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17. Medical Education in an Era of Cost Containment and Managed Care
    • 20세기 의학교육 환경의 두드러지는 특징을 하나 꼽자면 대중들에 의해 제공된 풍요로운 자원이었다. NIH, Medicare, Medicaid. 같은 환경에서 의과대학들은 끊임없이 성장했고, 진료는 방탕하게 이뤄졌으며, 비용-효과성에 대해서는 교육하지 않았고, 국가의 의료전달체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았다.
    • 1980년대 중반, 상황은 빠르게 바뀌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입되었는데, Medical Service 대한 요구가 줄어들 줄을 모르는 상황에서 자원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가가 사용할 있는 자원이 제한되었다는 것이 강조되었다. 21세기는 자원통제(resource constraint) 시대였다.
    • 새로운 변화는 AHC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비용을 줄이고 운영의 효율성을 추구하고자 했음에도 상황은 의과대학과 부속병원 모두에게 위협적이다. 의과대학은 주된 수입원으로서 진료 수입에 의존중하고 있었다. '자율성'이라는 환상은 산산조각이 났다.
    • 항상 기업가적인 태도를 가졌던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의 리더들은 현명하게 대응했다. 1990 합병, 인수, 제휴 등이 늘어났고 "integrated delivery system"이라 불렸다.
    • 그러나 AHC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와중에 교육과 연구는 자주 무시당하곤 했다. 세기의 끝이 다가오면서 AHC academic quality 상실하고 있었다.

 

  • Vassals of the Marketplace (시장의 봉신)
    • 1960년대 이후로, 연방 정부와 private third party payer(TPP) AHC supportive environment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의존은 결국 불안정화를 야기했다.
      • Medicare & Medicaid 도입되고 20년이 지난 , 수백만의 사람들이 보험을 잃을까 두려워 직업을 바꾸지 못했고, 수백만의 사람들은 보험이 없거나 거의 혜택을 보고(underinsured) 있었다.
    • Health care cost 높아지는 것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은 '질이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싸고 좋은 진료라는 것은 형용모순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상황이 바뀌었다.
      • 지역에 따라 outcome 차이는 없는데 진료 스타일이 완전 달랐다.
      • 어떤 procedure 유난히 자주 행해졌다.
      • 추가적으로 개인적 이익과 탐욕의 시대에 병원과 의사들은 fee-for-service 시스템 하에서 "개별 가격 매기기(unbundling)"이나 "upcoding" 통해서 돈을 벌고 있음이 드러났다.
    • 1980년대에 health care cost 높아지고 있었지만, 전문직으로서의 권위는 약화되고 있었고 Third Party Payer health care system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을 싫어했다.
      • TPP 가격을 낮춤으로써 저항했는데, 당시에 의사라는 전문가의 권위에 대한 상당한 의구심(skepticism) 있었다. 의학적 의사결정에 상당한 수준의 외부적 감시가 개입되었고, 의사와 병원간 가격을 기준으로 경쟁이 심화되었다.
      • 통제의 주체는 의료공급자(Provider, 의사)에서 가격지불자(Payer, 정부 보험사) 옮겨갔다.
    • 통제의 시대는 정부가 "prospective payment" 대한 법안을 통과시켰던 1983 시작되었다.
      • 포괄수가제 (Diagnosis Related Group (DRG))
    • Prospective payment 병원 경제의 법칙을 바꾸어놓았다. 병원은 지출이 얼마든 고정된 비용만을 지불받았다. 병원의 새로운 목표는 빠른 "throughput"이었다.
    • 부속병원에 있어서 DRG system 등장은 이미 심각한 경쟁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 십년간 community hospital 이미 상당한 경쟁을 감당해야 했는데, prospective payment 등장과 함께 환자에 대한 경쟁이 더욱 심해졌다.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부속병원들은 공격적으로 marketing하고 광고를 했다.
    • 부속병원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던 것은 모집하지 않아도 부속병원을 찾아온 환자들(가난하고 보험이 없는 환자) 때문이었다. For-profit hospital chain 등장했고, 이들의 목표는 의학적인 필요를 요하는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내는 것이었다. 경제적 필요에 따라서 nonprofit community hospital들은 charity care 줄였다.
      • 이런 환자들은 결국 부속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economic transfer" "dumping" "우리는 마치 '엄마' 같다"
    • Prospective payment 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부속병원의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DRG 시스템은 질병의 중한 정도를 따지지 않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부속 병원들은 1980년대에 버텨낼 있었는데, 이것은 비용을 상당 부분 절감했기 때문이며, 거대한 referral network 형성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환자 "throughput" 높였기 때문이다.
      • "outlier" 위하여 Medicare DRG 시스템은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해줬다.
    • AHC prospective medicine 무사히 해쳐 나가긴 했지만, 1980년대, 1990년대에 급격히 퍼진 managed care는 더욱 적대적으로(hostile) 진화해갔다. Managed care organization 다양한 전략을 통해 병원과 의사에 대해 상대적인 우위를 점했으며, 입원 수와, specialist 수를 줄임으로써 비용을 절감했다.
      •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managed care 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s(HMOs)였다.
      • 1995년까지 5천만명의 미국인들이 HMO 통해서 health care 받았고, 천만명은 조금 '느슨한' 형태의 managed care preferred provider organization(PPO) 통해 받았다.
      • 1996 FFS 통한 보험을 적용받는 사람은 employee 26% 그쳤다. (1988년에는 71%)
    • 1990 엄청난 대중적 논란이 벌어졌다. 과연 managed care organization 환자를 우선시하고 있는가? 과연 의료의 질은 유지되고 있는가? 그러나 하나의 사실만은 분명해보였다. Managed care 의학교육과 AHC 해로운 영향(adverse impact) 끼치고 있었다.
      • 예를 들어 1990년대에 HMO special-physician에서 general medical care 전환을 시도했다.
      • 의과대학 학생들은 이러한 사실을 목격했고, 마침내 primary care 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 HMO 성장은 국가의 의과대학/residency program 키워내는 적정한 의사 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했다.
      •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의사들은 다른 분야에서는 이미 겪었던 일을 겪었다. 바로 직업 안정성이 떨어진 것이다.
      • Pew Health Professions Commission 미국 의대생을 20~25% 감축하고, 의과대학 수는 20% 줄일 것을 권고했다.
    • 가장 눈에 띄는 것은, managed care AHC 재정적 안정성을 위협한 것이다. 놀라울지 모르겠지만, AHC DRG 속에서도 환자 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제법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managed care plan price 제한을 뿐만 아니라 환자 수에 대한 제한도 걸었다. HMO ambulatory care 늘리고, hospitalization 줄이고 specialist 대용으로 primary care physician 고용하고자 했다.
      • 특히 1993 이후 managed care 가속화되면서 부속병원에의 입원이 감소했고 많은 부속병원은 병상을 줄이기 시작했다.
    •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AHC 부속병원들과 가격으로 경쟁해야 했다. 부속병원의 비용은 보통 community hospital보다 30% 정도 높았다. 그러나 이제 보험회사들은 이러한 비용을 감당하고자 하지 않았고, 교육과 연구에 사용할 돈이 남질 않았다.
      • 일부 academic hospital 원가에도 미치는 금액을 받는다며 claim했다.
    • AHC 다른 수입원은 private insurer에서 야기된 부족분을 채우지 못했다. 1990년대에 연방 정부, 주정부, 의회, Medicare and Medicaid budget에서 오는 지원은 점차 줄었고, 이러한 부족분을 수업료나, philanthropy endowment income으로 보충하기도 부족했다.
    • 가격경쟁의 시대에 국가의 hospital system 감당할 있는 범위를 넘어선 병원들은 병원의 합병이나 폐원의 길을 걸었다. 특히 부수적인 비용이 많이 들었던 부속병원들의 위기가 심각했다. 부속병원들은 비용을 줄이고자 노력했지만, payment 너무 낮았다.
    • Managed care 부속병원 뿐만 아니라 의과대학의 경제적 viability 흔들리게 했다.
      • 1989년에서 1995년까지 HMO movement 퍼지면서, 많은 faculty 고용해서 많이 진료를 보고,   patient care 집중하면서 여기서 얻는 수입이 상승했지만 payment 자체가 워낙 줄었기 때문에 순익은 크게 감소했다. Faculty 잘렸고, 봉급은 동결되었다.
    • 1990년대 중반에, managed care 퍼지면서 부속병원과 의과대학의 인수, 합병, 분할이 많이 이뤄졌다. Post-Flexner 직후를 제외하면 번째 restructuring이었다.
      • "이러한 통합이 이타적인 행위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이것은 공포와 생존의 문제다"
    • HMO AHC public activity 지원하지 않았던 행위는 쉽게 이해 가능하다. 영리 목적의 조직이었기 때문에, 유일한 법적 책임은 주주들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이었다. 1995년에는 경쟁자들의 압박에 이기고 Harvard Community Health Plan마저 의학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을 1%에서 0.45% 줄였다.
    • HMO 운이 좋았다. 그들은 AHC에서 발전시킨 지식과 기술을 활용할 있었고, 부속병원에서 키워낸 의사와 health care professional 고용할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AHC 진료에서 얻은 수익을 연구나 교육에 활용해도 괜찮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있었다.
    • AHC 문제는 1990년대에 누구도 교육이나 연구를 지원하는 것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
      • "지금 일어나는 일은 악몽이다."
      • 다른 미국의 산업처럼 health care industry 또한 단기적인 사고밖에 하지 못했고,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최대화시키기 위한 전략 뿐이었다.

 

  • The Loss of Time and the Erosion of the Learning Environment
    • 20세기동안 부속병원이 갖춘 우수한 교육 기회는 임상 교육의 강점이었다.
      • 시간은 교수자에게도, 학습자에게도 선물이었고, 당시의 faculty 교육에 유능했을 아니라 일을 시간도 충분했다.
    • 1960년대에 부속병원은 지속적으로 이전의 교육적 가치를 상실해가고 있었다.
      • 일부 그들이 제공하는 care 복잡함에 원인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inpatient medical teaching acute disease 대한 수요가 높을 당시의 교육적 needs 반영하고 있었다. Inpatient instruction 만성 질환에는 별로 적합하지 않았다.
    • 그러나 1980년대에는 입원 환자 병동의 교육 환경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Medicare DRG 도입하면서 평균 재원 일수가 감소하였다. 점차 부속병원의 inpatient unit 타입의 환자로 갈렸는데 하나는 정말 심각하게 아픈 사람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elective procedure 위해서 잠깐 입원한 환자들이었다.
    • 이러한 재원 일수의 급격한 감소와 수많은 procedure 병원의 밖으로 옮긴 (moving so many procedures out of the hospital) 논란의 대상이었다. 어쨌거나 가지 결과만은 명백했는데, 병동의 학습 환경이 악화된 것이다.
      • 환자의 "throughput" 높아지면서 업무량이 많아졌다.
    • 교육적 관점에서 보았을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House Officer(레지던트)들이 work-up machine 또는 disposition-arranger 되어 버린 것이다.
      • 환자를 입원시키고, 퇴원 일정을 잡는 일을 하느라 검사를 하고 주치의와 함께 상의할 시간은 짧아졌다. 또한 질병의 코스를 관찰할 기회를 상실했다.
      • 이러한 변화가 medical 뿐만 아니라 nonmedical group 까지도 학부 교육과 GME 교육을 강조하던 시기에 나타났다는 것은 상당히 역설적이다.
    • 짧아진 입원 기간의 결과는 통합적으로 분석될 필요가 있긴 하지만, 여러 일화들을 종합해보면 영향이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House officer 그저 쌍의 손이며, 학생은 그저 관찰자일 뿐이다"
    • 병동의 교육적 가치가 사라지면서 일부 faculty ambulatory education 더욱 강조하고 나섰다.
    • 교육 이론 측면에서 보면,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좋은 학습 환경의 필수 요소는 장소와 무관하다. 중요한 것은 환자를 중심으로 하여, faculty 능숙하고 accessible하게 가르치는 것이고, 학문적인 것을 추구하는 분위기이다.
    • 임상 교육을 ambulatory site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환자들은 교육적 목적으로 활용되는 것을 꺼렸고, Medicare reimbursement formula hospital clinic에서 이뤄지는 교육에는 지원을 해줬지만 community health center private doctor's office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지원해주지 않았다. 1990년대에 소수의 분야만이 ambulatory work training 주된 장소로서 활용했다.
    • 그러나 Managed care ambulatory setting에까지 압박을 가했는데, 곳에서도 '속도와 '이라는 원칙이 요구되었고 이는 교육의 질을 손상시켰다.
    • 1990년대까지 대부분의 AHC 학생들과 HO들에게 많은 outpatient care 경험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productive"해야 한다는 managed care 원칙 아래에서 교육의 질을 담보하는 길을 찾아낸 학교는 거의 없었다. 수많은 보고서들에서 환자를 너무 빨리 봐야 하는 상황이 교육의 질을 떨어뜨렸다고 언급되고 있다.
      • 게다가 이러한 환경은 "hidden curriculum" 까지 영향을 미쳤다. Teacher role model로서의 의사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 일부 의학교육자들이 보기에 HMO ambulatory teaching 기르기에 좋은 곳이었다. HMO 규모가 크고, centralize group practice 이뤄졌기 때문이다.
      • 이제 워낙 많은 진료가 ambulatory setting에서 이뤄지고 있었고 HMO 점차 많은 member 모으고 있었기 때문에 HMO 교육과 연구에 적절한 장소로서의 잠재력을 갖춰가고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teaching HMO"
    • 문제는, HMO에서 교육을 하는 것을 지원할 충분한 fund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AHC 재정적으로 묶여 있는 상태였고 대부분의 HMO 의학교육에 비용을 지불할 의지가 없었다.
    •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학습 환경의 질을 유지하는 것은 어느 분야와 동일하게 의학교육에서도 좋은 교육에는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어려웠다. 많은 경우 '비용' 시간이었다.
    • Health care financing 국가의 의학교육 시스템을 위협한 것은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WWII이후 private medical insurance 도입, 1965년의 M&M 등등..
    • 비용 통제는 정말 필요한 것이었고 오랫동안 필요성이 있어 것이었다. 하지만 managed care 시대의 비용 통제에 의학교육을 고려할 공간은 없었다.

 

  • Proactive Word; Reactive Behavior
    • 비용 통제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AHC 새로운 도전을 마주했다. 이제 문제는 의과대학과 부속병원간의 반목이 아니라 열악한 시장 상황에서 살아남는 자체였다. 공포와 떨어진 사기, 그리고 통제권 상실에 대한 우려가 팽배했다.
    • 가지 대응책은 새로운 수입원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러한 노력은 1980년대에 시작되었는데, 일부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은 영리 기업을 운영하기도 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Johns Hopkins's Dome Corporation이다.
    • 번째 대응책은 효율적인 운영 하는 것이었다. 많은 의과대학들은 faculty practice plan 재구성하여 전체 학교에 적용될 있는 하나의 plan 만들고자 하였다. 또한 개개 연구자나 학과가 협동하여 비싼 기계를 공동으로 구입하기도 하였다.
    • 부속병원들 역시 경영 기술을 다시 검토하였다. 후향적 reimbursement 세기 시대가 지나면서 기술적 경영이 강조되었다.
      • 교육과 연구와 진료에 상호 보완이 이루어졌다.
    • 비용 절감이 AHC 문제가 되면서, 모든 중요한 프로그램과 가정(assumption)들도 검토 대상이 되엇다. 일부 기관들은 residency size 줄였고, 일부 도시에서는 GME 위한 hospital "consortia" 만들었다. 테뉴어 position 숫자를 제한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중한 경영과 비용 통제도 완벽한 해답은 없었다. HMO 보험사들은 훨씬 적은 비용을 지불해줬을 뿐만 아니라 환자들을 AHC 아닌 다른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 부속병원은 다른 모든 병원처럼 고정 비용이 높았는데, 아무리 운영을 효율적으로 한다고 해도, 병상이 2/3이나 비었을 때에는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사람에게 우리를 팔아야 한다"
    • 앞서 언급된 Networking arrangement 같은 Referral base 늘리기 위한 AHC 노력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다. 경쟁은 HMO 함께 더욱 심해져서 HMO로부터의 referral 특정 환자나 의사의 뜻이 아니라 조직 정책에 따라 정해졌다. 따라서 AHC 점차 managed care initiative 참여할 밖에 없었고, 이는 한때는 academic leader 일부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였다.
      • "너만의 affiliation 만들든지, 기존에 있는 것에 들어오든지"
    • 1990년대에 이런 patient care network tight하게 구성된 Integrated delivery system(IDS) 발전하였다. IDS 모든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래부터 위까지 연결된 health care system 연속체였다.
      • "vertical integration"
    • IDS 생긴 것은 Clinton 대통령의 임기 시절에 health care reform 제기되던 때였다. IDS 하나의 운영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IDS 대형 구입자(large purchaser)로서 협상을 있었다.
      • AHC사이에 차이가 있었던 것처럼 IDS사이에도 차이가 있었는데, 주로 larger system에서 의과대학이 주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조적 역할을 하는지의 차이였다.
    • 의과대학이 health care system formal part 되었는지와는 별개로, managed care 시대에 모든 학교는 전보다 많은 personal patient care 하고 있었다.
      • Faculty 보는 환자가 많을수록 "productive"하다고 인정받았다.
    • AHC managed care 적응해가면서 수많은 작지만 작지 않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병원은 일반적으로 의과대학보다 조금 민첩하고 기업가적이었다.
      • 병원 행정의 영역은 기업 행정과 가까워졌고, 병원 행정가들 MBA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다.
      • 기업식의 접근법은 AHC 조직 문화를 지배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AHC 영리병원 체인이나 HMO 다를 바가 없다며 비판했다.
    • 시장의 힘이 점차 커지고 점차 적대적으로 변함에 따라, AHC 기업적 전략을 도입하고 기업체처럼 변해간 것은 이해가 간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mission 존재 이유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AHC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처럼 돈이 필요했다.
      • 병원 행정가들은 재정적 문제 인수합병 전략에 집중했다. 심지어 최고 수준의 병원들까지 시장 점유나 수익성을 따졌다.
    • 20세기 내내 의과대학 faculty academic duty clinical duty사이의 갈등을 겪어 왔다. 그래도 1980 이전에는 사이에 어느 정도 적절한 균형을 맞출 있었다.
    • 그러나 비용 절감의 시대에 AHC 결정적인 움직임이 있었다. Clinical faculty patient care 대한 부담이 커졌으며 JHMS 같이 최고 수준의 research institution이었던 까지도 patient care 학교의 mission 첫째로 놓았다. 20세기동안 의과대학의 역할은 부속병원을 최대한 '대학' 가까이 두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그러한 대학과의 연결고리를 포기하였으며 점차 부속병원은 새로운 의료전달체계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 이러한 변화의 정도는 center마다 서로 달랐으나 전반적으로는 academic보다 clinical mission 중요시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 "AMC 형용모순이다. 특히 A MC사이의 결합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 또한 여겨 보아야 것은 1990년대 후반 일부 AHC 중환(seriously ill patient) 받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건강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여 "cherry picked"하던 경쟁 병원이나 HMO 행태를 따라했다.
    • Managed care 대한 AHC 모습은 기업적 vision (corporate vision) 의해 만들어져갔다.
      • 다른 산업과 비슷한 경영 전략이 도입되어서 "restructuring" "reengineering" "downsizing" "right sizing" 등의 용어가 유행했다.
    • Medical school official이나 병원 간부들 AHC 다른 사업들은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Business strategy 도입에 있어서 진중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자동차 회사는 소비자들에게 그들이 필요해하든 필요해하지 않든 자동차를 팔지만, 제대로 AHC라면 환자에게 복잡한 심장 수술을 "팔지" 않는다.
      • 게다가 AHC 많은 중요한 기능은 기본적으로 cost-generating하지 income-producing하지 않다.
    • 역설적인 것은 AHC restructuring 오래 전부터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는 것이다.
      • 특히 가르치고 배우는 방법에 있어서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하는 것이라든가, training 받는 사람이 임상적 불확실성을 다루는 방법을 배운다든지, outpatient medicine 대해 강조한다든지 하는 것들.
    • 하지만 역사에서 배워야 것이 하나 있다. AHC에게 self-sufficient 것을 기대하면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외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가 얼마나 지원을 해야 하는지, 지원이 어디에서 와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있을 있다. 그러나 교육과 연구는 외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 초기 시스템을 만들었던 사람들로부터 있는 것과 같이, 상황을 주도하는 행동(proactive behavoir) 외부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 의과대학의 인도주의적 mission등을 수반한다. 그렇게 해야만 자기 자신의 생존 뿐만 아니라 보건과 관련된 정책에까지 영향을 있다.
      • 20세기가 끝날 무렵 주된 강조점은 AHC 지어진 핵심 원칙을 파괴하는 상황에서조차 clinical mission 확장하는 것에 있었다. 외부적 도움이 없이 교육, 연구, charity care 약화될 밖에 없었으며, AHC 도덕적 정치적 합리성은 사라질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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