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ryna, Adriana. “Biological Citizenship: The Science and Politics of Chernobyl-Exposed Populations.” Osiris 19: 250-265.

이 article에서 저자는 체르노빌 사고로 방사능에 노출된 인구집단의 "생물학적 시민권"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사회주의에서 시장 자본주의로 전환해가는 과정에서 조직, 인구, 시민권의 분류 등이 재정리되었다.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피폭자에 대한 이성적-기술적(rational technical)관리는 이 치열한(contested) 과정을 바라보게 해준다. 체르노빌 사건은 과학지식이 무너지고 새로운 지형과 새로운 분류의 권리(entitlement)가 등장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복지에 대한 이전 모델은 정밀하게 정의된 특정 위치의 시민과 그들의 권리의 기반을 만들어주는 어떤 기여를 바탕으로 한다. 여기서는 suffering을 분류하는 것의 모호성이 어떻게 한 국가가 시민권을 구성하고, 비공식 경제를 재구성하는 정치적 바탕을 형성하는가를 살펴본다. 


체르노빌 사건은 1986년 4월 26일에 발생했다. 사건의 공식적 announcement는 사고가 나고 3주가 지나서야 있었다. 사고가 났지만 그 지역으로 모집되어, 또는 자발적으로 일하러 간 근로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충분한 보호시설도, 충분한 임금도 지급되지 않았다. 가정형편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했던 사람들도 많았다. 또한 잠재적 위험에 대한 계산도 (과학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불확실했다. 


체르노빌 사고의 후유증은 우크라이나가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정치,경제,사회적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프리즘과 같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건강과 질병 상태는 정치, 경제적 영역 안에 있으며 눈앞의 신체를 넘어서 연결되게 된다. 이를 질환의 "사회적 경과(social course)"라고 한다. 


ARAC는 피해의 범위는 과학적으로 산출가능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고 증언했으나, 소련의 과학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문제는 국가가 과학적 지식과 무지(nonknowledge)를 활용해서 정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체르노빌은 연구를 위한 장소로서 전례없는 국제적 협력의 장이 되었으나, 오염을 관리하는 측면에서는 계속 내부화(internalize)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이 정해둔 35rem이라는 한계치를 7rem으로 낮췄다. 법에 의한 피해자의 분류에 혼란스러워진 사람들은 각자의 피폭량을 궁금해했다. 


체르노빌에 대한 매일매일의 관료주의적 예시로 인해, 지역의 근로자들, 재정착한 사람들, 과학자들, 의사들, 입법가들 사이의 갈등이 첨예해졌다. 정치 경제적 상황이 변하면서 시민권에 대한 것도 문제가 되었다. 독립을 선언함에 따라 국적을 불문하고 우르라이나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은 보호를 받게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급격한 민주화가 시장의 변화와 동반되어 일어나게 되면서 부상을 당한 사람들이 사회적 멤버십의 근본을 이루게 되었고, 시민권을 요구하였다. 정부는 복지에 약간의 제한을 두는 "생물학적 시민권(biological citizenship)"을 제안하였다. 고통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과학적 지식의 불확정성은 저주이면서도 동시에 협상의 수단이었다. 그들에게 진단은 곧 돈이었다. 


2000년에 저자가 Kyiv에 다시 왔을 때 저자는 정치인들이 체르노빌에 대한 보상을 '실수'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저자는 국가가 이들 체르노빌 희생자들을 대하는 방식은 일종의 그 국가의 도덕적 구조(moral fabric)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병약한 사람들에 대해서 "국가의 기생충"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쓰고 있다. 또한 그 지역에서 탈출한 젊은 사람들은 이들 피해자와 엮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한다.



Biehl, Joao Guilherme. 2004. “The Activist State: Global Pharmaceuticals, AIDS, and Citizenship in Brazil.” Social Text 80 (Vol. 22, No. 3): 105-132.

이 article에서 저자는 브라질의 AIDS 퇴치 프로그램을 다루고 있다. 브라질의 AIDS 프로그램은 예방과 함께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ART)를 병행하는 것으로, 개발도상국의 AIDS문제를 막는 모델로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1992년 World Bank가 $250M을 브라질의 에이즈 프로그램에 투자한 이래 1996년 처음으로 에이즈 증가세가 감소했다는 보고가 나왔고, 1997년 브라질 정부는 국가의 모든 등록된 환자에게 AIDS약제를 공급하게 되었다. 저자는 다음의 요소들이 이러한 성공에 중요한 요소들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1)....(2)....(3)....(4)...(5)...a centralized and business-like management of an AIDS epistemic community; regional AIDS programs and epidemiological monitoring making some AIDS populations legible; activism within the state; a revitalized state-run pharmaceutical sector that was in ruins; a decentralized universal care system facilitating drug distribution; international partnerships and global visibility

이 분석은 정부측, NGO, 주변 그룹, 개인이 이러한 의학적 문제를 해결에 있어 어떤 상호작용을 하였는지에 대한 critical analysis이다. 


AIDS and Democratization : 에이즈는 1980년대에 브라질에 등장했다. 초기에는 국제적, 국가적 지원이 없었고, 풀뿌리운동이나 게이 인권운동가들이 주로 활동했다. 에이즈가 점차 문제로 등장하고 국제적 기금 지원이 들어오면서 에이즈 운동가들은 국가를 훨씬 앞서서 보건기술자, 역학자, 의학자, 사회과학자, 경제학자 등등과 협력하기 시작했다. World Bank는 브라질의 에이즈가 초기도 아니면서 일반화된 것도 아니며, 집중화된 형태였기 때문에 기술적 향상이 가능하다고 보고 지원을 시작했다. 그 이후 ARVS가 등장하였고, 에이즈 운동가들은 National AIDS Program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론을 움직여서 다양한 정당으로부터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나서 에이즈 사망자가 감소하였고, 경제적인 효과도 컸으며, 거의 대부분의 에이즈 환자들이 국가에 등록되었다. 


Pharmaceutical Governance : 대부분의 사회과학 연구는 브라질의 칵테일 혁명을 국가의 사회적 동원의 힘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성공은 지역 활동가이 국제적 기구와 연합하여 특허를 공정한 국제적 교환과 사회적 정의에 대한 정치적 논쟁거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책은 시장이 확장된 것이기도 했다. 현재 브라질은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제약회사의 시장이고, 제약회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파는 가격의 10%로 감염 인구의 30%에게만 공급해도 2004년에 여전히 추가적인 $11.2Billion의 이득을 볼 것이라고 한다. 또한 공중보건의 개념이 clinical care와 예방에서 약제 중심(medicamentation)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제약회사는 지속적인 로비를 통해 약제의 목록이 공식적으로 복지부의 예산에 포함되도록 했다. 


State Science and Activism : 브라질의 Farmanguinhos는 국가의 주요한 제약회사로서 많은 항레트로바이러스약제를 만든다. 이곳의 전임 director였던 Dr.Pinheiro는 여기서 특허 보호아래 있던 두 개의 약을 reverse-engineer했다고 말한다. 또한 단순히 약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분석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한다. 브라질의 복지부는 제네릭 약제의 노하우를 대형 제약회사와 가격 협상에 활용한다. 


여기까지를 종합하면, In sum, at the intersection of technological innovation (the combined antiretroviral therapies), market and state restructuring, and activist invention, the following took form: a new political economy of pharmaceuticals with global and national agencies and particularities, a pilot population through which the state realizes its vision of scientifi cally based and costeffective social action, and mobilized groups articulating a novel concept of biomedical citizenship.60


Technologies of Invisibility : 이 부분에서 저자는 기술과 정치적 개입이 어떻게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만들고 이러한 역학관계가 죽음의 경험, 죽음의 분포, 죽음의 사회적 대표성으로 나타나는지를 보고 있다. 즉, 거리에서 사는 사람이 치료를 꾸준히 받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이러한 상황에 있는 사람의 수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Specialized health care는 감염 초기에 공공기관을 찾아서 자기 자신이 에이즈 환자라고 밝히고, 꾸준히 치료를 자발적으로 받는 사람에게 제공되었다고 말한다. 즉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나 존재감이 미미한 사람들은 나중에 죽을 때가 되서야 공공기관의 눈에 띄이게 되고, 이 때는 '마약중독자' '도둑' '매춘부' 등으로 분류되어 오히려 비난 받게 된다는 것이다. 


Life-Extending Mobilization : 브라질에는 버려진 에이즈 환자들이 선택되어 사회적 갱생을 받을 수 있는 caasah라는 공간이 있다. 현재 이 곳은 이전에는 noncitizen이었던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새로운 정체성을 찾게 해주는 공간이 되었다. 이곳은 Biocommunity로서, 버려진 사람들의 질병이 사회에서 소회되고 치안 유지를 위해서 제거되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포용(inclusion)의 공간이 된다. 


Ticktin, Miriam. “Where Ethics and Politics Meet: The Violence of Humanitarianism in France.” American Ethnologist 33(1): 33-49.

이 article에서 저자는 프랑스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서류를 얻는 최우선 조건이 '질병'이 되어버리게 만든 윤리적 설정(ethical configuration)에 담긴 인도주의(humanitarianism)과 동정심(compassion) 의 역할을 보고자 한다. 저자의 주장은 비록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도덕과 윤리적 필요성에 의하였더라도, 인도주의가 실제 정치적 원칙과 현실에서는 차별적인, 심지어는 폭력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불법 이주민의 문제는, 1996년 300명의 아프리카 이주민이 파리의 성 Bernard 교회로 왔을 때, 이들의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이 국제적 주목을 받게 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프랑스는 global moral leader로서 많은 투자를 해왔는데, 여기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권리(human right)와 인도주의의 구분에 대한 문제이다. 


합법 체류를 신청한 sans papiers들중 여전히 다수가 모든요건을 충족했음에도 서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보통 케이스별로 허가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그 기준이 무척 애매한데, 이러한 애매모호함은 1998년의 새로운 법에 의해서 더 심해졌다. 예컨대 프랑스에 10년 이상 거주했음을 증명해야 하는데, 최대한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살아온 불법이주민의 입장에서 이것을 증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결국 직원의 해석에 따라서 좌지우지된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법에 의해서 가족의 재결합이나 망명도 더 어려워졌다. 합법 체류를 인정받았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이들은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게 된 이후로 일자리를 구하는게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더 이상 'black market'에서 이들을 고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1998년에 개정된 법은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 생명에 치명적일 수 있는 질병이 있는 경우에 이상 본국에서 제대로된 치료를 받기 어렵다면 프랑스에 거주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법의 목적은 프랑스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지만, '생명에 치명적인 병'에 대한 목록도 없고, 그들이 본국에서 어떤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여부도 잘 모른다. 결국 기존 프로세스를 시스템화하려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고 자비심과 동정만 남았다. 또한 illness에 대한 조항(illness clause)는 다른 문제를 낳는데, 한 사람의 질병여부가 국경을 넘을 수 있다면, 왜 빈곤 여부는 불가능하냐는 것이다.


이 조항이 인도주의적이지만 정치적이지 못한(apolitical) 또 다른 이유는 illness visa에 취업 허가를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HIV 또는 만성 질환으로 체류 허가를 받고, 이들이 full-time으로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대부분은 일을 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이름하에, 프랑스는 간접적으로 불법노동시장을 허가하는 것이다. 또한 Didier Fassin은 의학적 이유로 허가를 받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망명자의 수가 감소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또한 sans papiers들은 생명이라는 것이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생명에 관한 새로운 규범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는 스스로를 HIV에 감염시켜서 법적인 인정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에는 성별에 따른 차별도 있는데, 프랑스의 모든 여성은 임신을 하면 HIV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반해서, 남성은 전혀 검사가 강제되지 않는다. 한편 반대편 끝에는 고의로 치료를 거부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법적 지위)을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에 머물 수 있기 위해서는 질병에 걸린 채로 있어야 하고, 그래야 시민권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가지 더 문제가 되는 것은 "biosociality"이다. 즉, 생명이 문화에 따라서만 리모델 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필요에 따라서 리모델된다는 것인데, 여기서는 종양, HIV, polio, 결핵 등의 질병을 가진 사람 - 정치, 사회적으로 부상을 입은 사람 - 이 역설적으로 가장 이동을 잘 할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most mobile). 


결국 이런 문제들을 종합해보면, 어떤 사람이 '시민권자'이거나 '인간'일 수는 있어도 둘 다가 될수는 없게 된다. 인간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인도주의적 조항으로 인해 보호를 받을 수록, 정치적 사회적 권한을 잃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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