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학전문직업성: 역사적 배경, 개념변화, 선언문 비판
Modern-day medical professionalism: historical background, evolution of the concepts, and a critique on the statements
최 보 문* |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1인문사회의학과, 2정신과학교실
Bomoon Choi, MD*
1Division of Humanities & Social Sciences of Medicine, 2Department of Psychiatry, The Catholic University of Korea College of Medicine, Seoul, Korea
*Corresponding author: Bomoon Choi, E-mail: bomoon@catholic.ac.kr
서 론
우리가 알고 있는 의학의 역사는 의사 영웅들의 숭고한 행적으로 점철되어 있고 의학은 영광의 길을 일직선으로 진보해 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사회적 관점, 혹은 미시적 관점에서 역사를 들여다보면, 존경받는 명의로 이름을 떨친 의사가 있었던 반면, 다른 한편에는 언제 어느 시대에나 ‘돌팔이’와 ‘악덕의사’도 존재했다.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의사에게 올 때 치유의 소망은 컸을 것이고 그 역할을 맡은 의사에 대한 기대 또한 더욱 컸을 터이니, 기대를 저버릴 때의 실망과 속았을 때의 배신감은 훨씬 배가되었을 것이다. 이 배신감을 고발하는 ‘의사 때리기(doctor bashing)’는 유럽 시중 입담과 신문의 단골 메뉴 중 하나를 차치할 정도였다. 이렇게 소수의 악당 의사와 소수의 영웅의사 얘기는 많이 전해지고 있으나 대다수를 차지하던 보통의사들의 얘기는 자서전 등을 제외하고는 그리 알려져 있지않다. 이들 무명의 의사들은 의업을 행하며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았을 것이고, 영웅적 행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정도는 아니었겠으나 그렇다고 돈을 벌기 위해 남의 고통을 이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역량만큼 치료하고 성심으로 고통을 위무하려 했을 것이고 환자에게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재량껏 보수를 받아 생계를 마련했을 것이다. 이것이 전근대 시대의 의사의 모습이라면, 오늘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의학전문직업성에 관해 논의하려는 목적이 소수에 국한될 것이 자명한 영웅적 행위를 장려하기 위함이 아니고 대다수의 의사들이 임상현장에서 실천할 규범을 논하고자함이라면, 이들 평범한 의사들이야말로 집단 전체로서의 의사의 에토스를 드러내는 실질적 존재라고 인정하는 시점에서 의학전문직업성에 관한 논의는 출발한다.
의학전문직업성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전에, 어떤 시점에서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에 따라 그 정의는 달라질 수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동서고금을 통해 치유자로서의 의사역할은 변함이 없었겠지만, 전문인으로서의 사회적 위치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다.
- 의과학이 발달하기 이전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사는 의술을 아는 중인이었던 반면,
- 양차세계대전 동안에는 전장의 천사로,
- 전후 한동안 이념적 혼란기에는 시대의 히어로로 떠올랐었다.
- ‘전문직 몰락’이라는 사회적 현상이 지속되던 1980년대에는 과학의 갑옷을 입고 비인간적인 진료를 하는 냉혈한의 이미지이었다면,
- 현 시대의 의사는 국가의료제도와 기업자본, 그리고 대중사회의 요구가 얽어내는 역학의 복잡한 그물에 포획된 모순과 불신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Sigerist [1]가 말했듯이, “역사적으로 어떤 시대, 어느 문화권이든, 혹은 어떤 정치적 구조에 속했든 간에, 의사 자신이 의사의 사회적 위치를 스스로 결정한 적은 없었다. 항상 사회가 의사의 위치와 역할을 정의해”왔던 만큼, 의사의 ‘전문성’도 시대의 흐름에 동승하여 변화해왔을 것이다. 그러므로 시대적 흐름과 힘의 역학관계가 그 동안 의사의 임무를 어떻게 정의해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의학전문직업성의 정의보다 우선된다.
따라서 이 글은 첫째, 의학전문직업성에 관한 논의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연대기적 역사를 추적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동시에 짧은 기간 사이에 변화되어온 의학전문직업성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그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자 했다. 둘째, 다양한 형태의 삶이 가능한 현대사회에서 의사들이 전문가로 살아가는 방식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 시대 의사들의 여러 실천 유형을 살펴보고, 어떤 점에서 선언된 의학전문직업성과 괴리가 시작되는지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은 무엇인지 그 핵심 요인 3가지를 들어 분석하였다. 끝으로 의학전문직업성이 변화해갈 새로운 방향성에 관해 토론하고자 한다.
역사: 현대 의학전문직업성이 탄생하기 이전
1. Abraham Flexner와 의사전문가
1900년대 초 미국에서 Abraham Flexner가 의학교육을 개혁하고자 했을 때 가장 먼저 질문한 것은 의사는 어떤 직업인가 이었다. 즉, 의사를 전문가로 본다면, 이 전문가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규정하는 작업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그는 오랜 역사를 가진 의과대학의 유형을 알아보기 위해 유럽을 방문, 관찰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 독일의 의학교육은 대학교에서 이루어지고,
- 프랑스와 영국은 임상 중심으로 교육을 하는 반면,
- 미국의 의학교육기관은 소유재산으로 간주되고 있어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의사를 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세운 개혁의 비전은 의학교육은 대학교에 거점을 두어야 하고, 전문가로서의 의사는 교육, 임상, 연구를 병행하도록 해야 하며, 여러 직업군과 비교했을 때 의사전문가를 지탱하는 가치관은 이타주의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2]. Flexner가 개혁한 의학교육제도의틀은 100년 넘게 전 세계에서 지속되어왔다.
의사는 전문가라는 개념 자체가 그리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그러한 발상에서 제도개혁을 출발했다는 것 자체가 개혁적인 일이었음은 분명하다. Profession이라는 단어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된 것은 1541년이다. 그 전후로도 의업의 에토스에 관해 언급한 사람은 많았으나, 근대적 사회계약론을 바탕으로 교육적, 제도적 정의를 하고자 했던 사람은 Flexner가 처음이었다. 이때가 1907년이다.
2. 의사 전문성의 기원
그렇다면 그전에는 의사의 전문성에 관해 구체적이고도 광범위한 논의가 없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의학전문직업성을 단순하게 표현하여, 의사라는 집단 전체가 인정하는 의업의 암묵적 의미와 규범이라고 본다면, 그 역사는 흔히 생각하는 바와 달리 그리 길지 않다.
- 일상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히포크라테스에 그 기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그리스어에서 영어로 번역, 해석한 역사학자 Edelstein [3]은 이를 부정한다. 경험과 관찰을 중시하는 히포크라테스 주의를 따르던 사람은 당시 소수에 불과했고 그리스의 모든 의사들에게 통일된 의술의 기준이나 행동규범을 만드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스에서 낙태와 자살조력 등이 성행했었음은 자명한 사실이고, 당시 의사들은 단순히 약초와 화합물 사용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로서 히포크라테스의 행동규범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의사학자 Jonsen [4]이 말했듯이 “히포크라테스 시대에는 의료전문직이라 불릴만한 어떠한 특정 직업군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혹자는 중세나 르네상스시기를 의료전문직의 탄생 시기로 보기도 한다. 이때 의과대학에 비교적 일관된 교과과정이 만들어지고 공중보건에 관한 생각도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의 사회적 역할이 명료하게 언급된 적도 없었고 널리 인정된 적도 없었다. 역병이 돌 때면 의사가 하던 최선의 충고는 ‘재빨리, 멀리 가서, 너무 일찍 돌아오지 말라’는 것이었고 이는 자신에게도 해당되었다[5]. 마을이 역병의사를 따로 고용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이 의사의 고유 역할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 그렇다면 근대이었을까? 의료윤리와 전문직 규범에 관한 근대적 의미가 출현한 것은 19세기 초로서, 영국 의사 Thomas Percival이 ‘Medical ethics (1803)’를 출간하면서부터이다. 당시까지도 의사는 길드조직으로 주목적은 동료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던 상황에서 의사의 사회적 역할을 명기한 그의 주장은 혁명적인 것이었다. Percival은 의료를 공익서비스라는 차원에서 접근하여 다른 직종과 의업을 구별하는 것은 대중의 신뢰라고 주창했다. 이때를 의학전문직업성의 출현으로 보기 쉽겠으나, 당대의 출판물을 살펴보면 그의 주장은 실제로는 거부당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영국에서는 진짜 신사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고 있으니까 윤리적 기준을 명시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정서였고, 윤리규범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까지 인식되었다. 규범은 품위를 갖추지 못한 사람이 품위가 있는 척하는 데에만 필요하다는 견해가 우세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6]. 계급사회인 유럽에서는 지위에 따른 역할과 헌신은 강조되었으나 이것이 현대와 같은 의사의 전문직업성에 대한 규명과 선언으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았다.
3. 근현대적 의학전문직업성이 엿보이다
처음으로 범국가적 윤리 및 행동기준이 명시된 것은 1847년 미국의사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 AMA)가 윤리규범을 명문화했을 때이다. 당시 미국에서 치유와 관련된 시장은 무질서했고 의사는 동종요법가나 약초치료사와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7]. AMA가 명문화한 첫 의료윤리 규약은 병자를 돌보는 전문직군으로서 의사의 책임과 도덕적 권위를 확인하고, 의사는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의사 개개인의 명예로움을 강조한 것이었다. 이 윤리규약은 영국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던 Percival의 주장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미국의 의학전문직업성 운동이 20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영국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의학전문직업성 운동은 매우 미국적이다. 그리고 미국의 국가발달은 청교도 정신에 기반을 두었던 만큼 의학전문직업성의 정의에도 기독교적 가치관이 강력하게 배어있음은 주시해야 할 사항 중 하나이다. AMA의 윤리규약은 사회와의 암묵적 계약을 통해 의사전문직 지배를 정당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를 실행한 AMA는 명실 공히 미국 의사를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인정받게 되었다[5].
그러나 의사의 특권이 정점에 도달하던 1950년대 까지도 전문성이란 어떠한 것인지 또 어떻게 훈련할 것인지 실질적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의사의 업무는 외부로 부터든 내부로 부터든 어떠한 감시도 통제도 받지 않았다. 의사는 통제받는 사람이 아니라는 자부심이 주원인이었겠으나, 실제로 깊이 들여다보면 어떤 행동이 전문적인 것이고 아닌지 실로 애매하였기 때문이었다. 전문성은 의사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을 뿐이다.
전문직으로서의 의사사회에 대한 연구는 사회과학계로부터 시작되었다. 1940년대, 당시 사회학자들은 의사와 법조인을 전문직의 원형으로 보고 전문직의 특성과 기능에 관해 조사 하였다. 초기 사회과학계 이론은 전문지식과 기술을 가졌다고 다 전문직은 아니고 내적 가치관과 사회적 기능을 가져야 한다는 기능주의 이론이었다. 즉, 전문직이란
1) 사회가 이 직종을 명백히 필요로 하고,
2) 이 직종의 사람들은 집단의 내적 윤리 원칙을 세워야 하고,
3) 그 분야에 진입하기 위한 자격조건을 갖추도록 하며,
4) 집단전체는 이 조건들을 지킬 것을 약속하고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기준으로 보았다[8].
1960년대 이후로는 이념(ideology) 중심의 분석이론이 대세를 이루면서 전문직이 사회적 지위를 얻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즉 전문직의 지위는 국가와의 협상에 의해 획득된 것으로 시장독점권과 이익추구가 본질이고 전문직의 가치관은 구성된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해진 것이다. 따라서 윤리규약이 지향하는 이타주의와 공익에의 헌신도 의사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이자 고매한 이미지를 갖추기 위한 이념적 전략이라고 비판을 받게 되었다[9].
이러한 비판은 당시 일반대중의 정서와 공명하는 것이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의사의 권위 하락과 대중의 불신이 점차 가시화되어 왔는데, 그 배경 요인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 첫째, 과학적 진료에 치중하고 환자가 늘어나면서 의사가 환자에게 쏟는 에너지의 양과 질이 감소하고 ‘동네의사’의 따뜻함이 사라져 간 것,
- 둘째, 일반인과 전문인 사이의 지식격차가 감소하고 소비주의가 등장하면서 더 이상 의사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게 된 점,
- 셋째로는 전쟁기간에 이루어졌던 비윤리적 실험의 여파와 인권을 배려하지 않고 해를 끼친 연구사례들이 노출되면서 대중의 반감이 증가하고 의사는 ‘악당’으로까지 추락하게 된다[4].
- 넷째는 임상자율권의 축소에 해당하는 요인으로, 의료비 상승으로 의료관리제도가 강화되는 한편 기업자본이 의료계에 침투하기 시작한 것,
- 다섯째, 의과학 발달로 진료의 과학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의사의 개인적 기예 재량권이 감소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1970년대 말 등장한 탈전문화 논쟁과 의사의 프롤레타리아화 이론은 이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현대 의학전문직업성 탄생과 단계적 변화
1. 현대 의학전문직업성 운동의 시발점
한때 전장의 천사이자 혼란의 시대에 영웅이었던 의사가 냉혈한 악당으로 추락하던 1980년대에 의료계 리더들로부터 나온 절박한 목소리는 의학전문직업성의 탄생을 알리는 소리였다.
일찍이 의료의 미래를 내다본 경고가 있었으니, 1980년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의 편집장 Relman[10]은 의료-기업 복합체의 등장이 의사의 자율성과 정직성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1980년대의 넘쳐나던 부는 제약기획의 연이은 성공과 과학기술 발달을 따라 의료시장으로 몰려들어왔다. 증권분석가들은 의학잡지를 구독하고 분석하며, 어떤 의사회의가 어떤 주제로 열리는지, 또 의사와 연구자들이 어떤 기호를 가지고 있는지 분석하며 의사사회 내부의 정보를 얻기 위해 의사를 고용하기도 했다. 상품개발과 판매에 기업을 이용하는 의사들도 날로 증가했다. 의료관리제도가 강화되면서 의사의 임상자율권이 축소되는 상황과 맞물려, 기업 또한 의사의 자율성에 족쇄를 채우게 될 것이며 임상적 판단은 이해상충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Relman의 우려는 Kassirer [11], Lundberg (Journal of Americal Medical Association, JAMA 편집장)[12]으로 이어진다.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상업주의의 위협 앞에서 의사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혹은 의업의 에토스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되었다. 공동의 적인 상업주의에 대항하는 이념으로서 의학전문직업성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것이다. Hafferty와 Levinson [13]은 이를 현대적 전문성 운동의 첫 단계라고 보고 있다. 1990년대 말이 되자 Relman [10]의 주창은 의사사회 전체의 운동으로 확산되어갔다. 이 운동을 지금 돌아보면, 그동안 의사로서의 전문성은 히포크라테스에 관해 들어본 의사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그려보던 상태를 벗어나 비로소 구체적인 하나의 지향점을 향하게 된 시점이라고 해석된다. 그러나 이는 일종의 결격모델로서 의사의 모든 상업적 활동을 죄악시하는 부정적 훈육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었다. 구체적 원칙이나 행동지침도 없이 의사 행위의 윤리성을 흑백이론으로만 가르는 것은 의사나 사회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2. 전통적 전문성의 재확인
기업이 의사를 부패시킨다는 우려에서 출발한 전문성 운동은 곧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의사의 에토스로서 주창된 전문성은 그 의미가 모호하고 논리적으로도 모순된 점이 많았다. 이를 해결하고 공식적이고도 명료한 정의를 하던 시기가 전문성 운동의 두 번째 단계로서, 2000년 Swick [14]이 저술한 ‘Toward a normative definition of medical professionalism’이 분수령이 되었다. Swick은 전문직의 핵심은 이타주의라고 주장하면서 9개 필수조항을 열거했다. Swick의 정의는 2002년 의사헌장[15]을 비롯하여 여러 선언문의 기초가 된다. 외과[16], 소아과[17], 마취과[18], 정형외과[19]의 선언문 등도 포함된다.
- Physicians subordinate their own interests to the interests of others.
- Physicians adhere to high ethical and moral standards.
- Physicians respond to societal needs, and their behaviors reflect a social contract with the communities served.
- Physicians evince core humanistic values, including honesty and integrity, caring and compassion, altruism and empathy, respect for others, and trustworthiness.
- Physicians exercise accountability for themselves and for their colleagues.
- Physicians demonstrate a continuing commitment to excellence.
- Physicians exhibit a commitment to scholarship and to advancing their field.
- Physicians deal with high levels of complexity and uncertainty.
- Physicians reflect upon their actions and decisions.
이들 선언 행위의 의의는, 전문성이란 무엇인지 정의하고 요구사항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1980년대식 논의의 모호함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통일된 것이 아니어서 전문과목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그 정의를 달리하였다. 예를 들어, 외과, 마취과, 응급의학과 등은 환자의 자율성 존중을 내과와는 다르게 해석하였는데, 이들과의 특상 즉각 신체에 침투해야 할 정도로 중한 증상을 가진 환자가 많고, 이때 의사가 수술해야 할 의무는 환자의 자율성에 앞설 때가 많다는 것이다[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선언문 모두는 의학전문직업성을 의사가 추구해야 할 이상(ideal)으로 보았고 그런 의미에서 사회계약론에 입각한 전통개념에 충실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현대사회의 요구에 호응하고자 했던 노력도 보인다. 예를 들어 의사헌장[15]의 경우, 사회정의를 3원칙 중 하나로 명기했는데, 이는 의사집단은 의사-환자 간의 개인적 관계를 넘어서서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음을 강조하려 한 것이었다. 이 조항은 나중에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Fundamental Principles
- Principle of primacy of patient welfare.
- Principle of patient autonomy.
- Principle of social justice.
A Set of Professional Responsibilities
- Commitment to professional competence.
- Commitment to honesty with patients.
- Commitment to patient confidentiality.
- Commitment to maintaining appropriate relations with patients.
- Commitment to improving quality of care.
- Commitment to improving access to care.
- Commitment to a just distribution of finite resources.
- Commitment to scientific knowledge.
- Commitment to maintaining trust by managing conflicts of interest.
- Commitment to professional responsibilities.
곧 이어 교육분야에서 문제가 제기되었다. 후학에게 전문성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측정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곤란함에 직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의과대학이 생긴 이래로 어떤 방식으로든 항상 전문가다운 행동방식은 교육되어왔으나, 근대적 사회계약론에 바탕을 둔 의학전문직업성 교육이 시작된 것은 20세기가 훨씬 지난 후였다. 그리고 이제 선언문으로 세부조항이 명시된 만큼 그에 상응하는 구체적 행동지침이 필요해졌던 것이다. 학생의 행위가 얼마만큼 전문성 기준에 맞는지 그 정도를 측정할 객관적 지표가 경쟁적으로 개발되던 시기가 2000년대 중반이다. 전문성의 학부 교육이 공식 과정으로 들어오면서 다양한 교과과정이 전 세계적으로 의과대학에 정착하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에서 전문성 교육에 관한 공식적 논의가 시작된 시기이다[21].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와 비판도 이어졌는데,
- 첫째가 전문성 개발을 위한 교과과정 이론(curricular theory)이 아직까지 없다는 것이다.
- 둘째, 암묵적 학습(hidden curriculum)이 이루어지는 교육환경 전반, 즉 대학과 대학병원 등에는 개혁이 미치지 못한다는 점,
- 셋째, 학교 교육이 실제 전문성이 발휘되어야 할 임상현장과 유리되어있다는 점,
- 넷째로는 그 내용이 일관적으로 표준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
- 다섯째, 전문성의 정의 자체에 대한 것으로, 비현실적이고 암묵적이며 때로는 기존의 통상적 정의와 충돌하고 있어서 도리어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등의 비판이 그것이다[22,23].
이들 비판점은 앞으로 계속 연구와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종합하면, 이때까지의 전문성 운동은 그 근본전제가 의업의 전통적 원칙은 항상 존재했으나 어느 시점에선가 의사들은 그것을 잃어버렸고, 따라서 전통이념을 ‘재발견’하고 이와 ‘재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이는 Flexner의 초기 개혁안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즉, 그 핵심은 이타주의에 있고, 상업주의는 전문성의 적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전문성의 실현을 의사 개개인의 명예로 보았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의사헌장이 사회정의를 새롭게 첨언하였다고는 하나, 나머지 2 원칙과 10개의 서약은 의사 개인에게 전문성의 실천 여부를 묻는 것으로서, 개인에게 그 책임이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 교육 내용도 이 틀 안에서 규정되고 있었다. 당대의 의료계 여론 주도자들 모두가 이 전통적 입장이야말로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가장 중요한 태도라는 데에 동의했고 이 견해는 한동안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3. 개인적 전문성에서 집단 전체로, 집단전문성에서 사회로
2000년대 후반 들어 이 견해는 분석과 비판의 대상이 된다. 특히 가장 광범위하게 인용되던 의사헌장이 주된 표적이 되었다. 이상으로서의 전문성 규약이 제시되는 상황에서, 의사 개인은 현실적 요구와 추구해야 할 이상 사이에서 적절한 길이 무엇인지 스스로 모색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전문성 여부는 의사 개인의 윤리적 판단에 달려있고 결과적으로 그 책임은 그 개인에게만 부과되는 것임을 의미한다. 그 윤리적 판단이란 때로는 동료와의 관계나 소속된 기관의 질서를 거부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대학병원과 같이 많은 동료와 선후배의 관계망 속에 놓인 의사가 기업과의 관계를 홀로 거부한다는 것은 관계망 속에서 소외됨을 의미할 수도 있다. 다른 상황에서는 기관에 대한 충성을 포기하거나 환자의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기로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즉 이상으로서의 전문성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위반할 것을 요구할 때도 있고, 또 때로는 아무런 보장도 없이 홀로 모든 질타와 손실를 감내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전문성의 실천이 전적으로 개인의 미덕과 윤리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면, 거대한 시장판으로 변해가는 사회에서 홀로 기업의 유혹에 맞서지 않으면 그 의사는 부도덕하고, 사회전체가 도덕성에 회의를 갖는 분위기에서 홀로 사회정의를 요구하며 이타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비윤리적인 의사라는 말과 진배없을 것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병의원 경영이 어려워지고 이해상충 주제가 첨예화한 시기에 인간본연의 본능인 자기방어와 자기이익추구는 의사에게는 극복해야 할 궁극적 악덕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상을 꿈꾸다가 현실에서 좌절하는 의사에게 선언문은 자기혐오와 죄책감을 안겨줄 뿐이다. 극단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상적 선언문은 죄책감을 보상하기 위해 텅빈 의미의 수사적 표현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고 의사사회 내부에조차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의료분쟁이 터질 때면 어김없이 사용되던 ‘국민건강을 위한’ 이라는 어귀가 언론의 냉소만 자아내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더욱 중대한 점은, 개념 논리 상, 이런 전문성은 개인에게 부과된 결정이자 책임이라는 점에서 논리적으로 더 이상 진전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봉착한 셈이다. 이 지점에서 집단이 실제로 공유하는 전문성의 중요성이 대두하게 된다. 전통적 입장에 대한 비판이 조금씩 고조되던 분위기에서, 2006년, 전문성의 실천은 전반적 사회와의 상호작용에 좌우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24]. 당시 이해상충 문제의 핵심은 개인의사가 아니라 의료기관에 있다는 JAMA의 정책제안서[25]가 나온 직후였다. 그때까지도 이해상충에 관한 문제는 상호호혜의 규범이 작동되지 않을 정도의 사소한 선물은 무해하며, 이해상충 관련사항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부작용이 사라질 것이라는 견해가 대세적이었다. 그러나 이 제안서는 그러한 근거 없는 통념을 모두 부정하고, 더 나아가 기업과의 이해관련은 개인의사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기관의 문제이며, 특히 대학의료기관이 부패의 온상이라는 주장이 잇달아 나오기 시작했다[26-28]. 기업의 표적이 되는 것은 개인의원이나 중소병원이 아니라, 임상지침을 정하고 새로운 치료법과 약물을 개발, 그 효과를 판정하는 연구를 통해서 임상행위에 가장 막강한 파급력을 행사하는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이기 때문이다. 이와 동일한 논리로, Cohen [24]은 의사헌장에 제시된 원칙들은 개인의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더 나아가 대중이 의학전문직업성의 이득을 누리려면 사회 전체가 전문성 실현의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9]. 즉, 의사헌장 등의 여러 선언문이 주장하는 내용들은 의료계에 결정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전반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도개혁과 의료재정 확충이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의료서비스의 한계에 대해 사회와 합의가 되어야 하는데, 이는 의료계가 단독으로 실행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또한 의료자원의 분배에 대한 고려는 모두가 동의하는 대원칙이 존재하지 않는 한 환자 개인에 대한 의사의 임무와 상충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그러므로 전문성은 의사에게 국한된 책임이 아니라 의료와 연관된 모든 관여집단, 즉, 의사, 의사단체, 의료기관, 기업과 정부, 그리고 일반사회 등이 포함되는 사회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모든 분야의 파트너십이 필요함을 주장하는데 이르렀다.
이 주장은 여태까지의 의학전문직업성 논의에 주목할 만한 전환점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왜냐하면 지난 20여년 동안 전문성의 측정과 평가를 위한 개발연구에도 불구하고 드러난 성과는 미미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숱하게 이어진 워크숍과 연구논문들, 전문성의 측정과 평가를 위한 개발연구에도 불구하고, 의사사회 전체가 동의할만한 보편적이고도 현실적인 의학전문직업성은 아직 정의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전환의 계기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 이르게 되었다.
다양한 임상 현장
1. 전통적 의사상
의사들이 전문직 행위를 실천하는 방식은 현대에 와서 실로 다양해졌다. 통상적으로 그리는 의사상은 전통적 전문성에 따라 이타주의와 헌신을 중시하며 상업주의를 배격하는 유형이다. 이 유형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영웅 의사의 일화에 익숙한 의사들 대부분이 신념처럼 품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의업을 상징하는 수사적 어구에 흔히 들어있다. 또한 선언적 정의(definition)에 충실한 것이고 학생교육과 수련의 인증제도도 이에 기준하고 있다. 여기에 내재된 핵심이념은 의업은 소명이지 일개 직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돌보는 것이나 개인생활의 여유보다 의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또한 의사의 행위는 외부로부터 규제되어서는 안되고, 타 의료전문직(간호사, 의료기사, 치료사 등)은 의사의 지배하에 있으며, 의사라는 사람은 일반인보다 뛰어난 성숙한 인성을 갖추어야 한다. 전형적인 모습을 그려본다면, ‘전문직 황금시대’[30]에 존경받던 명의가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연로한 의사로 하여금 향수에 젖게 하는 이러한 유형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과 오류를 안고 있다.
- 첫째, 전문성 실천의 책임이 오로지 개인에게만 귀결된다는 점에서 집단으로서의 전문성의 위상을 가지지 못하며,
- 둘째, 개인을 어쩔 수 없는 결정의 함정으로 몰아가는 불합리한 제도와 환경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회적 맥락이 배제된 것이다.
- 셋째는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 이 의사상이 그리는 의료환경은 더 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율규제권과 임상자율권은 거의 상실되어 있고 의사의 전문직 지배도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질병과 진료방식이 복잡해지면서 팀워크 진료가 대세를 이루고 있고, 간호사, 의료기사, 치료사 등도 이제는 제각기 세분화, 전문화, 세력화되어 가는 현실이다.
- 넷째로는 새로운 세대의 의사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가지 못하고 도리어 거센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 특히 수련의와 학생들은 ‘나의 이익을 남의 이익에 종속시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자기보호 권리를 박탈하는 것, 자기희생적 봉사(selfless service)라는 것은 결국 의사만 지쳐빠지게 만드는 것, 교묘한 환자로부터 의사만 착취당할 빌미를 제공하는 것’[31]이라는 등 반발하고 있다.
- 또 특허 경쟁, 기업과의 연계, 그리고 이익극대화를 위한 다양한 면책정책이 실행되는 대학과 병원환경에서 학생들이 암묵적으로 학습하는 현실은 강의실 교육과는 상반되거나 갈등하는 것이어서 냉소적 태도를 확산시킬 뿐이라고 했다[32]. 이러한 비판의 연장선에서 고매한 인성이 의사의 조건이라면 의사는 훌륭한 부모, 좋은 남편/아내, 친구, 이웃, 시민 등의 역할까지 모두 다 해내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의사로서의 전문성이 아니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보편적 윤리에 해당할 것이다.
2. 사업형 의사
두 번째 유형으로 첫 번째와 정반대의 극에 위치하는 사업형 의료가 있다. 상업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의료를 매매상품으로 취급하는 의료소비자주의에 충실하고,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기술적 역량을 중시하는 이 유형은 현재 전통적 전문성보다 더 큰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의업은 소명이 아니고 사업으로 간주된다. 전문가로서 중시하는 규범은 자율규제이기는 하나 상업주의 논리에 기초한 것이므로 전통적 개념에서 말하는 것과 다르고, 또 환자자율권을 존중하나 소비자의 요구에 따른다는 점에서도 선언적 전문성에서 말하는 것과 다르다. 의사헌장에서 말하는 환자자율성은 ‘환자의 결정이 윤리원칙에 따른 것이고 부적절한 치료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존중되어야 한다’[15]이다. 그런데 이 어구가 주는 애매모호함은 가치관이 배제된 사업형의료행위에 문제의 소지를 제공하는 셈이다. 변화하는 세계와 견고해지는 개인주의는 다양한 윤리원칙이 존중될 것을 요구하는데다가, 발달된 과학기술은 인간의 변형과 개조까지도 가능하게 만들고 있어서[33] 의료행위의 적절함을 판단하는데 자의적 해석이 적용됨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회원제 의료제도, 일명 boutique medicine, concierge medicine, retainer - base medicine [34]은 철저하게 소비자 중심의 의료서비스를 경제력이 있는 특정 사람들에게만 제공한다. 이때 소비자의 요구에 충실하다보면 해를 끼치는 의료행위를 할 수도 있고, 상업주의에 충실하다보면 전문직의 독립된 논리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3. 라이프스타일 의사
세 번째로 대세를 이루는 유형은 특히 신세대 의사들에게 해당된다. 의사의 고용구조가 다양해지면서 일과 개인생활의 균형을 가능케 하는 근무형태가 많아지고 있다. 젊은 의사들은 집단과 사회보다는 핵가족과 개인 중심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세대로서 개인생활을 중시하고, 의업에의 헌신으로 자신을 혹사하기보다는 자기 속도에 맞춰 일하기를 선호한다. 이타주의보다는 정직한 진료를, 개인을 희생하는 헌신보다는 성실함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매우 현실적이다. 타의료전문직과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려한다는 점에서도 전통적 전문성과는 차이를 보인다. 카페나 음악실을 겸하는 개인의원, 파트타임 근무와 직장 공유하기, 대진(代診)제도, 특정 만성 환자에게 한의학이나 민간요법 등과의 통합의료를 시도하는 새로운 유형의 병의원 형태 등이 그 예이다. 새로운 의사-환자 관계에 대한 요구와 일-개인생활의 균형이라는 이들 신세대 의사들의 요구는 전통적 전문성에 내재된 가부장주의(paternalism)와 자기희생 정신과는 정면충돌하고 있다. 급성기 병상이 포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새 길을 모색하는 와중에 나타난 이들의 발상은 아직 소수에 국한되어 있고 방향성도 미정이나,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들 유형의 사이사이에 분지되는 다양한 형태의 방식들이 있을 것이나, 인도주의실천협의회와 같은 사회운동가적 의료방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통적 전문성과 대립하거나 갈등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다시 말해서 선언적 전문성은 현실세계에서는 그 유용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의학전문직업성의 핵심쟁점, 변화시킬 주제들
지금 현실에서 의사들이 갈등하는 주된 주제는 이타주의와 상업주의이다. 그 하나는 전문성이 싹트던 19세기 중반미국의 윤리규약이 표방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1980년대 현대 전문성의 첫 운동이 일어날 때 핵심 주제라는 점에서 역설적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이 의료에게 요구하는 것도 시대와 함께 변화되어 왔다.
1. 규명의 대상, 이타주의
통상적으로 이타주의는 타인을 위해 자신의 복지를 희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통상적 의미에서 갈등의 소지가 시작된다.
- 이타주의는 19세기 초반 프랑스 철학자 Auguste Comte가 처음 개념화한 용어이다. 당시 아나키즘과 같은 지적 이기주의가 만연하는 분위기에서 사회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유, 평등, 우애이며 이는 이타주의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즉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보편적 약속이라는 의미에서 탄생한 이타주의는 미국의사회의 기독교적 가치관과 결합하면서 자기희생이라는 암묵적 의미를 덧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의미는 논쟁을 거쳐 규명되지 않은 채 통상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 Bishop과 Rees [35]는 의학교육에서 이타주의라는 용어가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고 이념적 구호로 전락하여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이타적 행동이란 타인의 안녕을 목적으로 자발적으로 행한 것에 국한되어야 하며, 그 동기가 자신의 이익이나 자기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고 의미를 정제하였다.
- Kant 철학을 차용할 때[36],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자신과 타자를 전제로 하여 보편적 윤리원칙에 의해 결정된 행동일 때에는 이타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때 자기이익은 생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만일에 부수적으로 이익이 생긴다면 그것은 부도덕한 것이 아니다. 즉 자기이익과 이타주의는 항상 상반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이익을 포기하거나 희생해야 이타주의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타주의는 제도권 의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 Glannon과 Ross [37]는 관계가 규정되어 있는 대상(환자)에게 하는 행위는 임무(duty)이자 선행(beneficence)인 반면, 이타주의는 임무로서 행하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것(beyond the call of duty)이라고 하여, 임무와 이타주의를 구별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국경없는 의사’에서 일하는 의사 모두를 이타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혹자는 경험과 문화적 다양함을 얻기 위해, 혹자는 칭찬을 받기 위해, 또 누군가는 봉사라는 비가시적 가치를 쫓아 온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이타주의는 내적 동기를 측정하기 어려우므로 의학교육 내에서 객관적 평가를 하기 어렵고, 대신에 친사회적 행동(prosocial behavior)을 측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미국과 달리 계급사회 내에서 직종별로 사회적 헌신을 강조해온 영국에서는 매우 현실적인 권고를 한다. 2001년 General Medical Council [38]에서 공표하고 개정해 나가는, 학생교육을 위한 ‘내일의 의사(Tomorrow’s Doctors)’, 그리고 의사훈련을 위한 ’새 시대의 의사(The New Doctors)’ 에서는 자신을 잘 돌보는 것이 의사의 임무 중 하나라고 명시했다. 즉, 의사는 일과 개인의 삶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고, 환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건강을 돌봐야 할 책임이 있으며, 환자를 돌볼 때에는 자신과 남의 안전을 담보로 위험을 무릅쓰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새 시대의 의사는 환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아니고 환자를 잘 돌보기 위해 의사 자신도 잘 돌보는 사람, 즉 selfless가 아닌 selfish해야 한다고 정의했다는 점에서 미국의사회의 자기희생을 내포한 이타주의 의미와는 사뭇 그 차원이 다르다.
의사학자 Jonsen [39]은 의료에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역설은 히포크라테스 의학에서 물려받은 공정한 이익추구 정신과, 중세를 거치면서 유대-기독교와의 결합에서 나타난 자기희생정신이라는 두 가지 전통이라고 기술했다. 모순되는 이 두 가지 정신은 마치 두 개의 대륙판이 부딪쳐 지진을 일으키듯 수시로 의업의 기반을 흔들어댄다. 그러나 “자기희생이라는 고전적윤리는 의사가 주연이었고 환자-의사 관계가 주된 시나리오이었던 전통극에는 적합했지만 현대에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의사헌장은 시대적 맥락을 도외시하고 생활인으로서의 의사의 실제 모습도 배제한 채 고매한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해 이 모순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는 충분하다. 경제적 압박과 언론의 포화 속에서 명백히 정의되지 않은 이타주의라는 구호는 의사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현대 민주사회에서 모든 권리 및 의무는 협상과 타협의 대상이 된다. 개인이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권리를 가진다면, 그 개인은 의료재정에 기여할 책임이 있고 또한 의료서비스를 남용하지 말고 적절하게 사용할 의무도 함께 져야 한다. 의사 또한 전문가로서의 역할과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가진다는 점에서 이타주의 조항은 협상과 타협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더 나아가 건강과 질병치료에는 의사사회와 대중만이 관여하는 것이 아니고 제도적 장치, 경제구도, 문화적 배경 등 다양한 분야가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학전문직업성은 의사단체의 일만은 아니라는 주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40 - 42]. 공동의 목표를 향하는 관련 집단들의 균형잡힌 합의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라이프스타일 유형 의사들의 주장은 재고할 만하다. 그들이 주장하는 정직한 진료, 성실한 진료는 애매한 이타주의보다는 더 명확한 의미를 전달한다. 정직은 사심 없는 공정한 진료로, 성실은 역량을 갖추고 임무에 충실한 진료로 해석할 수 있고, 다양한 갈등에 직면한 의사들에게 최소한의 기준이자 최대한의 공집합이 될 수 있는 가치이다.
2. 규제의 대상, 상업주의와 이해상충
두 번째 논쟁의 주제는 상업주의이다. 의료소비주의, 광범위한 의료화 현상, 그리고 과학발달과 의료관련 기업의 발달은 의료계 내의 상업주의를 ‘내 부엌에 있는 코끼리’와 같이 만들어버렸다. 부엌 안의 거대한 코끼리는 누구나 어디에서나 다 볼 수 있지만 정작 부엌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즉, 의료상업주의는 한두 명의 부도덕한 의사에게 국한되는 일이 아니고, 몇몇 전문과목이나 기관에만 국한되는 일도 아니다. 실제로 이해상충과 관련된 의료스캔들은 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그 종류와 범위도 증가일로에 있다. 근래에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기소된 한국의 의사들도 수백 명에 이르고 있으나 대중에 발표되는 뉴스는 빙산의 일각을 보여줄 뿐이다. 이제는 더 이상 ‘한 두 개의 썩은 사과’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볼 수는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43].
이 주제가 의학전문직업성과 관련된 문제는 다음 세 가지로 정리된다.
- 첫째로 선언적 전문성은 의업을 생계로 하는 일반 의사들의 상업행위에 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업주의가 의사의 적이라는 전제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부분은, 의사가 수입을 얻는 방법 중 어떤 것이 전문성에 맞는 것이고 비전문적인 것인지를 규명하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공정거래법과 같은 법률로 합법성 여부를 구별하는 것은 전문성에 관련될 사항이 아니다. 전문성은 의업을 지탱하는 핵심정신이자 역할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보다 더 상위에서 행위의 의미를 실존적으로 규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의료계가 어떻게든 규제하지 않으면 전문성의 기본 논리마저 상실케 하는 근본적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선언적 전문성은 이 난제를 규명하려들지 않고 회피했을 뿐이다[44].
- 둘째로 의사 사회 내의 구조적 문제가 이해상충과 상업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의사를 양산하고 있어서 가뜩이나 추상적인 규범의 그 일부분조차도 실현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의업은 전문지식과 기술을 독점한다는 점에서 의료계 외적으로 볼 때 분명 시장 독점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의사사회 안을 들여다보면 내부적 갈등을 만들어내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 의과학 연구가 대부분 대학교수진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새로운 지식과 술기는 모두 대학에 집중되어 있고, 후학을 배출하고 훈련하는 것 또한 대학이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의료와 관련된 모든 권력은 대학과 대학병원에 집중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 결과 의사사회 내에도 권력의 중심부와 변방이 구별되고 계급화 및 서열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여기에 의사 인력의 과잉공급, 의사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 더해지면, 중심부분에서는 더욱 치열한 경쟁이, 변방에는 통제가 미치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통제되지 않는 변방과 숨막히는 경쟁위주의 중심은 모두 이해상충에 취약해지고 만다.
- 세 번째는 대학과 대학병원이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정책과 비공식적, 암묵적 환경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존재한다. 바로 이 괴리지역에서 교육과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개원의들은 학생과 수련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고 학생들의 역할모델이 되기도 어렵다. 교수진에게 초점을 맞춘 기업의 공세가 보여주는 현실은 외부 연구비 수주를 장려하는 학교분위기와 맞물려 정당성을 담보하고 있어서 이해갈등을 배제하고자 만든 윤리규약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학생과 수련의의 전문직 사회화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근래에 기업의 영향을 줄이고자 대학마다 기관 내 정책을 만들고 있으나 현재까지는 임상에만 국한되어 있고 연구분야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대학을 청정지역으로 한다하더라도 학생들은 졸업 후에 곧바로 이해갈등을 직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학교를 청정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편적인 의사가 모두 동의하고 현장에서 참조할만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지침을 마련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제기되어야 할 질문은 기업과 의료계의 관계를 악으로만 볼 것인가, 만일에 악이 아니라면 어떤 것이 기업과 의료계 간의 윤리적 관계인지 등이다. 최근에 이 관계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하는 작업이 시도되고 있어 주시할 만하다. 한국의료윤리학회가 주도하여 대한의학회 등의 여러단체와 공청회를 거쳐 만들어가고 있는 의료인-제약산업체 간의 이해상충 관리 지침이 대표적 예이다.
3. 논의의 대상, 사회로부터의 요구
과학발달은 인간이 전에는 바라지도 못했던 일까지 가능하게 만들고 주고 있다. 의과학은 의료의 전통적 목적이었던 질병치료와 고통완화를 넘어 이제는 인체 개조와 성품변화에까지 적용되고 있어서, 의료소비주의에 익숙한 소비자는 온갖 분야의 의료서비스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의료기술의 독점적 사용자인 의사는 의료의 고전적 역할에 머물러야 하는지, 아니면 사회적으로 합의가 된 것이라면 대중의 요구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하는 것일까? 의사가 질병 치료 외에 건강을 지키는 공적 역할을 맡고 있다면, 건강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의료서비스의 범위도 달라질 것이다. 광의로 정의하여 주관적 행복까지 포함하는 것을 건강이라고 한다면[45], 개인이 행복해지기 위해 요구하는 의료서비스는 제공되어야 한다. 반면 협의로 정의하여 건강은 질병으로부터 해방됨을 의미한다면 의사의 역할은 고전적 목적에 머무르게 된다. 이렇듯 사회가 무엇을 요구하는지에 따라 의료의 목적과 한계가 정의된다는 점에서 사회와의 조율은 전문성의 정의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의료소비자의 요구에 무제한으로 응하는 것은 자유시장의 논리에 따르는 것이다. Freidson [46]은 자유시장 논리를 제1 논리라고 정하고, 정부가 의료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권력행사 방식을 제2의 논리라고 한다면, 전문직은 제3의 논리에 의해 작동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통적 전문성을 지지한 Freidson은 전문직의 핵심은 초월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고, 특수지식 행사의 내적통제와 공익헌신이라는 독자적 논리에 충실해야만 제1, 2의 논리 그 어느 쪽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렇지 않으면 자유시장의 변덕과 사기에 물들거나, 아니면 관료조직의 경직된 위계질서에 포섭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책이 출판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의료는 이 두 분야 어디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 특히 사회변화와 함께 대중의 요구가 이끄는 제1의 논리는 또 하나의 대륙판으로 의료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 의학전문직업성을 변화시킬 요인으로서 사회로부터의 요구를 중요시하는 이유이다.
결 론
전통적 전문성은 암묵적 사회계약에 기초한 것이었다. 의사, 사회, 국가가 조화롭게 운영되고 각 분야의 요구가 비교적 만족되었던 시기에 이 계약은 충분히 효력을 발휘했던 바 있다. 대중은 의료서비스를 누리고 의사는 적절한 기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자율적으로 내부 규제를 했으며, 정부와 의사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불간섭주의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환자의 권리와 사회적 요구는 확장되고, 정부는 의료의 질을 감시하고 자율권을 축소하는 등 통제와 간섭을 강화하고 있다. 이제 사회계약이라는 암묵적 관계가 깨어진 것은 자명하다.
사회계약에 기초했던 의학전문직업성은 이제 현실적 유용성과 규범으로서의 기능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동안 선언적 의미로만 통용되던 의학전문직업성은 명백한 현실적 약속으로 다시 쓰여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의료계는 사회에서 독립된 섬이 아니고 사회라는 넓은 콘텍스트 안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관계성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의학전문직업성의 이상과 가치도 시대적 맥락과 변화의 흐름에 공명하는 것이어야 한다. 전문성의 실천을 일부 의사에게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대다수 의사들의 집단적 동의이자 보편적 약속이어야 할 것이다. 이는 의사사회 내의 광범위한 논의를 전제로 한다. 사회적 요구에 어떤 방식으로든 호응해야만 하는 것이 서비스의 본질이라면 사회와의 논의 또한 전제조건 중 하나이다.
논의의 첫 단계는 의료와 관련되는 모든 분야가 공동의 목표를 정하는 것이고, 그 다음 단계는 공동의 이익을 위한이 논의에서 각 분야의 책임과 의무 및 권리의 범위를 의논하여 합의하는 것이다. 조화롭게 논의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로 상호신뢰이다. 신뢰는 의사-환자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사회-정부 사이에도 존재해야 한다. 정부는 현실적으로 제공가능한 것보다 더 많은 약속을 해서는 안되고 어느 한쪽의 희생을 담보로 제도를 만들어서도 안될 것이다. 공론을 통해 의료서비스의 한계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야 하고 양질의 진료를 보장할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럴 때, 의사가 개인의 삶에 균형을 잡고, 환자를 치료의 파트너로 보고 존중하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진료에 임할 수 있다면, 그것이 보편적 의학전문직업성일 것이다. 그리고 때로 자신을 희생하며 봉사하는 의사가 나타
난다면 또 다른 영광의 문구가 의학의 역사에 쓰여질 것이다.
J Korean Med Assoc. 2011 Nov;54(11):1124-1136. English. Published online November 15, 2011. http://dx.doi.org/10.5124/jkma.2011.54.11.1124 | |
Copyright © 2011 Korean Medical Association |
Bomoon Choi, MD![]() | |
1Division of Humanities & Social Sciences of Medicine, The Catholic University of Korea College of Medicine, Seoul, Korea. | |
2Department of Psychiatry, The Catholic University of Korea College of Medicine, Seoul, Kore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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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Modern day medical professionalism has been advocated by multiple professional organizations and individual scholars. Most of the statements publicly issued emphasize particular moral traditions and the highest professional standards along with doctors' social role to recover society's trust, which have proved ineffective in bringing any change. Based on the perspective that medical professionalism is a norm of practice, acknowledged and shared by the majority of current ordinary doctors, the author traced the emergence of modern professionalism to challenge the legitimacy of those virtue-based arguments within a historical context. With the increasing complexities of both society and the health care system, new types of health clinics have been practiced especially by young generation doctors. As these are explored, several factors related with those stated professionalism that are creating conflicts are discussed. It is criticized that those statements demand individual doctors to adhere to the ideal professionalism regardless of any circumstances, so that it excludes any discussion about professionalism from the broader social contextual background. Given that professionalism is a context-dependent concept, it is stressed that modern day medical professionalism is required to evolve along with societal change. As medicine is recognized as a system in which numerous societal areas are involved, medical professionalism is expected to be rewritten into a consensus-based, more realistic and explicit compact. |
Keywords: Medical professionalism, Altruism, Medical commercialism, Conflict of intere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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