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휘장의 소사 :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와 헤르메스의 지팡이

신영전*






1. 연구 배경과 목적


융(Jung)은 “하나의 상징(symbol)은 일상생활에서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하나의 용어, 이름, 그림일 수 있지만 그것은 고식적인 의미 이상의 특별한 함의를 가진다”라고하였다.1)


한 집단의 휘장은 그 집단의 정체성을 함축하고 있는 상징물이다. 집단은 휘장을 통해 다른 이들과 자신들을 구분하며, 회원간의 동질성, 자부심을 강화한다. 아울러 그집단이 지향하고 있는 가치들을 대중에게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대한의사협회의 전신인 조선의학협회는1947년 10월 31일 공식휘장을 확정하여 사용해 오고 있으며 그간 세 차례의 교체를거쳐 현재 네 번째 휘장을 사용하고 있다.현재의 휘장은 첫 번째 휘장의 디자인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첫 번째 휘장의 기본상징물은 두 마리의 뱀이 지팡이를 휘감고있는 지팡이(Caduceus)다. 이 두 마리의 뱀과 지팡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Hermes)2)의 상징물로, 일반적으로의학의 신으로 알려져 있는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의 지팡이가 아니다.


2) 헤르메스(Hermes)는 상인, 도적, 연금술사, 여행자의 신이기도 하고, 죽은 자를 지하로 이끄는 안내자의 상징이기도 하다.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의학의 상징으로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경우는 대한의사협회만이 아니며, 국내외 여러 의학, 약학, 보건 관련기관이나 단체에서도 아스클레피오스가 아닌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그들의 휘장 또는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오용과 교정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연구들이 있어 왔다.3)4) 국내에서도 헤르메스의 지팡이가 의사협회의 상징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5)6)


왜 한국의 의사협회는 아스클레피오스의지팡이가 아닌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협회의상징으로 삼게 되었을까? 이 연구는 대한의사협회 휘장의 제정과정의 역사적 기록과역사적 맥락을 살펴보고 이것이 가지는 한국 근현대 의학사적 함의를 고찰하고자 한다.



2.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와 헤르메스의지팡이


2.1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와 의학의 상징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의술의 신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로마시대 의학의 상징적 존재이다. 아폴론의 아들로 그려지기도 하고 키론(Chiron)밑에서 자라면서 의술을 배워 죽은 사람도되살릴 만큼 훌륭한 의술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기원전 800년경에 살았던 호메로스(Homer)의 서사시 <일리아드(Iliad)>에도 이상적인 그리스의의사로 언급되고 있으며,7) 플라톤(Plato) 역시 히포크라테스를 아스클레피오스의 자손이라는 의미의 ‘아스클레피아드(Asklepiade)’라 불렀다.8)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문에서도 두 번째로 등장하는 신의 이름이기도 하다.9) 이렇듯 아스클레피오스는 기원전부터유능한 의사의 대명사였다.


9)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나는 의술의 신 아폴론과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 히게아(Hygeia), 파나키아(Pankeia), 그리고 모든 남신과 여신의 이름으로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이 선서와 계약을 이행할 것을 맹세합니다”로 시작된다.


아스클레피오스를 의미하는 대표적인 상징(emblem)은 지팡이를 둘둘 말며 올라가는 ‘한 마리 뱀’이다. 지팡이와 한 마리 뱀이 아스클레피오스의 상징이 된 이유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신화는 다음과 같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제우스의 번개를 맞아 죽은 글라우코스(Glaukos)를 치료하던 중 뱀 한 마리가 방안으로 들어왔는데 이에 깜짝 놀란 아스클레피오스가 자신의 지팡이를 휘둘러 그 뱀을 죽였다.잠시 후 또 한 마리의 뱀이 입에 약초를물고 들어와 죽은 뱀의 입 위에 올려놓았는데, 그러자 죽었던 뱀이 다시 살아나고, 이것을 본 아스클레피오스는 뱀이했던 대로 그 약초를 글라우코스의 입에갖다 대어 그를 살려내었다. 그리고 그는 존경의 의미로 자신의 지팡이를 휘감고 있는 한 마리의 뱀을 자신의 상징으로 삼았다.”10)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는 고대시대 동안 의학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나 중세에 들어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 의해 사용이 억압되었다. 당시 요검사(uroscopy)를진단의 수단으로 널리 사용하면서11) 6세기부터 르네상스 시기까지 의학의 상징은 소변을 받아두는 유리병(Flask)으로 대치되었다.12) 종교개혁 이후 아스클레피오스의 상징이 다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13)



2.2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와 헤르메스의지팡이 논쟁


시작 시점이 분명하지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헤르메스의 지팡이가 의학 분야의 상징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미 군의부대(U. S. Army Medical Corp,USAMC)의 배지(badge)다. 이 배지는 1902년부터 채택되어 사용하고 있다.14)15)


왜 헤르메스의 지팡이가 19세기부터 북미의사들의 상징으로 잘못 채택되어 사용되기시작했는가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그 중 가장 널리 인용하고 있는 것이 프리드랜더(Friedlander)의 연구인데, 그는미국에 많은 의학서적을 제공하던 런던 처칠 출판사(Churchill of London)의 상징이 헤르메스의 지팡이였고, 19세기에 미국 출판사들이 이 상징을 의학의 상징이라고 착각하여 의학 관련 서적에 이를 사용하였기때문이라고 하였다.16)


의학의 상징으로서의 헤르메스 지팡이의오용을 이야기할 때 미국 군의부대 심볼의역할은 절대적이다.17) 프리드랜더의 연구에따르면 미국 군의무부(U.S. Army Department,USAMEDD)는 1818년 이미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견장의 핵심 상징물로사용하고 있었으나, 1902년 7월 17일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또 하나의 휘장으로 선택하였다고 한다. 당시 이미 헤르메스의 지팡이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군의감(Surgeon General)이 채택을 거부했음에도불구하고 이를 제안한 레이놀즈(Raynolds)대위의 집요한 고집으로 인해 마침내 승인이 이루어졌다고 밝히고 있다.18)19) 결론적으로 미국 군의부대가 헤르메스의 지팡이를휘장으로 선택한 것은 고대신화 상징에 대한 잘못된 이해의 결과였다. 미국의사회(1910)와 네덜란드 의사회(1956)는 각각 문장을 제정함과 동시에, 의학 관련 상징으로‘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사용하고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사용하지 말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나 이것은 철저히 지켜지지않고 있다.20)


3. 대한의사협회 휘장의 역사





왜 한국의 의사협회는 아스클레피오스의지팡이가 아닌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협회의상징으로 삼게 되었을까? 국내에서도 이미헤르메스의 지팡이가 의사협회의 상징으로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어 왔으며, 이것이 미군의무부대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추측이 있어 왔다. 실제로 박지욱은 대한의사협회와 국방부에 공식 질의를 하기도 하였는데, 대한의사협회로부터 현재 사용 중인 휘장이 1947년에 제정된 것을 1972년에변경하여 사용하는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으며,21) 현재의 상징이 미 육군 의무부대가사용하던 휘장을 사용한 것일 것이라는 추측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또한 국방부로부터는 “처음에는 미군에서 사용하던 카두세우스를 했다가, 1971년에 날개를 아래로 당겨 전체적으로 둥근 원모양의 디자인으로 바꾸어 사용한다”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22) 그는 “결론적으로 현재 사용 중인 육군 의무병과와 대한의사협회의 표장은모두 한국전쟁을 통해 이 땅에 상륙한 미군의무부대의 표장에서 기원한 것이 맞는 것같다”23)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대한의사협회의 휘장은 1995년에 다시 만들어진 것이며, 최초 휘장의 채택이 의사협회의답변대로 1947년이라면 이 시기는 한국전쟁이전인 미군정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혼돈을 정리하고 왜 한국의 의사협회가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가 아닌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협회의 상징으로 삼게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한의사협회 휘장 제정의 역사를 추적하였다.


3.1 첫 번째 휘장(1947.10.21-1964.4)


현재 대한의사협회가 사용하고 있는 휘장은 1947년 조선의학협회가 최초로 공식휘장을 제정한 후 네 번째 휘장이다.


조선의학협회는 1947년 3월 남한지역을총망라한 중앙의사회로 창립되었다. 조선의학협회는 출범과 함께 조선의학협회회보를발간, 전국의학학술대회 개최 등 적극적인활동을 개시하였는데, 협회 휘장의 제정은이러한 적극적인 활동의 일환이었던 것으로보인다.24) 1947년 9월 조선의학협회는 임원회에서 휘장을 제정하기로 결정하였는데,1993년 발간한 <대한의학협회 85년사>에는최초 의사협회 휘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메디칼 배지는 그 나라 의사회를 상징하는 휘장이기 때문에 의신(뱀머리 모형)을 그려 넣은 다른 나라 것을 그대로모방할 수 없어 1947년 9월 20일 의협임원회(이사회)에서 휘장 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공모키로 했다.”25)


또한 휘장 공모 작품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는데, 공모 작품의 조건은 "1)조선의학협회의 정신을 살리고 의료의 존엄성을 표현할 것, 2) 도안의 의장이 미술적이며 의협의 목적이나 사업을 충분히 상징할것, 3) 모조나 도용을 방지할 특색을 구비할것"이었다.26)


<대한의학협회 85년사>의 기록에 따르면10여명이 응모하였고 최종적으로 조병덕(趙炳悳)의 작품이 당선되었는데, 그 휘장에 대해 “박애와 구료봉사를 상징하는 적십자를밑바탕으로 삼고 그 중앙에 구호와 평화의심벌인 의신(Caduceus)27)을 배치했으며 그장두(杖頭)에는 태극마크를 그려 넣고 그하부에는 의학협회의 영문 약자인 KMA를백색(준회원은 청색)으로 조각케 하였다”라고 밝히고 있다.28) 새로 제정된 의협 마크(휘장)는 이사회의 결의를 거쳐 같은 해 10월 31일 임시대의원 총회의 결의로 확정되어 1964년 휘장으로 바뀔 때까지 약 17년간사용했다.


조선의학협회의 휘장을 디자인한 조병덕은 1916년 서울 출생으로, 다이쇼실업친목회(大正實業親睦會)29)의 일원으로 조선일보발기인이기도 했던 조진태(趙鎭泰)의 손자이자,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조병학(趙炳學)의 남동생이며,30) 일본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한 서양화가로 1938년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참여한 이래 18, 19, 20, 21회 등 연 4회에 걸쳐 특선을 따냈고, 1940년 선전에서는 최고상을 받기도 하였다.31)또한 경성일보사와 조선군 보도부가 주최하고 조선총독부 정보과, 국민총력조선연맹,조선미술가협회가 후원한 대표적 친일미술전이었던 결전미술전람회(決戰美術展覽會)서양화 부문에 ‘가호반(歌護班)’이란 제목의작품으로 특선을 수상하기도 하였다.32)1944년 해방 직후에는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결성에 참여하기도 하였고,33)34) 조선공예도안기술협회 결성에도 참여하였다.35)또한 1950년대 말부터 동아일보 등에 삽화를 그리기도 하였다. 국전초대작가로 1965년 목우회 회원이 되었고, 1977년 한국 신미술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교수를 역임하였다.1981년에는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1995년에는 옥관문화훈장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3.2 두 번째 휘장(1964.5-1973.4.3)


휘장의 개정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1963년 12월이다. 대한의사협회 상임이사회의록에 나타나 있는 당시 정황은 다음과 같다.


“박이사장으로부터 지난 12월 1일 본회강당에서 서울지부 주최로 한성의사회창립기념식(48주년)이 있었는데, 그 석상에서 회기(會旗) 제정을 위한 현상모집운운의 말이 있었다 하므로 한격부(韓格富) 서울지부장에게 그 연유를 물어본결과 협회기 및 지부 사용 회기의 재검토를 느끼게 되었다는 제안 설명이 있었음.


이우주(李宇柱) 학술이사 : 협회의 K.M.A.영자만 기입되어 있고 우리나라 문자가전혀 표식되어 있지 않아 독립국가로서의 느낌이 감살(減殺)된 감이 있다.


박건원(朴乾源) 이사장 : K.M.A.의 약자는 육군사관학교에서도 약자표식으로 사용하고 있어 우리 협회와 혼돈할 수 있다.”36)


이러한 논의가 있은 후 1963년 12월 21일대한의학협회는 ‘협회기 및 지부 사용 회기재검토에 관한 건’이라는 제목으로 각 지부와 학회에 의견 요청 공문을 발송하였다.이후 1964년 3월 10일에 있었던 제2차 정기이사회에서 개정안을 일차적으로 추인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정하고 있다.


“제8차 임사이사회에서 손기획이사37)에게 위임한 바 있는 협회기 수정 건에 대하여 손기획이사로부터 부분적 개조를시안한 도안을 제시하여 다각적으로 이를 검토한 결과 뱀(蛇)은 하나로 하고기타 색깔 등은 대체적으로 좋다는 결론으로 손기획이사에게 일임하여 다음 회기에 최종 결정짓도록 하다.”38)


1964년 4월 15일 제3차 정기이사회에서손영수 이사가 임원들에게 설명하고 “대체로 의견의 합치를 보고 손이사에게 일임하여 다소의 수정을 가하여 정기총회에 내어최종 결정을 보기로” 결정하였다.39) 그리고마침내 ‘하나의 뱀’으로 대치한 가로 및 세로 각 1.4cm인 휘장이 공지되기에 이른다.40)


첫 번째 휘장의 교체가 가지는 의미는 이시기 두 마리 뱀이 의학의 상징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판단하게 되었으며, 영문표현이 “독립국가로서의 느낌이 감살하는감이 있다”41)는 의견을 내고 이러한 의견이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뱀이 두 마리에서 한 마리로 줄고 영문이 사라지기는하였으나 여전히 ‘날개’를 포함한 헤르메스지팡이의 잔재가 남아 있고 십자가가 남아있는 지극히 부분적인 개정이었다. 이 두번째 휘장은 이후 두 차례 더 개정되었으나, 현재 대한의사협회 산하 분과학회협의회인 대한의학회(Korean Academy ofMedical Science)는 이 두 번째 휘장을 기본으로 한 휘장을 대한의학회의 휘장으로계속 사용하고 있다.42)


42) 대한의학회(Korean Academy of Medical Science)의 휘장도 뱀의 수가 두 마리에서 한 마리로 줄기는 하였으나, 헤르메스의 지팡이의 상징인 날개가 그대로 남아있는 등 완전 한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라 보기 어렵다.


3.3 세 번째 휘장(1973.4.4-1995.5.25)


세 번째 휘장은 1973년 4월 4일부터 사용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의협신보는 다음과같은 기사를 내보냈다.


“1973년 4월 4일 의협 상임이사회는 의협 마크를 새로 제정, 앞으로 의협 뺏지,휘장, 심볼로 사용키로 했다. 의협의 심볼인 마크의 제정은 지난 제7차 시마오총회43) 때부터 추진되어 오던 수임사항으로 이번 집행부가 여경구(呂卿九) 의무이사에게 그 도안을 일임, 여이사가시내 각 미대교수들과 광범위한 의견교환 끝에 최종도안을 마련 이날 상임이사회에서 확정된 것이다. 27차 정기 대의원총회 때부터 사용하게 될 협회 심볼의도안은 세계를 향한 의협의 상을 추구,웅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으며 또한대한민국의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의협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44)


이상의 기사에 따르면 새로운 휘장의 제정이 1971년 서울에서 열렸던 제7차 아시아대양주 의학협회연맹총회(CMAAO)에서 제기되었으며, 20대 한격부(韓格富) 회장(1970.4.29-1972.4.29) 체제와 제21대 회장조동수(趙東秀)(1972.4.29-1974.4.27) 체제 양대에 걸쳐 의무이사를 맡았던 여경구가 휘장 교체를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왜 갑자기 휘장을 교체했는지에 대해서는 관련 자료를 확인할 수 없으나, 그 계기가 아시아대양주의학협회연맹총회이었던 것은 세계각국의 의학협회 관계자들과의 교류가 본격화되면서 대한의학협회 휘장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디자인의 변화를 중심으로 보면, 휘장의 디자인에서 헤르메스 지팡이의 잔재가 남아있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와 십자가가사라지고, 태극을 바탕으로 한 세계지도가등장한 것이 변화한 디자인의 핵심이라는점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와 ‘십자가’ 등이개정의 이유가 되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3.4 네 번째 휘장(1996.4-현재)


1973년 제정 이후 22년 넘게 사용하였던휘장을 1996년 4월부터 네 번째 휘장으로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휘장을 바꾸게 된직접적인 계기는 기존의 ‘대한의학협회’가1995년 5월 26일부터 ‘대한의사협회’로 명칭이 개정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의협신보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의협은 의협의 명칭 개정을 계기로 의협의 휘장(심볼마크)을 개정키로 하고이를 현상모집하기로 했다. 의협의 휘장은 1947년 10월 임시대의원총회 의결에의해 최초로 마련된 후 1973년 4월 1차개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현재사용하고 있는 휘장은 빌리 그라함의 마크와 비슷하여 의사단체의 심볼이라고쉽게 알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세계대다수 국가의 의사회 마크는 의신으로구성되어 있는데 현재의 의협 심볼은 의신이 빠져 있어 의협의 심볼로 적당치않다는 여론에 따라 이를 새로 개정하기로 한 것이다. 의협은 이번 휘장 공모와함께 모든 문건에 사용할 표어도 함께공모하여 이를 사용하기로 했다.”45)


대한의사협회는 1995년 6월 의협휘장 및표어를 공모하였는데, 공모 시 밝히고 있는휘장 디자인의 조건과 상금은 다음과 같다.


“대한의사협회는 협회 휘장(심볼마크)과표어를 오는 8월까지 공모한다. 휘장은의사 또는 의사단체임을 상징하는 내용과 의신이 가미된 도안으로 하되 바탕색은 3도 이하로 공모하고 표어는 의사가국민의 건강을 기키는 파수꾼임을 강조하고 국민으로부터 친근감을 줄 수 있는내용으로 16자 이하로 공모하고 있다.상금은 휘장의 경우 당선작 1명은 2백만원, 가작 1명 50만원, 표어는 당선작 1명50만원, 가작 1명 20만원이다.”46)


1996년 4월 8일자 의협신보에는 의협 새휘장과 표어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다음과같이 싣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 새 휘장<사진>이 결정되었다. 또한 의협의 새 표어도 결정되었다. 의협은 지난 1995년 6월 의협의휘장을 새로 결정하고 표어도 새로 정하기로 결정한 후 이를 공모, 휘장은 16명이 27점을 응모하고 표어 모집에는 37명이 74점을 제출하였는데, 휘장의 결정은5차의 전시와 공람을 통해 심사하여 휘장에는 이원재(포디텔 광고회사 근무)씨작품을 당선작으로 김병로(서울녹십자의원 원장)씨의 작품을 가작으로 선정하고,표어에서는 <국민건강 수호하는 대한의사협회>를 당선작으로, <환자를 내 몸같이 국민을 가족같이>를 가작으로 선정했다. 휘장 당선작에는 2백만원의 상금이 그리고 표어 당선작에는 50만원의상금이 수여된다."47)


네 번째 휘장은 헤르메스의 지팡이가 기본적인 상징이다. 이것은 초기 공모가 논의될 때부터 “세계 대다수 국가의 의사회 마크는 의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의 의협 심볼은 의신이 빠져 있어 의협의 심볼로적당치 않다”48)라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에휘장에 ‘의신’을 포함시켜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첫 휘장과 비교하여 장두의 태극마크가 없어지는 대신 적십자 배경을 대신하여태극마크가 배경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디자인은 첫 번째 휘장과 기본적인 상징과디자인을 공유하고 있다.


휘장의 조건으로 분명히 ‘의신’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헤르메스의 지팡이’가 기본 상징이 된 것은 분명한 오류로 보인다. 이러한 오류는 첫 번째 휘장의 디자인을 기본으로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이러한 디자인의 ‘회귀’는 과거 역사에 대한 면밀한 검토의 부재, 휘장 선정 과정에서의 충분한 검토 등 관심과 신중함의부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4. 미군정기 미군 의무부대(US MedicalArmy Corp)와의 관련성


현재 대한의사협회 휘장이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사용하게 된 것이 첫 번째 휘장과관련이 있다면, 첫 번째 휘장의 헤르메스지팡이는 어떻게 채택된 것일까?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상징물로 하는 대한의사협회의 휘장은 미군정기 미군 의무부대(US Medical Army Corp)의 상징에 영향을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정의 근거는다음과 같다.


    • 첫째, 첫 휘장이 제정된 1947년은 미군정시기였으며, 이때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의 재편을 주도하고 있던 이들은 미군 의무부대였다. 이들은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그들의 휘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또한 바탕에 적십자를 그 배경으로 삼고, 한글이 아닌 영문 KMA를 휘장에 포함한 것도 당시미군정기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인다.
    • 둘째, 조선의사협회와 미군정은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조선의사협회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건국의사회와 조선의학연구회의 주요사업 중하나가 ‘미군정의 보건행정시행에 관한 자문’49)이었다. 건국의사회의 위원장을 맡았던이용설(李容卨)은 미군정의 보건후생부장을역임하기도 하였으며, 임원이었던 임명재(任明宰), 김성진(金晟鎭) 등도 미8군의 자문관으로 미군정에 참여하였다.50) 조선의학연구회의 임원이었던 조동수(趙東秀)도 미군정 위생국원으로 활동하였다.
    • 최초 휘장의 제정이 이루어진 1947년 초대 대한의학협회 임원진은 심호섭(沈浩燮,회장), 김명선(金鳴善, 부회장), 최상채(崔相彩, 부회장), 최제창(崔濟昌, 상임이사), 백인제(白麟濟, 상임이사), 김성진(상임이사, 서기겸임)이었다.51) 임원 중 김명선은 1932년미국 노스웨스턴(Northwestern University)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52), 최제창은 1935년 버지니아 주립대에서 의학박사를취득하였다. 특히 최제창은 미군정 실시 직후인 1945년 10월 9일 미군정 최초로 위생국원에 임명된 9명의 조선인 중 한 사람일뿐만 아니라 미군정 보건후생부 차장(1945.8-1948)으로 적극적으로 미군정 활동에 참여하였다.53) 54) 김성진 역시 미군정보좌관으로 활동하였다.
    • 셋째, 미군의 영향을 더욱 직접적으로 받은 한국군 의무부대의 상징 역시 미군 의무부대의 상징과 동일하였고, 최근 일부 모형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헤르메스 지팡이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도 미군정기의 영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별히 제2차세계 대전 직후 미군에 의한 군정이 이루어졌던 한국, 일본, 대만의 의무부대들은 현재까지도 모두 미군 의무부대와 동일한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그 기본적인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별히, 일본에서의 아스클레피오스 지팡이의 수용 과정을 연구한 후루카와는 아스클레피오스가 일본에 최초로 소개된 것이1718년 독일 하이스터(Heister) 등이 쓴 외과학책의 1741년 판 네덜란드어 번역본 표지의 그림을 통해서라고 주장하였다.55) 그후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는 1909년 <도규신보(刀圭新報)>의 표지 등에서도 발견된다. 타다(太田)에 따르면 독일 육군 군의부의 영향을 받아 메이지 19년(1886년)에 위생하사관의 견장으로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사용하였고, 메이지 23년(1890년) 신제도로 발족한 군의 지원병과 견습군의의표시로 금색의 뱀 지팡이를 사용하였다고한다. 하지만 이것은 메이지 38년(1905년)복장 개정으로 폐지되었다고 한다.56) 일본의사회는 소화 36년(1961년)부터 절구와 절구공이를 한 마리 뱀으로 도안화한 것을 문장으로 사용하고 있다.57) 이렇게 이미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사용하던 일본임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창설된 일본 자위대의 군의와 군 간호사들은미군 의무부대가 사용하고 있는 헤르메스의지팡이를 그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미군정의 영향으로 보인다.



5. 고찰 및 결론


5.1 헤르메스의 지팡이와 아스클레피오스의지팡이 논쟁


‘두 마리 뱀과 지팡이’로 구성되어 있는상징물이 헤르메스의 지팡이이므로 의학의상징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 첫째,‘두 마리 뱀과 지팡이’는 헤르메스를 상징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것은 수메리아 치료의 신인 '니지쉬지다(Nigishzida, 기원전3000년경)'의 상징,58) 또는 성경에 등장하는모세의 지팡이59)를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 둘째, 헤르메스의 지팡이도 의학의 상징이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헤르메스는 연금술사(alchemy)의 신이기도 하기 때문이며, 또한 헤르메스의 상징을 의학의 상징으로 사용하던 시기 보건활동은 해양 교역과 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때문이라는 것이다.60) 
    • 마지막으로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의학의 상징으로 채택한 것은오류였으나, 이미 오랜 기간 사용되었으므로 현재의 상징으로 유효하다는 것이다.61)


이러한 반론에도 불구하고, ‘두 마리 뱀과지팡이’는 헤르메스를 상징하며 헤르메스의지팡이를 의학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은오류라는 주장이 지배적인 것으로 보인다.세계보건기구, 세계의사회, 미국, 영국, 중국, 일본, 대만 등 주요 국가들의 의사협회에서도 ‘한 마리의 뱀’을 휘장으로 채택하고있다. 더욱이, 대한의사협회가 사용하고 있는 휘장은 그 제정과정을 볼 때 ‘헤르메스의 지팡이’이며 적절하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 

    • 그 이유는 첫째, 첫 휘장의 제정 시에이미 이 상징이 의학의 상징이 아니라 “평화의 심벌인 의신(caduceus)을 배치했다”라고 밝혔다.62) ‘카두세우스(caduceus)’는 그자체가 ‘헤르메스 지팡이’를 의미한다. 
    • 둘째,의사협회는 첫 번째 개정 시 뱀의 수를 두마리에서 한 마리로 수정하였고, 두 번째개정 시에는 관련 디자인 자체를 삭제하였는데, 이는 의사협회가 헤르메스의 지팡이가 협회의 상징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인정하였음을 의미한다.


5.2 대한의사협회 휘장과 상징


대한의사협회 휘장이 헤르메스의 지팡이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든 대한의사협회가 휘장을 통해 나타내려고 했던 상징은‘의료의 존엄성, 박애, 구료, 봉사, 평화(첫번째 휘장)’,63) ‘세계를 향한 의협의 상, 웅대한 비전, 지도적 위치(세 번째 휘장)’64)였던 것으로 보이며, 궁극적으로는 치료의 기술이 뛰어나고 많은 환자들의 존경의 대상이었던 ‘흠 없던 의사 (blameless physician)’,65) 아스클레피오스였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의 산물로서 대한의사협회 휘장이 가지는 상징은 무엇일까? 일부 수정에도 불구하고 미군정 군의의 휘장을 기본 디자인으로 채택하고 있는 대한의사협회의 휘장은한국 의사협회의 역사가 얼마나 과거의 역사, 특별히 미군정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있으며, 여전히 완전하게 그 역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symbol)’이 되고 있다. 그 상징의 역사 속에서는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로 교정하려는 노력과 휘장에 태극마크를포함하고 영문을 지우려는 노력의 역사도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최초 휘장의 형태로돌아간 현재의 대한의사협회 휘장은 휘장선정의 오류와 미군정의 영향을 넘어서려했던 과거의 노력들과 단절되었고, 결정 과정에서 관계자들의 관심과 신중함이 충분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경우에서도,맥쿨로흐(McCulloch)는 미군의무부대의 상징을 ‘헤르메스의 지팡이’로 삼는 오류를 범한 것에 대해 “우리가 이것의 역사적, 인간적 면에 너무나 무관심했다.”고 반성하고있다.66)


5.3 대한의사협회 휘장이 주는 도전적 질문


들대한의사협회 휘장의 역사는 끝나지 않고현재에도 한국 의사 사회에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휘장과 상징은 중요한가?상징은 그저 상징일 뿐 실체가 아니므로 그것의 적절성에 대한 논의의 가치도 그만큼적은 것은 아닌가? 아니면 “우리는 상징들이며, 상징들 속에서 살아간다(We aresymbols, and inhabit symbols)”67)라는 에머슨(Emerson)의 말처럼, 이 세상은 온통상징으로 가득 차 있으며 우리가 지키고 이루려고 하는 것도 그 상징과 밀접한 관계를가지므로 그 상징을 바꿈으로써 세상 또한바뀌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대한의사협회의 휘장은 바꾸어야 하는가? 바꾼다면 어떤 상징을 선택할 것인가? ‘아스클레피오스’를 택할 것인가? ‘헤르메스’를 택할 것인가?아니면 또 다른 상징을 택할 것인가? 만약휘장을 바꾼다면, 해방 후 60년 넘게 그 휘장이 가졌던 상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최근 의료부문의 상업화 경향이 커지고 있고,참여정부도 의료부문을 국가 성장 동력으로서 ‘의료산업화’를 천명하고 있으며 생명공학이 의료부문의 핵심영역으로 자리잡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상인의 신’이자 ‘연금술사의 신’이기도 한 ‘헤르메스’는 오히려적합한 상징일까? 창립 100주년을 준비하고있는 시점에서 대한의사협회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휘장의 역사는 현 휘장의상징이 잘못 선택된 것이라는 사실을 지지한다. 하지만 이것의 교정 여부를 결정하는것은 전적으로 대한의사협회의 몫이다. 분명한 것은,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지 그것은대한의사협회 휘장에 또 하나의 역사를 더하고 그 역사는 또 다른 ‘상징’을 더하게 될것이다.





A History of Korean Medical Association’s Emblem : the Caduceus of Asklepios and Hermes

SHIN Young-Jeon*


An emblem represents the identity of an organization. Through the emblem of an organization, they differentiate the members from others and reinforce the membership, homogeneity, and pride. It is also a tool that an organization officially publicizes its mission and values.


The symbol designed by Cho, Byungduk was announced as the first emblem of Korean Medical Association(KMA) on October 31st 1947. His design work has the caduceus with the Taeguk sign on the top, the symbol of Korea, and the Red Cross in the background including the name, ‘KMA’.


Since then, the emblem was revised three times: in 1964, 1973, and 1995. The current symbol is based on the design of the first one. Although Asklepian, the single serpent-entwined staff of Asklepios, is the one known as the symbol of medicine, this emblem takes the caduceus of Hermes who is the patron god of merchants, thieves, and travelers.


The mistake comes from the unawareness of the distinction between the caduceus of Asklepios and Hermes. Moreover, it proves that U. S. Army Medical Corps(USAMC) heavily influenced the reconstruction of Korean health care system including KMA. The USAMC has used the symbol of caduceus since 1902. In 1947, the year that the first emblem of KMA was established, Southern part of Korea was governed by the United States Military Government(USMG, 1945-1948).


The current emblem of KMA brings up a question whether we should continue to use the symbol that was taken from USMAC in the historical period of USMG governance. Celebrating 100th anniversary year of KMA, KMA needs to re-evaluate the appropriateness of the KMA symbol.


Key Words : Korean Medical Association(KMA), History, Emblem, Symbol, Asklepios, Caduc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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