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eper-Hughes, Nancy. 1978. “Saints, Scholars, and Schizophrenics: Madness and Badness in Western Ireland.” Medical Anthropology 2(3): 59-93.

이 article에서 저자는 농촌의 아일랜드 사람들에서 특히 정신분열병이 높게 나타나는 현상을 "labeling theory"라는 틀로써 설명한다. 비록 정신과 치료 비율 정보가 특정 질환의 정신질환 유병률을 정확히 대변하지는 않지만, 조금 다른 측면에서 한 국가가 정신보건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의미가 있다. 저자는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이 지역사회의 정의, 진단 경향성의 차이, 치료와 입원에 대한 문화, 역사적 태도 등의 측면에서 이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우선 통계수치를 보면 남성, 미혼에서 유병률이 높고, Protestant보다 Catholic에서 높고, 70세까지는 증가하다가 그 이후에는 감소한다.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미혼 남성에서 높은 현상은 첫 번째 진단 시기가 20대중반에서 30대 후반에 이른다는 점이고, 아일랜드의 농촌에서 지연된 성년기(postponed adulthood)와 이에 따른 정체성 혼란(identity crisis)과 연관이 된다. 

진단의 측면에서 정신분열병에 대한 미국 의사와의 진단 경향의 비교를 보면 아일랜드 의사의 진단 경향과 차이를 보인다. 

아일랜드 정신분열증 환자의 전형적 사례를 보면 여기에 기여하는 사회적 문제를 발견할 수 있는데, 여성의 이민에 따른 의도하지 않은 독신주의, 농촌 인구의 고령화, 대가족의 감소, 농촌에서의 삶과 그 지역의 시설이 활력을 잃어가는 것, 그리고 정상과 비정상 행동을 구분하는 기준이 너무 엄격한 것 등이 있다. 또한 이들이 사용하는 모호한 언행(double-speak) 역시 정신분열병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일랜드 시골의 심각한 인구불균형으로 인해 대부분의 노인들은 혼자 고립되어 가난하게 사는 독신남, 독신녀, 과부 등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인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관이 생겼으며, 이런 보호시설에 보내는 것이 해결책이 되었다. 

아일랜드는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광인(insane)'을 치료하는 일반적 경향을 따랐다. 그 경향의 변화단계는 대개 다섯 개로 나눠진다. (1.Madness Freed and Sanctified, 2.Madness Excluded and Punished, 3.Madness Confined and Moralized, 4.Madness Educated and Rehabilitated, 5.Madness Silenced and Sedated) 아일랜드 의원과 병원을 방문한 미국 정신과의사들은 실질적으로 psychotherapy 등이 전혀 없음에 놀란다. 치료는 주로 신체적 치료(physical therapy)가 강조된다.



Lester, Rebecca. 1995. “Embodied Voices: Women’s Food Asceticism and the Negotiation of Identity.” Ethos 23(2): 187-222.

저자는 이 article에서 중세시대 수녀가 되었던 여성들의 금식과 그와 관련된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들의 금식은 그 시대의 여성의 신체상(body boundaries)와 관련이 있다. 이 시대에 여성은 항상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정의되었다. 또한 여성의 정체성은 필연적으로 신체상의 침범을 수반했다. 가임(fertility, 월경으로 상징되는), 성관계(아내로서의 역할), 임신과 출산, 그리고 모성(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전형화되는) 것이 그것들이다. 여성이 독립하여 자율권을 가지려는 열망은 여성에 대한 사회의 기대와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었다. 또한 이 당시 여성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결혼을 해서 남성의 지배(dominance)아래에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성모마리아에서도 알 수 있듯, 어머니이면서도 동정을 유지하는 것 역시 가톨릭에서 중요한 것이었다. 


중세시대의 여성에게 있어서 교회는 여성상에 대한 기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안전한 피난소였다. 수녀들은 이 곳에서 아주 심한 금식을 하기도 했는데, 이들이 금식을 한 것은 현대 여성들의 금식과는 달리 날씬해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과 하나가 되기 위함(one with God)이었다. (어떤 학자는 그 금식을 "holy anorexia"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위와 같은 의미(금식의 목적)에서 'anorexia'라는 단어는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저자는 이 시대 수녀가 된 한 여성의 모습을 통해 이들의 전형적인 특징을 나열하고 있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1)매우 이른 나이에 종교에 귀의했다는 것, (2)(자매의 죽음 등으로 인해)여성성, 딸로서의 역할이 강조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 (3)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을 계기로 신앙심이 더 강해진 것, (4)결혼을 가지고 부모와 큰 다툼을 벌인 것, (5)Sexuality가 큰 anxiety였다는 것, (6)수녀가 된 이후에도 금욕적인 생활이 더 강해진 것 등이다. 


이 시대에 '여성'은 '음식'에 은유될 수 있었고, '음식'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젖을 먹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신체상의 침범(성관계, 출산)을 모두 보여주는 것이었고, 젖을 먹이는 것 외에도 여성은 여러 'fluid'를 분비하게 된다. 그러나 금식을 함으로써 이들은 '분비'도 하지 않았고, 월경도 멈추었다. 그들의 신체는 순수하고 온전한 것이었다. 또한 금식 상태에서 성체를 받아 먹음으로써, "to eat Christ is to become Christ"를 실현할 수 있었다. 


또한 nursing의 측면에서 이들은 금식을 통해 nursing에 대한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할 수 있었다. Holy woman은 Christ의 nurser이면서, 그에 의해 nursed 되었다. 그녀는 공급자면서 수혜자였으며, Christ가 먹는 음식이면서, 그에게서 나온 음식을 먹는 사람이었다. 


이런 내용들을 바탕으로 '음식'이 왜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여성들은 음식을 통제함으로써 신체상을 통제하였고, 신과의 영적 합일(spiritual union)을 이루었으며, 중세시대 사회에 여성의 자율과 의존에 대한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 


Martin, Emily. 2007. “Introduction.” Bipolar Expeditions: Mania and Depression in American Culture.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pp. 1-33.

이 article에서 저자는 미국의 Manic depression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미국 문화는 조증행동(manic behavior)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을 "productivity"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조증행동에서 나오는 높은 수준의 에너지는 기업가, CEO, 연예인 등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라고 본다. 

Rational and Irrational : 어떤 사람에게 조울증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합리성'에 대한 의심을 품게 한다. 그러나 과연 일반적인 사람은 전적으로 '이성적'인가 하는 점에서 딜레마가 생긴다. 사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조울증이라는 진단 아래서 살아가기(living under the description of manic depression)"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두 가지 사회적 사실(social fact)을 보여주는데 하나는 그들이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 진단은 그 사람을 묘사하는 여러가지 중 하나라는 것이다. 

Brains and Genes : 서구 문화에서는 정신적 병(malady)이 있다는 것보다 신체적 병이 있다는 것이 훨씬 더 타당성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이래로 사람들은 조울증이 "뇌의 병"이라는 근거가 나올때마다 이를 반긴다. 이는 '신체적 병은 치료될 수 있다'라는 믿음 때문이면서, 또한 보험, 장애수당(disability payment), 보상청구권(compensation claim) 등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The Drug Factor : 일반적으로 기분장애(mood disorder)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데, 이와 관련해서 봐야 할 것이 항우울제, 항정신병약물 등의 처방이 증가하는 속도이다. 또한 이들 제약회사들은 민족지학자들을 고용하여 문화마다 질병의 뉘앙스를 연구하고, 단어를 대체하여 질병에 대한 개념을 바꿔놓는다. 새로운 약들은 정신질환에 대한 분류를 바꾸어놓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원래는 '비이성적'인 것으로 분류된 '조증'을 창의력, 생산성, 이윤의 향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A Short History of Manic Depression : 조울증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역사의 변화, 정신의학의 발전, 이를 둘러싼 사회(TV show, 언론 등)의 변화 등을 간략히 요약하고 있다. 1990년에는 manic depression을 bipolar disorder이라는 단어가 대체하게 되었다. 



Ozawa-de Silva, Chikako. 2008. “Too Lonely to Die Alone: Internet Suicide Pacts and Existential Suffering in Japan.” Culture, Medicine and Psychiatry 32: 516-551.

이 article에서 저자는 일본의 집단자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자살, 특히 젊은층이 인터넷 자살모임 사이트를 통한 집단 자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자살과 관련한 웹사이트에 대한 민족지적 연구를 보면, 젊은 층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존재에 관한 고뇌(existential suffering)을 알 수 있으나, 이런 고뇌가 정신질환의 카테고리에 포함된다고는 할 수 없다. 이들은 혼자 죽기를 두려워하는(too afraid to die alone) 특성이 있으며,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죽고자 하는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개개인의 고뇌(suffering)에 대한 인류학의 최근 연구로 덕에 agency와 structure의 이분법에 대해서 좀 더 정교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아(selfhood)와 내세(afterlife)와 연관지어서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Ikigai(worth of living, 삶의 가치)를 찾지 못하는 자살 웹페이지 방문자들과 그들이 치유로서 자살을 보는 관점을 고려할 때 사회적 고뇌에 대한 연구는 '의미'와 '의미의 상실'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또한 자기 자신과 모든 것들에 관계가 있다고 보는 일본인들의 개념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살 역시 한 사람이 자신의 자율권을 주자하는 것이라고 보는 일본인들의 일반적인 관점과 달리, 동반자살(suicide pacts)는 개개인들의 자신의 결정권을 집단의 결정에 굴복하여 포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자살은 ikigai의 상실, 심한 존재론적 고뇌, 심한 외로움, 다른 사람과의 소통부재 등의 특징을 지니지만, 일본의 대중매체는 이러한 자살에 대해서 동정하기보다는 부책임하고, 생각없는 행동으로 묘사하곤 한다. 


자살과 관련된 정신질환 문제를 경제 문제와 연관짓는 학자도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기대, 열망, ikigai를 포괄하는 사회적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살과 관련한 최근 몇 가지 사회적 변화를 살펴보면, 우선 제약회사에서는 정신질환을 '마음의 감기'라고 묘사하기 시작했으며, 인터넷 사용이 크게 증가했고, 이와 더불어 '히키코모리'가 등장했으며, 이지매와 입시 지옥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shinjyu(심중, 心中)은 동반자살을 하기로 한 사람들의 모임을 뜻한다. 여기에는 부모-자식의 동반자살, 가족의 동반자살 등이 포함되나 일본에서 이를 '비극적 사건(자살)'으로 보는 반면, 서양에서는 '개탄스러운 살인'으로 본다. 또한 일본에서 홀로 자살한다는 것은 남은 가족에게는 낙인이 되는 반면, 집단 자살이 대해 다른사람과의 소통과 연결을 찾는 사람들의 슬픔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인터넷 집단자살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나, 그 전부터도 집단자살 이라는 것은 존재해왔다. 집단자살과 관련된 웹사이트가 아이들에게 해로울 수 있다는 우려가 있으며, 아이가 아니더라도 '자살을 생각해본 적은 있으나 어떻게 해야할지 불확실한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웹사이트의 글에는 '의미가 없다',' 외롭다' 등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외롭다'에 대해서는 내적 갈등도 관찰된다. 외롭지만,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은 불편하다는 것이다. 또한 내세(afterlife)에 대한 관점도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ikigai의 측면에서, 개개인들이 뚜렷한 ikigai를 느끼기 힘든 문화적 환경이 전통적 가족관의 상실, 가족의 구조 변화, 사회적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실패감과 맞물리면서 깊은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ikigai의 문제는 adolescent가 길어지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젊은 사람들은 학생 때는 입시에만 집중하다가, 졸업 후에도 부모의 집에 얹혀 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회적 의무감이 더 강해지는 adulthood에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1990년대 중반, 일본에는 힐링 붐이 일었다. 이는 그 당시 급격하게 자살이 증가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많은 서양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살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것으로서, 매우 가까운 사람이나 가족들만 공유하는 것이지 모르는 사람과 같이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집단자살을 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다른 사람과 자살을 한다는 것은 '신뢰'가 필요한데, 그들은 기존의 관계속에서 신뢰를 찾지 못하고 있으며, Friend-Enemy-Stranger의 세 관계에서 Stranger는 자살동반자로서 나머지 둘이 가진 문제에서 자유롭다. 


또한 자살 웹사이트는 이들이 외로움(loneliness)을 표출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장소이다. 그럼으로써 이들은 개개인의 외로움을 공유된 외로움으로, 고장난 외로움을 유익한 외로움으로 전환시킬 수 있고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자신을 더 들여다보고 성장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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