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18. A Second Revolutionary Period
    • 20세기가 끝날 무렵 미국 의학교육의 번째 개혁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임상 교육의 환경이 쇠퇴하고 faculty scholarship 사라지고 proprietary system 다시 등장했다. 의과대학들은 대학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 혁명에 관한 연구들을 보면, 1990년대는 "혁명전시대(prerevolutionary age)"라고 불려야 것이다. Prerevolution 급진적인 변화가 바로 앞에 있지만 아직 어떤 변화가 실제로 나타날지 까지는 불확실하다. (이와 비교하여, "Flexnerian revolution" advanced revolutionary stage라고 불릴 하다)
    • 직업군 내부에서 일어난 번째 혁명과 달리 번째 혁명 직후에 벌어진 일들은 의학교육 외부적인 것들이 많다. 비용 절감을 위한 전략이 도입되었고, 시장(market) 가격을 낮출 것을 요구했다. AHC 이러한 환경에 제대로 준비되어있지 않았다.
    • 그러나 번째 혁명도 academic medicine 내부의 환경에서 시작된 것이기도 했다. 세대동안 진료 수입에 과도하게 의지해왔고, 이러한 풍요로운 환경을 잔뜩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자원 통제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상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질 없게 되었다.
    • 1990년대의 의학교육과 진료에 생긴 변화는 전부터 오랫동안 지속되어 문제들에 대해 이제야 대응한 것이라고 있고, 많은 의학교육자들과 의사들은 이러한 모습을 반길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미국 의학교육의 변화는 세기를 지켜온 가지 원칙만 지켜지면 된다. 바로 좋은 의사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회와 medical faculty 공동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21세기에 대한 희망은, 양측이 각자의 책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 The Reemergence of a Proprietary System
    • 1990년대 후반, 병원과 의과 대학에 대한 비용 절감 정책이 어떠한 결과를 야기할 것인가는 아직 불분명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여러 걱정은 현실화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academic institution들은 살아남았다.
    • 21세기가 도래하면서 미국 의과대학들은 급속히 전혀 다른 종류의 기관이 되어갔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clinical enterprise 팽창이었다.
      • 1990년대 후반, full-time faculty 의한 private practice 10년이나 15 전에는 상상도 못할 만큼 작아져 있었다.
    • Faculty practice 지속적인 증가로 인해 좋은 점도 많았다. 진료 수입이 지속적으로 늘었고, 환자의 priority medical center priority 되었다. 보험 회사들은 각각의 또는 division 상대로 협상을 하는 대신, 학교 병원 전체를 커다란 하나의 기관으로 해서 협상을 하게 되었다.
    • 반면 faculty practice 증가하는 것은 managed care 하에서 대부분의 의과대학의 악화된 재정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Profit margin 감소하면서 점차 academic mission 위해 투자할 돈이 없어져갔다. 의과대학은 마치 끝없이 빨라지는 treadmill위에 있는 것과 같았다
    • 결과로 의과대학 내의 academic 분위기는 거의 사라졌다. 대부분의 clinical faculty 이제 주로 환자 진료만을 했으며, 연구를 하거나 교육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 (1)학문적 분위기가 사라지는 것을 보여주는 가지 징표는 research level 감소한 것이다. 연구를 cross-subsidy 해주던 임상 수입의 감소가 직접적 원인이었는데, 모든 종류의 연구가 약화되는 가운데서도 특히 clinical research (basic knowledge practical application으로 translation시키는 연구) 약화되었다.
    • 1990년대 후반, 의학 연구 분야의 커리어는 점차 어려워졌으며, 이미 자리를 잡은 연구자들마저도 좌절과 불확실함과 불안정성을 걱정해야 했다.
      • 1985년부터 1993년까지 NIH grant application 하는 36 이하 연구자들은 3040에서 1389 감소했다.
    • (2) 번째 징조는 scholarly faculty clinical faculty 전환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의과대학에서는 investigator-teacher clinician teacher track 있었다. 이제 많은 학교에서 진료만을 하는 의사를 고용하기 시작했고, 기존의 faculty "hired hands rather than true faculty"라며 평가절하했다.
      • medical scholar 대다수였던 Clinical department 점차 연구나 교육의 의무가 없는 practitioner 대체되고 있었다.
    • 새로운 faculty뿐만 아니라 기존의 faculty scholarly activity에서 clinical activity 중심을 옮겨가고 있었다.
      • AAMC 1996 모든 학교에 적용가능한 clinical productivity 지표를 개발하려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 급여 산출 방식(pay plan) 구체적인 사항들(salary level, base pay …) 학교마다 달랐다.
      • 그러나 구체적 산출 공식에 교육적 "productivity" 넣는 학교는 매우 소수에 불과했다.
      • 얼마나 수입을 벌어들였느냐가 가장 중요했고, 진료의 질도 별로 고려하지 않았다.
      • 도시의 부속병원에 GS NS 의사들이 설령 죽어가는 가난한 사람을 훌륭한 수술로서 살려냈다고 해도 그다지 국가적 인정을 받거나 분야의 리더가 되지는 않았다.
    • Academic medicine 그들의 business consultant들에게 이러한 방법은 합리적인 것이었다. 교육이나 연구는 비용만 늘릴 뿐이었다. 아무도 그것이 productivity 적절한 기준인가에 의문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미래를 고려하지 않는 회사나 다른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지속가능한 설계(built to last)" 하지 않았다.
    • 새로운 시스템이 미친 영향을 종합적으로 보면 clinical faculty 기존의 university work보다는 patient care 하는 쪽으로 많은 노력을 쏟았다.
      • "우리는 도무지 교육을 하면서 동시에 진료를 통해 봉급을 있는 방법을 모르겠다"
      • 일부 학교들은 예전의 proprietary school 닮아가고 있었는데, faculty 기본적으로 환자를 보면서 교육은 그때 그때 되는대로 했다.
    • 어떤 의과대학도 "proprietarization" process 버텨내지 못했다.
      • 매우 소수의 scholarly faculty만이 교육을 하면서 예전의 medical professor 같은 모습을 지켜냈다.
    • Washington University에서…
      • Radiology department 받는 판독료가 줄어들자, 과에서는 교수들이 다른 학생들을 교육하도록 배정된 시간을 줄여주었다.
      • 안과에서는 명의 유명한 senior 교수들에게 보드 시험 문제 출제를 하는데 사용된 10% 시간에 대한 월급을 지불하지 않았다.
      • Radiology에서 senior professor national oncology commission 참석하는데 필요한 25% salary 지급하지 않았다.
      • 일부 임상 과들은 "productive"하게 보일 것을 우려하는 faculty들로 하여금 교육 업무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 (3) 번째 sign 의과대학 학생들과 HO들에게 주어진 학습 환경이 악화되는 것이었다. 질문과 발견(inquiry and discovery) 원칙이 침범당했다.
      • 대부분의 의과대학 행정가들은 진료의 1원칙이 "속도" 되어버린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무시했다.
      •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이나 레지던트가 faculty ambulatory facility에서 일하는 것을 금지했는데, 이유는 교육적 비효율이 결과적으로 진료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었다.
    • 교육 환경이 손상되고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 좋은 교육 환경이 조성되는 것도 아니었다. 의과대학들은 공공연하게 IDS 의학교육으로 사용하고자 했지만,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엄청난 노력을 쏟아서 community setting에서의 교육이 비슷하게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할 있게 만들어야만 했다.
    • 1990년대 후반까지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의과대학이 community teaching 확장시키면서 school official들은 교육의 관리에 점점 신경을 쓰지 않았다.
      • Southern medical school에서 있었던 가지 예를 살펴보면, 새롭게 physician private office에서 이뤄지는 새로운 primary care rotation 도입한 것을 자랑스러워 하였지만, 가르치는(supervising) 사람이 하루에 60명의 환자를 일어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았다.
      • 이런 상황이 아무런 관리 없이 계속되면, "clinical apprenticeship"보다 그저 매우 조금 나은 정도의 교육만을 하는 것과 다를 없었다.
    • 실제로 apprenticeship 많은 ambulatory setting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는데, private doctor's office에서의 교육은 "실전에서 진료가 어떻게 벌어지는가를 보여준다" 이유로 합리화되곤 했다. 이것은 기존의 '의학이 어떻게 교육되어야만 하는가' 대한 기존의 고민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었다.
      • 다른 흔한 합리화는 "the day-to-day managing of a doctor's office" 같은 이유였다 (staffing, billing, telephone call)
      • 이전의 20세기 동안 private faculty 학문적 성취를 바탕으로 임용되었는데, 이제는 어떤 community practitioner 대학의 medical teacher 있다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상황이었다.
      • 줄이자면, 임상 교육이 community site 옮겨감에 따라서, 교육의 질을 대변하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community site에서의 교육을 확장시키려는 것에 대한 이유는 아무도 가져다 쓰지 않았다.(not the ones cited)
    • 교육적 성과를 측정하는 좋은 양적 지표가 없었기 때문에, 교육 환경이 악화된 것이 어느 정도 까지 영향을 주었는가를 알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비용 통제의 시대는 학습자의 요구로부터 점차 벗어나고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 또한 AHC 상업화가 얼마나 학생의 자세나 행동에 영향을 줬는가도 불분명하다.
    • (4) 번째 특징은 의학교육자들이 이상 의학은 <나름의 내적 standard 가진 'university- based profession'>이라는 것을 지켜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 Professional school 다른 분야와 달리 실제 field 나가서 일을 하고 있는 professional들의 요구에도 예민해야 하며, 동시에 내적인 기준을 가지고 practitioner들이 활용하는 정보를 그들 나름의 지적인 도구를 사용해서 비판적으로 접근할 있어야 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20세기의 의과대학들은 항상 대학 다른 professional school과는 다른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 하지만 1990년대에 이러한 경향이 달라지기 시작해서, 의과대학들은 managed care setting에서 일을 준비가 의사를 이상 키워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좌절감 속에 일무 managed care organization 그들 나름의 "graduate school" 만들었다.
      • 많은 비판이 일자 의과대학은 managed care 맞춘 training program 만들고자 하였다. "to ensure that they are relevant to managed-care practice"
    • 의학교육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20세기 동안 교육의 가장 문제는 학습자들이 의학적 불확실성에 대해서 적절히 훈련받지 못한 것이었고, 결국 검사, 시술, 치료의 과다한 활용으로 이어졌다.
      • 미국 의과대학의 vision 대학에서의 위치에서 물러나는 했다.

 

  • 의과대학이 어느 정도 까지나 managed care organization으로 변화할 있을까? 이것은 1990년대에 중요한 질문 하나였다.
    • 일무 managed care organization 의사들이 환자 뿐만 아니라 보험회사를 대변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평가들에게 이러한 주장은 의사들을 "이중 간첩"으로 만드는 것과 같았다.
  •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의과대학들이 이러한 압박에 굴복하고 있다는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부 observer들은 의과대학이 이상 professionalism 적절히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5) 마지막 특징은 부속병원과 community hospital간의 구분이 모호해진 것이다.
    • Academic work 점차 감소하고 있었다.
  • 어느 정도의 재정적 지원이 교육과 연구를 위해 필요한지가 불분명했다. Third party payer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하기 거절하는 , 이전만큼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웠다.
    • 의학교육에의 지원이 부실해지자, 의학교육은 "가장 팔기가 어려운 (the hardest thing to sell)"이라고 불렸다.
  • 특히나 병원이 상당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얼마나 지원이 필요한가도 미지수였다. BJC Health System 예를 보면, 개의 병원이 합해짐으로써 BJC 과도한 지출을 줄이고 운영의 효율성을 살림으로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Washington University와의 협조를 통해서 BJC 진정한 academic health care system 기회를 갖게 되었다.
  • 그러나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BJC mission statement health care 질을 높이고 가격을 저렴하게 하는 것에 대한 언급은 있었지만 교육이나 연구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새로 지어진 ambulatory care facility에는 교육을 위한 시설은 없었다. Physical 외장 개조(face lift) 하면서도 clinical investigator들이 사용하던 연구 공간을 없애버렸다.
  • 이러한 AHC 달라진 분위기는 의학교육자들이 managed care 환경에 적응한 결과라고 있다.
    • Scholarship 대한 지원은 점차 어려워졌고, 일부 학교들과 부속병원이 여전히 경제적 여려움에 있었지만, 많은 학교들은 재정적 균형을 맞춰 나갔다. 하지만 과정에서 그들이 치뤄야만 했던 비용은 무엇보다 그들의 연구와 교육이라는 '존재 이유'였다. 역사적으로 교육을 가장 많이 가로막았던 것은 연구에 대한 강조였는데, 이제는 환자 진료에 대한 강조가 되었다.
  • 결과로 21세기가 가까워지면서 번째 혁명이 시작되었다. 미국 의학교육은 corporate form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의학교육자들은 의과대학이 대학을 떠나 IDS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 1990년대에 의학교육자들은 연구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clinical faculty들은 점차 생존을 위해서 private practice 의존할 밖에 없었다.
    • 1990년대에 매위 소수의 총장만이 의과대학의 목표로서 교육과 진료를 주장했고, 지난 1900년대 이후로 AHC 그들의 목표를 생존을 넘어서서 전체 국가적 보건을 건강하게 것을 주장해왔지만 이제 그러한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 얼마나 이러한 분위기가 지속될 것인가를 알기는 어렵다. 가지 극단적인 가정을 해보는 것만이 가능할 뿐이다.
  • 그러나 세기 전의 proprietary system 지금의 미국 의학교육을 단순히 비슷하다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무엇보다 시작점이 너무나도 다르다.
  • 그렇지만 사이의 유사점을 무시하는 역시 옳다고 없다. Managed era 돈은 university standard 대체하기 시작했다.

 

  • The Declining Relevance of Medical Education
    • 20세기동안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은 미국 의료의 가장 중요한 결정인자였다.
    • 번째 혁명의 시기에, 의학교육은 점차 medical practice 멀어졌다. 보험회사나 HMO 다른 managed care organization 학교나 교수들이 이상적이라 생각하고 가르쳤던 종류의 medical care에는 관심이 없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진료과 현실에서 이뤄지는 진료의 차이가 너무나도 컸다.
    •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서 의사가 환자와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좋은 교육 또는 좋은 연구와 마찬가지로, 좋은 진료도 대충 그때그때 해서는 수가 없었다.
    • 아마도 시기 진료의 가장 문제는 효율성이란 미명아래 시간의 부족이 의사-환자 관계를 쥐어짰던 것이다.
    • Managed care에서는 환자를 짧게 보는 것이 경제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이었고, "productivity" 있는 의사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 그러나 환자를 보는 시간이 짧아지면서 직무 만족도가 떨어지고, burnout되며, 의사들의 정신건강이 악화되었다.
    • 또한 의사를 보는 시간이 너무 짧을 경우에 환자도 역시 불만족하다는 증거들이 있다. 환자들의 만족은 대화나, 돌봄, 의사의 관심에 크게 의존했다.
    • Managed care 확산되면서 대중들의 논쟁은 HMO 의료전달체계를 향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까지 논쟁은 주로 진료의 '' 집중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undertreatment 대한 걱정이 많았다.
      • 그리고 Undertreatment 대한 우려는 가장 많은 진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 (나이가 많거나, 만성 질환을 가진 등등의 vulnerable population)에서 가장 심했다.
    • '시간' 문제는 서서히 퍼져 나갔지만, 근본적인 문제였다. HMO 구조상 "throughput" 강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의료의 질이나 돌봄, 환자와의 관계등은 달성되기가 어려웠다.
      • "동정심이 많거나, 만성 질환을 관리해주는 의사가 치르는 비용이 있다. 바로 아픈 환자를 많이 보는 것이다"
    • Managed care 의료의 질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공부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일화는 많지만 실제로 managed care fee-for-service 비해서 갖는 장점이나 단점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다.
      • 주된 문제는 overutilize보다 underutilize 판별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의료의 질이 악화되었느냐 향상되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managed care organization medical professionalism 근간을 흔드는 상황에서조차 국가의 medical faculty내의 리더십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 20세기가 마무리될 무렵, 대중들은 managed care아래에서 의료의 질에 대해서 점차 걱정하기 시작했지만, medical school leader 사이에서 문제는 잠잠했다. "strained silence"
    • Medical school official들은 뭐라고 했을까? 주로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이익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HMO 의한 진료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 대부분의 AHC managed care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는 것에 집중했다.
    • 비슷하게, medical profession 의료의 질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잠잠했다. 대신 generalist physician specialist physician사이의 줄다리기만 팽팽했다.
      • Academic medicine뿐만 아니라 profession 전체적으로도 professional 전체적인 문제 또는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익과 내부적 문제를 우선해서 다뤘다.
    • 궁극적으로 academic medicine 목소리를 높이기를 거부한 것은 결국 자신들을 위태롭게 뿐이었다. 가장 좋은 교육과, 적절한 의료 서비스에 대해서 medical profession 결정권을 상실했다.
      • "physician (state) 아니라 HMO에게 면허를 받게 것이다"
      • 리더십이 없이는 국가 전체의 건강 뿐만 아니라 AHC 미국의 medical care 멀어질 밖에 없었다.

 

  • Restoring the Social Contract
    • 1990년대 후반, 번째 개혁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AHC educational product 대한 시장을 상실해가고 있었다.
    • WWII 이후로 AHC 외부 환경에 가지 주요한 변화들이 있었는데, 우선 NIH 성장이 있었고, Medicare & Medicaid 입법이 있었다.
      • 처음에 이러한 변화는 AHC에게 주요한 수입원으로 이득이 되었으나 managed care 에서는 반대였다. 20세기 이후 처음으로, 외부적 환경이 적대적으로 변했다.
    • 과거에는 AHC 외부 변화에 매우 민첩하게 반응했다. 1990년대에도 역시 그렇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성공한 것은 되지 않았고, 대부분은 institutional mission 핵심을 상실했다.
    • AHC 문제를 단순히 managed care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번째 혁명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medicine 대한 사회적 기대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WWII 이후의 health paradigm AHC 빠르게 성장할 만큼 풍요로웠는데, 궁극적으로는 주변 환경이 악화되었을 vulnerable하게 결과를 낳았다.
    • 이에 따라 AHC 21세기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자신감을 상실했으며, 통제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 하지만, 앞으로 어떤 원칙을 따라야 것인가는 과거를 이해함으로써 있다.
    • 일반 대중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AHC vision, power, means 가진 사람들이 상당한 nurturing 지속적인 protection 확고한 지원을 해야만 하는 기관이다.>. 가장 중요한 사회적 기능은 지출 통로(revenue-draining)이지 수입원(income-generating) 아니다.
    • 진료 수입을 줄이면 그것의 보충분은 어디서 가져와야 할까?
      • Federal trust, general tax revenue
      • "all payer" system : 모든 보험료(health insurance premium) 교육에 대한 세금을 붙이는
    • AHC 재정적 지원 방안으로 제안된 것은 산업과 긴밀한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university-based medical research 상업화 하는 것이다.
      • 이러한 방안은 장기적 관점에서 academic medicine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면 고려해 하다.
      • NIH budget 늘리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일 것이다.
    • 1990년대에 많은 학교들이 '시간' 대한 payment 받는 것에 가장 어려움을 겪었다. 시간은 AHC 하고자 했던 교육 환경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요소였다.
    • AHC 입장에서 자원 통제를 통해 health care 대한 지출을 줄인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당시 이미 충분히 많은 ($1 trillion) 돈을 쓰고 있었다. 특히나 중복해서 나가는 돈이나 불필요한 행정 비용이 너무 많았다.
    • 국가적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의학교육에 써야 하는가는 사회적 가치나 우선순위의 문제이지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
      • 만약 대중들이 의학적 진보를 이뤄가는 인큐베이터의 보존을 원한다면 안정적인 지원이 필요했다. 사회적으로 AHC 국가적 자원으로 인식하고, 현명하고 충분히 지원하는 것이 필요했다.
    • 의학교육자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외부적 지원은 AHC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 불가능하다.
      • 번째 혁명 시기의 AHC 고난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serve하고 lead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에서 것이다.
      • Charles Eliot : "기부를 받는 기본은 먼저 대접하는 것이다"
    • AHC 공공의 지원을 받고 싶다면 가지 해야 것들이 있다.
      (1) 번째로 '자원 통제'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AHC 이상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제공하는 곳이 수는 없었다. 그보다 어떤 영역을 추구하고, 어떤 것을 다른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둘 것인가에 대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했다.
    • AHC 규모를 줄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과대학이 번창하기 위해서는 기업문화를 바꿔서 학문에 근거한(based on principles) 기관이 되어야 했다. Clinical faculty clinical productivity 아니라 학문을 기준으로 보상해야 하며,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은 그들의 이익이 서로 분리불가능한 것임을 알아야 했다.
    • 의과대학이 대학의 임무에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를 알아볼 있는 가지 시험은 faculty administrator 교육 프로그램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개인적 희생을 하는가를 보는 것이다. (시간, )
    • (2) 번째로, 그들의 대중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충분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AHC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의사를 많이 만들어 필요가 있다.
      • Cost-consciousness, 예방의학, 건강 증진, ambulatory medicine.
      • 의학 교육에 '인구집단' 측면을 도입해야 한다.
    • 과학과 의료전달체계의 복잡성이 빠르게 증가함에 따라서 medical faculty들이 의학교육에 대한 높은 기준을 고취하는 것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 Learning environment, learning by doing, graded responsibility, comfortable with medical uncertainty
    • (3) 번째로 medical faculty들은 의료의 질을 관리함으로써 그들이 대중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 어떻게 제한된 자원을 현명하게 사용할 것인가.
    • (4) 번째로 AHC 그들의 연구에 대한 관심이 대중의 건강에 대한 관심 영역과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것은 organization, financing, 의료전달체계 등과 같은 이슈를 기존의 연구와 통합해야 함을 의미한다.
    • (5) 마지막으로 AHC 그들의 기본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들은 그들이 받는 지원에 대한 책임이 있는 public trust이다.
      • 대중들은 규모 확장과 같은 AHC 최근 관심사에는 무관심할지 몰라도, academic work 질은 어떠한지, 얼마나 공공의 보건에 헌신하는지에 대해서는 높은 관심을 보인다.
      • AHC '' 필요가 있으며, ''한다는 것은 발전된 수준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고 있다.

 

  • ******************

 

  • 역사적 관점에서, AHC 앞에 나열된 적응(adjustment) 해냈다는 것은 충분히 생각 가능한 일이다. Flexner 지적했던 것처럼, 의학교육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극도로 적응해왔다.
  • 21세기에는 의학교육을 이끌어갈 사람은 누구일까? AHC wartime leader 필요로 것이지, peacetime manager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담대한 비전과 결단성 있는 행동이 필요했다.
    • "think outside the box"
    • 가장 중요한 것은 medical leader 변하지 말아야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력이 있어야 했다.
  • 1990년대에 일부 사람들은 Charles Eliot이나 William Welch 같은 사람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해는 있지만, 이런 관점은 과거를 미화하고 잘못된 생각만을 하게 만들 뿐이다
    • "리더십은 일부 카리스마 있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리더십이란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 자신으로부터 최고의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 진정한 리더는 대개 그들의 카리스마보다는 신념이 두드러진다. 그들은 조직이나 기관이 어떻게 차이를 만들 있는지, 중요한 가치와 목표를 보여주고 달성한다.
    • 의학교육에 대해서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의학교육의 리더는 조직의 핵심 미션과 가치가 달성되지 않는 이상 조직의 생존이나 재정적인 성공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21세기를 향해 미국 의학교육을 이끌어갈 사람들에게 주어진 몇몇 환경적 이점이 있다. 우선 국가는 trillion dollar 투자할 의의가 있다는 것이며, 대중은 국가가 의학 연구에 많은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AHC 임상적으로 뛰어나다.
  • 또한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고 의료 지출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AHC 이뤄지는 지원도 굳건하다.
    • 새롭게 이루어지는 연구 분야는 더욱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 다른 강점은 medical professor들의 높은 수준의 이타주의와 대중에의 헌신이다.
    • 수천명의 medical faculty 행동에서 있으며, HMO 보험회사에 맞서서 싸운 수만명의 individual physician 있다. 심지어 순교자들도 있다.
  • 실제로 최근의 좋은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medical profession 대중으로부터 상당한 수준의 신뢰를 얻고 있다.
    • 반대로 HMO 가장 신뢰가 가지 않는 것으로 꼽혔다.
  • 다른 강점은 의학 교육의 질을 위협하는 경제적인 문제들로부터 대중을 보호하고자 하는 기존의 infrastructure들이다. 다양한 accrediting agency, licensing bodies, specialty certifying organization 등이 있다.
    • 20세기 막판에 이들 기관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 이러한 agency들이 지속적으로 역할을 해나갈지는 두고봐야 것이지만, 그럴 만한 충분한 권한이 있다.
  • 또한, 의학교육자들 사이에서도 quality 유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다.
    • 1990년대에 있었던 많은 교육과정의 변화는 불가피하게 이뤄진 것들이지만 90년대 말에 많은 것들이 계획되고 있었다. Ambulatory site에서 교육의 질을 높이거나, community physician 교육 스킬을 발달시키는 .
    • MSOP professionalism 기준(altruism, dutifulness등을 포함하는) 제시했다.
  • 1990년대 말에 HMO 정치적 영향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었고, 미국 health care system 모든 문제를 해결해 것이라는 managed care 대한 환상은 점차 옅어졌다. 국가 전반에 걸쳐서 소비자들이 주도하는 역풍(backlash) 몰아쳤다.
    • 1997년에 전국적으로 이뤄진 조사에서 보험 회사들과 managed care organization consumer 얼마나 섬기느냐(serve) 기준에서 꼴찌에서 2등을 했다. (1등은 담배회사)
  • Consumer backlash 긍정적인 면도 있었는데, 모든 HMO 가리지 않고 분노가 심해져서 managed care movement 아니었다면 개선되지 않았을 의료전달체계의 문제라든가, health plan들간의 차이가 무시당했다.
  • Quality 대한 다른 목소리는 health care 구매자(purchaser) employer government로부터 튀어나왔는데, 그들은 그들이 책임지고 있는 인구집단의 건강과 경제적 생산성 모두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 Xerox "우리는 저질의 health plan들이 사라지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
  •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많은 변화들은 의료 비용을 통제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분만 아니라, health care marketplace에서 profession 위치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 보험회사들의 힘은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며 강해졌는데 강력한 힘이 줄어든 것이다.
    • Insurer이면서 동시에 provider 되려는 IDS 노력은, 이를 통해 보험회사를 bypass함으로써 provider 권한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Professional에게 다시 권력이 옮겨간다면, 나은 시스템을 만들어갈 기회가 생긴다고 수도 있는 것이다.
  • 곤경에 빠졌을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기가 쉽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David Roger "미래를 예측할 종종 인간의 창의성이나 기본적 decency 너무 평가절하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그는 인간은 언제나 인간의 환경을 개선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보상을 주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라고 주장한다.
  •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 의학교육의 딜레마는 얼핏 보이는 것처럼 암울하지는 않다. 강력한 시스템을 유지해야만 하는 시대의 도전은 새롭게 시스템을 만들어야만 했던 세기 전의 상황보다는 훨씬 낫다. Medical care 역량, medical research 잠재력, 그리고 대중의 믿음이 있다.
    • 이런 것들은 의학교육의 선구자들에게 주어졌던 환경에 비해서 훨씬 나아진 환경을 보여준다.
  • 실제로, 상황의 이면을 본다면 의학교육에 대해 엄청난 기회가 존재한다고 있다. 20세기 후반의 turbulence academic medicine에게 전례 없는 기회를 주었다. Academic medicine 처한 문제는 외부적이라기보다는 내부적이다.
    • Developing the willingness, making the commitment, having the strength to protect the quality….
    • 전쟁 시기의 리더들은 이렇게 말한다. "turbulence 상황은 위기라기보다는 기회이다"
  • 현재 의학교육 의료 상황이 마주친 turbulence 결과로 나타나는 상황은 health care 넘어서까지 함축적인 의의를 준다. 바로 다음 세기에 미국의 위치에 대한 것이다. 미국이 여전히 강력하게 남아있을 것인가 아니면 사회 경제적으로 쇠퇴할 것인가?
    • 미국의 health care system 이러한 문제를 비춰주는 프리즘과 같다.
    • 의학에 닥친 문제는 다른 분야에서의 번영을 위기에 빠뜨린 문제들과 동일하다.
    • 미국 의학이 평범한 수준에 머무르게 된다면, 이것은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실패 때문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 서구 의학의 지난 2500년을 돌아보면, 1990년대의 미국 의학은 그저 하나의 짧은 챕터일 뿐일 것이다. Medical profession 언젠가 대중의 기대와 호의를 다시 사로잡을 날이 분명히 것이다. 다만 그것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것인지를 모를 뿐이다.
  • 미국이 의학에서의 리더십을 되찾고 싶다면, 미국 의학교육의 역사에서 원리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핵심은 의학과 사회 간에 조각난 사회적 계약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Medical profession 그들이 사회를 serve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임을 상기해야 하고, 사회는 좋은 health care 적절한 물적 심적 지원 없이는 얻을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의학교육, 연구, 진료 시스템의 위치를 되찾을 기회는 아직 열려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