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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rning to Heal : Chapter 11. 의학의 학문적 성숙(The Maturation of Academic Medicine)
Meded.
2013. 6. 24. 17:16
The Subordination of the Private Practitioner
- Full-time system이 논쟁을 촉발시켰을 때, 이것은 practitioner 사이에서도 어떠한 경고 신호와 같았다. Full-time department와 같은 시스템하에서 private practitioner는 없어지기 일보 직전과 같은 위기 상황에 놓여있었다.
- Private practitioner들이 걱정할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우선 clinical scientist들이 임상분과의 권한을 가지려는 의도를 보였던 것이다.
- 의학교육자들에게 clinical teaching은 preclinical teaching만큼이나 전문적인 academic activity였다.
- 아마추어가 할 수 있는 그러한 것이 아니었으며, Academic medicine은 다른 분야들처럼 professionalization의 길을 걷고 있었다.
- 근대 Medical School에서 Practitioner의 지위는 그렇게 항상 절망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Personalized instruction의 시대에서는 clinical teacher가 정말 많이 필요했다.
- 그러나 문제는, private practitioner의 역할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누가 임상교육의 주도권을 쥐느냐의 문제였다.
- “routine” teaching은 private practitioner가 할 수 있는 것이었고 그럼으로써 full-time faculty가 정말 중요한 곳에 시간을 쓸 수 있었다. 점차 practitioner는 부차적인 일들에서나 필요하게 되었다. Professor는 practitioner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의학교육에의 control과 power를 가져왔다.
- Full time professor가 임상교육의 운영을 위하여 임명되었을 때 잔혹한 인사이동이 있었다. 수년, 수십년간 임상 교육을 담당하던 대부분의 private practitioner는 모두 faculty에서 잘리거나, 좌천당했다.
- 의학교육에서 Private practitioner의 전통은 길고,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것이었으나 full-time이 늘어날수록 그들은 점차 스스로를 무용하게 느꼈다.
- 그러면서 Professor와 practitioner의 갈등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 Town—Gown 의 긴장은 대부분의 full time instructor들이 멀리 다른 기관에서 import됨에 따라 더 심해졌다. Private practitioner는 새로 들어온 임상 faculty의 교만함(arrogance)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 New Haven보다 Town-Gown 논쟁이 심한 곳은 없었다.
- New Haven의 한 의사는 MS이 지역사회의 professional fraternity(협회)에 너무 무신경하다고 불평했다. 새로운 plan하에서 practitioner는 자신의 환자를 제대로 볼 수 없었고 환자들은 왜 주치의가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모르는지를 의아해했다.
- Town-gown 논쟁에서 생겨난 불편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실제로, 이러한 감정은 지금도 남아 있다. 그렇지만 1930년에 최악의 적은 사라졌다. 항상 서로를 경계하던 Professor와 practitioner가 상호 이익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 또한 언제나처럼 시간이 약이었다. 나이든 practitioner들이 은퇴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무엇보다 clinical science는 쓸모가 있었다(worked). 대중들이 이러한 사실을 인정했고 practitioner가 의학교육의 주도권을 잃음으로서 상실한 부분은 사회적인 지명도나 영향력으로 보상받았다.
The Enthronement of Research
- 의학교육자들의 full-time activity에 대한 주장은 옳은 것이었을까?
- 그들의 근거 중 하나는 full-time profession이 더 나은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 하지만 이런 주장은 전혀 옳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 근거도 없었을 뿐더러 private practitioner도 좋은 교육을 –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 하고 있다.
- 그러나 Clinical scholarship의 목적이 연구였다면, 그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Professor와 practitioner 모두 임상연구는 고된 과정이며 대충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다. Full time position이 아닌데 lab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의사는 거의 없었다.
- 이것이 좋은 선생님에 practitioner는 포함되더라도, 좋은 연구자에는 포함되지 않는 이유이다.
- 1920년대에 연구는 미국 Medical school에 이미 퍼져있었다. 일부 학교는 다른 학교보다 더 연구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전과 같은 학교간 심각한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 연구가 그 중요성을 인정받을수록, academic medicine은 처음으로 ‘상승장’을 즐길 수 있었다. Full time position은 전례없이 그 수가 많아졌다.
- 한 세대 이전만 해도 academic medicine의 물질적인(자리, 기구, 돈) 것들이 academic medicine을 저해하는 요인이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능렸있는 manpower가 부족한 상황이 되었다.
- Academic medicine의 성장과 함께, medical scientist들의 오래된 소망이 이뤄졌다. 의학 교육과 연구를 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국 MS에서 교육은 연구에 의해 뒷전으로 밀렸다. 궁극적으로는 Pure university value를 추구하기 위한 길을 택하게 된 것이다.