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ily, Martin. 1988. “Premenstrual Syndrome, Work Discipline and Anger.” The Woman in the Body. Boston: Beacon Press, pp. 113-138.

이 article에서 저자는 여성의 Premenstrual Syndrome(PMS)과 이를 대하는 남성, 직장, 사회의 관점을 다루고 있다. PMS를 설명하기 위한 모델은 주로 심리학적/생물학적인 것이고, 호르몬을 이용한 다양한 "치료"가 시도되고 있다. 19세기에는 월경을 병리학적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 당시에 주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월경과 직장에서의 업무능력 사이의 관계였다.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 시기에 월경이 심신을 약화시킨다는(debilitate) 연구결과가 많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여성들의 취업이 남성들이 일자리를 구하는데 방해가 되었고, 반대로 2차대전이 시작된 이후 월경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not a liability)라는 연구가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PMS로 돌아와, 여성들이 스스로 PMS에 대해 보고한 바를 보면 대체로 정신적 신체적 규율이 필요한 상황에서 능력을 발휘하는게 어렵다는 내용이 많다. 이러한 것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고, 고용자들은 나머지 시간에 더 높은 강도의 업무를 요구하기도 했다. PMS의 incidence가 반대로 업무 규율이 더 강한 곳에서 더 높은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는 별로 연구된 바는 없으나, 여성들은 집안일에 대해서도 clumsy해진다고 말한다. 

PMS로 인한 주기적 변화가 사회적 구조적으로 잘 조화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렇다면 실제 업무에 대해서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여러 연구에서 여성의 업무능력은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나다. 반면, PMS에 흔한 것 중 하나는 분노(anger) 이다. 그러나 여성이 PMS로 인한 정서적 변화를 나타낸 것에다가 폭력적으로 반응한 남편의 행동은 여성보다 더 '통제불가능한' 행동이다. 또한 여성들은 이 분노에 대해 "홀린(possessed)"기분이라고 묘사하기도 하는데, 여성이 의미한 바와 달리 사회는 이것을 '몸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하곤 한다. 또한 여성들은 분노를 표출한다고 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Article은 끝 부분에 Gloria Steinem의 냉소적인 상상을 서술하며 마무리짓는다. 만약, 만약에, 남성이 월경을 하고 여성이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Scheper-Hughes, Nancy. 1985. “Culture, Scarcity and Maternal Thinking: Maternal Detachment and Infant Survival in a Brazilian Shantytown.” Ethos 13(4): 291-317.

이 article은 문화와, 빈곤과, 모성에 대한 것이다. 브라질의 Alto do Cruzeiro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녀의 치료와 생존에 대한 엄마로서의 신념과 정서, 실제 행동양상을 설명하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매년 백만명의 5세이하 유아가 기생충 감염이나 만성적 영양실조로 사망한다. 제3세계의 영아 사망은 주로 의료기술의 문제보다는 정치경제적 문제로 다뤄지나, 여기에서는 다른 측면 - 극악의 조건에서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약한 아이에 대한 엄마의 무심함과 무관심 - 을 보고있다. 즉, 경제적 박탈과 모성의 박탈의 연결고리는 어떻게 되는지를 다룬다. 이런 환경은 삶을 'luta'라는 은유에 빗댄다. 이는 강자와 약자 사이의, 더 나아가서는 약한 자와 더 약한 자 사이에 생존을 위한 싸움을 의미하는 것이다. Alto의 여성들은 "a mingua"로 죽어가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허락해야 한다 말한다. "a mingua"란 관심, 돌봄, 보호 없이 죽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모성'이라는 사고와 행동이 정신생물학적으로 타고나는, 보편적인 정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 이 곳에서 아이를 출산한 산모는 아이의 체질이나 기질에 따라서 '투자'가 달라진다. 진체적, 정신적으로 "fighter", "survivor"의 특징을 빨리 보이는 아이들에게 더 호감을 보인다. 

- 이곳 여성들에게 태어난 아기가 첫 해에 살아남기 위해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좋은 음식, 적절한 영양, 우유, 비타민"이라고 누구나 말한다. 하지만 역설적인 것은, 어떤 엄마도 '자신의 아이'가 사망한 주요 원인으로 음식이 부족하거나 우유가 적은 것을 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doenca de crianca'는 엄마를 대단히 소모시켜요. 슬프게 만들죠. 우리는 그런 병은 치료하지 않아요. 그들은 죽어야 하기 때문에 죽는 것이죠. 항상 약한 사람은, 나중에 커서도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할 거에요. 차라리 더 약한 쪽이 죽는 것이 나은거죠."

- 모성에 대한 연구에서 우리는 '현대, 서구, 부유한' 가족에서 나온 연구를 주로 보게 된다. 그러나 많은 아이를 낳고, 문화에 기반한 선호도 차이에 따라 선택적으로 투자하여, 그 일부만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제3세계의 현실은 다르다. 이 곳에서는 아이의 장례식이 드문 일이 아니며, 아이가 걷거나, 말하거나, 또는 의료적 사고가 생겨 급하게 세례를 받아야 하기 전까지 아이에게 이름조차 주지 않는다. "엄마의 사랑"은 지켜보고, 보호하고, 살펴주는 정서가 아니라 "시간을 두고 지켜보며 기다리는 것(watchful waiting)"으로 대체된다. 

- 인간의 정서에 대한 생물학적 기초를 완전히 반박할 수는 없지만, 사랑과 애착관계는 문화에 의해 의미가 만들어지고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복잡한 현상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Inhorn, Marcia. 2004. “Middle Eastern Masculinities in the Age of New Reproductive Technologies: Male Infertility and Stigma in Egypt and Lebanon.” Medical Anthropology Quarterly 18(2): 162-182.

이 article에서 저자는 최신 생식 기술(new reproductive technology, NRT)가 중동지방의 '남성성'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남성 불임은 전세계의 전체 불임 중 약 절반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나, 그 비율만큼 많이 연구되어있지는 않다. 이 article에서는 중동지방의 두 도시(이집트의 카이로,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남성 불임의 문제를 연구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환경적 요인과 행동적 요인으로 인해서 남성 불임의 위험이 높다. 


중동과 같은 출산촉진론자의 사회에서 남성의 불임은 특별히 더 문제가 된다. 정력과 가임성이 모두 '남성성(manhood)'과 연결되며, 따라서 남성이 불임이라는 것은 대단히 무기력한 것이면서, 낙인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문화는 제3자에 의한 생식세포를 제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ICSI라는 새로운 생식기술의 등장으로 인해서 복잡한 윤리상, 혼인상의 딜레마가 생겨났다. 이로 인해 남성 불임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ICSI라는 기술이 사회적 낙인과 은밀함(secrecy)에 추가적인 역설적 상황을 덧데게 되었다.


- 중동지방에서는 남성불임이 특히 높은데, 그 이유는 여성불임의 원인이 되는 성매개전염병이 낮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고, 유전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는 그 지역의 환경오염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레바논에서는 전쟁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 불임남성이라는 것이 이집트에서는 특히 더 비밀스럽고 사적인 일이고, '남성성'을 훼손하는 것인 반면, 레바논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조금 덜해서 커다란 비밀도 아니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 분야의 좋은 의사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는 레바논의 교육수준이나 전쟁과 연관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레바논 남성은 행복해보이지 않았고 '응답할 기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응답을 꺼렸다. 

- 정자 공여에 대한 종교적 문화적 금지로 인해 ICSI는 불임남성에게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 물론 ICSI도 정자가 섞일지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과, 자녀가 태어나더라도 "시험관 아기"라는 낙인이 찍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Wentzell, Emily. 2013. “Aging Respectably by Rejecting Medicalization: Mexican Men’s Reasons for Not Using Erectile Dysfunction Drugs.” Medical Anthropology Quarterly 27(1): 3-22.

저자는 이 article에서 발기부전치료제라는 의학을 거부함으로써 바람직한 나이듦(respectable aging)을 추구하는 멕시코 남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Lifestyle Drug의 생산이 늘어나고, 노인병학에 대한 의학적 관심이 증가하면서, 가령(aging)과 성(sexuality)에 대한 의료의 문제가 서로 엉키고 있다. 비아그라와 같은 약제는 남근중심적 섹스를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를 건강한 나이먹음의 표식으로 생각하도록 한다. 그러나 노년에도 "젊은" 섹스를 즐길 수 있게 도와주는 약제가 보편화되었음에도, 저나는 섹스를 즐기지 않거나 조금만 즐기고도 '바람직한 나이듦'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멕시코의 Cuernavaca의 한 비뇨기과에서 이뤄진 이 민족지적 연구에 따르면 삽입을 하는 섹스가 전통적으로 성공적인 남성상과 관련되어 있지만, 발기부전이 있는 많은 나이든 노동자 계급의 맥시코 남자들은 '젋은' sexuality와 그것을 위한 약을 거부하고, 가정과 가족을 중심으로 한 '성숙한' 남성성을 그린다. 저자는 사회적 격려와 발기부전 약을 쓰는것에 대한 구조적 disincentive가 남자들로하여금 발기부전을 자연스럽고 적절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함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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