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 Undergraduate Medical Education
    • Physician들이 동의한 가지 원칙이 있다면, 바로 의학교육은 평생에 걸친 과정이라는 것이다.
      • 모든 진료를 하는 physician들은, GP specialist 최신의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
    • 의학교육이 완성되었다고 수는 없지만, 전쟁 사이 기간의 MS들은 거의 완성 상태에 도달하고 있었다.
    • 전통적으로 undergraduate medical education 주로 course curriculum 중심으로 분석되긴 하지만, 가지 중요한 것이 있고, 바로 "hidden curriculum"이다.
    • 당시 의학교육자들은 - 비단 의학교육만의 문제는 아닌 - 많은 교육에 있어서 일어날 있는 일반적인 문제들을 마주하게 된다. 가지 딜레마는 attitude behavior 영향을 있는 교육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 Admission
      • 전문가가 아니라도, 의학교육이 국가적 교육시스템과의 공시성(synchrony) 없이 나아갈 없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하다.
        • 입학은 고등학교 졸업자 이상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있었고, 낙제율은 매우 높았다.
      • FR이후에 MS 입학 기준은 빠르게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학문적으로 준비된 지원자들이 늘어나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 WWI무렵, MS 처음으로 신입생을 제대로 준비된 학생들로 채울 있었다. 1915 대략 절반정도의 학교가 college 1 이상을 요구했고 나머지 절반은 2 이상을 요구했다.
      • 1920년대 동안 거의 대부분의 qualified 지원자들은 합격했다. 하지만 그러한 지원자들의 수가 전체 선발학생의 수보다 많아지게 1920년대 후반부터 MS 경쟁률은 급격히 치솟았다.
      • 비록 아무도 premed 학생들이 다른 전공의 학생들과 어떻게 다른지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의학교육자들은 의학을 전공하겠다는 결정이 개인적 성격이나, 문화나, 의학을 업으로 한다는 것의 매력 등과 관련이 되어 있다고 믿었다.
        • 그럼에도 MS 사실 이것에 대한 걱정은 거의 하지 않았으며, 그저 학생들의 수준이 한층 높은 수준에 다다랐다는 사실만을 즐기고 있었다. 유급율은 15%까지 떨어졌다.
      • 의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어떤 과목을 미리 준비해야 했을까? 고민은 MS university official에게 공통된 고민거리였다.
      • 요구조건 외에, 어떤 것이 '가장 준비된' 학생인지에 대한 혼란이 있었다. 공식적으로 MS official들은 broad general education 강조했다. 하지만 faculty 의견은 반대였다. 그리하여 거의 대부분의 지원자는 scientific subject 전공한 사람들로 채워졌다.
      • MS qualified 학생들을 찾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입학 정원을 늘리려고 하지는 않았다. 교육의 질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사실성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medical profession들이든 아니든 키워내고 있는 의사 수가  적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 의학교육자들과 입학관리자(admission official)들은 끊임없이 가장 좋은 학생을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성적인지, 수강한 과목인지, 추천서인지, 개인 인터뷰인지…
        • Medical Aptitude Test 어떤 학생이 성적을 받을지를 예측하는 데에는 좋았지만, 의학을 행하는 것에 있어서의 성공의 지표는 아니었다.
      • Admission committee 사이에 서로 다른 패턴이 나타났다. 일부 특정 학교의 학부생들을 선호하기도 했고, 나이가 많은 지원자에 대해서는 불편감을 드러냈으며, 누가 학비를 있는지, 어느 지역 출신인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 일부 학생들은 특히 불이익을 보았는데, 대표적을 African-American (AA)들이 그랬다. 많은 학교에서 흑인 지원자는 전혀 선발하지 않았으며, 아주 명백한 인종차별이 벌어지고 있었다.
      • AA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더라도, 여성들도 불이익을 보았다. 여학생들을 선발하는 학교 조차 numerus clausus (각종 제한 조건) 들이 달려 있었다. 예컨데, 여성은 전체 학생의 10% 이하만 선발한다던가 하는 것과 같은 내용이었다.
        • 여자들이 국가적 건강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여성들이 남자들보다 일에 시간을 쓴다고 비난했다.
      • 1920년대의 상당한 이민배척주의 분위기는 immigration restriction legislation에서 나타났고, Catholics, Italians, Jews 등의 입학에 대해서 독설에 편견이 있었다.
        • 그러다가 1920년대에 반발이 일었는데, elite private college 대한 쿼터가 생긴 것이 징후였다.
      • Jews 대한 차별은 뉴욕에서 가장 심했는데, 곳은 유대인 지원자가 가장 많은 곳이었다.
      • MS official들은 공식적으로는 유대인 쿼터나 반유대인 편견에 대해서 부인했지만, 기록을 살펴보면 반대이다.
        • 개인의 인종, 종교, 고향, 심지어 이름을 바꾼 적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까지 하고 있었다.
      •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 중에는 가난한 학생들도 있었는데, 직접적으로 입학을 거절당했다기보다는 장학금이 적고, 그래서 높은 수업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 MS 장학금 부족에 시달렸다. Faculty들이 개인적으로 돈을 내서 장학 기금을 만들었다고도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의 학교는 모금을 하기 위해서 상당히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 의학교육이 개인적인 사업인지, 공공을 위한 서비스인지에 대한 혼동은 20세기 내내 fund 모금하는 것에 계속 문제가 되었다.
      • 궁극적으로 사회적 구성은 매우 재산을 가진 학생들 중심으로 옮겨갔다. 이러한 문제는 미국 교육 시스템 전체의 딜레마이기도 했다.
    • Training for Uncertainty
      • MS에서는 의사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서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MS 목표는 의과학의 기초를 다지고, medical practice 있도록 학생들을 준비시키는 것에 있다. 187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Progressive medical education 전쟁 사이 기간의 의학교육의 주된 화두였다.
      • 의학 curriculum 논리적으로 배열되어 있었는데, 각각의 과목이 다음 배울 과목의 기본이 되는 식이었다. Laboratory에서 배우고, clerkship 하고, 소그룹으로 토의하는 것을 강조하여 학생들이 문제를 푸는 방법을 익히도록 했다.
      • Medical curriculum 구조는 19세기에 설립되었는데, 내용은 상당히 질병의 패턴이나 의과학의 진화 때문에 상당히 dynamic 것이었다.
      • Curriculum 모든 MS에서 비슷하긴 했지만 세부적으로는 상당히 달랐다. 또한 clinical clerkship 학교에 따라 무척 달랐다.
      • Curriculum 짜는데 있어서 의학교육자들은 풍요로운 교육 환경을 만드는 것을 중시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어떤 과목을 넣을 것인지, 시간의 적절한 분배 어떠해야 하는지, 학생 수는 얼마가 적당한지, 교수-학생간 비율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에 대해 논의했다.
        • 개혁을 하고자 하는 학교들은 모두 다른 학교가 어떻게 하는가를 면밀히 조사했다.
      • 의학교육에서 'proper content'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는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 어떤 것이 핵심 지식인지, 어느 정도로 scientific principle 강조해야 하는지, 이론적 목표와 실제적 목표는 어떻게 다른지, 이러한 토의들은 남은 20세기 기간동안 의학교육자들과 university 논의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모두 담겨있다.
      • 의학교육의 가장 문제 하나는 수업이 늘기만 하고 줄지 않는다는 (no excretory system) 이었다.
        • 의학 지식이 증가하면서 curriculum 어떻게 거기에 맞출 것인가에 대한 반응이 있었지만, curriculum 금방 다시 찼다. 4 과정동안 들어야 하는 수업 시간이 크게 증가했다.
      • 의학교육자들은 그들이 좋은(good) product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았으면서 동시에 이를 낫게(better)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건강한 self-criticism 있었다.
        • Yale 대표적.
      • 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MS들은 state licensing board 규정에 의한 제약을 받았다. "State Boards of Examiners 규정이 MS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 그러나 여전히 curricular innovation 모든 중요한 과목을 가르치려는 사이의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 가장 흔한 미신 하나는 벌어질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의술을 행할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MS 학생들이 교육받는 이유라는 것이다.
        • 하지만 사실은 physician들은 종종 딜레마 상황에 마주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개개인은 같은 병에 대해서도 다르게 반응한다.
        • 따라서 의학교육의 1 목표는 학생들로 하여금 수많은 '불확실성' 대하여 효과적으로 대처할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 가장 좋은 방법은 환자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scientific way 가르치는 것이다. problem-solver 키우는 것이었다.
      • 불확실성에 대한 번째 접근법은 clinical clerkship 통해서 소수의 환자를 깊게 보도록 하는 것이엇다.
        • "Sound method habit 친숙하지 못한 환경에서도 활용할 있다"
      • 마지막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훈련은 어떤 정형화된 생각이 아니라 개개인의 환자에 관심을 두도록 함으로써 이뤄졌다.
        • "근본적인 착오는 인간을 획일적인(uniform) 개체로 보는 것에 있다"
      • 불확실성에 대한 훈련을 한다는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intellectual freedom 가짐으로써 의학을 행할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을 뜻했다.
      • 따라서 대부분의 상황에서 실제로는 환자들을 보는 것이 비슷비슷할지라도 medicine by protocol '어떤 진료가 환자와 사회에 최선인가' 대한 일반적 생각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 The Hidden Curriculum
      • 많은 관심을 받긴 하지만 formal curriculum MS에서의 교육적 경험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동등하게 중요한 것은 physician 태도, 가치, 성격, 직업적 정체성이다.
        • 이러한 학습은 잠재적, 암시적이며 이와 같은 광범위한 문화적 환경을 "hidden curriculum(HC)"이라 부른다.
      • 이러한 HC 의학교육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는 학생들은 co-option 아니라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 곳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항상 faculty 보게 되며, 그들은 role model 된다.
      • HC 다양한 분야에서 작동하는데 하나는 의사의 bedside manner이다. 환자의 말에 기울이기, 집중하기, 자신감을 심어주기, 안정을 주기 등과 같은 좋은 의사로서의 자질이 보여지고, 강화된다.
      • 번째로 HC 학생들이 환자를 보는 시야에 영향을 준다. 학생들이 그들의 환자를 '사람'으로 것인지 'abstract disease entity' 것인지.
      • 번째로 HC 전문가적 태도, 가치, 기질에 영향을 준다. 일련의 결정적 경험(critical incident)들이 의사로서의 사회화 과정에 영향을 준다.
      • 마지막으로, MS 어떤 것을 curriculum에서 제외하느냐를 통해서 암시적으로 그들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가장 확실한 예는 시기의 '예방의학'인데, 대부분의 학교에서 최소한의 관심만을 받았으며 예방의학을 가르치는 교수는 이를 한탄했다.
      • Formal curriculum 대비되게, HC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1950 사회과학 연구를 통해 HC 막대한 영향이 밝혀지기도 했다.
    • Student Life
      • MS로서의 경험을 단어로 요약하면 "consuming"이라 있다.
        • 대학생이 보통 학기에 15학점 정도 듣는 것에 비해 의대생은 족히 20시간은 수강해야 한다.
      • 의대생들은 지적인 적응 뿐만 아니라 그들의 태도도 적응해야 했다. 의학교육은 사실상 신체적 정신적 인내력을 한계까지 시험하는 것과 같았다.
      • 이는 수도승과도 같은 경험이었고, clinical year동안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고, 뒤에 밤에도 on-call 상태로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야 햇다.
      • 의대생들의 삶은 항상 건강하지 못했다. 매우 소수의 학교만이 기숙사나 레크리에이션 시설이 있었고 대부분의 학생은 거무죽죽한 지역에 살았다. 결핵은 가장 무서운 병이었다.
      • 날부터 학생들은 그들이 medical school family 일원임을 자각했다.
        • 그러나 그들은 totem pole 가장 밑바닥에 있었다.
      • 학생들은 그들의 통제 밖의 힘에 대해 나약함을 느꼈다. 병원에서 그들은 'free labor' 여겨졌다. 소위 'teacher'라고 부를 만한 사람의 도움은 거의 없었다.
      • 짜증의 근원(bane of existence) 평가와 성적이었다. 당시 학생들은 시기에 비해서 낙제하는 일은 적었지만, 새로운 압박이 있었으니 바로 인턴 합격에 대한 걱정이었다.
        • 성적에 대한 압박은 4학년 인턴 발표가 이후에나 완화되었다.
      • 학생들에게 좋았던 사실은, 성적이 '과학에 기반하여' 메겨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적 평가 과정의 모순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또한 학교마다 성적을 주는 것이 달라서 점수를 짜게 주는 Cornell 졸업생은 종종 피해를 보곤 했다.
      • WW사이이 시기에는 학생과 교수의 관계도 많이 변했다. WWI 이전에는 faculty 자기 학생에 대하여 거의 모든 책임을 졌다. 그러나 WWI이후 연구와 진료와 레지던트 교육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며 faculty 변했고, 학생과 faculty 친밀한 관계도 점차 사라졌다.
      • 이러한 faculty 저하된 관심은 임상 과에서 가장 두드러졌는데, 대부분의 학생 교육은 인턴이 책임지고 했다.
        • 학생에 둔감하고 학생을 경멸하는 레지던트를 만나는 것은 학생에게 악몽과도 같았다.
      • 비록 MS 모두에게 열려 있는 같았지만 일부 학생들에게만 특수한 장애물이 있었는데, 특히 AA 여학생들이 차별을 받았다. AA nonblack 환자를 진료하지 못하는 것이 컸다.
      • 학생 생활은 스트레스가 심했지만 많은 지원도 있었다. MS 커지는 학교의 크기에 비해서 학생에게 많은 신경을 썼다. Advising counselling system 하나였다.
      • 대부분의 지원은 학생들이 그들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었는데, 종종 이런 과정은 자발적이거나 informal하게 이뤄졌다. 또한 지역사회에서도 지원이 있기도 했고, 나이 많은 학생이 아래 학생들에게 조언을 주기도 했다.
        • 대처해나가기 위한 노력(effort to cope) 있어서 의대생보다 울분을 토해내는 사람도 없었다.
      • 학생들이 대처해나가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faculty 의해서 강요되는 규칙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학생 문화를 주장했다.
        • 의대생들은 절망적이거나 무력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환경에 영향을 끼쳤다.
      • 학생들의 파워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도 뚜렷했다. Premedical student 어디에 지원할지에 대해서 스스로 정했고, 하나 이상의 학교에 합격하면 학교를 골라서 갔다.
      • 학생들이 입학하고 나면 그들의 의견은 curriculum 곳곳에 영향을 주었다. 부족한 것이 무엇이고 무엇이 추가되어야 하나?
      • 학생 파워의 궁극적 표현은 faculty evaluation이었다. Faculty 학생을 평가하는 것처럼, 학생은 faculty 평가했고, 이는 승진에 반영되었다.
      • 아마 class play 학생들이 cope하는데 가장 유용한 하나였을 것이다. "Pithotomy" ("to tap a keg")에서 교수들의 약점이나 거드름피우는 것을 기이한 이야기와 외설적인 노래, 유머로 풍자하곤 햇다.
      • 저녁 내내 Pithotomy 비롯한 class play에서 학생들과 교수들은 웃고 마시고 즐겼다.
    • The Limits of Education
      • Physician 마음이나 태도를 만들어나가는 의학교육의 힘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면에 있어서 교육의 역할은 무엇인가?
      • 이러한 논쟁은 가지 중요한 이슈와 관련되어 있었다.
        • 하나는 caring doctor 키워내는 것에 관한 사항이다. 일부 의학교육자들은 공감, 연민, 사회적 책임 등은 가르칠 있는 것이라 보았고, 다른 사람은 이를 HC 보았다. HC라고 보는 입장에서 MS 있는 것은 그저 괜찮아 보이는 학생을 뽑는 뿐이었다.
      • 비슷한 논쟁이 physician 어디서 일을 해야 하는가와 관련해서도 벌어졌다. 당시 의학교육자들은 physician들이 점차 시골보다 도시에서 일하고자 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일부는 시골에서 많은 학생을 받자고 했지만 이렇게 해서 효과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후에 나온 연구는 입학 기준을 낮추거나 입학 정원을 늘리거나 하는 것은 의사의 분포는 바꾸지 못하고 낮은 수준의 의사만 키워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 의학교육에 관한 이런 논쟁은 미국 전체적으로 벌어졌던 '교육이 행동에 영향을 있는가' 논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통설은 행동이나 성격을 바꿀 있다는 것이었지만, 뒤로도 완전히 풀리지 않았으며 이것이 nature-nurture controversy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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