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사의 역사적 정체성 형성 (KMER, 2021)
The Formation of the Historical Identity of Korean Doctors
여인석
In-sok Yeo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의사학과
Division of Medical History, Department of Humanities and Social Medicine, Yonsei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Seoul, Korea

 

 

서 론

최근 coronavirus disease 2019 유행 상황에서 의료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불거진 몇 가지 정책적이슈들에 대한 의사들의 반발은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구체적으로는 의사들의 파업에 대한 비난이었다. 핵심은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이 자기 직종의 이익을 위해 환자 곁을 떠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회가 바라보는, 혹은 기대하는 의사와 의사 스스로가 생각하는 의사 사이에 생기는 간극에서 유래하는 갈등이다. 이러한 갈등은 2000년대 초에 있었던 의약분업사태에서도 분출되었다. 의사는 무엇이며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이 질문을 다시금 진지하게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의사 개인의 윤리적 일탈행위나 혹은 의사 파업과 같은 집단적행위가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 어김없이 등장하는 수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정신과 의학교육에서 인성교육 강화의 필요성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 두 가지 요청은 성격이 다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사의 직업윤리에 관한 내용이고, 인성교육에 대한 요구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착한 심성을 가진 의사를 만들어야한다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착한 사람을 만든다는 것은 성선설과성악설의 역사 깊은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전문지식을 배우는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 인성교육을 하는 것이 시기적으로 적절한가의문제와 함께 그것이 달성 가능한 현실적인 목표인가에 대한 의문도 불러일으킨다.

교육을 통한 달성 가능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착한 심성의 함양보다는 직업적 윤리의식의 함양이 실현 가능성이 더욱 높은 목표라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직업적 윤리의식은 어떻게 함양될 수 있을까?그것은 의사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당위성의 강조나 주입만으로는이루어지기 어렵다. 투철한 직업윤리는 직업정체성에 대한 투철한인식에서 나온다. 따라서 의사라는 전문직의 직업윤리 교육은 전문직정체성 형성에 관한 교육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여기서 다시 직업적 정체성 형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다만 여기서 혼란을 피하기 위해 개념적으로 구별해둘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전문직의 직업적 정체성 형성은 개인에 초점을 맞춰한 개인이 교육과 수련, 그리고 직업활동의 경험을 통해 전문직업인으로서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말한다. 즉 한 개인이 기존의 전문가 집단에 자신을 동일시해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이 글에서 말하는 역사적 정체성 형성이란 역사적 과정을통해 형성된 의료직의 집단적 자기의식을 말하며, 이 집단적 자기의식이 역사적 과정을 통해 변화를 거치며 형성되어왔다는 것이다.

어떤 대상의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것은 그가 가진 개인적 집단적 경험의 총체로부터 형성된다. 달리 말해 오늘날 그를만든 역사적 경험이 그의 정체성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한 개인의 정체성은 출생 이후 그의 개인사적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마찬가지로 의사의 정체성 또한 이 직업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고할 수 있다. 그런데 개인으로서의 의사는 의사라는 직업의 역사적변천과정을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의사란 직종의역사적 형성과정에 대한 이해를 통해 간접적인 방식으로 정체성형성에 관여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한국사에 대한 이해를 통해 형성될 수 있는 것과 같다. 요컨대 의사라는 직업적 정체성은 의사라는 직업의 역사적 형성과정을 이해함으로써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자신에 대한 자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 속에 나타나는 의료인의 모습을 통해 의사는 무엇이며,또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생각한다.

한국 전근대사회 치료자의 정체성

1. 사제적 정체성

의사라는 용어에는 일반적 의미와 특수한 의미가 공존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질병을 치료해주는 사람을 포괄적으로 의사라고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특수한 의미로 사용하는 의사라는 말은역사적 용어로서 제한적 의미를 그 안에 담고 있다. 그것은 치료에 종사하는 많은 의료직 가운데 의료법이 규정하는 특정 직종을 지칭하는 법률적 용어이기도 하다. 오늘 한국사회에서 사용하는 의사라는 말에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가가 발급한 면허를 가진 사람,나아가서는 큰 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거치는 수련 경험을 쌓은사람 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달리 말해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일을 하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 가운데 법률이 요구하는 특정한 자격을 충족하여 국가가 부여하는 자격증을 가진 사람을 현대 한국사회에서 의사라고 부른다. 여기서 치료하는 기능은 시대에 무관하게일반적인 것이지만, 요구되는 자격은 근대 이후 서구사회가 만들어온 역사적이고 특수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격에 대한 요구가 존재하지 않았던 고대사회에서 활동했던 사람을 의사라고 부르기에는 적절치 않고, 다만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치료자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여겨진다[1].

자격과는 무관하게 현대 한국사회에도 치료에 종사하는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 것과 같이 고대사회에도 많은 종류의 치료자가 있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사회에서는 특히 종교적 치료자들의 비중이 컸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적 치료자란 샤머니즘적 치료자와 새롭게 중국에서 유입된 불교의 사제인 승려를 들수 있다. 실제로 삼국유사 삼국사기에는 승려들이 치료활동을 수행하는 기사들이 다수 기록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전통적인 주술적 치료자와 치료승이 일종의 경쟁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모습도이들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2].

환자에 대한 치유가 종교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은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의 많은 치유 기사와 석가모니가 대의왕(大醫王)으로 불렸음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종교적인 치유는 단순히고대사회에만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첨단의과학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종교적 치유행위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행해지고 있다. 치유는 인간을 육체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회복시킨다는 함의도 갖고 있다. 따라서 종교적 색채가 없는 현대의학적 치료라할지라도 그것을 단순히 기계적 수리로 보지 않는다면 치유행위에 종교적 차원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대사회에서 사제들이 수행했던 치유행위의 종교적 차원을 오늘날의 세속적 치료자들도 여전히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의료인은 ‘사제적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말한다면 오늘날의 의사는 사제적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의사의 치료행위가 단순히 고장난 기계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 의사가 치료하는 환자를 기계로 보지 않는다면, 자신의 치료행위가 환자에게 가지는 전인적차원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사제적 정체성은 적극적으로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치료를 특정 종교와 연결시키라는의미가 아니라 의학적 치료 자체가 가지는 전인적 의미를 회복할필요가 있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2. 관료적 정체성

동아시아 전근대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동시대의 서구사회에 비해 관료제가 발달한 점이다. 이러한 점은 의료인의 사회적 존재방식에도 영향을 미쳐 의료를 담당하는 관료가 중국에서는 춘추시대에,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다. 관료제는 한국사를 통해 점차 정비되고 확대되었으므로, 조선에 이르면 중앙정부에 의료를 담당하는 조직이 상당히 분화된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시험을 통해 우수한 의료인력을 선발하고 이들을 의료관료로 활용했다. 한편에서는 이러한 시험을 오늘날의 의사국가고시의 선구적 형태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시험을 본다는 사실은 동일하지만시험의 성격과 목적이 다르므로 이를 동일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의사국가고시는 자격시험이다. 따라서 이에 통과하지 못하면 의료인의 자격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므로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반면, 조선시대의 시험은 선발시험으로 정부가 필요로 하는 분야의우수한 인재를 뽑기 위한 관료 선발시험이었다[3]. 조선사회에서 시험을 통해 고급관료가 되는 것은 입신양명의 대명사로 누구나 선망하는 것이었고, 의료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험에 합격해 관료가되는 것이 명예로운 일이기는 했으나 시험의 합격 여부와 의료활동의 가능 여부는 무관했다.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전근대의의료인과 근대의 의료인이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국가에 의한자격부여이다. 전근대사회에서는 본인의 능력과 의사만 있으면 누구나 의료활동을 할 수 있었지만, 근대국가에서는 국가가 부여하는자격을 획득하지 못하면 의료활동을 할 수 없다. 이러한 결정적차이는 의사의 정체성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관료로서의 의료인에 대한 논의를 조금 더 확장해보자. 조선시대의 관료로 활동할 수 있었던 의료인은 전체 의료인 중에서 아주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전체 의료인의 관료화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가깝게는 과거 사회주의 국가의 의료인들이 국가에 소속된 공무원으로 일한 사례가 있다. 멀리는 고대이집트에서 의료인은 신전 소속이었다[4]. 고대 이집트는 제정일치사회로 종교조직이 곧 정치조직이었으므로 이는 곧 관료에 해당한다. 반면, 고대 그리스의 의사는 자유직으로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편력의가 일반적인 형태였다[5]. [관료로서의 의료인]과 [자유직으로서의 의료인]이라는 의료인의 두 가지 대표적인 사회적 존재 형태가 이미 고대사회에서부터 존재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존재 양태의 차이는 의료인으로서 정체성 형성에도 큰 영향을미친다. 의사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라는 본질적 특성을가진다. 그러나 의사가 어떤 사회적 입장에서 의료행위를 수행하는가는 의료를 시술하는 의사의 태도뿐 아니라 의사의 정체성에도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의료인의 정체성 형성에 대한논의를 위해서는 의료인이 어떤 사회적 입장에서 의료활동을 하는가도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유의(儒醫)적 정체성

유의(儒醫)란 유학자로서 유교적 교양만이 아니라 의학에 대한지식도 갖추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지식인을 말한다. 유학자가 의학을 공부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중국 송대(宋代)의 과거제 실시와 관련이 있다. 송나라는 불교와 도교가 번성했던 이전의 당나라와는 달리 유교적 이념에 근거한 국가 건설을 목표로 했다.이를 위해 과거제를 실시하여 유교적 교양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여국가를 운영하는 관료로 활용하였다. 그런데 과거로 선발할 수 인원은 소수에 그쳤으므로, 과거를 위해 유교적 교양을 쌓았던 많은지식인은 특별한 직업이 없이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이들 중 차선책으로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송대의 재상 범중엄(范仲淹,989–1052)의 유명한 말 “좋은 재상이 될 수 없으면 좋은 의사가되겠다”는 말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다[6]. 중국에서도 의료인의 사회적 지위는 높지 않았기 때문에 학문적 소양을 갖춘 인재들이의업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과거제 시행이라는 사회적 변화와 함께 유교적 교양을 갖춘 지식인들이 대거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중국의학사에서 송대는 획기적 의학발전이 이루어진 시기로 기록되고 있다. 의술은 백성을 구제하는 지식과 기술이므로 유교적 이념을 사회적으로 펼치는 데 적합한 분야이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에서도 유학자가 의학을 공부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마과회통(麻科會通)’과 같은 홍역 전문 의서를직접 편찬했던 정약용이 대표적 유의일 것이다. 호학(好學)의 군주였던 정조도 할아버지 영조의 치료방법을 두고 내의원 의관들과 토론을 벌일 정도로 의학에 조예가 깊었고, 스스로 의서를 편찬하기도했던 유의였다. 그런데 유의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비직업적 의료행위자이자 무자격 의료행위자로 사회적인 비판의 대상이 될수 있으나, 의료에 대한 접근성이 좋지 않았던 조선사회에서는 오히려 유의의 활동이 장려되는 측면이 있었다[7]. 특히 효가 강조된조선의 유교사회에서 부모님의 건강을 보살펴드리기 위해 자식으로서 의학지식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었다.

비직업적인 유의의 시술은 영리나 의료에 대한 금전적 반대급부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의식에서 나온 의료활동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조선은 요즘처럼 전문적 의료인을 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의료인이 많은 사회가아니었다. 또 의료인은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았으므로 요즘처럼우수한 인재들이 몰리는 직업도 아니었다. 이처럼 사회가 필요로하는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인력이 양과 질에서 턱없이 부족한조선사회에서 그 공백을 줄이는 데 기여한 것이 유의라고 할 수있다. 글을 아는 지식인이 유교적 교양만이 아니라 책을 통해 의학적지식까지 습득하여 의료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에게도움을 주는 것은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의식에서 나온 것이라 할수 있다.

유의의 의료활동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무자격자의 비전문적 의료시술이라고만 평가한다면 의사의 정체성 형성과 관련해 참고할내용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유의의 활동을 영리 목적이나 금전적 반대급부를 기대하지 않고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의식에서유래하는 이타적 의료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현대사회의 대표적 전문직 지식인으로서 의사가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의식의 중요한 측면을 조선시대 유의를 통해서 재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근대적 의료인의 등장

일반적으로 한국사에서 근대적 의료인이란 1876년 개항 이후서양의학 교육을 받은 의료인을 말한다. 서양의학의 교육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비록 결실을 맺지 못했으나 1886년부터 제중원에서는 학생을 선발하여 의학교육을 실시하였고, 에비슨은 1895년부터 의학교육을 시작하였다[8]. 그런데 근대적 의료인과 전근대적 의료인의 차이는 그들이 습득한 의학지식의 내용만이 아니라 제도적 차원에서 국가에 의한 공인과 의료행위에 대한 배타적 권리 부여가 핵심이다. 국가가 자격을 부여하는 사람만이 의료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근대적 개념으로 전근대의 한국사회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개념이었다. 의료인에 대한 이러한 근대적 개념이우리 사회에 들어오고 자리를 잡은 것은 백여 년 남짓에 불과하다. 이러한 개념이 사회적으로 제도화된 것은 1900년에 공포된 ‘의사규칙(醫士規則)’을 통해서이다.

이 규칙은 한국의 역사상 최초로 의사의 정의를 법률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의사규칙의 제1조는 “醫士는 의술을 慣熟하여 天地運氣와 脈候診察과 內外景과 大小方과 藥品溫凉과鍼灸補瀉를 통달하여 對症投劑하는 자(제1조)로 규정한다. 내용적으로는 한의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제2조에서는 의과대학과 약학과를 졸업하고 국가가 주관하는 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의사로 규정하며, 그 외의 사람들이 의료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1조는당시 실제로 활동하고 있던 전통의료인을 지칭한 것이라면 제2조는아직 국내에서 배출되지는 않았으나 앞으로 배출될 미래의 의사를염두에 둔 조항이라 할 수 있다. 의사규칙에서 전통의료인과 근대의학을 공부한 의료인을 모두 같은 용어,  의사(醫士)로 지칭하고있는 것은 당시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의사의 한자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醫師’가 아니라 ‘醫士’임이 눈에 띈다. ‘醫士’가 아닌 ‘醫師’가 근대적 의료인을 지칭하는공식적인 용어로 쓰인 것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이다. 1913년에총독부가 공포한 의사규칙(醫師規則)이 이를 공식화한 것이다. 그러나 의사(醫師)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만든 용어는 아니다. 의사(醫師)는 고대 중국의 주나라와 당나라,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의료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직의 명칭으로 쓰였다(高麗史77, 百官志, 外職). 조선왕조실록에도 조선전기(태조성종) 7회의 사용례가 나타나고 있는데, 대개 중앙의 의료 관련 관직에 있는의원을 지칭할 때 쓰고 있다. 또 영, 정조 시대에도 2회의 사용례가있다. 한편, 醫士는 청나라 태의원에서 일하는 의관의 명칭이었다.우리나라에서는 특별히 관직명으로 사용된 적은 없다. 다만 왕조실록에서는 조선전기에 중앙의 의료 관련 관직에 있는 의원을 지칭하는 말로 醫師와 혼용되어 쓰였는데, 숙종 이후에는 醫士의 사용례가 없다. 1900년에 반포된 의사규칙에서 醫師를 쓰지 않고 醫士를쓴 것이 한국의 전통을 반영한 용어의 선택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9], 고려나 조선에서도 醫師란 용어를 쓴 용례들이 있는 것으로보아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명칭이야 어떠하든 중요한 것은 대한제국 이래 국가가 의료행위의 배타적 권리를 면허를 통해 의사에게 보장해주었다는 사실이다. 국가가 허가한 사람만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뿐아니라 동아시아 전통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개념이었다. 면허제도를 통해 소수의 허가받은 사람만이 의료행위에 종사할 수 있게된 상황은 의사가 전문직으로 자리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에 따라 의사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조선시대의 의료인은 사회적 신분이 높지 않은 중인 계층이었다. 이는 과학기술을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유래했으며, 그에 따라 특정 기술분야 전문가의 사회적 지위가 유교적 교양을 갖춘 보편적 지식인보다 낮은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유교적 보편교양이 전문적 기술지식보다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에도 원인이 있지만, 의료행위에 진입장벽이 없다는 것, 다시 말해 누구나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중요한 원인이다.

조금 맥락은 다르지만 19세기 미국에서 의학교육기관이 난립하여, 사실상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의사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플렉스너 보고서를 통해 이들 교육기관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이를 토대로 의학교육에 대한 질적 요구수준이 높아졌다[10]. 그에 따라 난립하던 부실한 의학교육기관들은 정리가 되고, 일정한 수준 이상의 충실한 의학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기관만이살아남았다. 이는 달리 말하면 의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진입장벽이높아졌으며, 따라서 배출되는 의사의 수도 제한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배타적 질 관리를 통해 의사들의 사회적 지위도 이전에 비해높아졌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11].

20세기 이후 한국사회에 도입된 의사면허제도는 근대적 의료제도 도입의 한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허락된 사람만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전통사회에서는존재하지 않던 관행이었다. 반면, 서양에서는 국가가 의료행위자에 대한 면허를 공식적으로 부여한 것은 19세기 근대국가의 성립 이후이지만, 그 이전에도 지방 권력에 의해서나 혹은 길드적 전통에따라 배타적 의료행위에 대한 허가의 오랜 역사가 있었다. 아울러의사는 의료시장에서 여러 관련 직종들과 경쟁을 하며 의료시장내에서 배타적 영역을 확보해 나갔다. 서구사회에서 의사직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의사직의 직업적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이러한 정체성은 오랜기간에 걸쳐 사회와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형성된 것으로, 거기에는 배타적 의료행위의 허가라는 특권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의식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비해 한국사회의 의사는 의료행위의 배타적 허가라는 특권이 근대화의 과정에서 위로부터 갑자기 주어졌다. 다시 말해 법률에 의해 배타적 의료행위의 권리를 가진 의사라는 전문직이 새롭게창조된 것이다. 이는 이미 존재하던 사회적 관행을 법률로 공식화하는 과정이 아니라, 법률적 규정을 통해 과거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사회적 관행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서구사회에서 면허의사의 등장이 전자의 과정에 해당한다면, 한국사회에서 면허의사의 등장은 후자에 해당한다. 한국사회의 의사는 전문직으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역사적 경험의 부재 속에 등장했다. 물론 한국사회에 근대적 의사가 등장한 이후 100여 년간 쌓아온역사적 경험은 서구사회에 비해 일천하지만 중요한 자산이다. 지난100여 년간의 역사적 경험이 오늘날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의사의정체성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난 역사적 경험에 대한비판적 성찰을 통해 한국사회가 요청하는 바람직한 의사의 모습을만들어가는 것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의사가 당면한 과제라 할 수있다.

결 론

의사는 현대사회의 대표적인 전문직이다. 전문직이란 달리 표현하면 진입장벽이 높은 직업을 말한다. 의사의 경우 장기간의 교육과수련, 그리고 면허와 같은 것들이 누구나 의료행위를 할 수 없게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주로 근대 이후 생겨난 이러한 외형적특성은 의사의 직업적 정체성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다른 한편 내용적으로 보았을 때 의사의 정체성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치료자로서의 정체성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의사는 [치료자]라는 보편적 정체성이 진입장벽이 높은 [전문직]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정체성과 결합된 결과이다. 위에서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치료자의보편적 정체성은 상이한 사회적  역사적 조건과 결합하여 다양한방식으로 나타난다. 과거 한국의 역사 속에서 치료자가 가졌던 여러가지 전근대적 면모들은 근대적 의료인의 출현과 함께 사라지는것은 아니다. 전근대사회에서 치료자가 가졌던 여러 정체성 가운데의사의 활동과 역할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 부분들도 있다고보인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의사에 대해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을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는 의료라는 행위의 특성에서 유래하는 부분도 있지만, 전문직으로서 강한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다. 전문직의 직업윤리 함양은 단순히 당위적인 덕목의 부과, 이상적인 의사상의 제시, 혹은 현실성이 적은 인성교육의 강조 등으로 이루어지기어렵다. 투철한 직업윤리는 직업적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자각에서 유래한다. 의사의 전문직 정체성 형성과 이에 대한 자각을 위해서는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며, 다양한 내용과 방법이 교육에 활용될 수있을 것이다. 다만 어떤 대상의 정체성은 역사적 경험의 과정 속에서형성된다는 점에서 의사직의 역사적 형성과정에 대한 내용이 교육의중요한 부분으로 포함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In modern society, doctors are a representative example of professionals—that is, doctors are members of an occupation with high barriers to entry. For doctors, long-term education, training, and licensing are factors that make it difficult to enter medical practice. These external characteristics, which have mainly arisen in the modern era, play an important part in the professional identity of doctors. Nonetheless, the core of the doctor’s identity is the identity of the healer. In today’s Korean society, the universal identity of doctors as healers results from a combination of the special historical identity of professionals with high entry barriers. Korean society currently demands a high level of ethical awareness from doctors. These demands are partly derived from the nature of the practice of medical care, but they also reflect demands for strong social responsibility as professionals. It is difficult to cultivate professional ethics simply by imposing legitimate virtues, presenting an ideal model, or emphasizing moral education that is not fully realistic. A deep-rooted sense of professional ethics stems from a clear awareness of professional identity. Education plays an important role in the formation and awareness of doctors’ professional identity, and various types of content and methods can be used in education. However, since the identity of an entity is formed through the process of historical experience, it is thought that the historical process of the formation of doctors as a profession should be included as an important part of education.

 

Keywords: Confucian doctors, Healer, License, Profession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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