 것에 한정시켰다는 점이다. 병원의 경영은 경영자에게 맡기면서 자신들은 의료 업무의 전문가로서만 기능하도록 역할을 제한하였다. 의사의 권위가 높지 않던 시절에 대규모의 병원은 국가나 종교기관 또는 대기업이 후원하는 자선단체에 의하여 설립되었기 때문에 병원을 경영 관리하는 것은 상당한 사회적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은 자신들이 직접 병원을 경영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고 경영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선택은 궁극적으로 의사가 의료부문에 배타적인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데 기여하였다[6]. 즉 의사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의료에 한정시키고 의료의 전문가가 되는 것에만 관심을 쏟았다. 그리고 일단 의료부문에 대한 배타적 권위가 인정되면서 의사들은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사들의 경우에도 80년대 이후 자본의 개입에 의하여 의료체계가 수평적 수직적으로 통합되어 대규모 의료 기업이 만들어지면서 생산수단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상실하고 의료기업의 경영통제에 예속되는 현상이 나타났다[7]. 역으로 의료체계 자체가 대규모화됨으로써 의사집단이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의사들은 내부적으로 분화되고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여러 집단으로 나뉘어 각자 새로 만들어지는 시장기회에 적응해나가면서 공동체적 동질성을 상실하였고, 집단적 자기규율의 관행을 포기하고 새로 만들어진 경영통제를 수용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스스로 생산수단을 갖추면서 성장해왔다. 그 결과 의사들은 의학적 권위와 병원 경영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시장경쟁이 심화되면 경영수익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의학적 권위 확립은 부차적 과제가 된다. 많은 의사들은 의사로서의 독자성보다는 병원이라는 기관을 설립 경영하는 데에서 자기 정체성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병원과 독립된 의사 단독의 정체성은 불확실한 상태로만 존재한다. 병원협회와 의사협회는 이해관계를 거의 대부분 공유하고 있으며 이들 두 단체가 이해관계의 차이 때문에 갈등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의학과 병원은 사실상 하나로 통합되어 있고 의료기관과 분리된 의사는 무기력해진다. 심지어 의료기관에 소속되지 않고서는 처방전을 발행할 수도 없다. 우리 사회에서는 의료는 곧 병원이고 병원과 의사는 동일체로 간주되며 의사보다는 병원의 권위가 상대적으로 더 높다. 이런 상황에서는 의사들이 당연한 의사의 권리를 주장할 경우에도 사회적으로는 병원 또는 경제적 이득과 분리된 의학과 의료의 독자적 문제로 인식되기 어렵다. 의료서비스의 시장가치보다는 의학적 가치가 더 우선적으로 고려되도록 할 때, 그리고 의사는 의학적 가치만을 추구한다는 확신을 환자와 사회에 줄 수 있을 때 의학의 전문직업성이 구성되고 실천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생산수단에 묶여 있는 상황에서 의학적 가치의 실현을 주장할 경우 사회적으로는 그 진정성을 충분히 인정받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90년대 이후 진행된 건강보험의 전국민화와 대형병원의 등장에 뒤 이은 의료시장의 구조변화는 전문직업성의 형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8,9]. 수천 병상 규모를 갖는 대형병원의 등장으로 의료기관의 경쟁은 더욱 심화되었고, 다른 한편 건강보험제도가 전국민화 되면서 의료이용이 전체적으로 증가하는데 환자들이 균형 있게 분산되기보다는 일부 병의원에 집중되면서 의료계 내부에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 의사들의 지식공동체가 의료체계 또는 의료시장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경우에는 기존의 의료계 권위구조를 뒤바꿀 수 있는 대형병원의 의료시장 진입이 성공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의료시장이 개별 의료기관별로 분산되어 있고 시장 전체를 효과적으로 규제하는 권위구조가 취약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병원의 시장진입은 오히려 의료의 질적 수준 향상을 이룩할 수 있는 방편으로 인식되면서 수월하게 시장진입이 달성되었다. 또한 KTX와 같은 고속 교통수단의 발전으로 지역의 자연적 경계가 무너지고 전국 시장이 만들어지면서 서울의 몇몇 대형병원들의 의료시장 지배력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고 그에 비례하여 의료시장에서의 경쟁은 더욱 심화되었다. 그 결과 의사들 간에는 사회경제적 보상 측면에서 양극화되거나 시장경쟁에서 탈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와 같이 의사들 간에 이질성이 증대하게 되면 전문직업성의 형성은 구조적으로 어렵게 된다.
환자와의 관계
최근 30여 년간 의학의 사회적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경제성장과 삶의 질의 향상으로 질병치료와 건강증진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었고 이에 대응하여 의료부문에 많은 자원이 투자된데 따른 것이다. 의료보험제도가 만들어진 1980년대 이후 의료부문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성장하였고 국민들은 이제 1년에 16일을 병원을 이용할 정도로 의료는 우리의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다. 사회적으로도 의학의 관심범위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이제 질병치료는 물론 출생, 사망, 결혼, 취업, 휴직, 승진, 상속 등 많은 일상사에서 의학적 판단이 필요하게 되었다. 사회구성원의 건강과 질병 및 일상이 의학적으로 관리되고 인증되는 현상을 의료화(medicalization)라고 하며 이는 의학의 영향력 확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의학의 영향력이 확대가 전문직업성 형성에 반드시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의료공급이 확대되어 대중의 의료욕구가 일차적으로 해결되면 의사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대중의 신뢰가 높아지면 의사의 권위가 향상될 수 있다. 그런데 대중의 의료욕구 해결이 지나치게 되면 오히려 신뢰를 저하시킬 수 있다. 병역비리, 교통사고나 개인분쟁 시 상해진단의 부풀림, 모호한 업무상 재해판정, 정신병원 강제입원 등 의학적 판단이 고객의 요구에 의하여 남용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문직업성 개념을 최초로 사회이론으로 정립한 Parsons [10]에 의하면 질병에 직면하여 환자들은 이기적 성향을 갖게 되어 의사에게 여러 가지 과도한 요구나 비의학적 요구까지 하게 되지만 이를 제어하는 것이 의사들이고 따라서 의사는 근대적 합리성의 표상처럼 묘사하였다. 의료공급이 증가하고 의료화가 진행될수록 환자들의 ‘이기적 요구’ 또한 증가할 가능성이 큰데 조직차원의 통제장치가 없이 의사 개개인의 양심과 도덕규범에 맡겨서 환자를 제어하도록 하는 것은 효과적인 방법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비윤리적 행동들이 발생할 때 의료계에서는 흔히 문제의 실태를 축소하는 경향이 있고 직업윤리를 준수하지 않는 소수 의사들의 잘못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대다수의 의사들은 양심적으로 진료한다는 것을 반복하여 확인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비양심적 의사들을 통제할 수 있는 자율적인 규제 시스템을 의사들이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전문직업성이란 의사개개인을 윤리적 인간으로 만드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 또는 시스템으로 의학적 가치가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시스템은 국가나 시장이 아닌 의사들 스스로 만든다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최근 제약회사의 리베이트 제공과 관련해서 수백 명의 의사가 적발되고 처벌받을 수도 있는 사건이 발생하였다[11]. 여기에 관련된 수백 명의 의사가 의사 전체에 비하여 소수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횡령이 아닐 경우에 리베이트의 불법성 여부가 불문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리베이트 문제는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알려져 있던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자율적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고, 이것은 의사들이 직업윤리를 강제할 시스템을 갖추지 못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의사는 개인적으로 행동하지만 의료전문직은 집단 공동체의 규범에 따라 행동한다. 무엇이 의학적인 행위인가에 대한 기준은 공동체 규범으로 정립되며 질병에 대한 판단이나 치료법의 선택이 고객의 요구가 아니라 공동체의 기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의료전문직의 첫걸음이 된다. 그런데 의사들이 리베이트 문제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백한 기준을 만들지 못했거나 아니면 기준이 있더라고 위반자를 제재할 수 있는 규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할 경우 전문직업성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의료전문직이 환자의 기대보다는 동료 또는 공동체의 기대에 우선적으로 부응하여 행동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행동들이 폐쇄적이고 팔이 안으로 굽는 식의 잘못한 동료 봐주기의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의사들이 공익적임을 보여주는 제도적 장치들이 있어야 한다. 심사평가원에서 몇 년 전부터 항생제 많이 쓰는 병원, 제왕절개 많이 하는 병원등 그동안 노출되지 않았던 의료의 질 관련 정보를 공표한 것은 이런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도 서서히 포스트모던 사회로 진입하면서 대중의 주체적 선택이 중요해지고 있지만 환자의 선택을 도울 수 있는 유효한 정보는 별로 없었다. 환자들이 3차 대형 의료기관에 무분별하게 집중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질타하는 의견들이 있는데 과연 환자들의 대형병원 선택이 무지의 소치이거나 분별없는 행동일까? 전자제품을 구매할 때 우리는 대리점에 가서 눈으로 확인하거나 아니면 인터넷에 올라온 상품평을 참고하면서 구매하게 된다. 반면 의료서비스의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어느 병원 어느 의사의 서비스가 좋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가 별로 없다. 병원의 홈페이지에는 의사의 이름과 병원의 시설 장비 같은 것들만 보여줄 뿐이다. 그러다보니 과연 동네의 작은 의원이 내 병을 제대로 진료해 줄지에 대한 판단이 어렵고 그런 상황에서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대형병원이 합리적 선택일 수 있게 된다. 심사평가원이 공개한 몇몇 자료 이외에 의사의 상세한 이력사항과 특정시술을 실시한 환자의 수, 발표한 논문의 수, 수술 성공과 실패율, 소송이 제기되었을 경우 배상액 등의 정보를 알 수 있다면 환자들은 보다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당장에 이런 정보들을 모두 공개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고, 또 공개에 따른 부작용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정보공개에 따른 실익이 더 클 것으로 생각된다. 의학 자체가 (치료를) 실패할 수 있는 용기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12], 실수나 사기가 아니라 더 나은 치료법을 개발하는 과정을 중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의 일면인 시술의 성공과 실패의 통계를 그대로 공표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의학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길이 된다. 이러한 원론적 논리가 실현이 되려면 의사들의 공동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아마도 이러한 식의 정보공개가 꺼려지는 이유의 하나는 시술의 실패가 환자들로부터 실력 없는 의사로 낙인찍혀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일 것이다. 만일 현재처럼 환자가 직접 의사를 선택하는 시스템이라면 이런 걱정이 단순히 기우에 끝나지 않고 상당부분 현실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정당하게 직무에 충실한 의사를 제도적으로 보호할 장치를 만드는 것도 전문직업성 실천에 중요한 사안이 된다. 미국의 경우에는 의사들 간의 환자의뢰제도에 의하여 상급의료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의사가 얼마나 능력 있는 의사인지를 주치의가 판단하여 환자에게 권유하기 때문에 의사정보의 공개가 일방적으로 환자의 불신이나 기피를 초래하지는 않게 된다. 한국의 경우에는 의료기관 사이의 경쟁 때문에 의사들 간에 환자를 의뢰하거나 의뢰받을 동기가 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의사가 부당하게 환자의 외면을 받더라도 이를 동료의사들이 나서서 보호해줄 동기가 약하다.
국가와의 관계
건강보험제도 실시 이후 의사들의 국가에 대한 의구심이나 거부감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의료수가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의사들은 의학이라는 과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치료나 연구에 전문적인 지식과 끊임없는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높은 보상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의 의료수가는 의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부의 의료정책에 비판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그런데 전문직업성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할 때 중요한 요소는 과업의 수행과 그에 따르는 보상의 문제에 있기보다는 의학적 가치가 무엇이고 이것을 어떻게 과업으로 연결하여 실현하는가 하는 문제가 핵심 사안이 된다.
여기서 의학적 가치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따라 문제해결의 방향은 달라질 것이다. 이 문제를 최초로 다루었던 미국의 사회학자 Parsons [10]는 의료부문에 어떻게 근대적 가치체계가 내면화되는가에 주목하였다. 여기서 근대적 가치란 보편주의, 성취지향성, 특정성, 정서중립성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의사는 사심 없이, 오로지 의학적 관심만을 추구하며, 설사 현재 실패할지라도 계속 도전하고, 합리적 근거만을 수용하고, 환자의 기대나 요구보다는 객관적 의학적 판단을 중시하고, 질병 치료의 전문가로서만 자신의 지위를 자리매김하는 직업인을 말한다. 이러한 의학적 가치에 대한 규정은 미국이 19세기 이후로 근대국가로 완성되는 단계에서 의사들이 모범적으로 근대적 직업인의 모습을 구현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에 있어서 의학적 가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좋은 사회(social quality)’라는 개념에서 원용하여 ‘좋은 의료’라는 가상적 개념을 도입하면 공정성, 지속가능성, 역능성 같은 가치들이 그 구성요소가 될 수 있다[13].
- 공정성의 경우에 약자(환자)의 의견을 경청하는지, 부패를 방지하고 투명성을 제고하는지 등에 대한 내용을 담을 수 있다.
- 지속가능성의 경우에는 현재의 의료자원 조달방식으로 의료체계가 유지될 수 있는지 아니면 어떻게 해야 생태지향적 의료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을 수 있다.
- 역능성(empowerment) 같은 경우에 창의적인 의사양성이 되고 있는지, 연구개발이 의학발전을 위해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등의 내용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전문직업성이 수행할 역할은 현 시점에서 한국사회에 필요한 의학적 가치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반추하면서 의학적 가치를 새롭게 설정하고 다른 한편 이것이 의학연구나 의료계 일선에서 어떻게 얼마나 실천되는지에 관심을 가지면서 의학을 사회적으로 실천해나가야 한다. 현재처럼 의학이 미시적 수준에서 과업의 수행과 보상의 관계에만 몰입하게 되면 보상을 관리하는 국가와의 관계가 계속 갈등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역으로 보상의 문제를 큰 틀에서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상의 적절성에 대한 상위규범을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가 의료부문에서 실현해야할 가치가 형평성이나 공정성인지, 아니면 효율성이나 생산성인지에 따라서 의료행위의 값은 다르게 매겨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의사들은 국가의 의료정책에 불만을 가지면서 국가와 원만하지 못한 관계를 지속해 왔지만 이러한 갈등상태를 넘어서서 국가나 국민에게 설득력 있는 대안적 가치체계를 제시한 적도 없다. 즉 의학적 가치가 저평가되는 것에 대하여 불만제기는 하였지만 자신들의 의료행위가 더욱 높이 평가되도록 할 수 있는 가치체계의 정립에는 거의 관심을 쓰지 않았다. 과거에는 의학이 생명을 구하는 학문이라는 명제만으로도 충분히 중요한 가치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명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를 위해 사용하는 의료기술이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면 그러한 의학은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국가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또 다른 측면은 국가가 의사의 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10여 년 전 의약분업 정책을 비판하면서 의사들은 국가의 의료정책을 의료사회주의라고 폄하하였고 국가를 마치 의사들의 공적인 것처럼 간주했었다[14]. 만일 과업수행과 보상의 획득이 최고의 의학적 가치라고 한다면 국가는 그러한 가치의 실현의 걸림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의학적 가치를 더 높은 차원에서 규정하게 된다면 국가는 의학적 가치의 실현을 도와줄 동반자가 된다. 형평성이 중요한 가치라고 한다면 이것은 국가정책의 도움이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 역설적이지만 의료계 일부에서 주장하는 영리법인병원의 도입과 같은 의료산업화 정책 역시 국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재도 의료시장은 몇몇 대형병원 중심으로 과점된 상태이기 때문에 다수의 의료기관들은 경영의 어려움이 매우 크다. 이러한 과점상태를 해소시키는 것 역시 국가의 정책영역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의사들이 자신들은 물론 국가나 대중 모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의학적 가치와 정책담론을 제시함으로써 국가가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의사사회 내부 구조로는 이러한 역량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 의사와 병원의 이해관계가 미분화되어 있고, 의사들 내부에서도 처한 위치에 따라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형국이기 때문에 이를 조정할 수 있는 자체적인 권위구조나 리더십이 필요한데 이러한 여건이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결 론
의사의 전문직업성이란 원론적으로는 국가는 물론 자본이나 기업으로부터도 독립될 수 있어야 하고 환자로부터도 독립될 수 있을 때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의학적 권위가 구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식 의료전문직이 우리나라 의사들이 추구하는 목표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국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만일 국가통제가 없을 때 개별 의료기관이나 의사에 대한 통제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계획과 실천방법이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즉 일종의 ‘내부국가’ 체계가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의사의 자치공동체가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현 상황은 그러한 제도적 준비도 없이 의사들의 이익을 충분히 실현해주지 못하는 국가에 대한 불만제기이지 국가 자체를 거부할 정도로 준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점은 시장이나 기업에 대한 태도에서도 발견된다. 의사들은 수가에 대한 정부규제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시장 가격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의료체계는 단순히 수가라는 요인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수가는 의료체계를 구성하는 많은 요인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복잡한 과정 속에서 정해진다고 할 수 있다. 즉 단순한 경제적 공식의 산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장체계를 지향한다면 의료의 모든 측면이 시장원리에 의하여 구성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 서비스 평가가 보다 구체적이어야 하고 그 결과는 속속들이 공표되어야 하며,
- 모든 의사와 병원의 시술수준은 물론 상품의 질이라 할 수 있는 의학적 실수도 밝혀야 한다.
- 소비자 불만을 체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창구와 제도가 완벽하게 만들어져야 하고,
- 모든 의료행위에서 소비자가 충분히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의사는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이 당연한 일로 간주되어야 한다.
- 나아가 의료라는 상품을 디자인하고 설계하는 권한을 경영자들이 행사할 수 있어야 하고
- 의사들은 경영자를 기술적으로 보좌하고 그 권위에 복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의사들이 생각하는 시장 자유가 이런 차원까지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 의료계 일부의 기대처럼 의료의 시장화 또는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다면 그것은 한편으로는 의사들에게 시술과 수가의 자유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의사들을 더욱더 자본의 힘에 예속시켜 자율성을 상실케 할 가능성도 열려있다. 의료 시장화는 필연적으로 의사사회를 더욱 계층화 또는 양극화되도록 만들 것이다. 의사들이 계층화되면 의사가 의료전문직으로 발전해 갈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가 무너지는 것과 같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한국의사들은 미국식 의료전문직이 되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조건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직업가치를 보다 공고히 하고 내면화하는 작업은 의사들이 자구적 차원에서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의료의 상위가치와 의사들의 직업적이익을 가능한 한 일치시키는 것이다. 의료의 상위가치는 형평성, 공정성, 지속가능성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의사들의 직업적 관심과 이익을 의학적 가치에 부합되도록 만들지 못한다면 최소한도 수준에서의 전문직업성의 형성도 어렵게 되고 계속적으로 정당성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또한 의사들은 의학의 본래적 가치의 실현이 가능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의사가 병원과 대립할 수 있는가? 병원들의 치열한 환자유치경쟁이나 무차별한 병상 확장으로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독과점 체제를 만들어가는 몇몇 병원들의 행태가 의학적으로 불가피한 일인지를 고민할 수 있는가? 국가는 물론 산학협동을 미끼로 개입해오는 자본의 이해관계로부터도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
끝으로 의사들은 환자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면서도 동시에 환자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 문제는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온 것이다. 의사개개인에게 맡겨서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면 동료규제가 필요한 것이고 어떻게 동료평가와 규제 시스템을 만들 수 있겠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J Korean Med Assoc. 2011 Nov;54(11):1164-1171. Korean. Published online November 15, 2011. http://dx.doi.org/10.5124/jkma.2011.54.11.1164 | |
Copyright © 2011 Korean Medical Association |
Byong-Hee Cho, PhD![]() | |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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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September 03, 2011; Accepted September 17, 2011. |
Abstract | |
A profession is characterized by advanced theoretical and systematic knowledge, which can provide that profession with autonomy and authority. This paper examines the factors affecting the realization of complete professional autonomy such as the market and capital, patients, and the state. The primary factor of weak autonomy is due to the undifferentiated interests of professionalism from the influence of capital. The second factor is the ineffective system of self-regulation over physician behavior. The third factor is the underdevelopment of medical values, which could override the current conflicts between physicians and the state. |
Keywords: Professionalism, Medical profession, Autonomy, Medical mark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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